내 책상의 책장 위에는 KF94 마스크 여러 개가 있었다. 마스크를 언제부터 이렇게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마스크는 필수적인 물건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황사가 있어도 굳이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고, 마스크는 주로 감기 걸렸을 때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야 마스크를 곧잘 쓰기는 했다. 천으로 된 어린이용 마스크였다. 그 이후로 내가 마스크를 쓴 기억은 흐릿하다. 아마 거의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봄이 되면 으레 찾아오는 황사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미세먼지라는 게 우리 삶에 불쑥 나타났다. 황사는 주로 봄에만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그걸 지나보내면 곧 깨끗한 공기(그렇게까지 깨끗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가 찾아올 걸 알았다. 이제 미세먼지는 그렇지 않다. 사시사철 우리를 위협하고, 공기청정기와 마스크가 새롭게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아직 공기청정기 비교만 하다가 여태껏 못 샀지만 마스크는 꽤 여러 번 구입했다. 그것도 아무 마스크가 아니라, 미세먼지를 막아준다는 수치의 마스크였다. 가격도 은근 만만치 않다. 한 번 살 때 박스로 사기는 하는데, 하나에 거의 1,000원 혹은 그 이상이라 계속 마스크를 위해 돈을 지출해야한다는 건 이제 또 다른 부담으로 느껴진다.

  마스크 값에 툴툴거리기는 했어도, 나는 마스크를 철저하게 쓰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해보기는 하지만, 가끔은 모르고 나왔는데 하늘이 온통뿌열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마스크를 하나 사는 편이 아니라 그냥 다니는 편이다.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사지 않고 낱개로 사는 건 비싸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아마 나는 그렇게 철저하게 건강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보다. 그저 언론에서 위험하다고 떠들어대고,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 할 거 같고, 다른 사람들도 하니까 적당히 따라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아직 이 마스크가 필수적인 건 아닌 듯 싶지만 마스크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고, 마스크가 없으면 더는 바깥을 돌아다니기 힘든 상황을 생각하면 아포칼립스의 도입부처럼 느껴지기는 한다. 공기마저도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차별로 다가온다니 섬뜩하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매일 바꿔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내가 원한다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는 큰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마스크 때문에 숨이 답답한 것을 언제부터인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할 일이 자꾸만 늘어난다. 어디까지 감당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날도 자꾸만 더워지는 이 상황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수십 개 쓰고 버리는 게 잘하는 건지는 아리송하지만 그렇다고 안 쓸 수 있는 상황은 또 아니다. 다양한 기능의 마스크가 등장하는 걸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출국할 때 공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마스크를 한 사람도 제법 보였다.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 더 날카롭고 불안해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아래로 불안한 얼굴을 감추고 확진 환자가 몇 명이 나왔고 첫 발병지인 중국의 현재 상태는 어떻고 진짜와 가짜 사이를 오가며 뉴스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여행 중에도 쉽게 불안과 공포가 전염되었다. 다른 사람이 본 마스크를 보면 안심이 되면서도, 마스크가 완벽하다는 걸 알기에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쓴 이 상황 자체가 두려운 건 사실이다. 마스크가 행운의 상징이었던 적은 없지만 앞으로 마스크는 점점 더 두려운 광경을 묘사할 때 쓰일 것 같다. 아포칼립스 영화 같은 일이 도래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비관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찾아 하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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