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를 보지 못한 지 벌써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두 시를 넘어간 시곗바늘을 한 번 보고는 이미 붉어진 눈을 비볐다. 두 사람이 동거하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지 2년이 지났을 무렵. 당시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아카아시는 쿠로오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면서 후쿠로다니와는 꽤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연인인 쿠로오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정식으로 동거를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쯤 뒤의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항상 쿠로오의 얼굴을 보고, 그의 손을 잡았다. 그 때가 좋았는데. 아카아시는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채 한숨만 쉬었다.


사귄지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당연히 좋았지. 이 세상에 아카아시 저만 보이는 마냥 달콤하게 대하곤 했었다. 동거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쿠로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모든 것이 틀어졌다. 회사에서의 회식이 잦아졌고 그만큼 늦게 들어오는 날이 늘었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쿠로오는 집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1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의 옷에서 향수냄새가 나기 시작했을 무렵, 아카아시는 휴일을 집에서 보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질 않아서 새벽무렵이면 항상 이렇게 쿠로오를 기다리곤 했다.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지 오늘로 꼭 6년째. 아카아시는 젖은 소매로 눈가를 비비고는 거실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차갑게 식은 침대가 오늘따라 더욱 미웠다.


쿠로오가 들어온 것은 그 날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쿠로오는 그래도 제 연인과의 기념일이랍시고 케이크 하나 선물 하나를 사들고 술에 취해 비틀대며 현관 앞으로 걸어와 초인종을 눌렀다. 거의 남의 집마냥 드나드는 마당에 열쇠를 챙길 리가 없었다. 딩동, 딩동.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는 건너편이 야속했던 쿠로오는 제 연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에이씨 하며 무작정 문고리를 돌렸더니 이상하게도 문이 열렸다. 문도 안잠그고 자는거야? 아카아시가 이럴 애가 아닌데, 하며 현관으로 들어선 쿠로오는 인기척 없는 거실에 쯧 하고 혀를 찼다. 자는구만. 왜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자고 그런대. 야아, 아카아시. 대충 구두를 벗어두고 테이블에 케이크와 선물상자를 올려두고는 비척비척 침실로 향했다. 몇 주만에 들어온 집이지만 아카아시가 있어주었기 때문일까 혼자 살 때의 쓸쓸함은 없었다. 그게 좋았다. 이 문 너머에 아카아시가 있다. 입꼬리는 자연스레 올라갔다. 아카아시~쿠로오씨 왔어~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지만, 그가 원하던 이는 그 건너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식은 침대와 '안녕히계세요' 라는 메모 한 장만이 그의 앞에 펼쳐졌을 뿐.




아카아시는 짐을 싸서 본가로 돌아갔다. 부모님께는 동거인이 방을 빼게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씀드렸다. 동성의 연인과 헤어질 마음으로 돌아왔다던가, 부모님께는 절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 열두시까지는 기다려 볼 걸 그랬나. 웃음 섞인 한숨이 비져나왔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열두시 전에 돌아 올 리가 없었다. 몇 년을 지켜봤지만 열두시 이전에 돌아온 날은 손에 꼽았고 대부분이 기본으로 2시를 넘겨서 들어왔는데 오늘이라고 별반 달라질 리가 없었다. 여자 향수냄새를 묻히고 다니고, 커플링을 아예 협탁 위에 두고 다니는 남자가 저와의 기념일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제는 그가 자신이 집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자를 좋아했었으니까 이제 평범하게 여자와 사귀고 그러다 결혼하고 그러면 되는걸까. 이미 식어버린 애정은 그에 대한 집착이 되었지만 아카아시 자신이 먼저 잘라냈으니 이제 집착마저도 남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치 아직도 그를 사랑하기라도 하는 마냥, 가슴이 저려오는걸까. 사람 마음은 참 모르겠다며 아카아시는 고개를 젓고서 오랜만에 찾아온 제 방 침대에 뛰어들었다. 편안하다. 그 집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불면증이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폭신한 베게에 코를 박고서 아카아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반면 쿠로오는 미칠 지경이었다. 전화를 해도 꺼져있지 짐은 이미 아카아시 것만 사라져있지. 단기출장과 술자리가 잦은 직업이다 보니 그런 것에 대해서 일일히 말했다간 아카아시가 질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아껴왔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말 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만약 아카아시가 몇 주 동안이나 말 없이 집에 들어오질 않다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열이 얼굴로 몰려 머리칼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생각만 해도 싫은 그런 일을, 아카아시는 매일같이 겪었다는걸까. 쿠로오는 그제서야 해서는 안될 짓을 했던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텅 빈 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방금전까지만해도 그의 체향이 맴도는 것만 같던 집은 아카아시의 부재를 확인하자마자 낯선 그것으로 바뀌었다. 쿠로오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뒤로 기댄 채로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 술에 취해서도 그가 기뻐해줄 것을 기대하며 사들고 왔던 첫 커플링은 이미 주인을 잃은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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