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 이십삼 분.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 본 켄마가 화면을 껐다. 어둠에 익숙했던 눈이 갑작스런 빛에 놀라 시렸다. 하얗게 잔상이 남은 눈꺼풀을 깜빡이며 몸을 뒤척였다. 정체 모를 불면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게임을 하다 늦게 자는 것이 습관이 돼서 잠이 달아났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면 분명 수업시간 내내 정신을 못 차리겠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지루하게만 느꼈던 수학시간에도,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그리고 지금같이 깊은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수면’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삶이었던 것처럼 켄마의 잠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잠에 잔뜩 취해 흐린 눈으로 등교하며 ‘인간은 왜 잠을 자야만 하는 가’에 대해 해답 없는 고민을 했던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수면유도제를 샀다. 복용법에 한 번에 한두 알이라 적혀있었지만 들어있던 열 알 전부를 털어 넣었다. 요즘엔 약이 좋아 수면유도제 과다복용으로 죽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기껏해야 위세척일 것이다. 알약 한 움큼에 위가 꽉 찬 것 같은 더부룩함을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약이 잘 들었다면 시간을 확인할 일도 없었을 텐데 이렇게 뒤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나 효과가 없었다. 이렇게 의미 없이 누워 있느니 게임을 하는 편이 차라리 유익할 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열린 창으로 보이는 달이 유난히 컸다. 지평선이 보였다면 그 선에 걸쳤을 것이 분명할 정도로 낮게 떠있었다. 켄마는 잠시 넋을 놓고 달을 바라봤다. 휴대폰을 들어 달을 찍어보려 했지만 화면 안의 달은 눈으로 보는 것처럼 크지 않았다. 창틀에 팔을 걸치고 손바닥만큼 크게 보이는 달을 봤다. 문득 오늘 같은 날이면 달에 소원을 빌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 좀 자게 해주세요…….”


 스스로 듣기에도 작은 목소리였다. 힘이 없어 달에게 가는 도중에 흩어져 버릴 것만 같은 그 목소리에 누군가 대답을 했다.


“왜? 잠을 못 자는 게 고민이야?”

 

 예상치 못한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켄마가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목소리의 주인이 ‘이 쪽인데’ 하고 말을 걸어왔다. 담벼락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켄마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일어섰다. 겨우 엉덩이만 붙일만한 좁은 폭인데도 일어나는데 조심스러움이라곤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질까 불안한 쪽은 켄마였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본 남자가 괜찮다는 의미로 씩 웃어보였다.


“확실히 달에는 신묘한 힘이 있긴 하지. 간절하게 말하면 들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렇게 기운 없이 말하지 말고 좀 더 힘을 실어서 기도해보지 그래?”


 이 시간에 담벼락에 서있는걸 보면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켄마는 혹시 해코지라도 당할까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자가 다시 달로 시선을 옮겼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보면 좋을 것 같은데…….”


 남자가 이쪽으로 홱 고개를 돌리자 켄마가 흠칫 몸을 떨었다. 순간 담벼락에서 뛰어오른 남자가 순식간에 켄마의 창 아래 지붕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중을 날아 이 층 높이의 지붕위로 올라섰다. 켄마는 자기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며 창문을 쾅 닫았다. 혹시 부모님이 깨실까 걱정도 들었지만 일단 벌어진 상식 밖의 일에 놀라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귀신인걸까. 앞으로 무서워서 창문을 열지 못할 것 같다.

 

 게임은 무슨 켄마는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하느라 날밤을 샜다. 허공을 가르고 다가오던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반복재생 되었다. 뻑뻑한 눈 주변을 손으로 꾹꾹 눌러 마사지했다. 잠이 오지 않을 뿐이지 피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도 활기찬 편은 아니었지만 잠을 못 잔 탓에 기운이 빠져 학교에선 책상 붙박이 신세였다. 전에 귀신을 본 적은 없으니 갑작스레 귀신을 보는 신통력이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달이 유난히 밝은 것부터 요상한 밤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을 맴돌고 있는 귀신이 존재할 거라 생각하니 어쩐지 으스스해졌다. 켄마는 한기가 도는 것 같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들지도 않을 약을 사느라 돈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도서관에서 제일 재미없어 보이는 아무 책이나 집어 빌려왔다. 어떻게 서론까지는 읽어보았지만 도통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잘 읽히지 않는 문장의 첫 머리로 돌아가 꾸역꾸역 읽어가던 켄마는 책을 풀썩 덮어버렸다. 차라리 안자고 말지 이런 재미없는 일로 시간 보내기는 고문에 가까웠다. 어제 이후로 한 번도 열지 않은 창문을 쳐다봤다. 창문에 방문까지 꼭꼭 닫아놓으니 방 안 공기가 탁하게 느껴졌다.


 살며시 열어젖힌 창문 틈새로 서늘한 밤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코와 이마 사이에 돌덩이 하나를 얹어 놓은 듯 머리가 무거웠다. 켄마는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찬 공기를 마시면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어제 남자가 서있던 담벼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헛것을 봤다고 하기에는 남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났다. 어디선가 냐-냐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창문 아래 지붕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켄마를 향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새까만 탓에 한 눈에 위치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고양이의 두 눈이 번쩍이며 여기 있다고 알렸다. 주변에 나무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왔을까? 고양이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앞발을 핥았다.


“먀-오-”

“여기는 어떻게 올라왔어? 내려갈 수 있니?”

“냐-”


 고양이를 잡기 위해 창밖으로 몸을 길게 내밀어 팔을 뻗었다. 검은 고양이는 닿을 듯 말 듯 켄마의 손 주변을 서성였다. 혼자서 지붕 아래로는 내려가기 힘들 텐데……. 사람 손에 잡히고 싶지 않은 것인지 고양이는 아예 지붕 끝으로 가버렸다. 켄마는 의자를 가져와 창밖으로 나갔다. 층이 다르다곤 하지만 지붕 밑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었다. 야옹아, 움직이지 말고 거기 그대로 있어. 말을 알아듣는 건지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켄마를 쳐다봤다. 딱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고양이와 신경전을 벌였다. 발을 떼려 하면 도망갈 듯 흠칫 긴장하는 탓에 켄마도 같이 눈치를 보며 아주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응, 옳지. 그대로 있어. 얌전히 지붕 끝에 앉은 고양이에게 팔을 뻗은 그 순간, 고양이가 후다닥 달아나는 바람에 몸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지붕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켄마는 그대로 몸이 공중에 뜨는 것을 느끼며 눈을 꽉 감았다. 최소한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질 것이다. 방에 가만히 잘 있던 아들이 지붕에서 떨어진 채로 발견되면 부모님이 얼마나 놀라실까? 어제 수면유도제도 들지 않았는데 다쳐서 수술해야하면 생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 켄마는 짧은 순간에 수십 가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쯤 되면 바닥에 떨어져있어야 할 몸이 아직까지 멀쩡했다. 질끈 감은 두 눈을 슬며시 뜨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검은 털이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말을 못 알아듣고……. 쯧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켄마를 등에 올린 검은 짐승이 고개를 돌려 푸른 눈을 빛냈다. 짐승이 쉭쉭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숨이 잠시 하얗게 길을 내었다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너무 놀란 탓일까 몸에 힘이 빠진 켄마는 등에 엎어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꿈이야?”

“잠을 못 잔다면서. 꿈일 리가 있나.”

“그렇지. 이렇게 생생한데…꿈일 리 없지…….”


 켄마는 부드러운 털을 손바닥으로 길게 쓸어내렸다.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 좋은 듯 쉭쉭 거리는 숨소리에 그릉 거리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따뜻한 털 안에 파묻혀 만지작거리던 켄마가 고개를 들어 달을 봤다. 어제만큼 크진 않았지만 여전히 둥글고 밝았다. 어제는 사람의 모습이었다가 오늘은 고양이와 정체모를 커다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것은 무어라고 해야 할까. 귀신? 요괴?


“…이름이 뭐야?”

“그건 왜 물어?”

“생명의 은인이니까. 이름정도는 알고 싶어서.”

“은인이면 은혜를 갚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보답할 수 있다면.”

“겁이 없구나. 내가 무엇을 요구할 줄 알고.”


 혹시 영혼을 달라고 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에 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영화나 만화 같은데서 보면 요괴가 인간을 먹기도 했던 것 같은데……. 괜히 은인이라는 말을 해서 꼬투리를 잡혔다.


“‘쿠로오’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지?”

“…켄마.”

 

 두려움과 경계심이 가득한 켄마의 표정이 재미있는지 쿠로오가 몸을 떨며 웃었다. 그 탓에 떨어질 뻔한 켄마가 우아악-하고 소리 지르며 매달렸다. 밤이라 조용히 해야 하는데 도대체 몇 번이나 시끄럽게 하는 거야. 켄마가 속으로 아우성쳤다. 물끄러미 달을 보던 쿠로오가 말했다.


“달은 높은 곳에서 보면 더 멋져. 도쿄의 밤은 꽤 아름다운 편이거든. 꽉 잡아라, 켄마.”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켄마는 이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쿠로오에게 매달리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매달린 허벅지에 힘을 주며 목 근처로 이동했다. 밑을 보면 손에 힘이 풀릴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기어올랐다. 쿠로오의 목을 두 팔로 안은 켄마가 털에 얼굴을 묻었다. 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잠옷이 펄럭이며 나부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높은 곳으로.”


 쿠로오가 공중을 달리는 동안 켄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달을 보았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달은 못에 박힌 듯 그곳에 있었다. 도쿄에서는 별을 보기 힘들었다. 검은 하늘에 점점이 빛나는 무언가가 별인지 아니면 비행기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마저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럽혀진 도시에서 요괴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다. 분명히 꿈이 아닌 현실이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철탑 꼭대기 부근이었다. 무서워서 보지 못하겠다는 켄마에게 쿠로오가 여기 두고 가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켄마는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준채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도쿄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뚝 선 도쿄타워를 중심으로 둘러싼 건물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도쿄타워의 끝이 가리키는 곳엔 달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새카만 하늘과 대비된 야경은 마치 땅위에 뜬 별 같았다. 켄마는 높은 철탑위에 올라서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벌리고 아래를 내다보았다. 어때? 아름답다고 했지? 우쭐한 목소리에 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은 왜 이리 잠을 안 자는지 모르겠어. 도통 조용히 하는 법을 모른다니깐. 슬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어디로?”

 “숲이 있는 곳으로.”


 쿠로오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져 눈을 보려 했지만 거세게 불어 닥치는 바람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추워, 돌아가자. 켄마의 말에 쿠로오가 펄쩍 뛰어올랐다. 뻥 뚫린 아래를 겅중겅중 뛰어가는 느낌은 땅에서 달리는 것과 확연히 달랐다. 처음과 달리 높이에 익숙해진 켄마는 잡은 털을 꼭 쥔 채 밑을 내려다봤다. 머리칼이 날리는 속도와는 다르게 발밑에 깔린 불빛은 고요했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분명 죽겠지’라는 생각을 하자 배꼽아래가 기묘하게 간질거렸다. 켄마는 쿠로오의 목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몸이 둥실둥실 흔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쿠로오가 길게 숨을 뱉으며 부드럽게 착지했다. 눈을 뜨니 아까 열어놓은 창문 앞이었다. 켄마가 내려올 수 있게 다리를 숙인 쿠로오는 창틀위에 앉은 켄마를 확인하고 다시 고양이로 돌아갔다.


“냐아-”

“왜 하필 고양이야. 사람으로도 둔갑할 수 있으면서.”

“웅냥!”

“오늘 고마웠어. 또 보자.”


 켄마가 손을 흔들자 고양이로 둔갑한 쿠로오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자리를 맴돌더니 이내 지붕 아래로 뛰어내렸다. 풀썩, 하고 내려앉은 소리와 함께 자박자박 풀 밟는 소리가 이어졌다. 혼자서도 내려갈 수 있구나. 괜히 오지랖 부렸네. 창문을 닫았다. 머릿속에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바람에 날아간 것만 같았다.


* * *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나? 라는 고정관념에 엄마에게 꽁치구이를 부탁했다. 저녁은 방에서 먹겠다고 고집을 부려 쟁반에 밥상을 차려 가지고 올라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초저녁이었지만 창을 열고 두리번거렸다. 쿠로오- 하고 몇 번 불렀지만 당연히 대답이 없었다. 요괴라는 것이 이름만 부르면 쉽게 나타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일부러 저녁식사를 준비했는데 어떻게 전해주지. 책상위에 둔 밥상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다시 두통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쿠로오씨는 무슨 연유로 부르시나?”


 불쑥 창문에 기댄 모습에 켄마가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기척이라도 낼 순 없는 거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켄마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하, 무슨 일로 불렀는데?”

“…밥 먹으라고.”


 식사는 순식간이었다. 기껏 준비한 수저가 무색하게 쿠로오는 손으로 구운 꽁치를 집어 머리부터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밥그릇 안의 밥은 통째로 집어 주먹밥처럼 베어 먹고, 절인 오이와 무를 오독오독 씹은 뒤, 입가심을 하듯 잘게 자른 두부가 떠있는 미소시루를 후루룩 마셨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 켄마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먹었냐 물었다.


“맛이 좋네. 이게 은혜를 갚는다는 건가?”

“어...마음에 안 들어?”

“술도 없이 은혜를 갚는다니 예의를 모르는구나.”

“나는 아직 미성년자라 술은…….”


 그리고 애초에 네가 남의 집 지붕위로 올라오지만 않았어도 내가 떨어질 뻔한 일은 없었을 텐데? 저녁을 대접했는데 술까지 가져오라는 파렴치한 쿠로오의 말에 억울함이 샘솟았다. 하지만 어제 그가 보여준 도쿄의 야경은 남의 비위를 맞추는데 전혀 익숙하지 않은 켄마가 고분고분해 질 만큼 훌륭했다. 손에 묻은 생선기름을 옷에 대충 문질러 닦은 쿠로오가 일어나 창을 열었다. 손으로 식사를 할 때부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보고 있던 켄마의 고개도 쿠로오를 따라 올라갔다. 뭐해? 일어나지 않고. 밥을 먹었으니 산책을 가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켄마는 자기도 모르게 애완견을 떠올렸지만 묵묵히 후드집업을 챙겨 입었다.


* * *


 매섭게 파고드는 바람에 크게 몸을 휘청 이며 기둥을 붙잡았다. 비바람에 부식되어 흔적만 겨우 남은 페인트 껍질이 긴장으로 축축해진 켄마의 손바닥에 들러붙었다. 평소 같으면 더럽다고 손을 털어냈겠지만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선 살짝 만지기만 해도 녹물이 들 것 같은 철탑 기둥을 단단히 붙잡는 수밖엔 없었다. 위풍 당당히 털을 휘날리던 쿠로오가 안간힘을 쓰며 서있는 켄마를 보고 성냥개비 같은 몸이라며 혀를 찼다. 켄마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휙 하니 날아갈 것 같은 꼴을 하고도 저 아래 도시를 보며 눈을 빛냈다. 보다 못한 쿠로오가 거대한 주둥아리로 켄마를 물어 등 위로 올렸다. 양 팔 가득 들어오는 따뜻한 털에 뺨을 비비며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걸까? 그러나 때마침 휘유웅하고 철탑 사이사이를 가르며 부는 바람에 켄마의 작은 속삭임은 힘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저만 아는 비밀의 장소라며 쿠로오가 데려온 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작은 언덕이었다. 무성히 자란 잡초를 헤치고 쿠로오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묘한 푸른빛을 내는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새까만 털의 쿠로오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주변에 어떠한 인공적인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깜박여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팔다리를 더듬거리며 쿠로오의 곁에 몸을 기댔다.


 켄마는 확실히 지쳐있었다. 잠 못 이룬 밤이 이제 두 손을 꼽아 셀 수 없을 만큼 늘었고 쌓여가는 피로는 갈 곳 없이 몸에 누적되었다. 매일 밤 찾아오는 쿠로오도 하루하루 시드는 것을 느낄 만큼 기운을 잃었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던 두통과 이명은 약을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 쿠로오와의 밤나들이가 켄마에게 있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깊은 밤에도 불 꺼질 줄 모르는 도시를 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잠들지 않는 사람이 나뿐 만은 아니라는 위안 감을 얻기도 했다.


 쿠로오가 숨을 들이 마실 때마다 기대있던 켄마의 몸도 오르내렸다. 바람이 나무숲을 헤치고 지나는 소리, 찌륵거리는 풀벌레 소리, 풀잎이 서로 스치며 사부작거리는 소리. 켄마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대로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언제부터 못잔 거지?”


 쿠로오의 물음에 켄마가 고갤 들다 때마침 하늘을 지나는 비행기의 불빛을 눈으로 쫓았다. 어,…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더라. 기억의 페이지를 더듬었다. 어제일과 그제일이 뒤섞여 어느 순서가 맞는지 헷갈렸지만 켄마는 차분히 기억을 되짚었다.


원래 밤에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자는 편이라... 아침엔 졸려서 비몽사몽하면서 학교에 가거든. 그날도 새벽에 자서 피곤했었어. 아침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은 왜 잠을 자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골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거야. 지나치려다 슬쩍 보니까 까마귀 하나가 고양이들한테 공격받고 있었어. 조금 지켜보다 보니 혼자서 공격받는 게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를 쫓아내줬어. 그랬더니 까마귀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 마냥 내 주변을 맴돌더니 까악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날아갔어. 하늘에서도 한참이나 깍깍대며 울어서 괜찮으니 이제 가보라고 하니까 알아들은 건지 그제야 어디로 가버리더라. 그리고 나는 학교로 가는데 이상하게 씻은 듯이 잠이 사라졌어. 소란스런 일을 겪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날부터였던 것 같아. 잠을 자지 못하게 된 게.


 켄마가 느릿하게 설명하는 동안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야기를 듣던 쿠로오가 푸르릉 하고 콧김을 뿜었다. 까마귀로구나. 쿠로오의 반응은 그것뿐이었다. 혹시 그 까마귀도 요괴였을까? 하고 켄마가 물었지만 쿠로오는 글쎄올시다, 라고 시원찮은 대답을 했다.


“잠을 못자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쿠로오를 만난 건 꽤 좋았어.”

“오야? 칭찬으로 때우시려는 겁니까, 켄마군. 아직 술도 대접받지 못했는데.”

“술은 못산다고 했잖아. 바보 고양이.”

“슬쩍하면 되잖아. 보니까 집에 있던데.”

“걸리면 혼난다고. 그리고 슬쩍하는 건 나쁜 짓이야.”


 너는 겁이 너무 많아. 쿠로오가 고개를 내저었다. 불어오는 찬바람에 켄마가 재채기를 했다. 털 속으로 몸을 파묻자 쿠로오가 이만 돌아가자며 켄마를 등에 태웠다.


* * *

 

 별다른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쿠로오는 며칠째 나타나지 않았다. 매일 같이 오던 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해가지면 집 근처를 맴돌다 고양이를 만나면 혹시나 싶어 ‘쿠로오?’하고 불러보았지만 인기척에 얼른 몸을 숨기는 것을 보며 실망하는 것이 여러 차례였다. 창가에 쿠로오가 좋아하던 꽁치구이를 놔두어도 소용없었다. 숲으로 간다더니 말도 없이 가버린걸까. 그새 정이 들었는지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바람에 커튼이 찰랑이는 것을 지켜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끈하게 열이 나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밖에선 체육수업이 한창이었다.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양호실에 가겠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는 선생님은 없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얇은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눈을 감으니 양 다리에 추를 단 듯 무거운 몸이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켄마는 쿠로오의 등에 올라타 하늘을 유영하던 것을 떠올렸다. 지금 내 발밑엔 도쿄가 있고 정수리 위엔 환한 달이 있지.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도쿄의 야경을, 쿠로오의 얼굴을. 메스껍던 속이 뒤집히며 구토감이 치밀었다. 켄마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었다.


 결국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복도에 일을 치르는 바람에 양호선생님께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했다. 조퇴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수업 중간에 짐을 챙겼다. 이른 시간에 집에 가는 것을 부러워하는 시선과 어디 크게 아픈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시선들이 뒤엉켜 날아왔다. 이목이 집중되는 게 싫어 얼른 교실 문 밖을 나서자 저마다 웅성대던 아이들을 조용히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모님께 연락을 했는지 병원을 가보라는 엄마의 문자가 여러 번 알림을 울려댔다.


요새 통 잠을 못 잤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이 검사를 권유했다. 다음에 부모님과 같이 오겠다고 약속한 켄마는 링거를 맞고 집으로 향했다. 분명 일찍 조퇴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켄마는 길게 늘어진 제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고양이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드니 노란 털을 한 고양이가 담장 위에 앉아 있었다. 켄마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비쳤지만 고양이가 그것을 알리가 없었다.


“왜 그런 표정을 해? 쿠로오씨가 아니어서 실망한 거야?”


 능글대는 목소리, 쿠로오가 분명했다. 켄마가 놀라 몸을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쿠로오의 가슴에 코를 부딪쳤다. 어디 갔었어? 왜 며칠 동안이나 오지 않았어?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부유했지만 눈앞에 있는 쿠로오의 표정을 보니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면에 다정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켄마의 뒤통수를 가볍게 쓸었다.

 

“우리, 조금 걸을까?”


 쿠로오와 있으면 주변의 색감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노을이 거리를 온통 붉게 적셨다. 뒤를 슬쩍 보니 키보다 훌쩍 긴 두 개의 그림자가 발밑을 따라왔다. 요괴도 그림자가 있다는 걸 확인하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밤에만 돌아다닐 수 있는 줄 알았어.”

“밤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낮이라고 밖에 못 다니는 건 아니야.”

“…안오길래 숲으로 갔다고 생각했어.”

“멀리 있는 친구를 좀 만났어. 거긴 아직 숲과 나무가 많더라.”

“그럼…….”

“이제 높은 곳은 안 무섭지?”


 그럼 이제 거기로 떠나는 거야? 켄마의 질문을 미리 알기라도 하는지 쿠로오가 말꼬리를 잘랐다. 켄마가 눈을 깜빡이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가 켄마를 데려간 곳은 중심가의 한 건물 옥상이었다. 해가 숨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화려한 네온사인과 간판들이 도시의 불을 밝혔다. 무섭지 않다고 했지만 막상 난간에 걸터앉아 밖으로 다리를 내밀고 있자니 두려움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랐다. 켄마가 빳빳이 굳은걸 아는지 쿠로오가 난간을 붙든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등에 소름이 삐쭉 솟을 지경이었다.


“미야기에 다녀왔어. 오랜만에 갔더니 거기도 많이 변했더라고. 전에 까마귀를 만났다고 했지? 아직 힘이 별로 없는 꼬마 요괴라 고양이하고도 시비가 붙나보더라. 히나타가, 아 녀석 이름이야. 히나타가 고맙다고 전해 달랬어.”

“역시…요괴였구나…….”

“그리고 미안하대.”

“응?”

“그 때 보답으로 너의 고민거리를 하나 가져간다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줄은 녀석도 몰랐나봐. 네 잠을 가져가서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하길래 강 밑을 샅샅이 뒤지느라 며칠이나 걸렸어.”


 쿠로오가 주머니에서 노란 빛을 띠는 돌멩이를 꺼냈다. 물에 들어가는 건 정말 질색이야. 축축하고 차갑고. 쿠로오가 손 안에서 돌을 굴리며 말했다. 켄마는 그제야 쿠로오의 손이 왜 그리도 차가운지 깨달았다. 쿠로오가 켄마의 손바닥 위에 돌을 올렸다. 작은 돌을 꽉 쥐자 돌에서 나오는 빛이 손 틈새를 비집고 새어나왔다.


“도시의 불빛을 사랑하는 아이야. 요괴를 만나 고생이 많았다. 이제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은 잊고 네 세상에서 편히 쉬어라.”

“무슨 말이야?”


 눈꺼풀이 참을 수 없게 무거워졌다. 서서히 닫히는 시야를 억지로 열어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잊으라니 그건 무슨 소리야? 쿠로오에게 묻고 싶었지만 점점 무너지는 몸은 끙끙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여전히 차가운 손으로 쿠로오가 스러져가는 켄마의 몸을 붙잡아주었다. 안 돼, 안 돼.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켄마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 * *


 자그마치 한 달을 잤다고 들었다. 켄마가 일어났을 때 걱정과 안도로 울고 계신 부모님이  눈앞에 계셨다. 켄마가 왜 그리도 오래 잤는지 병원에선 원인을 찾지 못했다. 깊은 잠을 자면서 기나긴 꿈을 꾸었던 것 같지만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 날 듯 말 듯 한 꿈은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켄마는 요새 집 주변을 맴도는 고양이 한 마리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새까만 털을 가져서 ‘쿠로'라고 이름을 붙였다. 마치 저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굣길 골목에 나와 있다가 켄마를 발견하면 대문 앞까지 같이 걸었다. 검은 고양이는 주변을 빙빙 돌면서도 켄마가 만지려고 하면 잽싸게 몸을 피했다. 켄마는 쿠로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부모님께도 미리 허락을 구했고 쿠로와 더 친해지기만 한다면 같이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쿠로, 어디 있어?”


 부르는 소리에 어디에 있었는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접시에 받친 꽁치구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냐-하고 울더니 허겁지겁 생선살을 뜯어먹는다. 켄마는 조심스럽게 꽁치를 먹는 쿠로오의 등에 손을 댔다. 먹느라 정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만지는 것을 허락한 건지 쿠로가 피하지 않았다. 용기 내어 머리부터 등까지 쓸어내리자 쿠로가 고개를 들었다. 파란 눈동자가 마치 유리구슬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쿠로가 빤히 켄마를 쳐다봤다.


“쿠로, 우리 집에 갈래?”


 켄마의 물음에 쿠로가 앞발을 핥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지 않을래? 켄마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실컷 앞발을 핥고 세수까지 한 쿠로가 꽁치를 한 번 내려다 봤다.


“나랑 살면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어. 꽁치구이 말고도.”

“먀옹-“


 허락의 의미인지 쿠로가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정말이지? 켄마가 씩 웃자 쿠로가 다시 야옹거리며 꽁치구이를 먹기 시작한다. 켄마는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집에 이 소식을 알려야했다.


[쿠로, 오늘 데려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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