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HOOT !

W. 몸






“ 지훈아. ”

“ ... 예? ”

“ 나 룸 좀 잡아주면 안 돼? 여기서 출근할래. ”

“ 프론트는 저 쪽입니다만. ”

“ 나 너무 피곤해서 그래... 이 호텔 니가 잘 알잖아. 전에 나랑 키, ”

“ 예. 제가 대신 잡겠습니다. ”



지훈은 기분 나쁜 추억을 꺼내는 것이 꺼림직해 앞장 서 프론트 앞으로 갔다. 느긋하게 걸으며 그 뒷모습을 관찰하던 민규는 이지훈이 뻗대기는 해도 참 다루기 쉽단 말이야. 속으로 생각했다. 카드 키를 가지고 민규의 앞으로 다가온 지훈이 민규의 앞에 손바닥을 흔들어 보였다.



“ 멀쩡합니까? ”

“ 이지훈이 방 잡아왔어? 어이구 착해. ”

“ 일단 제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내일 계좌로 돌려주시면 됩니다. ”

“ 응... 고마워 이지훈. ”



실내에 장식된 화단을 짚고 선 민규가 미소를 띄우며 지훈에게 말했다. 당황한 지훈이 말없이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고맙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네. 지훈이 내민 카드 키를 받을 생각은 없고 민규가 풀린 눈으로 지훈을 바라보고 있자 어색한 공기를 가르듯 지훈이 퉁명스레 물었다.



“ 안 받고 뭐합니까? ”

“ 나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데 이지훈이 데려다줘야지. 나 힘들단 말이야. ”

“ 11층입니다. 그럼. ”



민규의 정장 주머니에 키를 꽂아두고 돌아서는 지훈을 멍하게 보던 민규가 소리쳤다.



“ ...동네 사람들!! 저기 키 작고 하얀 애 좀 봐요!! 쟤가 나한테... 맞아! 여기였어! 이 자리에서 나 붙잡고 키스ㄹ, ”

“ 자꾸 그걸로 협박하시는데 분명 제가 일방적으로 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



우다다 달려온 지훈이 민규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말했다. 민규가 지훈을 진득하게 내려다보며 지훈의 어깨에 다시 머리를 기댔다.



“ 빨리 데려다 줘... 11층. ”



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민규의 머리가 닿았던 부분을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 토만 하지 마십시오. ”



-


침대 위에 버리듯 민규를 던진 지훈이 혼절한 사람처럼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민규를 향해 민폐라며 중얼거렸다. 손에 들린 키를 콘솔 위에 놓아두고 자동으로 켜진 무드등을 꺼놓으려 돌아서려는 지훈의 팔을 민규가 붙잡았다.



“ 어디 가. ”

“ 놓으시죠. 김민규씨 술 냄새 심합니다. ”

“ 그건 너도. ”



몸을 일으켜 지훈의 정장 재킷 냄새를 맡으며 킁킁 소리를 내던 민규가 가까이 좀 와보라는 말과 함께 지훈의 허리를 양 팔로 끌어안았다. 민규의 뜨거운 숨이 셔츠 단추 사이의 벌어진 틈을 타고 들어왔다.



“ 내가 전에 말했던가? 애인 없으면 못 잔다고. ”



민규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지훈의 배에 턱을 대고 지훈을 올려다봤다. 지훈은 오전에 권 대리가 전해준 말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잠긴 목소리와 평소답지 않게 부정확해진 발음, 흐려진 눈동자. 잘하면 민규의 약점을 캐낼 수 있다는 결론까지 이르러 지훈은 마른 침을 삼켰다.



“ 나도 니 결벽증만큼 심각한 수준이야... ”

“ ... ”

“ 이지훈 내 얘기 듣고 있어? ”

“ 예. ”



지훈이 대답하자 민규가 푸스스 웃었다. 지훈을 다시 올려다보는 눈이 싸하게 식었다. 지훈의 눈썹이 꿈틀했다. 

민규가 지훈을 침대에 메다꽂기 전까지 지훈은 어떻게 해야 김민규가 주정을 더 할까 계산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민규가 지독한 술 냄새가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누운 지훈의 양 다리를 제 허벅다리로 결박했다.



“ ...김, 김민규씨 술주정이 혹시 폭력 행사입니까? 폭력은 곧 고소로 이어집니다. 기억하시는게 인생에 도움이 될, ”

“ 지훈아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



재킷을 벗은 민규가 말 없이 넥타이를 푸르는 것을 지훈은 멍하니 보고 있었다. 상황이 종료되면 당장 근처 경찰서를 검색해서 고소장을 접수할..



“ 어느 순간에는 내성이 생겨서 약이 아예 안 듣더라고. 스무살 때였나. ”

“ ... ”

“ 의사가 한숨 쉬면서 처방해 준 약이 뭔 줄 알아? ”

“ ... ”

“ 비아그라. 나 참 갓스물한테 비아그라가 뭐야... ”

“ ... ”

“ 섹스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 잠을 잘 오게 해줄거라면서. ”



지훈이 상황을 판단하기전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술기운에 엇나가는 손으로 셔츠 단추를 푸르는 김민규와 자신의 다리를 결박한 우람한 허벅지. 지훈이 일어나려고 몸을 비틀자 민규가 단추를 푸르다 말고 지훈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왔다.



“ 오늘이 이틀째야. 애인 못 만난지. 진짜 미칠 것 같거든. 나 자고 싶어 지훈아. ”

“ ... 콜을 부르는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습니다. ”

“ ... 아니 이지훈 때문이니까. ”

“ ... ”



애인을 못 만난게 나 때문이라고?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지훈이 반박을 하려다 말고 민규를 올려봤다. ... 시발 이런 와중에도 짜증나게.. 잘생겼네.



“ 적선한다 생각하고 한번만 도와. ”

“ ... 제가 김민규씨를 도우면 얻는게 뭡니까? ”

“ 아아 또 거래하려고 하지마아... ”



투정부리듯 지훈의 목덜미에 머리를 박은 민규가 고개를 일부러 흔들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지훈의 살 위를 간지럽혔다. 지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제야 술기운이 도나보다 생각한 지훈이 생각을 추슬렀다.



“ 좋을거야. 정말이야.. ”



지훈의 귀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인 민규를 저도 모르게 껴안으려던 지훈이 손바닥 가득 닿는 민규의 맨살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미친 옷은 언제 벗은거야.



“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그동안 김민규씨의 행적으로 보아 그쪽은 전혀 믿을 구석이라곤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사ㄹ, ”



그건 일단 해보고 얘기하자. 다급하게 내뱉은 민규가 지훈이 말하려고 벌어진 입에 혀를 밀어넣었다.



-



지훈이 죽상을 하고 민규의 앞에 마주앉아 있었다. 언제 빨아둔 건지도 모른다며 차라리 맨바닥에 앉겠다고 방석을 거부한 지훈은 차가운 장판 바닥에 앉았다. 민규가 사온 편의점표 흰 양말이 새하얗게 빛났다. 무심코 제 발을 본 지훈이 인상을 찡그리며 발을 무릎 아래로 깊게 집어넣었다.


밑반찬을 몇 개 집어먹던 민규가 지훈을 배려한답시고 냅킨으로 수저를 닦아 건네자 지훈이 주머니에서 수저세트를 꺼냈다. 민규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헐, 가지가지 한다. 휴대용 수저 살균기라고 뒤편에 적힌 글자를 얼핏 본 민규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삭아삭한 김치를 씹었다.


주문한 육개장과 공깃밤이 차례로 나오자 민규가 밥을 한 술 뜨며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이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 안에 육개장 건더기를 밀어 넣는 민규를 보고 있었다.



“ 육개장 처음 봐요? ”

“ 왜 하필이면 육개장 입니까? ”

“ 이지훈씨가 상복 입었으니까 그렇죠. 안 찜찜해요? ”

“ 육개장을 드시고 싶어서 상복을 빌려오신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



지훈은 위아래 새까만 정장차림에 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깨 죽지가 팔뚝까지 내려와 있었다. 민규가 밥을 씹다 말고 앉아있는 지훈을 쭉 훑었다. 아빠 옷 훔쳐 입고 온 애 같네. 웃음이 터진 민규가 자신을 노려보는 지훈의 눈치를 보며 중지와 엄지로 입꼬리를 매만졌다.



“ 이 상황이 웃기십니까? ”

“ 거울 좀 봐요. 진짜. ”

“ 누구 때문에... 아닙니다. ”

“ 아니 나만 좋다고 덤볐어요? ”

“ 그나마 있던 밥맛도 떨어지니까 어제 일... ”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라는 말이 뒤로 묻혔다. 지훈이 한숨을 내쉬며 살균기에서 꺼낸 숟가락을 다시 집어넣었다. 어제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뚝 떨어졌다. 뜨거운 국물을 먹는 민규의 입술이 통통하고 빨갛게 젖었다. 지훈이 두 눈을 꽉 감고, 급하게 목을 축였다.



“ 옷 맘에 안 들면 집 가서 갈아입고 오던가. ”



맘에 안 들 리가 없겠지만. 중얼거리며 음흉한 미소를 띠는 민규의 말에 지훈이 긴 소매를 두어 번 접어 넘겼다.


맞지도 않는 사이즈의 상복 상하의 세트를 지훈이 입게 된 데에는 어느 정도 지훈의 책임도 있었다. 어제, 제 입에 혀를 밀어넣는 민규를 꽉 안아버린 탓에 뒤늦게 벗어둔 재킷은 전부 구겨져 바닥을 나뒹굴었고, 셔츠며 정장 바지는 온통 땀에 절어 두 번은 입을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벗어둘걸. 내심 속으로 생각한 지훈이 흥분에 일어 민규에게 뱉었던 제 목소리를 떠올리며 냉수를 들이켰다. 왜 자꾸 생각이 나는거야?



“ 그러면 정시출근을 못 한다고 몇 번 말씀드립니까? ”

“ 그럼 그 옷 계속 입고 있을 거예요? 육개장도 안 먹는구만. ”

“ 점심시간에 들렀다 올 겁니다. ”



지훈이 흘러내린 옷의 어깨부근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곧 다시 아래로 흘러내렸다. 지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옷이 다 구겨지고 땀 냄새가 나던데 이 시간에 빌릴 수 있는 정장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하며 갓 잠에서 깬 자신에게 비닐에 싸인 정장을 내민 민규가 조금 다르게 보였던 자신을 자책했다. 민규가 사온 양말과 편의점 속옷까지 온 몸에 마가 낀 것처럼 불편한 지훈이 젓가락을 쥔 민규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감자손에 내가 놀아나다니.



“ 이지훈씨 혼자 무슨 생각해요. 내 생각? ”

“ ... ”

“ 나 어제 꽤 괜찮았죠? 나 소감 못 들었는데. ”

“ ... ”

“ 들었구나 참. 거기 그렇게.. 이거 좋.. ”

“ 그만 하시죠. ”

“ 난 좋았어요. ”



민규가 지훈을 향해 찡긋 윙크했다. 지훈이 식탁 위에 올려둔 손을 말아 주먹을 꽉 쥐었다. 어제 저 물건을 때렸어야 되는 건데. 부피가 커서 아무렇게나 때려도 치명타였을 텐데!



“ 이지훈씨 마지막 연애가 언제예요? ”

“ ...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

“ 나는 좀 됐어요. ”


하고 싶은 말 할 때 묻는 척 하는 병에 걸렸나. 속으로 생각한 지훈이 민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물었다.



“ 남자 친구 있지 않으십니까? ”

“ ... 걔는 그냥 친구고요. 방금 내가 무슨 말 하고 있었지? ”



민규가 젓가락을 물고 곰곰이 생각하다 지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아, 연애. 내가 누굴 살뜰하게 챙겨본 지가 오래됐거든요, 몸이 이래서. ”

“ ... ”

“ 그냥 이지훈씨 것 이것저것 챙기다가 그런 생각 들더라고요. 잠들어서 몸도 내가 다 닦아줬는데. ”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이맛전에 써 붙인 듯한 지훈이 먹지도 않을 육개장만 민규가 닦아놓은 숟가락으로 뒤적이고 있었다.



“ 이지훈씨 듣고 있어요? ”

“ 예. ”

“ 이지훈씨. ”

“ 예. ”

“ 나랑 연애할래? ”





드디어 둘 사이의 무언가가 하나 더 생겼네요 (?

앞으로 진도는 쭉쭉 나갈 예정이고요, 본격적인 규훈의 라부라부 스토리! 이제 진짜 러브슛입니다 정말로.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봐요 !

당신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장 난 나침반 처럼 흔들렸다. | 정수경, 슬픔의 각도 |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