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최고의 사랑노래 ㅋㅋ 브금 꼬옥 들어주면돼 

(제발제가이렇게빌게요)

대충 가볍게 쓰려다 너무 진심이 되었습니다... 






올드타입러브








#1. 유행


매장 안에서 상스러운 가사의 케이팝이 울려 퍼진다. 누가 부른지도 모르는 노래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 수 있느냐며 노트북을 몇 번 내리쳤다. 다행히 보는 눈을 피할 일도, 누군가의 눈치를 살필 일도 없었다. 철 지난 세계과자 할인점에 있는 것이라곤 나와 여름철 자연발생한 초파리 몇 마리가 전부였다. 가게는 동네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지나가는 누구의 이목도 끌지 않았다. 이 앞 초등학생들이나 하교하다 한 번씩 들릴 뿐. 유행이 지나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바야흐로 4년 전. 내가 풋풋한 대학 신입생이었을 시절엔 연애가 유행이었다. 아무 하나 골라잡아 옆구리에 끼고 캠퍼스를 전전하는 거. 벚꽃이 피면 손잡고 꽃비 내리는 길을 걷고, 시험기간에 함께 도서관에서 밤을 새고, 교복을 맞춰입고 간 롯데월드에서 커플 사진을 남기고, 유명한 맛집들을 함께 찾아다니며 몇시간 웨이팅도 불사하는, 연애한다면 남들 한번쯤 다 해보는 그런 거 말이다. 


그리고 1년 간 지속된 연애의 끝에 난 알았다. 연애라고 통용되는 위의 행위들은, 사실 좋은 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좋은 것을 먹는.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느 친구와 해도 되는 것들이며, 고도로 발달한 우정은 연애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와 사귀고 나서 15키로가 쪘다며 우울해하면서도 헤어지자는 말에 배고프다는 말로 대답하는 그 애를 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이 관계는 정이었다. 가장 철없을 시절을 가장 오래 함께 보낸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우정. 나는 그앨 사랑하지 않았지만 피자를 시켜달란 말에 피자를 시켜줄 수 있었고, 입가에 묻은 딥핑소스를 엄지로 닦아줄 수 있었다. 그치만 딱 그날 거기까지가 나의 최선이었다. 딱히 내일부터는 그애를 보고싶지 않았다.


잘 지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장장 300여일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돌아보니 후회스러웠다. 내가 그런 애랑 일년이나 사귀다니. 헤어진 연인에 대한 나의 감상은 다분히 평범했고 그래서 진부했다. 연애가 지날 유행일 줄 알았으면 찍어 먹어보진 않았을 텐데. 한때 사랑이라 믿었던 건 오래 붙여놓은 스티커의 뒷면처럼 페이스북에 진한 흑역사를 묻히고 겨우 지워졌다. 인스타로 유행이 옮겨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2. 알바구함


질긴 대학생활을 겨우 마치고 본가로 돌아오니 용돈이 끊어졌고 돈이 필요했다. 4년 수발 들었으니 이제 알아서 벌고 알아서 살아보라는 거였다. 틀린말이 아니라 당장 아르바이트부터 구하게 됐는데, 세계과자 할인점은 그때도 이미 유행이 지난 점포였다. 알바구함, 굴림체로 대충 간격만 넓혀놓은 에이포 한장으로 알바를 구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할일이 없어보여서. 사장이 딱히 열의 있어보이지 않아서.


이후로 취준을 빙자한 휴식기를 가지며 적지 않은 시간 이곳에서 일했다. 알바생은 나로 충분했다. 내게 배당되는 인건비나 물건을 팔아서 나오는 수익이나 그게 그거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가게는 알바를 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나는 수를 잘 셌고, 과자를 훔쳐먹지도 않았다. 키가 커서 높은 곧까지 물건을 진열하거나 구석진 곳을 청소하는 일에도 수월했다. 지각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초과근무를 하지도 않았지만 시키는 건 대개 알아서 잘 했다. 나는 튼튼했고, 물건을 곧잘 옮겼다. 물론 그건 내가 손목에 붕대를 감고 오기 전에까지의 이야기이다. 



사장님은 날더러 어딘가 돌은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눈알이 불순하다면서. 사장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사납다면서. 그치만 손목에 칭칭 감은 붕대를 보자마자 이제 무거운 걸 그만 옮기라며 알바생을 더 뽑아주겠다고 했다. 한번도 물건이 무겁다고, 박스를 옮기기 힘들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장은 그런 내 말을 극구 사양하며 네가 알아서 공고를 올리고 네가 맘에드는 녀석을 뽑으라고 했다. 



"알아서요?"

"어. 네 맘대로 하라구."

"사장님 진짜 돈이 많으시구나?"

"얘가 뭐래. 나 빚만 2억이거든? 뽑아준대도 지랄이야."

"알바생한테 지랄이 뭐예요."

"미안. 다른 말이 생각이 안나잖아. 암튼, 뽑아봐 좀 싹싹하고 예쁜애였으면 좋겠어."

"전 여자가 좋은데."

"귀신... 너 내가 예쁜남자 뽑고싶은 건 어떻게 알았어?"

"사장님 원래 여자한텐 잘생겼다 그러고 남자한텐 예쁘다고 하잖아요."

"어어 너 잘났어. 난 약속있어서 먼저 가. 문 잘 닫고 정시에 퇴근해? 아니다, 십분 일찍 해."

"왜요?"

"뭘 왜요야. 알바 공고 올리려면 평소보다 피곤할 거 아니야."

"아..."

"암튼. 자소서 열심히 쓰고."



일하러 나온 알바생에게 자소서 잘쓰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 사장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사람 앞에 두고 위아래로 뜯어보는 일을 썩 유쾌하다 생각하진 않지만 이건 뒷모습이니까 괜찮으려나. 우리 사장님은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써니, 그니까 유인나를 닮았다. 얼굴 작고 팔다리 길고.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다. 게다가 어쩜 성격도 판박이다. 그렇다고 내가 김고은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물론 그랬다면 참 좋았을 거다.


말은 저렇게 해도 사장님은 나를 무지 좋아했다. 낮부터 술마시고 와서 카운터에 나 세워두고 세시간 동안 제 인생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부터 나를 많이 의지하는 듯했다. 근무 빼달랄 때 빼주고, 어디 갔다오면 꼭 맛있는거 사다주고. 시험보러 간다그러면 태워줬다. 내가 친동생같다나 뭐라나. 집에 있는 제 혈육과 나이가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인단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마음대로, 정말 내 마음대로 공고를 붙이고 있는 거겠지. 어차피 예쁜 남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없으니 피차 할일 없을 거 돈 벌고 싶은 여자한테 일자리 주는게 나았다. 







저 공고를 보고도 들어올 미친 남자는 없겠지. 있다고 한들 테러범일 것이다. 대낮에 길가는 여자도 이유없이 찔러 죽이는 세상이니 카운터에 혼자 앉아있는 여자를 해하러 오는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그치만 내가 이 동네에 사는 여자라면, 그리고 이 가게가 얼마나 월급 루팡하기 좋은 곳인줄 아는 주민이라면 지나가다가 뒤돌아서라도 다시 들어올 거였다. 나는 써있는 그대로 알바생이 성인 여자면 그걸로 되었다. 다 필요 없고 여자. 







#3. 눈이 반짝거리는 남자


아쉽게도 알바생은 잘 구해지지 않았다. 떡하니 여자 들어오라고 써있는 공고인데 가끔가다 할아버지들이 들어오셔서 알바를 해도 되겠냐고 물어오셨다.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였다. 난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과자 몇개와 음료를 쥐어드리고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혔다. 그게 고마웠는지 그 할아버지들은 머지 않아 손님이 되어 다시 오셨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3일 전에 돌려보낸 할아버지께서 손녀딸 간식 사먹일 거라며 과자 세봉지를 사가셨다. 문을  열어드리려 따라 나간 가게 앞에서 나는 5분동안 할아버지의 인생의 지혜... 에 관해 들었고, 말씀이 끝나자마자 조심히 가시라며 몇 번이나 인사하고 가게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안녕하세요."



가게의 유리문을 밀고 남자 한명이 들어왔다. 물건을 사러 오면서 저렇게 정중하게 인사하러 오는 사람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목을 숙여 인사했다. 게다가 동네에서 처음보는 인물이다. 이 말은 그니까, 이 사람에게 한가지 특이점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뭐냐면

아주... 아주 잘생겼다는 거다.



남자가 가게를 둘러보다 말고 내가 서 있는 카운터 앞에 멈춘다.



"... 예?"



박스로 사가려는 건가. 실제로 이 근처 초등학교의 교사들은 한 번 오면 과자를 몇 박스 째 사가기도 했다. 이곳에서 파는 것들이 주로 수업시간에 뿌리기 적절한 용량과 가격의 과자들이었으니까. 사장님도 그걸 알아서 몇 묶음으로 사가면 할인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단골들은 나도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니 이 남자가 그 중의 한 명일 리는 없었다. 아, 혹시 교생인가. 교대는 초등학교로 실습을 오니 지역 교대생일 수도 있겠다.



"혹시 미리 주문하고 오신거면 계산해드릴까요? 이름 말씀해주시면 확인하고 물건 갖다드릴게요."



작은 가게인 것 치곤 미리 알고 대량구매를 주문하는 분들이 더러 있으니 이미 주문한 물건을 가지러 온 걸수도 있다. 또는 누군가의 심부름꾼일수도.



"그게 아니라,"

"네."



남자가 다리를 굽혀 나와 눈을 맞춘다. 눈을 크게 뜨고 유리창에 붙은 공고를 가리키며 입에 침을 바른다. 



"혹시 저 아르바이트 공고말인데요."

"......"

"조건 중에 반만 맞아도 지원 불가능한가요?"

"네?"

"나이는 스물 두살이이에요. 180 넘고 몸무게는 75키로 안되고요. 토익은 지난주에 봤는데 모의 채점 했을 때 915점 정도 나왔어요. 어, 태권도랑 합기도 단증은 없지만 어렸을 때 4년 정도? 배웠어요. 운전면허는 있고, 농사 취득 자격 증명은 못 땄고, 나이가 안돼서 박사는 못했는데요. 혹시... 안될까요?"

"...네?"



안될까요 라고 묻는 표정이 애처로워 나도 모르게 이입했다. 듣고보니 흠잡을 데 없는 건장한 남자가 뭐가 모자라서 굳이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읽은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어렵겠죠..."



큰 손으로 뒷머리를 쓸며 눈을 접어 웃는데 살풋 웃는 웃음소리까지도 잘생겨서 잠깐 뒤를 돌아 심호흡을 했다. 잘나서 당황한 거다. 잘나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살면서 처음 만나보니 이건 당연한 증상이었다. 누구라도 남자를 보고 평소초럼 숨이 잘 쉬어지지만은 않을 거다. 사람 녹이는 미소에 함께 웃지 않을 수 없을 거고. 어쩌면 첫눈에 마음을 줘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일은 오래전 유행하던 드라마에서나 일어날법 하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불쑥 찾아온 비현실적인 이 사람이 낯설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형광등을 받아 반짝거렸다.



"잠시만요."



나는 괜히 카운터의 반을 차지한 노트북으로 뭔가를 찾는척을 시작했다. 



"메뉴얼을 확인해야 돼서요. 보면 아시겠지만 손님이 많이 있는 건 아닌데, 가끔 대량으로 주문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사장님이 이래저래 꼼꼼하신 편이라 알바 채용 메뉴얼도 한번 확인해야 되거든요. 물론 알바 뽑는 건 전적으로 저한테 맡겨두시긴 했는데,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잖아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구멍가게에 매뉴얼을 무슨. 게다가 사장님이 매뉴얼 같은 걸 만들어놓을 위인도 아니셨다. 


난 그냥 이 남자를 그냥 돌려보내기 싫어서, 그니까 함께 일하고 싶어서. 최대한 도도하게, 그러나 친절하게... 엉성한 포즈로 십원짜리 열개를 돼지저금통에 넣는 여섯살의 손짓처럼 헛소리를 저금하고 있는 거였다.



"아, 네. 천천히 보세요. 저 시간 많아요."

"근데 왜 하필 여기로 오셨어요? 대학가에 알바할 자리 많을텐데."

"아, 일은 조용히하고 싶어서요."

"그렇구나... 여기가 조용하긴 하죠."

"뭐, 집이 근처이기도 하고. 밤에 지나가면서 공고 계속 봤는데 일주일 지나도 계속 붙어있더라고요. 여자분 찾으시는 거 같길래 섣불리 지원하기 좀 그렇더라고요. 근데 저도 시켜주시면 잘 할 수 있거든요. 천장 청소하라고 하셔도 할 수 있는데."

"..."

"안될까요?"

"천장 청소는 저도 의자 밟고 올라가면 할 수 있어요."

"그럼 그 의자 제가 잡아드릴 수 있는데."



남자가 의자를 잡는 시늉 하며 손을 내민다. 주먹쥔 손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들어 얼굴을 쳐다봤다. 마주본 두 눈이 역시나 반짝였다. 처음본 남자에게 동화속에 나오는 말하는 사슴같다는 비유를 써도 되려나. 



"... 그보다 중요한 건 저희 가게는 천장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거겠죠?"

"아, 넵."

"근데 예뻐서 괜찮을 거 같네요."

"네?"



남자가 미묘하게 고개를 숙이며 옅게 웃는다. 작게 감사하다는 말을 붙이며 눈을 맞춘다. 



"평소에 좀 싹싹한 편이신가요? 어른들한테 잘하고. 가게에 어르신들도 자주 오시거든요."

"네. 저 할머니랑 오래 살아서 예의바르다는 소리 자주 들어요."

"사장님이 좋아하시겠다. 언제부터 나오실 수 있어요?"

"내일 바로 출근 할 수 있어요. 아, 그리고 휴학해서 근무 시간도 따로 상관 없어요. 시간 많아서."

"그래요? 그럼 내일 나와서 사장님한테 같이 인사드려요."

"네."

"인적사항 간단하게 적어주시고 가시면 돼요. 시간이랑 급여, 그리고 스케쥴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름이...?"

"정성찬이요. 정 성 찬."











#3. 장난을 걸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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