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멍한 상태로 끊임없이 말을 내뱉는다. 내 속에서 여러 번 돌던, 내가 아니면 답을 낼 수 없는 고민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도 보이지 않는 불평이나 눈물, 어리광을 잔뜩 보인다. 나는 지금 푸른 눈을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하고 있다. 그런 나를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또다시 머릿속에서 자기 비하를 시작해본다. 그렇지만 그것마저 입 밖으로 내뱉는다. 

목이 아플 정도로 쏟아낸 말은 다시 삼킬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말을 해도 최악의 상황은 푸른 눈이 내게 질려서 떠나가는 것뿐이다. 그럼 다시 고민을 혼자 안고 있는 것이니 푸른 눈을 만나기 이전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되면 정말 슬퍼할 거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정말 내가 하는 짓이 푸른 눈에게 실례인 걸 알면 그만 두면 될 텐데 나는 ‘푸른 눈은 인간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으로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리화를 한다.

드디어 말을 멈추고 푸른 눈의 반응을 살핀다. 푸른 눈은 눈을 깜빡이며 지평선을 바라본다. 내 이야기가 너무 듣기 싫었던 걸까? 그게 아니면 너무 지루했던 걸까? 하긴 아무리 힘들게 품고 있는 고민도, 불안들도 겨우 18살짜리의 불평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


‘인어는 사람보다 한참은 오래 산다고 했지.’

 

 

그럼 푸른 눈한테 내 이야기는 정말 스치는 바람 수준 밖에는 안 되겠구나. 조금만 지나면 언제 했냐는 듯 사라질 그런 정도? 이렇게 괴롭고 신경 쓰이는데 겨우 그 정도로 느껴질 테니... 푸른 눈이 조금 부럽다.

푸른 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후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뜻에서 미소를 보인다. 물론, 어두컴컴한 이런 새벽에 푸른 눈이 내 얼굴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금방 미소를 거둔다. 문득 생각난 것들 때문이다.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될 텐데 왜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입을 닫고, 표현하지 않고, 자꾸만 숨기는 걸까. 친구와 가족.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숨기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자신감이 없는 걸까? 아니면 흔히들 말하는 자존감?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원초적인 것. 내가 그렇게 태어난 걸까? 태어나면서 이런 기질을... 뭐가 됐든 앓다가 이렇게 푸른 눈에게 폭발하듯 내뱉는 것보다는 나을 텐데.

또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렇게도 쏟아냈는데 다시금 머릿속과 마음속이 꽉 차 버린다. 작게 한숨을 내뱉자 푸른 눈이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나는 푸른 눈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제 멋대로 추측하고는 그를 안는다.

 

 

‘정말 난 이렇게 누구에게 스킨십을 자주 하고 기대는 사람이 아닌데.’

 

‘하지만 왠지 이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푸른 눈의 품에 안겨 있는 지금. 분명 캄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감은 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것도 아주 밝은 빛이. 눈을 뜨지 않고 지금 이 상황에 좀 더 녹아들고 싶지만 끊임없이 내 눈을 괴롭히는 빛 때문에 푸른 눈에게 안긴 채 눈을 뜬다.

저 멀리 높은 곳에서 굉장히 밝은 빛이 일정한 패턴으로 돌아가며 해안가를 밝히고 있다. 아마 등대인 듯하다. 등대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TV나 인터넷에서만 본 것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안개가 주위에 잔뜩 깔려 있다. 그래서 등대를 작동시키고 있는 건가?

바다를 등지고 있는 푸른 눈은 아직 이것을 모르는 듯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푸른 눈의 품에서 빠져나와 직접 봐서 신기하다는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등대를 가리킨다. 어둠 속이지만 푸른 눈이 내 손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게 느껴진다. 푸른 눈도 등대를 발견한 것 같다. 때 마침 등대의 빛이 우리를 다시 한번 비춘다. 문득 푸른 눈의 얼굴이 궁금해져 잔뜩 기대를 품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린다. 등대의 빛은 우리를 지났지만 곧 이곳을 다시 비출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푸른 눈의 얼굴이 있는 곳에 시선을 둔다. 아직 등대의 빛이 닿지 않아 푸른 눈의 얼굴은 윤곽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극적인 연출을 위해 눈을 감는다. 눈꺼풀 위로 따가운 빛이 느껴질 때 눈을 뜬다.

 


“…”

 

“…”

 

“…”

 

“…”

 

 

눈을 뜸과 동시에 푸른 눈이 나를 끌어안았다. 내가 했던 불평들 때문에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인지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나는 푸른 눈의 얼굴을 봐버렸다. 등대의 빛이 다시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 것 같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내 몸 중에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머릿속 뇌 밖에 없는 느낌이다.

겨우 그의 얼굴을 본 것으로 이렇게 몸이 굳은 것이 아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게 맞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얼굴이 너무 못생겼다거나,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것.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따지고 본다면 내가 본 그의 얼굴은 굉장히 잘생긴 편이다.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신화나 민담에 인어들에게 사람들이 그렇게 반한 걸까?

어찌 됐든 그게 내가 굳을 정도로 놀란 이유는 아니다. 나는 그의 얼굴 생김새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생기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내가 본 그 얼굴만 아니었다면. 어차피 푸른 눈과 마지막으로 본 지 꽤 시간이 지났고, 만났을 때도 언제나 푸른색 눈을 가진 검은 인간 형태의 실루엣이었으니까. 상상 속에서도 푸른 눈은 그저 검은 형체였다. 그래서 괜찮았을 것이다. 정말 내가 본 그 얼굴만 아니었다면.

 

 

“…”

 

“…”

 

 

내가 이렇게 굳을 정도로 놀란 이유. 푸른 눈, 그의 얼굴은 내가 한순간 본 게 착각이 아니라면 유해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차이가 하나도 없이 똑같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았다. 눈의 색 정도가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끔 유해의 눈 색을 파랗다고 착각했었다.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본다. 



“…”


“…”



내가 본 푸른 눈의 얼굴은 틀림없이 유해의 얼굴이다. 등대의 빛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나는 푸른 눈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꼭 감고 그의 품 안에 좀 더 깊게 파고든다. 요동치는 그의 심장이 느껴진다. 나도 푸른 눈만큼 심장이 뛰고 있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귀를 때린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멈추지 않는다. 들녘이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와 비슷하다. 열이 나고 온 몸이 커다란 심장 그 자체가 된 것 같다. 점점 뜨거워지는 몸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푸른 눈의 품에서 빠져나와 바다를 등진다. 푸른 눈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제 가야겠어!”

 

“…”

 

“너무 늦은 것 같아서...”

 

“…”

 

“우리 다음에 만날 수 있을까?”

 

“…”

 

“맞다, 말을 ㅇ... 못하지.”

 

“…”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게!”

 

“…”

 

“간다?”

 

 

나는 등대의 빛이 다시 돌아올까 괜스레 걱정돼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 그런 것을 평소에는 좋아한다. 새로운 일이,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가 내 삶에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의심이 확신이 되면 내 삶에 중요한 무언가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혼자 고민을 안고 있는 거...’


‘예전으로 돌아가는 정도...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어...’



한 발을 내딛자 등에 뭔가가 툭하고 닿는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푸른 눈의 얼굴을 볼지도 모른다. 등대의 빛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나는 혹시라도 푸른 눈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인다. 

 


‘이렇게 어두운데도 잘 맞추네...’


“…”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나는 발을 다시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시작한다. 모래를 파고드는 발소리가 오늘따라 이렇게 허전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 저!”


“… ?”


“… 마안... 날 수 있으어...”


“…”



서툴고 높낮이도 다른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뒤를 돌아보고 싶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 푸른 눈에게도 내게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대신 커다랗게 “응!”이라고 대답하고는 있는 힘껏 자전거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간다.

들은 적이 없는 목소리,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전혀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해봐도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 ‘설마...’,‘아닐거야.’ 같은 생각을 꽉꽉 채워도 생각과 생각 사이의 틈에는 계속 유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애써 부정하려는 마음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오늘따라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으로 차가 많이 돌아다니는 새벽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면 사고가 날 게 뻔하니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닌데 왜 이리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은 건지 모르겠다. 뒤척이다 보면 알람이 울릴 것이고 그럼 기분 이 안 좋아지겠지. 차라리 이럴 때 감기나 아니면 다른 병에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면 가는 길에 교통사고라도 괜찮은... 그건 너무 간 걸까? 아무튼 간에 정말 일어나서 학교에 가기 싫다.

결국 이불속에서 뒤척이다 다시 잠들어 알람을 듣지 못한 나를 아빠가 깨우러 들어왔고,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평소와 다르게 좋아하는 반찬이 아침으로 기다렸고, 식사를 하고 있을 때는 부모님이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 대문을 나섰을 때는 다른 날과는 한참이나 다른 하늘이, 도아가 멈춰 서서 사진으로 남길 만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세상이 나를 학교로 보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한 껏 느리게 걸어가도 버스는 내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딱 맞춰 왔고, 버스 안이 사람으로 붐벼 숨 막히는 일도 없었다. 그 외에도 재생한 음악은 듣고 싶었던 것만 골라서 틀어졌거나 버스가 빨간 불에 걸리지 않는 것 같은 일들이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하필 오늘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일 게 뭐야.’



이런 날을 보통 생에 최고의 날 중 하나라고 하면서 머리에 낙인 시켜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될 기억으로 삼는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물론, 내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 것이다. 왜냐면 나는 오늘 아주 불편한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가야 하니까. 푸른 눈... 제발 나 혼자만의 착각이면 좋겠다.



“안아!”


“아, 들녘아 안녕.”


“…”


“왜?”


“아니, 너 요즘 정말 아무 문제도 없지?”


“… 아, 응. 그냥 오늘 엄마랑 아빠가 외식하자고 했는데 뭐 먹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어. 넌 뭐 생각나는 거 있어?”


“나? 어... 그게... 난 아무거나 잘 먹어서 그런 건 잘 생각 안 해봤는데.”


“그래...?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잖아. 그런 거...”


“… 있...나?”


“?”


“잘 모르겠어.”


“… 그게 뭐야.”


“이상한가?”


“그게... 원래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거 하나둘 씩은 있지 않아?”


“… 그런가?”


“아닐 수도... 난 주변에 그런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나도 나 말고는 운동하는 사람이 주변에... 아, 헬스장 사람들한테 물어볼까?”


“어? 굳이? 들녘이 너 진짜 알면 알수록 나만큼이나 이상해.”



교실로 향하는 동안 들녘이와 떠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찝찝한 느낌이 내 몸 구석구석 박혀 계속 나를 죄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들녘이와 떠들면서 오다 보니 어느새 교실 문 앞이다. 들녘이는 자기네 반으로 들어선다. 나는 교실문에 손을 뻗는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유해가 없었으면 한다. 차라리 그 편이 나은 상황이다. 왜냐면 유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게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반응하기가 더 쉽다. 만일 반대로 유해가 자리에 앉아 있다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어색한 티가 팍팍 나 유해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유해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하다 아무 말이나 던져 유해와의 사이가 멀어지거나, 내 속에 담긴 푸른 눈과 유해의 관계에 대해 다 털어놓거나 하는 상황 중에 하나와 대면해야 할 것이다.

한숨이 가득 차오른다. 지금 목구멍까지 차오른 이 한숨으로 사람 여럿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애써 차오른 한숨을 참아가면 교실 문을 연다.



?


요즘 머리가 굳은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요...

글이 손에 안 잡히고 힘드네요! 비록 취미로 하는 거라도 잘 써졌으면 하는 마음을 너무 굳게 먹고 있어서 그럴까요 ㅠㅠㅠ 글솜씨가 그런 마음의 반만 따라가면 좋을 텐데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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