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안다. 내가 귀여움에 환장한다는 걸...그말인즉슨 착즙왕이라는 소리다. 귀여움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거니까. 그리고 그러하기에, 귀엽다는 말은 오직 애정어린 대상에게만 사랑을 담뿍 담아 보낼 수 있는 찬사이다. 보통은 할말이 없을때 에둘러 '귀엽네'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예쁘다', '멋지다'를 세간의 '귀엽네'만큼 남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을 하는 것은 나에게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므로 결국 비슷한 무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예쁘고 멋진 것에만 그 말을 쓰면 그만이니까. 나의 기준은 좀 혹독하고 공정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쓸려가지 않고 고집스레 고전적 기준을 지킨다. 기준치보다 미달이면 안예쁜데? 하나도 안 멋있는데, 하면 그만이다. 내가 귀여운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에도 착즙필터를 씌워 시야가 흐려지고 뭉개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좀 서글퍼진다. 귀엽다, 라는 말이 그렇게나 쉽게 쓸수있는 말이었다면, 왜 내가 자라면서 아무도 나에게 한번도 그말을 안해줬는가?(안귀여우니까...) 내가 귀여운 ask가 아니었다는 것은 잘 알고있었지만, 그리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귀여움의 요건이 나에게 한구석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왜....왜 나를 착즙해주는 인간이 없었는가? 우리 부모조차 나를 귀엽다고 해주지 않았다. 예쁘다, 멋있다는 말은 해줬어도. 그랬기에 나는 귀여움을 간절히 원했다. 왜 나는 귀엽다는 말을 듣지 못할까? 나는 이 문제에 관하여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하고 분석한 적이 있었다. 우선 가족의 입장을 들어보자. 엄마 왈. "넌 내새끼지만, 귀엽지는 않지." 언니 왈. "귀염성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건 좀 귀엽네." 아빠 왈. "알슈야, 넌...멋져!(엄지척)"... 시발. 

세간에서 귀엽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우선 하관, 턱이 짧은 얼굴. 보통 이 경우 동안이고, 귀엽다는 말을 듣는다. 또 작은 체구. 키가 작거나 만화같은 비율을 가진 사람들. 혹은 말투나 행동. 느릿하고 조근조근하게 말하거나, 혹은 통통튀는 톤을 가졌거나, 동글동글한 발음 등. 행동은 잘 모르겠다. 하는 짓이 귀엽다, 라는 말이야말로 이미 그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특정화시킬 수도 그 결과를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적용해보자. 나는 더도덜도말고 딱 계란형의 얼굴이다. 그리고 비율상으로 턱이 약간 짧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나의 인상에 어떤 귀여움을 안겨주는 일은 없었다. '얄슈는 귀엽게 생겼지.' 라는 말을 태어나서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치켜올라간 눈썹산을 다 깎아내려서 완벽한 일자 눈썹을 삼사년간 하고다녀봤으나, 수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포기하고 도로 원상복귀시켰다.
작은 체구라. 나는 키가 늦게 컸다. 중2때까지는 145정도의 땅콩이었다가, 1년만에 20센치가 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나는 야곰야곰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중2전에는 귀엽다는 말을 들었느냐? 음.... 딱 한 번, 세상에서 가장 끔찍했던 사람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큰 검은 피부의 남자에게. 그 말은 진짜로 내가 가진 어떤 귀염성을 발견하고 한 말이라기보다는, 나와 대비되는 자신의 장성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감이 다분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는 나를 사람으로 치지 않았으므로 그건 카운트에 셈하지 않을 것이다. 한 학기가 끝나갈 때 반에서 돌리는 롤링페이퍼에서, 나는 언제나 '차갑다' '무섭다' '도도하다' 라는 단어의 최다득표자였고, 그 단어의 끝은 한결같이 '...그래서 말을 못걸었어'였다. 귀엽지도 않고 친구도 없던 나...말투나 행동은 말할 것도 없이 위에 적어놓은 그 어떤 것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착즙해줄 사람을 찾거나, 혹은 내가 원하던 귀여움을 찾아나섰다. 

내 이상형은 하얗고, 체구가 작으며,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화학과 수학에 가깝게 생긴, 키 작은(나보다 작으면 더 좋고!) 동갑 혹은 연하남이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또 정반대로 귀염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구릿빛피부에 키가 나보다 크고 멋진 근육질의 몸을 가진 날카로운 여우상을 찾았다. 그러나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도 여자도 나를 귀여워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씩, 오직 저 말 한마디 때문에 후에 두고두고 이불을 찢어발길 실수들을 저질렀다. 최근 나는 무려 10살 연상의 남자를 만났던 적이 있다. 아주 짧은 시간만에 사랑에 빠졌고, 아주 짧은 시간만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점도 없었다. 그 사람이 내가 좋아 죽겠다고 매달리며 징글징글하게 꼬셔대던 기간에도, 유교걸인 나는 솔직히 조금도 혹하지 않았다(어디 삼촌같은 남자와...). 그런데 우리가 아주 큰 오락실에 가서, 내가 좀 더 본격적으로 북을 두들기기 위해 목도리를 푸르고 마스크를 벗는 순간 그사람은 내가 평생 기다렸던 말을 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진짜 웃기다. 내가 안 귀여운 사람인 건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을 하다니. 그사람은 나에게, "어...왜 귀여운 것 같지?"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사람에게 못이기는척 넘어가줬다. 그는 그 순간 나를 너무 좋아해서, 마스크를 턱에 걸고 막혔던 숨을 얼굴을 찡그리며 받아들이는 나에게 귀여움을 찾아낸 것이다.

나는 대신 멋지다, 예쁘다 라는 말은 충분히 들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딱 좋아할 법한 이목구비를 가진 나는 단연 중장년층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화장을 안할수록 더 좋아했다. 대충 무슨 얼굴인지 감이 오시는지..모두가 나를 보면 손을 잡고 '이런 미인이 있었나'같은 말을 하셨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어떤 할머니가 계셨다. 그분은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점점 자신이 원래 알던 것들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할머니를 뵈러 병원에 갔다. 나는 그 때 검은 긴 생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누운 채로 나를 보자, '아주 잘생겼네' 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그냥 내가 가진 멋짐과 예쁨이나 잘 가꾸고 기르자 싶어졌다.
그 다음으로 내가 잘팔리는 곳은 영유아층에서다. 그들은 표정이 많지않은 나를 조금 무서워하면서도, 그리고 내 웃음에 몹시 쑥스러워하면서도 나를 잘 따랐으며, 딱히 놀아주지않아도 후에 누가 다시 왔으면 좋겠냐고 물을 때면 나를 꼽았다. 죽자고 웃겨주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놀아주는거 다 소용없구나, 하며 다들 허망해했다.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들 중에 나 안좋아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 분야에서 굉장한 자신감이 있다. 작지 않은 키에, 신장에 맞는 긴 옷과 긴 코트로 나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옷자락으로 쓸고다녔다. 대학 강의마다 최소 한 명쯤은 '멋있어서 친해지고 싶었거든요...'로 시작하는 멘트로 나에게 다가와준 여성분들 덕분에 나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아도 조원을 얻을 수 있었다.
*뻔한루트: 흡연구역에 죽치고있는다->라이터를 안가져온걸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계신다(대개 남자처럼 모르는사람에게 빌리느니 도로 가져오거나 새로사오려함)->뒤돌아나가는 그녀에게 멋있게 외친다, '불 빌려드릴까요?'->웹드라마한편 뚝딱

하지만 그 말들은 나를 기쁘게 하지는 못했다. 멋지고 예쁜 것은 내 취향이 아닐 뿐이다. 난 정말 오로지 여자는 멋져야 끌리고 남자는 귀여워야 끌린다는 이 이유 하나때문에, 여자보다 남자를 더 많이 만난 것이다. 이제 귀여워진다는 것은 포기했지만 귀여움을 소유하는 일은 전보다도 가열차게 진행중이다. 진정으로 갖고 싶은 물건, 예를 들어 동묘에서 만원에 걸려있는, 나를 위해 태어난듯한 남성용 드레스셔츠나 집시거리의 한 상점에서, 전부 집에서 만들었다는, 우유거품같은 크림색 보석함을 발견했을 때. 나는 바로 그럴 때 외친다. "너무 귀여워!"

요새 계속 졸라리 긴글만 어쩌다보니 써제껴서...오늘은 반드시 이천자 안으로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에게 귀여운 노래, 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캬리와 퍼퓸...둘중 한명만 꼽을수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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