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장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피터는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드디어 고대하던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후 자신은 어떻게 될까. 늘 동경해왔던 자리에 닿은 다음엔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막상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별로 고민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어벤져스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지? 히어로라고 했는데 그냥 지금껏 하던 대로 알아서 활동하면 되나? 아니면 사람을 지키는 일도 임무처럼 지령을 하달 받는 방식인가? 본격적으로 짚어보자니 현실적인 위기감이 바짝 다가와 피터를 내리눌렀다.


이제 슈트를 직접 만들어 주위 사람들을 돕던 때와는 달랐다. 어벤져스는 그들이 뜻했건, 혹은 그러지 않았건 웜홀과 외계 생명체로부터 뉴욕을 구한 이후 줄곧 사회에서 굉장한 의미를 부여받는 일종의 자격으로 여겨졌다. 또한 적어도 피터에게 있어 이 집단에 소속되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영광이었기 때문에―그리고 분명 대다수가 피터와 같은 생각을 할 테다― 어벤져스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며 충분한 몫을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벤져스는 유명한 만큼이나 비밀이 많았다. 가령 정확한 인원과 전력, 사람을 지키는 방법,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 그리고 위험의 경중을 판단하는 기준 같은 것에서. 언제나 비밀이었고 그래서 더 궁금했다. 하지만 토니는 여태 그와 관련해 단 한 마디도 언질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딘가에서 참고를 하는 것 역시 무리였다. 어벤져스는 지금껏 새로운 동료를 공개적으로 뽑은 적―만약 대대적으로 공고했다면 피터 자신 또한 진즉 그런 쪽으로 준비했을 것이다―이 없으니까.

새삼스러운 사실에 숨이 탁 막혔다. 몇 년 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연달아 발생하고 새로운 초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악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해온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동의하는 희망자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신입을 모집하지 않던 그들이다. 이걸 다시 풀어보면, 결국 일원 중 정작 자신과 비슷한 사례가 없으니 마땅한 조언 또한 얻기 어려우리라는 얘기였다.

어쩌지. 갑자기 두려워졌다. 정말 며칠간 충동적으로 내린 이 결정이 옳은 걸까? 정말 자신이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범우주적 위협을 막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팀이 분열되었다는 지금, 어쩌면 창설 이래 제일 곤란한 국면을 맞은 어벤져스에서 자신은 대체 어떤 위치를 고수해야 하는 걸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영웅의 일은 미지수가 정해진 방정식이 아니었다. 보고 싶은 결과에 집중할 수 있는 실험이 아니었다.


“파커?”


그때 한 목소리가 피터를 잡아당겼다. 낮고 안정적인 음성. 이름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소년이 이내 작게 미소 지었다.

아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미숙하다는 평가엔 변명할 여지가 없지만 결국 스파이더맨은 지금 자신의 옆에 앉은 또 한 명의 어벤져스가 직접 관찰하고 선택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못하겠다며 뛰쳐나간 어리숙함마저 그는 이해한다며 머쓱하게 덧붙였다.

세상에 완벽한 히어로는 없어. 네가 봐온 숱한 영웅들? 막상 보면 다 구멍투성이야. 피터는 30분 전 토니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 넌 어차피 새파란 애송이고, 네 실수는 내가 수습할 테니까. 되새겼을 뿐인데 마법처럼 심장이 평소대로 가라앉았다.

그래. 너무 욕심 부리지 않아도 돼. 천천히 하면 되는 일에 구태여 조급해할 필요 없다. 오로지 본인의 노력만으로 일궈낸 갑옷과 상징을 가진 자신의 우상이 괜찮다며 믿어줬건만 지레 겁부터 먹고 시작하는 건 너무 볼썽사나웠다.


“무슨 일 있어? 뭘 놓고 왔다든가…,”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피터가 싱긋 미소 지었다. 묘하게 후련해진 얼굴을 알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토니가 그러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전까진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어째 그 사이 답을 찾은 모양이다. 다행이지. 당장 앞에 닥친 문제를 두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좋을 게 없다.


“그럼 슬슬 마음의 준비부터 해.”


들어가야 하니까. 토니의 말과 함께 검은 세단이 멈췄다. 어느새 기자회견장 앞이었다. 우와. 피터가 두 눈을 깜빡였다.


“예상 질문 뽑아준 건 다 숙지했지?”

“당연하죠! 우연히 힘을 얻은 후 약자를 위해 이 능력이 쓰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파이더맨이 되었고, 우연히 쫓던 범죄자가 어벤져스의 관할에 속한 사건이라서 처음 접촉했다! 전부 달달 외웠는걸요.”

“잘했어. 그래도 kid, 혹시 곤란한 건 내가 맡을 테니 무리할 생각 마.”


자칫 삐끗했다간 시나리오고 뭐고 끝이니까. 되도록 대본대로 말을 맞춰야 더 안 시끄러워져. 틀린 말도 없잖아? 약 10년 전 느닷없이 계획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혀버렸던 전적의 아이언맨이 입에 담기엔 굉장히 암 뒤가 안 맞는 말이었지만 소년은 그의 말이 계시라도 되는 양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뭐, 그래도 지금은 말 잘 들어서 좋네. 피식 웃으며 토니가 무심코 피터의 볼을 툭 건드리다 멈췄다. 붉게 상기된 피터를 보고 있자니 자신까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마주 본 시선에선 풋풋한 열이 들끓었다. 왠지 오묘한 눈빛. 무언가를 기대하듯, 마치 자신이 건네는 정에 다른 감정이 섞이길 바라듯 반짝이는…―.


“저어, 스타크 씨.”

“…왜?”

“잘 할 수 있겠죠?”

“……네가 실수만 안 하면.”


흐음, 솔직히 자신 없는데. 순진한 피터의 대답이 단숨에 분위기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토니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 이 사고뭉치가.


“그걸 말이라고 해? 시간 좀 걸린다는 말에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기껏 힘 좀 썼더니 네가 열심히 안 하면 어쩌려고,!”


…아 젠장, 주인공은 얜데 내가 더 긴장한 것 같네. 내 정체를 밝힐 때도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무심코 중얼거린 토니가 이마를 짚더니 곧 한숨을 뱉었다. 피터 파커, 하여간 이 꼬맹이만 관련되면 일도 꼬이고 머리도 뒤죽박죽이다. 어찌 되었든 더 복잡해지는 건 사양이었다.


“아무튼 들어가자.”

“네!”

“슈트 입고.”

“앗, 맞다.”


이런 건 실수하지 마. 이마를 검지로 툭 건드린 토니가 쏟아지는 셔터 음 사이로 앞장섰다. 스파이더맨을 어벤져스로 발표한 후부턴 정말 이 꼬맹이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는 셈이었다. 애초부터 그 각오로 건넨 손이었지만.

새삼스러울 것 없어. 토니가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에 닿았던 뺨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

 



토니가 피터와 합의한 내용은 간결했다. 이전에 보여줬던 새 슈트는 이웃 활동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할 때 피터가 직접 요구하고, 덧붙여 정체는 밝히지 않기로. 스파이더맨은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만약 누구인지 알리게 된다면 피터 파커의 일상이 파괴될 위험 또한 다분했다. 일례의 사건으로 성장한 소년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어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거 많이도 몰려왔군.”


마구 뒤섞인 잡음에 귀를 후비며 토니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애당초 자신이 부르긴 했지만 회견의 규모는 처음 카메라 앞에 설 꼬맹이가 긴장하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스크를 써 보이지 않는 표정이 훤히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스파이더맨은 잘게 떨고 있었다. Kid, 괜찮아. 낮게 속삭인 토니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잘게 터졌다.


“토니 스타크 씨, 오늘 발표하고자 하신 게 어벤져스와 관련된 사항이라 들었는데 맞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공개하시려는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왜 하필 지금인지 궁금합니다!”

“현재 본인은 어떤 이름으로 이 자리에 서 계신 건가요!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

“워후, 성격도 급해라.”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목소리가 뒤엉켜 귀를 어지럽혔다. 먹잇감을 기다려온 승냥이마냥 달려드는 꼴이 우스웠다. 그들이 오직 영웅의 이야기에 목이 말라 매달리는 게 아님을 알고 있기에 더 그랬다. 신의를 잃은 어벤져스, 국가 정상과도 빈번한 마찰! 한 세기 전 미국이 자랑하던 최강의 군인이 범죄자로 낙인찍힌 후 몇 년째 그들을 수식하는 표제였다. 그나마 현 수장인 토니 스타크가 잠자코 있어 최근엔 조용했을 뿐이다. 그 와중에 발표한 자타공인 지구 최강자들의 새로운 소식이니 들끓어오를 밖에.

오늘 일은 지금까지의 침묵에 반발하듯 장차 거센 물결을 만들 테다. 새삼스레 불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잠깐, 걱정했다. 아무리 녀석이 먼저 원했다지만… 지금 이 삭막한 땅에 그를 들여도 되는 걸까. 어중간한 지지로는 차라리 발표하지 않은 만도 못할 것 같아 제대로 불렀다. 이제 진짜 어벤져스가 되고 나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가 전부였다. 더 해주고 싶어도,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부족한 점을 고쳐가며 성장하려 하는 영웅의 행보 같은 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히어로는 늘 완벽한 비인간이어야 하므로.

역시 꼬맹이가 감당하기엔 아직 힘든 짐이 아닐까. 아무리 저번 벌새 사건을 잘 해결했다지만. 한 번 안 한다 했을 때 아예 못을 박았어야 했나.


하지만 저와 함께하기를 바란 어린 영웅이 있었다. 그날 봤던 빛은 분명 밝고 맑았다. 오랫동안 호수 밑바닥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신마저 끌어올릴 정도로. 스파이더맨은 확실히 히어로의 재목이었다. 피터 파커는 분명 언젠가 영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꽉 잡은 아이의 손이 있다. 이걸 외면하고 싶진 않다.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정 일이 뜻대로 안 풀리면 내가 막아주지 뭐. 설마 아이언맨이 후배 챙긴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뭐라 한다 해도 곱절로 되갚아주면 그만이다.

불필요한 소란은 정중히 사양이었다. 귀찮고 번거로우니까. 그러나 이것이 소년을 위한 길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주리라.


“오늘 기자회견을 준비한 건 어벤져스 관련 일 때문이 맞습니다. 어째서 이 시기인지는, 그냥 상황이 적기였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군요.”


토니 스타크 특유의 시원시원한 어조가 서두를 열었다. 회장 안의 공기가 모조리 한 곳으로 집중된다. 이내 그가 싱긋 웃으며 제 옆의 소년을 지목했다.


“그리고 나머진 당사자가 대답해드릴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무대가 가장 반짝이는 때.


“소개하죠. 어벤져스의 새 일원, 스파이더맨입니다.”


―히어로 아이언맨은 이 순간, 새 영웅의 완벽한 쇼맨이었다.









2) 사고





[썰체 주의해주세요!]








쇄도하는 질문. 약간 의외인 부분도 있었으나 대부분 예상한 내용. 언제부터 스파이더맨의 어벤져스 소속 논의가 벌어진 건지, 어떻게 합류한 건지, 이유가 뭔지. 아이언맨은 공식 입장에서 소코비아 협정에 동의하신 것으로 아는데 스파이더맨이 가면을 벗지 않은 채 참석한 이유가 뭔지. 당신이 찬성 입장을 밝혔으니만큼 이 자리에서 자신이 스파이더맨에게 정체를 요구해도 되는 게 아닌지. 정말 그가 히어로라고 생각하는지 등 각종 자격을 운운하며 마치 당사자가 자리에 없는 마냥 토니 스타크에게 궁금한 점을 포격해대는 기자들. 특종을 잡은 만큼 뭐 하나라도 건져볼 심산으로 득달같이 쏘아대는 질문세례에 피터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그러던 중 한 기자가 물음. 그럼 저번에 났던 스타크 인더스트리 대표 이사인 페퍼 씨와의 약혼 발표는 거짓이었습니까? 어떻게 말을 하는 게 좋을지 몰라 잠시 침묵하는 토니. 그리고 마치 홀린 것처럼 스파이더맨이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아 토니 대신 답함. 네.


피터의 짧은 선언에 대한 파장은 굉장히 컸음.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당당한 대답에(심지어 사실도 아닌) 토니가 벙찐 사이 카메라 플래시가 마구 터짐. 거짓이었다고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죠? 혹시 그나 그녀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입니까? 어쩌면 스파이더맨의 정체에 관한 단서가 될 지도 모르는 일에 눈을 빛내는 하이에나들. 일 났군. 토니가 낮게 혀를 차며 강제로 회담을 종료함. 이제 가서 뉴욕의 친절한 이웃이 어벤져스가 되다! 같은 표제나 왕창 터뜨리라고요. 한 번에 전부 알려주면 재미없잖습니까? 그리고 여전히 들끓는 소란에서 피터의 손을 잡고 빠져나감. 토니 스타크의 무관심병은 지금껏 엄청나게 회자되어 왔기 때문에 명백히 다른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이 토니 스타크와 따로 아는 자, 그것도 무척 친분을 가진 인물일 것이라 추리하기 시작. 그 날 저녁, 두 사람이 기대했던 기사 대신 다른 제목의 추측성 보고가 인터넷 뉴스 배너를 가득 채움.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관계: 어벤져스는 무엇을 내다보고 있나?” 절대로, 적어도 토니가 계획한 흐름은 아니었음.


개인실에 들어가서야 성을 내는 토니. Hey, kid. 지금껏 친 사고로는 성이 안 찼어? 이제 화낼 기운도 없다. 왜, 그냥 네가 퀸즈의 미드타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평범한 15세 학생 피터 파커라는 것까지 전부 공표해버리지. 잠자코 그의 꾸중을 들으며 울먹거리는 피터. 자신도 어째서 갑자기 입이 멋대로 움직였는지 모르겠어서 반항할 거리조차 마땅치 않음. 이를 앙 다문 채 어떻게든 눈물만은 참아보려는 그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 토니도 도리어 머쓱해져 괜히 말을 멈추고 뒷머리만 긁적거림. 하아, 방금은 미안. 감정 기복이 심했네. 일단 정정 기사는 금방 뜰 거야. 나는 너랑은 스파이더맨이 된 후로 알게 됐고, 지인제니 뭐니 들먹일 만한 관련 인이 아니라고, …네. 성가실 만한 경우의 수는 사전에 제거해둬야지. 네 숙모도 계시니까. 적어도 이렇게 하면 나랑 얽힐 때보단 기자가 반으로 줄어들 거다. 분명 다 사실이고 맞는 얘기건만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음. 계속 그와 자신이 함께 언급되었으면 좋겠고, 제 3자가 쏟아내는 여러 가능성이 전부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람. 그러다 퍼뜩 마음을 자각함. 나 스타크 씨를 좋아하는구나. 더 이상 단순히 멋진 우상으로서가 아니야. 물론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토니도 알아챔.


한 달 후. 정말 폭풍 같은 기간이었음. 그 사이 피터는 단 한 번도 토니를 만나지 않음. 혹시라도 같이 있는 모습을 들켰다가 좋을 게 없으니까. 토니의 제안이었고 피터는 따라야만 했지. 싫다 하고 싶어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제가 토니를 좋아해서, 보고 싶어서 안 돼요? 그 토니 스타크가 유혹도 아니고 고백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발언에 넘어가주는 척이라도 할까? 가능성은 희박했으며 이제 겨우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은 피터는 여기서 바로 토니와 멀어지는 최악의 가정을 현실화하고 싶지 않았음. 결국 별다른 변화 없이, 스파이더맨은 그 후로도 계속 방과 후 패트롤을 돌면서 퀸즈 일대를 포함해 점차 자신의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지. 실상 토니가 아직 어벤져스로서의 일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딱히 취할 역할이 그것밖에 없었던 거지만. 어찌 되었든 피터로서의 역할도 당연히 살뜰하게 챙겼어. 이렇게 해야 토니가―가능성은 희박하지만―칭찬해주러 라도 한 번쯤 얼굴을 비춰줄 것 같아서.


그렇게 얼마나 토니를 그리워했을까, 한 번씩 가면을 쓴 채 건물 사이를 누비며 절반은 토니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운 지 2주가량? 피터는 전혀 의도치 않게도 토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됨. 왜냐하면, 심하게 다쳐서 슈트가 망가지는 바람에 보조 바퀴 프로토콜을 멋대로 해킹한 뒤 달린 베이비 모니터링-개정판 프로그램이 이 사실을 토니에게 자동으로 전달해버리니까. 뭐? 난데없는 소식에 토니가 미간을 찡그림. 또 소란인가. 하여튼 조용할 날이 없는 꼬맹이라니까. 그가 낮게 혀를 차며 서둘러 겉옷을 챙김.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초조한 기색은 평소 그를 봐왔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차이가 났음. 연락 취해. 파커 군이 원하지 않습니다. Huh? 약간 어이없다는 감정을 실은 토니의 목소리가 이내 낮게 가라앉음. 강제로 연결해. 당장 한 마디 해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갔을 때 도저히 말조심 못 할 것 같거든. 토니가 겨우 눌러 담은 화를 짐작한 프라이데이가 캐런을 통해 강제로 수신을 승인함. 그 순간 다친 부위를 대충 손으로 감싼 채 숨어 호흡을 고르던 피터가 불길한 통화 신호음에 어깨를 흠칫 떨었음. 온몸의 털이 쭈뼛 섰음. 언젠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다면, 이 타이밍에 토니가,

“Hi, Spiderman―?” 아니나 다를까,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울림. 피터가 속으로 중얼거림. 망했다.








* 개인 사정으로 중단합니다.

  아래는 본래 계획했던 글의 소제목입니다. 연재는 못하게 되었지만 혹시 궁금한 점 질문해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04. 기회에 긴장하는 열다섯, 사고가 달갑지 않은 마흔 일곱

05. 고백과 기대하는 열다섯, 거절을 준비하는 마흔 일곱

06. 웃음이 헤픈 열다섯, 울상이 습관 된 마흔 일곱

07. 거절에 실망하는 열다섯, 고백에 흔들리는 마흔 일곱

08. 욕심에 솔직한 열다섯, 책임과 망설이는 마흔 일곱

09. 연애가 신선한 열다섯, 사랑이 낯선 마흔 일곱

10. 책임이 버거운 열다섯, 욕심을 내비치는 마흔 일곱

11. 소란에 기겁하는 열다섯, 침묵을 고수하는 마흔 일곱

12. 울음을 터뜨리는 열다섯, 웃지 못하는 마흔 일곱

13. 사고를 일으키는 열다섯, 기회를 잡은 마흔 일곱

14. 미숙한 열다섯, 유치한 마흔 일곱








이러쿵저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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