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트윈파파_w. 제철망개

 


남준은 정희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고 마음이 착잡했다. 잘 지내냐는 인사도 안부도 아닌, 모친의 부고소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다가 한국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상주들이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는 걸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 났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급히 전화를 걸어 장례식에 대해 물었고 수 일 내로 잠시 귀국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바로 짐을 쌌다. 마침 방학 중이니 한국에 다녀올 명분은 충분했다. 남은 티켓은 경유지에 들러 거의 하루를 날아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남준은 개의치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문상용 정장으로 갈아입었고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보고 싶던 정희는 전보다 야위고, 밤을 샌 탓에 몰골이 초라했지만 남준의 눈에는 예전 그대로의 정희였다.

 

- …남준오빠?

- 정희야.

 

머리가 조금 짧아져 있었지만 남준이 맞았다. 새카만 정장을 입고, 손에는 흰 봉투를 든 남준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안에 있던 정국은 처음 보는 남준의 등장에 누나의 학교 친구려니, 점잖게 인사를 했고 정희는 당황스런 기색을 감추며 남준을 빈소로 안내했다. 남준은 상주로 보이는 정국에게 목례를 하고 향을 꽂았다. 향을 세 번이나 부러뜨리고 나서야 온전한 향을 꽂는 것을 보고 정희는 진짜 남준이 저를 찾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 정국아, 인사해. 워홀 갔을 때, 나 많이 도와준 오빠.

- 안녕하세요… 전정국 입니다.

- 김남준 입니다. 뭐라 위로를 드려야할지….

- …오빠, 식사해요. 얘도 안 먹었으니까 같이 앉아요.

 

어떻게 찾아왔냐는 정희의 눈빛에 남준은 폰의 액정을 들어보였다.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장례를 알린다는 게 그만, 저장되어 있던 모든 연락처에 메시지가 전달 된 모양이었다. 헤어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불쑥 찾아와준 남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남준은 헤어졌을 때보다 훨씬 멋있는 남자가 되어있었다. 정국은 아무래도 남준과 누나 사이의 기운이 심상찮음을 느끼며 도우미 아주머니가 가져다주는 반찬을 식탁 위에 깔았다. 남준의 한국의 장례식은 처음 와보는 것이라 했고 정희는 영 어색한 얼굴로 숟가락을 놓았다. 건네받으려던 남준은 정희와 손이 스친 걸로 화들짝 놀래다 앞에 놓인 육개장을 엎었다. 시뻘건 국물이 정희의 상복 치마 위로 철철 흘렀다. 그때와 같았다. 김치찌개 벼락으로 첫 인사를 했던 때. 별안간 정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어찌할 줄 모르는 남준은 손으로 치마에 쏟긴 육개장 건더기를 집으려 했다. 정국은 새로 육개장을 퍼오려 일어나려다 누나가 우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멈췄다. 상을 치르는 내내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정희는 남준의 엉망이 된 손을 잡고 곡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왔냐고. 이럴 때 오면 어떡하냐고.

정희의 전례 없던 울음에 도우미 아주머니들 마저 울컥했다. 소리에 놀란 정민이까지 덩달아 울기 시작했고 남준 말고는 조문객이 없던 한낮의 빈소는 곡소리가 쩌렁하도록 울렸다. 남준은 좀처럼 그치지 못하는 정희에게 더 빨리 올걸, 미안해. 라며 감싸 안았다. 다 큰 남녀가 육개장 칠갑이 된 채 꼭 껴안고 울어재끼는 모습이 슬프다가도 우스워서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훔치면서도 ‘보통 사이가 아니네.’ 하며 낄낄 거렸다.

 




“와….”

“우선 학교부터 졸업하기로 하고 다시 헤어졌어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구요. 경제적으로 기반이 잡혀야 정희도 안심할 테고.”

“전작가님도 기다리신 거예요?”

“네. 학교 마저 졸업하고, 직장 다니면서 틈틈이 글 쓰고.. 그 사이에 저도 한국 들어왔구요.”

“멋있어요….”

“정국이랑 완전 귀국하고 나서 말 텄어요. 중간에 몇 번 들어왔을 땐 숫기도 없어 보이고 인사만 했는데 정희랑 결혼 얘기 나오니까 먼저 말 걸기 시작하대요.”

“진짜 영화 같아요….”

“장거리커플 다 영화 같은 연애하잖아요. 우린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아, 정민이 1등 했나 봐요. 정민아- 여기 봐-!!”


2인3각에 출전한 정민이는 거의 정국에게 달랑달랑 들려서 1등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승부욕이 강한 것은 정국을 꼭 빼닮아서 1등을 확인한 부자는 거대토끼, 아기토끼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정민이는 조금 늦게 들어오는 샐리와 정희를 기다렸다가 샐리의 손을 꼭 잡고 남준과 지민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정희와 지민이 준비한 도시락의 양은 대충 10인분은 되어보였지만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국은 내일부터 다시 식단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며 오늘 잔뜩 먹어 두겠다고 김밥을 두 개씩 집어 먹었다. 정민이는 아빠를 따라서 두 개를 먹으려다 천천히 먹자는 샐리의 말에 한 개를 도로 내려놨다. 지민은 정희가 싸온 음식이 맛있다고 연신 감탄했고 남준은 젓가락을 쪼개다 한쪽을 날려먹었다. 샐리는 지민이 싸온 김밥을 정희에게 제일 먼저 내밀었다. 정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모 주는 거야?’ 물었고 샐리는 정희의 입에 넣어주며 ‘오빠랑 샐리가 만들었어요.’ 했다.

집에 돌아 온 정희는 ‘여보 봤어? 샐리가 나한테 먼저 김밥 준 거?’ 쉴 새 없이 남준에게 자랑하느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남준은 웃으며 정희를 토닥였고 정민이는 ‘나도 샐리가 김밥 줘써!!’ 하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




정희는 결혼준비를 하며 남준에게 물었었다. 아이는 몇이 좋겠느냐고. 남준은 하나든 둘이든 상관없으니 낳아서 잘만 키우고 싶다고 대답했고 정희도 동의했다. 이미 자식처럼 지내는 정민이가 있으니 아이가 생긴다면 딸이길 바랐다. 얌전하지 않아도, 예쁘고 귀엽지 않아도 되니 둘 중 하나를 닮은 딸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을 돌며 주재원에서 은퇴한 남준의 부모님은 손주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두 사람에게 간섭은 하지 않았다. 언제든 부모가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때 둘이 행복하다면 됐다는 말 외에는 출산 계획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단꿈 같던 신혼 생활 중 정희는 정민이와 나이 터울이 많은 것도 신경 쓰였고,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를 낳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남준은 찬성했다. 침실 한곳에 넣어 둔 피임도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정희는 배란기를 체크할 정도로 임신에 열중했다. 반년이 지나도 테스트기에는 한 줄만 보였다. 원래 하려고 하면 잘 안 되더라, 어쩌다 보니 생기더라, 뜬금없이 생기더라, 정희는 그런 경험을 듣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사람을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고 정희는 불안해졌다. 남준은 초조해지지 말자고 했지만 이렇게 장기간 피임을 하지 않은 결과를 정희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불안한 정희를 데리고 남준은 병원을 찾았다. 비뇨기과, 산부인과의 검진을 모두 받았다.

 

- 두 분 다 큰 문제는 없는 걸로 나오는데….

- …네?

- 정 임신을 원하시면 시술은 어떨까요. 요즘은 많이들 하는 추세고….

- ….

 

두 사람 모두 신체 기능에는 이상이 없는데도 자연임신이 힘들다면 방법은 시술밖에 없었다. 정희는 시술을 받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희는 시술이 잘 될 거라는 기대로 차있었다. 배양은 쉽게 성공했지만 이식이 되질 않았다. 한해가 다 가도록 정희는 시술에 매달렸다. 돌아온 건 이번에도 이식에 실패 했다는 병원의 연락뿐이었다. 정희는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져 갔다. 임신이 되지 않는 것보다 정희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더 가슴 아팠던 남준은 정국에게 같이 살 것을 제안했다. 그때까지 엄마와 살던 집에서 정민이와 둘이 지내던 정국은 남준의 제안을 거절했다. 남준과 정희가 보내주는 생활비도 면목이 없는데, 같이 사는 건 정말이지 너무 염치가 없었다. 어떻게든 제 자식은 제가 책임을 지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집에 찾아 온 정희가 이제 삐뚤삐뚤 걷기 시작하는 정민이를 껴안고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본 정국은 마음이 무너졌다.

셋은 넓은 집을 구했다. 정국은 매달 월세처럼 누나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기로 했고 정민이는 함께 키우기로 했다. 정민이를 데리고 나간 남준과 정희에게 들리는 ‘애기아빠’, ‘애기엄마’ 소리는 우울하기만 했던 정희에게 새 삶의 기운을 느끼게 했다. 남준은 이것으로 만족하자고 했다. 우리처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하나 정도는 가질 수 없는 게 있다고. 너와 내가 만든 아이는 아니어도 정민이는 충분히 그 역할을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다고.




*




촬영도 피티도 없는 날의 정국은 정희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 준비를 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가장 큰 사이즈의 캔 햄을 따서 큼지막하게 썰었다. 계란프라이를 가족 수보다 많이 부치고 어제 정희가 끓여놓은 국을 데웠다. 잠투정이 심한 아들내미는 꼭 한 번에 일어나는 법이 없다. 두 번, 세 번을 깨우다가 결국은 정국이 안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 소리에 남준이 부스스 일어나 눈도 뜨지 못한 얼굴로 출근 준비를 했고 오늘은 진작부터 정국이 아침을 준비하는 날이었으니 늦게까지 글을 쓰다 잠든 정희는 정국이 밥을 먹으라고 깨우면 그제서야 일어나서 젓가락을 쥐었다. 남준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밥을 하는 일이 없었다. 정확히는 정국과 정희가 남준에게 식사준비를 맡기지 않았다.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혹시나 두 남매가 아침부터 집을 비우고 정민이에게 밥을 챙겨 줄 사람이 남준 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냥 시켜먹으라고 했다.

정국은 현장학습에 간다는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쌌다. 이 집에서 만드는 김밥은 꼭, 햄이 밥만큼 들어갔다. 며칠 전에 정희가 빵집에서 겨우 구해온 아기상어 보온가방에 김밥과 과일을 2층으로 넣었다. 정민이는 노란색의 아기상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샐리가 아기상어를 좋아한다는 말에 당장 아기상어 가방을 구해달라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남준이 출근하고, 정민이를 버스에 태워 보낸 정국은 정희마저 나간 텅 빈 집에 혼자 남았다. 설거지를 하고 지민씨는 뭐 할까, 생각하며 청소기를 돌리는데 정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나갈 일 없지?」

“어.”

「그럼 뒷 베란다에, 작은 상자 있거든. 그거 박쌤 좀 갖다 줘.」

“뭔데?”

「감자. 10kg 샀지. ㅋㅋ.」

“헐, 누나 성공했구나.”

「나 오늘 좀 늦을지도 몰라. 저녁 기다리지 말고.」

“넵.”





 

지민씨…!!!








***



내 감자 언제 오지(또륵


+ 아니 이 편 쓸때 한창ㅋㅋ포켓팅 중이었거든옄ㅋㅋ 물론 저는 포켓팅에 세번 성공했다고 합니다(으쓱 + 확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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