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어서, 도를 넘어선 슬픔이 닥치면 인간은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역류해낸다. 결국 슬픔에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믿지 못하고 끝없이 놀란 채로, 상황을 받아들이고서도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강징은 생각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게 뭐가 있지? 충격으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귀가 충격으로 멀어있던 그 짧은 순간에 산 자는 모두 죽거나 도망친 것이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 자신은 시체가 널린 절벽 위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발치에는 남망기가 흘린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정확히는 남망기가 쥐었던 위무선의 손에서 흐르던 피가. 그 붉은 얼룩을 보다 몸을 돌리면, 시커멓고 검붉은 쇠붙이들 사이에 핀 새하얀 연꽃이 눈에 띈다. 하지만 다가가보면 그 연꽃 역시 검붉게 얼룩이 진 채로 시들어 있었다.

강징은 상복을 입은 채 축 늘어진 누이의 시체를 품에 안아들었다. 항상 따뜻했던 표정도, 손도, 모두 차갑게 식었다. 아무리 붙잡아도 데워지질 않는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바람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어느 여인의 죽음을 흩어놓은 그 바람이다. 천천히 그는 코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새하얗게 타서 백골이 되고, 뼛가루가 되어버린 그녀의 향기를 맡았다고 착각한다.

흘리고 싶은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고, 맡아서는 안 될 향기를 맡아버리고, 잃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잃고.

그러므로 강징은 다시 질문했다. 이제 내가 남을 이유가 뭐가 있지?

천천히 누이의 시체를 내려놓고 그는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걸었다. 가까워지는 그곳은 절벽이다. 가장 예민한 수사의 감각으로도 위무선의 새카만 의복과 새카만 머리카락은 이 위에선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어쩐지, 저 아래로 내려간다해도 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을 것만 같았다.

"한심하군."

저 아래 있든 말든 그딴 걸 왜 생각하느냔 말야, 시체 따위를.

"어차피 죽었는데."

어차피 죽을건데. 그렇게 생각하며 강징은 남망기가 흘린 위무선의 핏자국 옆에 섰다. 바로 여기다, 삼독을 휘두른 곳. 문득 후회가 들었다. 그를 찌르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지, 검을 뽑은 것이 후회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원인 모를 그 감정이 남기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한다는 현실과, 고통 뿐이다. 

어설프게 떨어져서 죽지도 않고 고통스럽기만 하지는 않길 바랐다. 위무선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며 위무선이 그랬던 것처럼 낭떠러지를 등진 채 서서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몇 보를 더 걸어야 추락하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은 두렵기보다는 괴롭고, 후련했다. 운몽의 이름으로 포기한 것들, 밀어낸 것들. 이런 것들은 더이상 그를 이 세상에 속박해 둘 만한 무게를 갖지 못한 듯 했다…

걸음을 계속하려던 그의 귓가엔 더이상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적막을 찢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순간 강징의 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소리는 가까이서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 먼 곳에서도 확실하게, 강징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마치 그를 애타게 부르는 것처럼.

그것은 젖먹이의 울음소리였다.


바람에 흩어진 뼛가루의 냄새가 점점 희미해가는 것을 느끼며 강징은 말라가는 사형의 피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시든 연꽃같은 누이의 시체를 안아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가면 그곳에는 있었다. 오랜 첫사랑의 결실을 잃고, 세상을 적으로 돌린 의동생으로 인해 사리에 어두워진 강염리가 품 안에 있는 것도 잊은 채로 안고 달려온 핏덩이가. 태어난 지 만 한 달, 양친을 모두 여의고 홀로 남겨진 가엾은 아이가.

사랑했던 여인을 태운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모두를 잃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이며 못내 가슴이 아팠다. 살아야 했다. 이 아이에게는 두 번 다시 이 상실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살아야 했다. 아기를 안아 서투르게 어르던 강징은 결국 아이의 울음소리에 제 소리를 묻은 채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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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테마가 아니라서 태그에는 못 걸지만 서치에 걸리라고.. 강징온정 요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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