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the carnival begins and everything is over.









아침 햇빛이 눈꺼풀을 간질이자 스가는 눈을 비비며 뒤척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살갗에 닿는 이불의 촉감이 낯설었다.

'쿠로오상 냄새'

부스스 눈을 뜨고는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다. 어젯밤 그를 안았던 사내는 거기에 없었다. 주위를 살핀 스가는 콧속을 간질이는 음식냄새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부엌에 가까워질수록 프라이팬 위에 구워지는 베이컨 냄새와 소리, 그리고 거기에 섞여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여기 카니발 괜찮아. 생각보다 더 예쁘더라고. 응응. 그래. 전화할게. 알았어. 사랑해 자기."

스가는 듣지 말아야할 것을 들은 기분이었다. 어젯밤 그 쾌락의 끝에 자신에게 말하던 사랑해가 겹쳐 들리는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있었다.

"쿠로오상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제 일어났어? 욕실 저쪽에 있으니까 씻고 와. 같이 아침 먹자."

스가는 멍청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영악한 편이었고 어떻게 보면 너무 착했다. 그는 방금 막 부엌에 온 것처럼, 웃음을 가장한 얼굴로 쿠로오에게 인사했다. 스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쿠로오는 어제의 그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따뜻한 물이 샤워기에서 내려 그의 몸을 적셨다. 허리와 엉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며 아파왔지만 둘만의 환희가 끝나고 쿠로오가 발라준 연고 덕분인지 못 움직일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새겨지는 고통이 그가 들은 통화내용을 그에게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날 갖고 놀 작정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상냥하지 말았어야 했어.'

자신의 몸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보며 그는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기분을 꾹꾹 눌렀다.

조금은 뻑뻑한 소리를 내는 밸브를 잠그고 자신의 몸에 묻은 물을 천천히 닦아낸 그는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주워 입고는 쿠로오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내가 아침을 해주는 건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영광으로 알라고."

스가를 배려해서인지 두툼한 방석이 놓여있는 의자를 빼주고 식탁에 마주앉아 따뜻한 베이컨과 계란프라이를 입으로 가져가는 동안 둘 사이에는 별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햇빛이 잘 드는 부엌은 둘 사이를 어색함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쿠로오상 아까 누구랑 통화했어요?"

"음? 아.. 그냥 일본에 있는 친구. 전화가 오더라고."

“아, 부엌에서 대화소리가 들리는 거 같더라고요."

어색한 적막과 함께 다시 둘 사이는 음식 먹는 소리만 남았다. 접시와 포크가 닿는 소리와 뭔가의 이상한 낌새에 쿠로오는 입을 열었다.

"혹시 그 통화내용 들었어? 그 오해가 조금 있는 거 같은데..."

"저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같이 못 다닐 것 같아요. “

스가는 쿠로오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변명에 아마 그를 용서하고 말 것이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할지라도 그건 싫었다.

“아, 응. 어, 그럼 오늘은 스가군 없이 외톨이 신세네.”

"그렇게 외로우면 다른 카니발 보이 꼬셔서 가세요."

"응? 그건 무슨 말이야?"

"아니에요. 그냥 뭐 쿠로오상은 친화력이 좋으니까 오늘은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요."

입안의 달걀이 역겹게 꾸물거리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시비를 걸 듯 쿠로오에게 말하고는 주워 담지 못할 말을 덮으려 하면서도 삐딱하게 말하는 자신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쿠로오상, 아침 잘 먹었어요. 저 그럼 가볼게요."

"잠깐. 내일은 약속 없지? 피날레 같이 보자."

"……."

"내일도 날 외롭게 할 거야, 스가와라군?"

"...알겠어요. 그럼 어제 그 장소에서 봐요."

"그래. 즐거운 시간 보내. 스가군."

처음에 쿠로오가 보여줬던 웃음이었다. 왠지 마음에 들지 않던 웃음. 이제는 싫어해야한다는 머리보다 마음이 더 빠르게 반응하는 웃음이었다. 스가는 어설프게 웃어보이곤 그곳을 빠져나왔다. 문 앞에 서서 오늘도 어김없이 맑은 하늘을 쳐다봤다.



***



집에 들어온 스가는 방으로 바로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듯 이불 속에 들어가 계속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눈물을 이제야 풀어주었다. 오래된 것도 아닌데, 그는 어제 만났고 눈물도 오래 참은 것도 아닌데 정말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아까까지 응어리져 단단하던 것을 눈물로 계속 녹여냈다.

퉁, 퉁, 퉁.

얼마나 울었을까. 조심스레 손으로 나무문을 두드리는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스가의 엄마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스가, 이불 안에 있니?"

스가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단단히 잡았다. 아직 복잡한 자신을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고 눈물범벅인 모습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꼼지락거리는 이불 속에서 스가의 훌쩍임이 잘게 새어나오는 것을 들은 그녀는 침대에 앉아 포근한 손길로 이불 위를 쓰다듬었다.

"스가, 카니발 이야기 알지? 바다의 신이 마을에 놀러왔다가 한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그 아이를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는 이야기. 신은 그 아이를 자기 신전으로 데리고 가 신처럼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해줬지. 그 아이가 카니발 아이의 시초인 셈이고 어른들이 카니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이 끝나고 카니발이 시작된다.' 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고."

카니발 시즌이 되면 학교에서 해주는 옛날이야기다. 더욱이 카니발 보이를 해본 스가는 이미 다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점점 답답해져오는 이불 속의 공기를 느끼며 그는 잠자코 있었다.

"근데 그 아이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어. 신이랑 노는 것도 요정들이랑 노는 것도 지겨웠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었어. 웃음이 사라진 아이를 보면서 신은 마음이 아팠어. 자기 때문에 불행해진 아이에게 미안했어. 그래서 아이를 불러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대. 불노불사와 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버리더라도 돌아가고 싶은지.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했고 신은 아이를 돌려보내줬어."

답답해진 스가는 이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가 해주는 뒷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고개를 내민 스가의 눈가에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신은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어. 이미 아이는 신에게 바쳐져 신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카니발 기간 동안은 자신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말이야. 신의 이 말 때문인지 카니발에 뽑힌 아이들은 바다와 인연이 깊어진다고 하더라. 이를테면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거나,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혹은 카니발 기간에 바다 건너 온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거나."

그녀가 해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마지막 말이 스가에게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의 보드라운 회색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바다마을에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게 이별이란다. 잠시만 들리는 걸 수도 있고, 정착하는 걸 수도 있어. 다른 것 같지만 둘 다 언젠가 끝이 찾아온단다. 남겨지는 사람들과 남겨놓고 가는 사람들, 둘 다 이별을 원치 않아도 보내줘야 할 때는 있는 법이야. 너라면 어떻게 할 거니? 결국은 떠날 사람들이라면 말이야."

"저라면..."

그녀 옆에 앉아 이야길 듣던 스가는 입을 열었지만 쉽게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덧, 커버린 아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그의 머리를 헝클었다.

"오늘 시간 괜찮으면 아야메랑 카니발 구경 같이 가줄래? 불꽃놀이를 보고 싶어 하는데 혼자는 너무 위험해서 말이야. 너도 머리 좀 식히고."

방문에 매달려 빼꼼 안을 쳐다보던 아야메는 자기 이름이 들리자 쏙 문 뒤로 숨었다가 다시 삐쭉 얼굴을 내밀었다. 그제야 아야메를 발견한 스가가 이리오라고 손짓하자 아기 고양이처럼 우다다 달려들어 안겨왔다. 고목에 매미가 매달린 것처럼 스가의 옷을 잡고선 놔주지 않는 아야메를 쓰다듬으며 스가는 빨개진 눈가를 소매로 훔쳤다.



***



스가는 평소 자기가 가장 아끼던 옷을 꺼내 입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도 가다듬고 머리도, 얼굴도 한번 살폈다.

"다녀오겠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스가의 머릿속은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이었지만 그의 걸음에서 불안함이 묻어있었다. 저 멀리서 쿠로오가 보였다. 안내책자 같은 걸 들여다보는 듯 아직 스가를 발견하지 못한 듯 보였다. 스가는 아까보다도 더 느린 걸음으로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겨갔다.

"오, 스가와라군 엊그제보다 신경 쓰고 나왔는걸! 카니발 보이 같고 잘 어울리는데."

쿠로오가 그를 보고는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의 모습에 스가도 왠지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퍽 소리가 난 배를 움켜잡은 쿠로오를 기다려줄 틈도 없이 스가는 그를 잡아끌고 여기저기를 데리고 갔다.

'좋은 기억들만 남기고 그를 보내주자.'

그가 어제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돌아갈 곳이 있는 잠시 들린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도 잠깐 들린 인연인거고 그를 보내줘야 한다. 그렇다면 후회만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쿠로오는 뭔가가 달라진 듯한, 결연해진 것 같은 스가를 잠시 쳐다보았다. 뭔가 불안이 묻어있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쿠로오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와 함께 카니발을 돌아다녔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천천히 검붉어지더니 완전한 어둠으로 염색되었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렸던 불꽃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쏘아 올려 찰나의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아주 찰나이기 때문에 자신을 놓치지 말고 봐달라는 요란한 신호음과 함께, 밤하늘의 주인들마저 질투할 만큼 아름다운 불빛으로 하늘에 불을 밝혔다. 마지막 밤이기에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터지는 불빛들을 쿠로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홀린 듯 보고 있었다.

스가는 모두 하늘을 보고 있을 때 쿠로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타오르는 강한 빛에도 여전히 검은 빛을 띠는 그의 머리카락을 보며 스가는 손을 뻗어 그를 잡아당겨 키스했다. 쿠로오는 놀란 듯 반응했지만 이내 스가의 키스에 응해왔다. 마치 두 사람을 위한 폭죽인 것처럼 뜨겁게 키스했다.

"카니발, 어땠어요?"

"내가 가본 축제 중에 최고였어."

"다행이에요. 저도 가장 즐거운 카니발이었어요."

불꽃놀이가 끝난 밤하늘은 아직 불꽃의 여운이 남아 희미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스가는 시선을 발에 맞추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쿠로오상은 잠시 들린 사람이었지만 저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에요."

"오야오야 스가군 갑자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쿠로오의 신발을 본 스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쳐 그를 피했다. 고개를 든 스가의 얼굴은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당황한 쿠로오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쿠로오상, 원래 바다마을 사람들은 이별에 익숙해요. 쿠로오상은 돌아가야 할 곳도 있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제 카니발은 다 끝났어요. 여자친구분이랑 행복하면 좋겠어요."

말 중간 중간 울음이 섞였지만 스가는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서로를 확인할 시간도 없이 스가는 뒤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쿠로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스가는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 이 이상은 자신의 욕심이고 미련일거라 생각했다. 차마 자신을 잊어달라는 말은 못한 체, 눈물로 흐려진 눈앞을 애써 무시했다.



***



"스가, 아침 먹으렴."

일상은 변함없이 움직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다 해도 어그러짐 없이 그가 맞이하던 하루는 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은 누군가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정해진 대로 흘러갔고 1년 이란 세월도 '돌이켜보면 금방' 이라는 시간으로 재단되었다.

"네 앞으로 편지가 왔더라."

스가의 접시 옆에는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우표도, 보낸 이도 없는 편지봉투에는 오직 스가의 이름만이 일본어로 적혀있었다. 그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편지봉투를 뜯었다.

<카니발 시작이야. 나 돌아왔어.>

고작 두 문장뿐인, 빈공간이 많은 편지였다.

“이거 어디에 있었어요?”

편지를 든 손과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누가 집 앞에 두고 갔던걸.”

“저 나갔다 올게요.”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그 편지를 손에 쥐고 집에서 나온 스가는 어디로 가야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와 처음 만났던 그 자리. 쉬지 않고 뛰어간 그곳엔 언제나 변하지 않던 검은머리가 서있었다. 쿠로오를 발견한 스가는 그제야 여기까지 뛰어온 자신의 발을 멈춰 섰다. 보내주겠다고 했던 1년 전의 자신은 변함이 없지만 그가 계속 보고 싶었던 자신 또한 버릴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참아왔었다.

‘난 다시 쿠로오상을 보내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이렇게 카니발 때만 애인인 것처럼 이걸 로 충분한 걸까?’

수면 위로 떠오른 작은 생각은 그의 발을 붙잡고선 놓아주지 않았다. 차마 더 이상은 쿠로오를 보지 못하고 스가는 고개를 숙이고는 발을 돌리려했다.

“오야오야, 스가군 이렇게 왔다가 그냥 가버릴 거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이 손목에서 느껴졌다. 뒤를 돌아본 곳엔 뛰어온 것 같은 조금은 흐트러진 그의 머리가, 쿠로오가 스가를 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머리만큼 검은 눈동자가 스가의 눈동자를 응시하고선 예전과 별 다를 것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얘긴 안 들었잖아.”

그의 손을 뿌리치려는 스가를 더 강하게 잡아끌고는 쿠로오가 말했다. 다시는 그냥 보내지 않을 거라고. 쿠로오는 그리 생각하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으면 여기야. 난 들렸다가 갈 사람이 아니니깐. 작년에 그렇게 가게 해서 미안해. 난 그때 널 여기서 만날 거라곤 기대도 안했고 그래서 준비가 안 돼 있었어. 그걸로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

스가의 저항이 약해졌다. 쿠로오도 자신의 손에 힘을 조금 풀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제가 용서할거라 생각했어요?”

그 둘의 사이를 파고든 스가의 주먹은 쿠로오의 옆구리를 때렸다. 작년보다 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윽, 스가군, 그동안 주먹이라도 단련한 거야?”

옆구리를 움켜지느라 허리 숙인 그의 볼을 스가는 손으로 잡아 입을 맞췄다. 아무런 요령 없이 박치기하듯 부딪힌 입술이 어째서 달게 느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카니발의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그들의 곁에 흩어졌다.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겨버렸어.”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넘실거리는 카페에서 쿠로오의 말은 그의 테이블에 정적을 가져왔다. 맞은편에 앉은 그의 여자 친구는 쿠로오가 하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그의 말에 입술을 비틀며 웃고 있었다.

“네가 축제 취재하러 다니니까 바람을 필 수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에 그는 별다른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역시 나쁜 놈이 되는 걸 피할 수는 없겠지.’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곤, “이번 퀴라소 카니발에서 만났어.” 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적어도 최근이라고 하면 그녀 맘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어차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개새끼구나? 그래 퀴라소인지 나발인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다신 연락하지 마.”

끝까지 쏘아붙인 그녀는 쿠로오를 향해 물을 뿌리고는 씩씩거리는 발걸음으로 카페를 걸어 나갔다. 그들의 작은 소동으로 얼어붙은 분위기에 쿠로오는 냅킨으로 가볍게 물기를 닦아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해야 했다.


*


정보의 바다라는 별명에 걸맞게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가 표류하고 있었다. 쿠로오는 그 바다를 수영하듯 그 속에서 원하는 걸 찾기 위해 화면에 얼굴을 박고 있어야했다. 유명하지 않은 마을인데다가 바다마을 이야기라던가, 카니발 이야기 같은 걸 인터넷에서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쿠로오의 형색은 마감에 시달리는 꼴이랑 꼭 같았다.

‘스가와라군이 뭐라고 말했더라.’

마지막에 스가가 한 말을 잊지 않으려고 열심히 끄적이며 그와의 마지막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니, 정확하게는 스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오야오야오야. 드디어 나왔군.”

<The carnival -신과 아이, 그리고 바다마을>

“오야오야 요새는 기자보다 네티즌들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자신이 찾는 것에 딱 맞는 제목을 찾은 그는 쾌재를 부르며 낮선 블로그를 들어갔다. 핸드폰 액정 속 디데이는 카니발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다. 또 다시 그를 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날을 그는 왠지 모르게 믿고 있었다.

따가운 눈을 비비며 읽어간 전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았다. 신은 스가와 닮은 듯 했고 이번 카니발에도 그는 자신을 부르고 있을 것이라고 쿠로오는 자신의 불안과 기대를 그렇게 다독이며 한 밤을 보냈다.









멍뭉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