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야 자리가 비었는데 어떻게 된거냐."
"오전수
업 중 쓰러져서 지금 보건실에서 쉬고 있습니다. 열사병과 과로라고 합니다."

모든 수업이 끝났지만 결국 미도리야는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고 종례를 위해 돌아온 아이자와는 이이다의 대답을 듣고는 미간을 구기며 한숨을 쉬었다. 반 전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 앉았다.

"보건실보다는 기숙사에 데려가서 쉬게 하는게 좋겠지. 이이다. 미도리야 상태 확인하고 내일 수업에 나올 수 있는지 물어봐라."
"네!"
"프로히어로라면 자기관리는 기본중에 기본이다. 다들 몸관리 잘하도록. 이상."

아이자와의 입에서 걱정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동안 미도리야가 어떤 아이인지 계속 지켜보았기 때문에 아이자와가 말하려하는 진심이 어떤건지 다들 아는 눈치였다. 종례가 끝나고 이이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교실 뒷편에서 토도로키가 다가왔다.

"이이다 같이 가. 혼자서 부축하려면 힘들거야."
"그래 알겠어."

이이다가 사람 하나를 부축하지 못할리는 전혀 없다. 미도리야의 상태를 보기 위한 변명같은 말투였지만 이이다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실례합니다-"

보건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자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확 다가왔다. 에어컨이 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리커버리걸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고요한 공기가 보건실을 감싸안았고 반쯤 열어둔 창문에서 선선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유일하게 커튼이 쳐져있는 침대에서 사람이 앉아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창문을 향해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이 세게 불었고 햇빛이 실루엣을 비추었다. 바람과 함께 커튼이 열렸다.

"토도로키군..?"

언제나 들리던 목소리가 들렸고 미도리야가 고개를 돌렸다.

"미도리야.."

동그랗고 큰 맑은 눈동자. 푸르른 녹빛의 머리카락. 끝이 살짝 떨어진 해열시트. 단추가 전부 풀어진 하복 와이셔츠. 서로의 눈빛이 마주한 순간 핏기없는 입술에서 미소가 만들어졌다. 쓰러지던 순간에 보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머리속에서 날아갔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미도리야가 뇌리에 박혔다. 토도로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도리야에게 다가갔다. 뒤따라 들어온 이이다가 손을 흔들었다. 살짝 고개를 젖혀 이이다를 발견한 미도리야는 힘없이 한번 더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에게 머무르던 미도리야의시선이 금세 타인에게 가버리자 토도로키는 살짝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이다군도 왔구나."
"미도리야군! 상태는 어때?"
"많이 좋아졌어. 열도 거의 내렸고..토도로키군이 날 여기까지 옮겨줬다고 리커버리걸이 말씀하셨어. 고마워 토도로키군."
"..아냐. 그냥 널 계속 보고있었으니까 대처가 빨랐을.."

헙. 토도로키는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미도리야의 눈치를 살폈으나 아무 이상한 낌새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갑자기 말을 끊은 것에 대해서만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좋아져서 다행이야. 미도리야."

입을 막았던 손을 내린 후 어정쩡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푹 숙였다.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전신의 열이 얼굴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운동화만 공연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바로 정면에서 미도리야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온몸의 근육이 삐걱거리는 듯 했다.

"...."

토도로키가 말을 멈춘 후 잠시, 정적이 이어졌고 고개를 숙인 토도로키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미도리야가 특유의 밝은 미소를 띄우며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이다군 미안. 혹시 내 가방 좀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내일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가방 안에 있어서. 부탁할게."
"아아..그렇군! 금방 다녀오지!"

이이다가 보건실을 떠난 후 다시 정적이 계속됐다.

"토도로키군."
"...어."

차분하게 진정된 목소리의 미도리야가 토도로키를 불렀다. 굳어있던 상체를 피며 시선을 올렸다. 이불위에 놓여있는 일그러진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다시 눈을 맞추자 기다렸다는 듯 웃어보였다. 웃는 얼굴을 마주하니 또 다시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사실 쓰러진 건 기억이 안나는데 토도로키군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어. 덕분에 조금이지만 정신도 들었었고 아마 뭐라고 중얼 거렸을 수도 있긴하지만."
"내 목소리?"
"응. 20분쯤 전에 깼는데 리커버리걸이 그러더라고.."
"..?"

말끝을 흐리는 미도리야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뒷목을 감싸 안았다.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어보이더니 다음 말을 뱉었다.

"내가 계속 토도로키군을 부르고 있었다고.."
"..."
"미,미안! 별소릴 다 했네. 어이없지?! 그냥 감사인사를 한다는 게 말이 너무 길어졌다. 쓸데없는 소리까지, 저, 그, 이이다군이 있으니까 왠지 입이 안떨어지길래, 민망해서 뭔가 어..그러니까..!"

미도리야는 계속 변명을 늘어놓으며 양손을 앞에서 휘저었다. 뻘뻘거리면서 어색하게 토도로키를 향해 웃어보인다.

"고마워! 토도로키군 진심으로."




미도리야는 치사하다.
멋대로 마음을 열어버리고 멋대로 자각하게 만들고
멋대로 흘러 넘치게 하고 멋대로..

언제부터 였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선의 끝은 항상 미도리야에게 향했었다.

"..."
"..저기 토도로키군?"

아무반응이 없는 토도로키의 모습에 횡설수설하던 미도리야가 움직임을 가라앉혔다.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곁에 바짝 다가왔다. 공중을 휘저었던 미도리야의 두 손이 내려가는 도중, 토도로키에게 양손이 잡혔고 그 상태로 정지했다.

읍..!

토도로키의 상체가 침대위로 올라왔고 미도리야의 가슴팍 위에 천천히 겹쳐지며 등받이로 쓰고있던 배게가 짓눌렸다. 포개진 두 손은 차가웠고 핏기없던 미도리야의 입술에는 열기가 돌았다. 어느쪽일지 모를 심장에서 천둥치듯 소음이 들려왔다.




-

기숙사 1층 공동 스페이스. 소파에 앉아있는 한 사람 토도로키 쇼토. 지금 시각은 새벽 3시. 고요한 공기가 이어졌다. 모두가 각자의 방에서 잠에 빠질 시간이다. 하지만 토도로키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얼음조각이 두어 개 들어있는 투명한 물컵 하나를 테이블에 둔 채 토도로키는 생각에 빠져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몇 시간전. 자신이 저지른 실책을 무한하게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토..토도로키구운..!'

자신의 몸 아래에 깔린 채 버둥거리던 미도리야의 다급한 목소리. 미도리야의 입술을 탐하는데 모든 신경이 쏠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토도로키는 무의식의 엄청난 힘으로 미도리야의 양팔을 억누르고 있었다. 거친 숨과 신음소리가 몇번 이어진 후, 보건실 문 밖에서 아마 이이다로 예상되는 빠른 발소리가 들려오자 크게 동요하던 미도리야는 순간의 행동으로 겨우 토도로키의 구속에서 벗어났다.

찰싹-!

정신을 차린 토도로키는 자신의 볼이 후끈거리는 것을 깨달았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해버린 미도리야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토도로키의 뺨을 올려붙였던 손을 떨고 있었다.

입술. 뜨거웠어.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입술을 매만졌다. 서로의 타액이 얽혀 질척하게 연결되던 혀의 감각이 생생했다.

입술에 있던 손가락을 땐 토도로키는 두 손바닥을 들어 잠시 바라본 후 얼굴을 묻었다. 컵속에 있던 얼음은 이미 녹아내렸고 차가웠던 물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 바닥에 흥건하게 물을 만들어냈고 열대야의 뜨거운 공기가 토도로키의 주위를 감싸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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