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라...”

외제니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도 더 차가워졌다. 그 음성은 마치 외제니의 성대 자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다.

“조제에게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수작이라니, 그 말은 좀 지나친데.”

“이 자식...!”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어떻게 미쳐 날뛸지 몰라서 마련한, 일종의 ‘안전장치’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안전장치라니...”

“잘 들어라!”

장 박사가 쓰러져 있는 조제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녀석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저 공기방울 같은 게 보이나?”

공기방울이라니... 외제니가 보니, 과연 투명한 공기방울 같은 게 조제의 위를 맴돌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비눗방울같이 보이는데...

“네가 저 녀석한테 손이라도 대는 순간, 바로 저 녀석의 목숨이 날아간다!”

“이런 수작질을 해 놓고도 무사할 것 같아?”

“물론, 내가 너를 처리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외제니의 눈이 흐리게 불타오른다. 장 박사의 입꼬리는 한 뼘 더 올라가 있다.

“자, 누구부터 먼저 처리해 줄까? 선택은 네 몫이다.”


한편 카페거리 근처의 대로변. 숨이 찼는지, 현애와 세훈 모두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한 병 마신다. 먼저 물병을 가방에 넣은 세훈이 앞장선다.

“이제 연락은 인공지능한테 맡기고, 가자.”

현애와 세훈이 다시 잰걸음으로 카페거리 쪽으로 향하려는데.


♩♪♬♩♪♬♩♪♬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세훈의 전화다.

“응? 누구 전화지?”

“앨런 씨 전화 같은데. 받아 봐.”

세훈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앨런 씨?”

“아, 세훈이구나. 그 마르코가 사라진 데가 어디라고 했지?”

“정확히 아는 건 아닌데, 추측하기로는 카페거리에서 천변 산책로 나오는 데 있잖아요? 거기 같아요.”

“뭐, 뭐야! 바로 지척이잖아!”

“어? 앨런 씨는 어딘데요?”

“미린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야. 자비에를 찾으러 나온 길이었거든.”

“자비에 씨요?”

“맞아. 활동이 빈번했던 곳 위주로 수색 중이었어.”

“빨리 오세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아주 위험한 것 같아요!”

“알겠어. 금방 그리로 갈 거야. 변호사님도 가고 있다고 하신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전화가 끊어지자, 현애가 다급한 목소리로 세훈에게 묻는다.

“앨런 씨가 뭐래?”

“금방 그리로 가겠대. 우리도 서두르자!”

현애와 세훈은 다시 카페거리를 향해 서둘러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이 자식, 남의 목숨을 갖고 놀아!”

“호오, 그 목소리가 아주 날카로운걸?”

악을 써대는 외제니를 보고도 장 박사는 조금의 요동도 없다. 오히려 여유롭게 웃고 있다.

“어차피 네 남자친구와 함께 죽게 될 텐데, 웬만하면 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안 그런가?”

“순순히 그렇게 해 줄 것 같으냐아아아!”

외제니는 다시 달려든다. 주먹을 꽉 쥐고. 하지만...

“오! 이러면 이럴수록, 나는 널 편히 보내 주지 못하겠는데.”

또다시, 외제니의 팔이 장 박사에게 잡힌다. 조금 전보다 한 몇 배는 강하게!

“꽤 유명한 말이 있지.”

장 박사는 자신의 손에 가볍게 잡힌 외제니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너 자신을 알라’고!”

휭-

순간.

외제니의 몸이 공중에 내던져진다. 마치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돌멩이처럼. 그리고 잠시 후...

쿵-

“으... 윽...”

또다시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이 느낌! 땅바닥을 금속으로 바꿔서 좀 그나마 덜하긴 해도 온몸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온몸 여기저기가 지끈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져 오고, 가슴은 쑤셔 온다. 일어서려고 해도 균형이 잡히지가 않는다. 외제니는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힘이 아니다, 이건!

그리고 옆을 보니...

“조... 조제!”

여전히, 미동도 없이, 조제가 쓰러져 있다.

외제니가 조제를 보니. 입에 피가 맺혀 있고, 손도 보니 온통 긁힌 상처다. 온몸이 쑤셔 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외제니는 조제에게 다가간다. 조제를 깨워야 한다. 위험하다!

하지만...

휭-

뭔가가 조제와 외제니의 사이로 지나간다!

둥근 방울 같은 투명한 구체!

그렇다. 잠깐 잊고 있었다. 조제의 주위에 공기폭탄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 참 눈물겨운 장면이군. 안 그런가?”

“이... 이...”

외제니의 목소리가 떨린다.

“개 같은 자식이!”

“그렇게 사무치게 소리 질러 댄다고 뭐가 바뀌기라도 하나? 그런다고 운명이 바뀌는 건 아닐 텐데. 안 그래?”

장 박사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날이 선 검 같다. 듣는 외제니가 상처받고, 버티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마침 둘이 한 자리에 모였군. 흐흐흐...”

“......”

외제니는 말없이 장 박사를 노려볼 뿐이다.

“애원하려는 건가? 하지만 안 되지.”

장 박사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간다. 자신이 이미 이겼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딱 좋아. 이제 둘 다 죽을 시간이군.”

“이 자시이이익!”

장 박사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점점 가까이, 공기폭탄이 조제와 외제니를 향해 다가온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까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잘 가라!”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공기폭탄은.

아니, 한 치도 움직일 수가 없다.

공기폭탄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는 것은,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장 박사가 움직이지 못하는 공기폭탄을 자세히 보니...

반사광이 난다!

그리고 점점 땅바닥으로 주저앉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

“땅바닥에 있는 철 같은 금속들을 긁어모아서 공기폭탄에 좀 첨가해 줬지. 그러니까 저렇게 움직이지 못하던데?”

“네 녀석, 그게 끝이냐?”

조금 전까지의 여유로움은 어디 가고, 장 박사의 얼굴은 어느새 초조함이 점점 파고들어가고 있다. 장 박사는 애써 웃어 가며 여유롭게 보이려고 하지만. 외제니는 비틀거리면서도 장 박사를 노려보며 말한다.

“물론 끝은 아니지.”

독기가 어른거리는 목소리. 순간적으로 장 박사의 몸이 움찔할 정도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방심하지 말라고!”

잡혔다... 장 박사의 오른쪽 팔뚝이. 그리고 서늘한 기운이 피를 타고 올라오고 있다. 금속이 되어가는 느낌 말이다. 생각보다 빠르다. 이 금속화 능력이 타고 올라오는 속도가. 분노가 초능력을 더 증폭시켜 주는 모양이다.

“제법이군. 제법이야!”

확실하다. 외제니의 귀에 들린 장 박사의 목소리. 진심이다. 그래서 더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그 순간 외제니는 알아차린다.

장 박사의 왼손 주먹이, 얼굴의 지척에 와 있다!

“하지만 알았어야지. 자신에 대해 모르면 항상 위태롭다는 사실을!”


퍽-


“크... 으... 으...”

엄청난 충격이다. 외제니의 입에서 피를 토해 낼 정도로.

외제니의 몸이 약 10m 정도 날아간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훗.”

쓰러져서 신음하며, 일어나지 못하는 외제니를 보고 장 박사는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이렇게 싱겁게 끝날 줄은 몰랐는데.”

장 박사는 외제니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다가간다. 가까이 가서 보니, 외제니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콜록거리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쭈그려 앉아서는, 외제니의 턱을 한 손으로 받치고는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보아하니 ‘이 녀석이 나한테 지금 왜 이러나?’ 하고 묻고 있는 것 같군. 그래서 말인데, 어차피 처치하기 전이니 조금만 말해 주지.”

장 박사는 마치 목숨을 막 가져가려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눈으로 외제니를 보고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 그러나 차분히 웃으며 말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VP재단에서 보관하고 있는 냉동인간들이 몇 명 있었지. 아니, ‘보관하고 있었던’이라고 해야 하나? 뭐, 어쨌든.”

“......”

장 박사의 말 그대로, 외제니는 지금 장 박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냥 듣고만 있다.

“베라네라는 게 있어. 아주 놀라운 물질이지. 지성을 갖춘 생명체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낼 수 있는 물질이야. 기체 상태로는 아주 미약하지만 농축한 액체는 아주 큰 효율을 발휘하지. 물론 내가 앙드레라는 친구한테 준 건 조금 열화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

“아무튼, 그 냉동인간들은 내 ‘플랜’을 이루게 해 줄 아주 귀중한 자원들이지. 그 잠재력이라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잠든 지구 출신들이 딱이고. 그 중에도 고르고 고른 ‘S급’들이 몇 명 있었지. 그런데 재단 안의 한 녀석이 멋대로 그 S급들을 해동시켜 버렸어. 그리고 그 S급이 어떻게 지내나 봤는데, 글쎄 내 의도하고는 영 다른 방향으로 가네? 여러 사람을 보내 설득해 봤지. 그 중에 아는 사람이 꽤 많겠지? 흐흐흐...”

장 박사가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누군지 짐작이 간다. 순간 외제니의 앞이 캄캄해진다. 여러 가지, 감정의 폭풍이 외제니에게 휘몰아친다. 당장 전해져 오는 쓰라림도 잊게 할 정도로. 그리고 알았다. 자신 앞에 있는 이 녀석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도!

“아무튼, 그렇게 설득을 해도 안 들어먹으니 어떡하나. 아쉽지만 포기하고, 그 녀석을 처리하기로 했지. 물론 거기에 더해, 나를 방해하는 녀석들도 함께 처리할 거란 말이지. 이미 한 녀석은 처리했고.”

잠깐... ‘처리했다’니? 그렇다면 장 박사는 최소 한 명 이상을 죽였다는 것 아닌가? ‘죽일 것’이라는 말과, ‘이미 죽였다’는 건,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이 녀석은, 친구를 죽일 거라고 예고하고 있지 않은가!

“아,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너를 처리할 것이고, 너는 친구들한테 내가 누군지를 전할 수 없을 텐데.”

“훗... 과연 그럴까?”

“죽을 때가 되니까 아주 헛소리가 다 나오는구만?”

“헛소리가 아니지.”

그때, 장 박사는 알아챈다. 쭈그리고 앉아 있을 동안 잊었다... 외제니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슬쩍한 것을! 지갑! 지갑이 없다!

“신분증도 있고... 바뀐 얼굴 사진도... 있네? 자... 어떡할 거지?”

“개자식!”

그때까지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장 박사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그걸 돌려 주지 못해?”

“너 같으면 돌려주겠냐... 이제 최고의 무기가 내 손 안에 들어왔는데?”

“닥쳐라!”

장 박사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어차피 죽여 버릴 거, 가장 큰 고통을 안겨 주겠다. 너 같은 녀석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을 줄 거란 말이다!”

장 박사가 오른손을 든다. 지독한 살기가 그의 얼굴에 가득하다. 

“그러셔...”

외제니는 장 박사를 똑바로 본다.

“그럼 어차피 죽은 목숨, 하나만 말해 두지, 장주원! 너 같은 사악한 자는, 결코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녀석이야! 네녀석이 나하고 조제를 갖고 논 걸 생각하면 더 용서가 안 돼!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 줄 테니, 각오하라고!”

“개같은 자시이이익!”

장 박사는 있는 힘껏 외제니의 얼굴을 걷어찬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쓰러져 있는 조제와 외제니를 씩씩거리며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외제니를 내려다본다.

“이제 내가 말한 대로,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을 네게 선사해 주겠다!”

오른손을 다시 든다. 그곳으로, 조제와 외제니를 감싸던 공기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컥컥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린다.

이윽고, 다섯 손가락마다 공기가 모여, 다섯 개의 공기방울이 만들어진다.

“다섯 개의 공기방울마다, 공기를 최대한으로 압축했지. 아주 잘 드는 폭탄으로! 온몸이 찢겨, 고통스럽게 죽어가겠지. 그러면 또다시 기폭이다! 아예 시체도 남지 않는 것이다!”

장 박사는 외제니를 내려다본다. 의기양양하게.

“자, 이걸로 방해꾼 하나가 사라진다! 잘 가라!”

외제니에게 공기방울을 주입하기 위해 오른손을 막 내리려는 그때...


“고마워... 외제니.”

돌아본다.

조제! 조제다!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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