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https://yujung00.postype.com/post/928715






오래지 않아 복도 끝에 그림자가 맺혔다. 서서히 다가온 얼굴은 수틀리고 성이 나 있어. 미도리야는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가 시선을 준다. 이내 묵인한다. 바쿠고의 날카로운 성격은 센터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예민했고. 잘못 건드렸다 화를 입느니 피하는 게 현명했다. 지척까지 걸어온 바쿠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섰다.




“공가 사를 구분하게.”




주의를 주자, 혀를 차며 턱짓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상관없잖아. 이딴 거.”




센티널로 판정을 받으면 그 달 말에 나갈 사람들을 모아 졸업식을 했다. 미도리야의 경우, 가진 힘이 유래 없이 강해 국경선에 배치 됐는데 월 말에 나가기로 했다가 사상자가 발생해 자리를 채워야 했다. 다른 사람 일정은 당길 수 없어 예외가 되었지만, 학생을 배려해 약소하지만 확실한 졸업식을 열어주었다. 그것을 이런 태도로 받아들이니 어렵사리 시간을 쪼개 나온 교수에게 마뜩잖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지금은 상관없지. 하지만 그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자네는 분명 크게 후회할 걸세.”




저주와 같은 말이다. 미도리야는 곁눈으로 눈치를 본다. 바쿠고는 눈썹을 꿈틀했지만 이내 상관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결국 엉망이 된 졸업식에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센터를 떠났다. 들어갈 땐 복잡한 절차로 종일 걸리더니 나올 때는 참 쉬워. 오래간만에 본 바깥세상은 옛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피곤한 인상의 남성이 걸어왔다.




“「센티널」 미도리야 이즈쿠 그리고 「가이드」 바쿠고 카츠키.”




목례하자, 쓰고 있던 모자를 들어 보였다. 그늘 진 얼굴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어. 미도리야는 마른 침을 삼켰고, 바쿠고는 모자 챙 아래 눈을 빛냈다. 남자는 한숨을 쉬고 뒷목을 긁적거렸다.




“사람을 달라 했더니, 풋내기들을 배치해줬군.”




혀 차며 한 소리는 틀린 말은 아니라서 잠자코 있자, 시선을 흘리며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무겁다면 무거울 침묵이 공기를 적셨고 헬기가 날아와 흩트릴 때까지 이어졌다. 부는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까 잡고 있으니 남자는 말을 이었다.




“아이자와 쇼타. 계급은 중령이다.”




목 뒤로 묶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젊어 보였지만 드러난 팔 다리는 백전노장의 그것이다.




“너희는 이제부터 군의 무기다.”

“알고 있습니다.”




바쿠고의 말에 턱을 들어 올린 아이자와 중령은 손을 뻗어 헬기 문을 열었다.




“계급은 하사지만, 햇병아리들이 으스대는 꼴 가만 볼 생각 없다.”




프로펠러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하는 말이 선명하게 들렸다. 센티널의 능력인지, 순수한 힘인지 알 도리 없다. 아이자와 중령을 따라 먼저 헬기에 오른 바쿠고는 미도리야에게 손을 뻗었다. 깜짝 놀라 그 얼굴을 쳐다봤지만, 챙 아래 숨은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 탄 미도리야는 헬기 문을 닫았다. 거센 바람이 언제 있었냐는 듯 조용해졌다. 정적이 왔다. 바쿠고는 아까 잡았던 손을 놓지 않는다. 미도리야도 뿌리치지 않는다.




센티널의 수는 적고, 전부 나라 소속이다. 능력의 대소 상관없이 각자의 직책을 가졌다. 언제나 한 발자국 삐딱했던 바쿠고는 교수의 설명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직책이라고, 소속이라고, 편한 삶을 준다고 말하지만 결국 물건 취급이잖아.’ 교수는 어쩔 줄 몰라 했고, 바쿠고는 손톱만 내려다보았다. 그늘 진 얼굴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는 무표정이라 ‘캇쨩, 왜 그런 소릴 했어.’ 수업이 끝나고 무심코 물어보자 ‘너랑 상관없잖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바쿠고, 왜 저래?’ ‘몰라. 한두 번이어야지.’ 몇몇이 짜증 섞어 중얼거린다. 카이바라는 ‘거기 있다 불똥 튀지 말고 가자.’ 어깨를 툭 쳤지만 미도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눈짓으로 먼저 가. 말한 뒤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렸다. 마지막 인기척이 복도 너머로 멀어지자 터덜터덜 걸어온 바쿠고는 어깻죽지에 고개를 묻었다. 등을 감싸자 ‘하지 마.’ 라며 쳐 낸다. 이럴 때마다 너를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단 마음도 같이 가졌다.




미도리야의 부모님은 양친 다 베타였고, 바쿠고의 부모님은 아저씨가 센티널, 아줌마가 가이드였다. 어릴 때는 같은 지역에 살았지만 아저씨의 능력이 적에게 실효성이 있다는 게 밝혀지며 국경선 인근에 배치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지에 자식을 데려갈 부모는 없었고. 바쿠고는 미도리야 집에 신세를 지게 됐다. ‘자주 연락할게. 그러니까 씩씩하게 있어. 카츠키는 할 수 있지?’ 기억 속 바쿠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같은 침대에 누워 등을 마주대고 있으니 작게 떨림이 느껴졌다. 미도리야는 아무 말도 않았다. 그저 네 울음소리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네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가뭇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모르는 척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부어오른 눈을 보고 부모님도 미도리야도 구태여 그 소재를 꺼내지 않았다. 충분히 마음을 알았기에 더더욱.




그 이후로도 몇 번, 부모님과의 통화가 있는 밤이면 눈물을 보였지만 조금씩 사그라졌다. 대신 ‘가만히 있어.’ 라며 저를 끌어안았다. 다른 때는 ‘떨어지라고, 데쿠 새끼!’ 윽박질렀지만 부모님 생각이 날 때면 꼭 끌어안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미도리야는 슬픈 기분이 들었다. 네가 센티널이고, 내가 가이드였다면 나는 네 슬픔을 제대로 흘려주었을 텐데. 전부 가정일 뿐이다. 현실은 그 반대였지. 입맛이 씁쓸했다.




복잡한 상념을 뒤로 1시간 가까이 하늘을 가로질렀던 헬기는 수도 센티널 사무국에 도착했다. 국경선까지 거리가 있어, 이동이 가능한 센티널을 찾았다. ‘눈 감아 주시고요, 속이 메스꺼울 수 있어요.’ 주의사항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가 큰 코 다쳤다. 전신이 큰 통 안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입을 틀어막았다.




“괜찮아요?”

“미,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다 그러는 걸요.”




결국 게워내고 말았다. 아이자와 중령님은 이 상황이 익숙한 모양으로 태연했지만, 바쿠고도 그럴 줄 몰랐다. 여상한 얼굴이 불편하지만 참고 있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 정말 모자라네… 쓰린 속을 쥐며 직원이 건네주는 물과 구강청결제를 받았다. 물은 이해하겠는데, 구강청결제는 왜? 그런 뉘앙스로 쳐다보자 소리 내 웃더라.




“센티널이라 해서, 바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아요. 능력을 쓰고 발현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때 투입된답니다. 다른 부대는 어떨지 몰라도 저희 부대는 바로 테스트에 들어 갈 건데, 토하고 나서 입맞추는 건 누구라도 싫잖아요.”




“아… 아! 네.”




센티널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방법은 점막과 점막이 닿는. 입맞춤이다. 미도리야는 성실한 모범생이라 모르지 않았다. 모르지 않지만 상대가 바쿠고라 생각하니 상상을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이드인 자신이 하는 건 곧잘 떠올렸지만, 반대는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단 소리다. 물로 입 안을 헹구고 구강청결제를 문 채 바쿠고를 힐끔거렸다.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첨예하게 저민 분위기는 섣불리 말 걸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물고 있던 걸 뱉고 아이자와 중령을 따라나섰다.




“아까 들었다시피 바로 테스트 한다.”

“네.”




긴 복도를 지나 넓은 동공이 보였다. 쇠를 통째로 깎아 만든 듯, 거무튀튀한 벽면은 섣불리 부술 수 없는 단단한 재질로 보였다. 아이자와 중령은 주머니에서 이어셋을 꺼내 말했다.




“내보내.”




위쪽, 창문에 서 있던 직원이 뭔가 누른 듯 땅이 잘게 흔들렸다. 서 있던 바닥이 열리며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향은 좀 더 튼튼했지만 펀칭머신에 가까웠다. 아이자와 중령은 손이 닿을 부분을 손등으로 툭 치고 말을 이었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내라.”




주춤거리던 미도리야가 푹신한 부분을 꾹 눌렀다. 위 아래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못하기에 이유를 물어보자 입술을 어물거리다 말했다.




“부, 부서질 것 같아요.”




예상은 했던 것이라, 목을 기울이고 어깨를 짚었다.




“제법 센 녀석들은 곧잘 부수곤 하니까 상관없어.”




그게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진득하게 기다려주자 고개를 든 미도리야가 말을 이었다.




“아뇨, 그게, 기계가 아니라. 저 뒤의 벽… 벽을 부술 것 같아요.”




듣도보도 못한 말이다. 아이자와는 어깨를 짚던 손을 내렸다. 정말이냐는 듯 눈을 마주보자, 연둣빛 눈동자엔 한 점의 거짓도 없었다. 애초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움찔움찔하는 놈이 거짓말 할 담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건 처음인데. 미간을 찌푸리자 끼고 있던 이어셋에 목소리가 들렸다.




《Yo. 쇼-타. 그럼 기계를 부술 수 있는 만큼만 쓰라고 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싸늘하네. 쇼-》




타. 야마다 히자시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전원을 꺼 버렸다. 멀리 창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에 시선을 흘렸다.




“이걸 부술 수 있는 정도만 해.”




미도리야는 쿵쾅거리는 창문을 보다, 아이자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먹을 말아 쥔 미도리야를 보며 바쿠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작은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가 앞으로 뻗어나갔다. 바람이 불었다. 미도리야는 부서진 잔해들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감정에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뚝뚝 떨어진 눈물은 제 의자와 상관없이 옷깃을 적셨다. 바르르 떨린 손은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짚었다. 쓰고 있던 모자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이자와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기계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다 바쿠고를 보았다.




“뭐 하는 거지?”




제자리에 서, 타오르는 눈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새빨갛게 타들어간 눈동자 안에는 분노와 질투.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아이자와는 혀를 차고 성큼성큼 걸어와 바쿠고의 멱살을 잡았다.




“서류를 보니, 센티널 지망생으로 아주 촉망받았나 보더군.”




반 쯤 들린 바쿠고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게 네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만.”




반항적인 눈을 차갑게 내려다본 아이자와 중령은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경계는 지켜.”




뺨을 내려친다. 소리에 놀란 미도리야가 고개를 돌렸다. 눈물로 일렁인 시야는 잘 보이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지만 소용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움켜쥐는데 바닥이 계속 젖어간다. 기분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추를 잃어버린 배처럼 그대로 떠내려간다. 이상해. 고장 난 것 같아. 정신을 휘어잡는 감정들은 전부 자신의 것이 아닌데 자신의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해, 외로워, 무서워, 두려워. 도와줘. 살려줘. 구해줘. 미도리야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이내 손을 뻗는다. 바쿠고에게.




바쿠고의 선택은 거절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저 망가진 몰골도, 지금 상황도 다 좆같았다. 쓰레기 같았다. 젠장, 망할. 씨발! 몇 번이고 욕지거리를 반복하다 주먹을 말아 쥐었다. 미도리야가 뻗은 손을 잡아당긴다. 주저앉은 몸에 멱살을 움켜쥐고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감정이 흘러들어온다. 불쾌했다. 아주 기분이 나빴다. 그야말로 미도리야 이즈쿠 그 자체라서 기분이 더러워졌다. 엉겨 붙는 입맞춤을 뿌리치듯 떨어졌다. 머릿속에 남은 「미안해」라는 한 마디에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씨발, 기분 나쁘니까 엉겨 붙지 마.”




얼굴선을 따라 떨어진 눈물은 마지막 한 방울을 그렸다. 훌쩍, 훌쩍. 딸꾹질 하는 미도리야가 연둣빛 눈동자 위로 바쿠고의 얼굴을 온전히 담았다. 피부 안 쪽부터 밀려오는 혐오를 그대로 읽어냈다. 뜨거운 눈을 감는다. 입술을 달싹여 또 다시 사과를 담지만 바쿠고는 마주보지 않는다.




“이걸로 끝난 거지.”




아이자와 중령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쿠고를 쳐다보았다. 가늘게 뜬 눈은 힐난도, 탓도 없어 의중을 모르겠다. 그게 더 엿 같아. 입술을 잘근거리자 턱짓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대기 중이던 남성이 거수경례했다.




“가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망치듯 나가는 바쿠고를 끝까지 보다, 미도리야를 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모습이 사뭇 처연했다. 이거, 잘못하면 피곤해지겠군. 지끈지끈한 머리에 한숨을 삼켰다. 미도리야는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아이자와를 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캇, 캇쨩이… 아니 바쿠고 카츠키 군은 공과 사는…”

“변명할 필요 없어. 간혹 가다 그런 케이스도 있으니까.”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본다. 잘못하면 피곤해지는 게 아니라, 피곤할 일이 생기겠군. 미간을 찌푸린 아이자와 중령을 더 머리 아프게 하는 상대가 나타났다. 열린 문에 두 팔 벌려 들어온 야마다 히자시. 통칭 마이크 중령은 서류를 든 채 싱글벙글 웃었다.




“요, 유-래 없이 강한 센티널 군! 물론 우는 것도 말이지.”

“죄… 죄송.”

“아니, 아니. 아니! 그건 네 의사로 어쩌지 못하는 거니까 괜-찮-아! 여기 이레이저 중령도 능력 쓰고 나면 종-일 짜증낸다고!?”




아이자와는 한숨을 푹 쉬고 히자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떨어트린 서류를 받아 수치를 살폈다.




“그래서 얼마만큼 힘을 조절 한 거지?”




우물쭈물하던 미도리야가 더듬더듬 답했다.




“4분의 1 정도의 힘, 이에요.”

“4분의 1?! 그럼 풀-파워로 낸다면 얼마나 강한 거야?!”

“해,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 지만… 산, 산 정도는 날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손을 들어 내려다보는 모습에




“그만 둬.”




아이자와가 말을 가로막았다. 놀란 미도리야가 큰 눈을 껌뻑거리니 서류를 닫고 말을 이었다.




“그 정도만 썼는데도 네 감정, 어쩌지 못했잖아. 풀 파워를 쓴다면 바로 행동불능이다.”




감정의 여파는 센티널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가이드가 흘려보낸다 해도 한계는 있다.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린다고 물이 댐처럼 쏟아지지 않는 것처럼. 허리에 손을 얹은 아이자와가 바쿠고가 사라진 문을 응시했다. 테스트를 통해 센티널에게 들이닥친 감정의 계수를 보고, 가이드와 함께 힘의 사용을 조절했다. 그게 훈련의 기초였다. 하지만 이 결과로 뭘 할 수 있을까. 아이자와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센티널에게 밀려오는 감정은 능력의 등급이기도 했다. 가장 아랫단계가 노怒. 즉 분노였고 그 위가 희喜. 기쁨이었다. 세 번째는 락樂. 대부분의 전투 센티널은 이 감정에 머물러 있어. 힘을 사용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게 센티널이기 때문에 밀려오는 감정인지, 정말로 즐거움인지 분간하지 못하면 마지막은 하나였다. 이성을 잃고 적진 한 복판에 뛰어들어 전투 인형처럼 힘을 퍼붓다 죽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죽었고. 마지막은 애哀였는데 문서상으로만 보았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다른 감정과 차원이 다른 계수로 밀려오는데, 감정을 흘려보내주어야 가이드가 형편없었다. 흔히 말하는 하급 가이드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이건 가이드 재능 문제가 아니다. 태도다.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압적인 태도가 그대로 반영 돼 반의 반. 아니 그것보다 더 작은 반의 반도 소화하지 못했다. 이래서야 현장에 투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직 남아 있잖아. 참을 필요 없어.”




아이자와의 말에 미도리야는 어깨를 움찔. 이내 아니라는 듯 푸스스 웃어보였다. 어떻게 생겨먹은 관곈지 모르겠지만 이것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이들은 쓸 수 없는 패였다. 히자시가 시선을 준다. 아이자와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히자시, 의무실로 데려가. 애哀를 조절하는 약. 있을 테니.”

“결국 약이야?”

“어쩔 수 없잖아.”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미도리야를 감싼 히자시가 부러 경쾌한 걸음으로 훈련장을 나왔다. ‘아, 저기. 이게.’ 더듬더듬 말하는 미도리야에게 ‘괜-찮아! 아무 상관없어!’ 쾌활하게 말한 히자시는 뒤를 돌아 아이자와를 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약은 억누르는 것뿐이다. 누르고, 누른 건 결국 터진다.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아아, 모르겠다. 히자시는 미도리야의 작은 손을 잡고 복도를 걸었다.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 리듬을 섞어 안내했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물론 쇼타가 다 생각이 있으니 하는 거겠지만… 이걸로 괜찮겠어? 히자시는 걱정을 애써 지우고 의무실에 들어갔다.





김람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