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런가봐요."

"나도 당신을 사랑하나봐요."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온기가 가득했던 물컹한 붉은 물체가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래요....난 당신을 사랑해요."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사람의 혈액을 뒤집어쓴 손을 자신의 말끔한 정장 위로 올렸다. 그리고 어린아이같은 순수함. 사람을 죽여놓고도 해맑게 웃는 앞의 잔악한 사람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맛있게 먹어요."

요리사가 앞에 놓이준 전형적이게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워보이는 파스타와 냅킨, 포크 등등이 다 부담스럽고 거북했다.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할 식사였겠지만 거부감이 가득한 식사였다. 방의 깔끔한 인테리어와는 다르게 손끝에서는 기이한 모멸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요리사 뒤에서 밝게 웃고있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무서워서 눈물샘에서 흘러내린 눈물 한방울이 파스타 접시에 톡 떨어졌다.

더 밝아진 남자의 표정에 요리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가 이 요리를 거부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죄..,죄송합니다!"

떨어뜨린 눈물 한방울이 그리도 자신의 생사와 직결되어있는지 혀끝이 떨려 말이 헛나온 요리사의 목이, 머리가, 눈이, 입술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촤악-

얼굴에 튄 피와 서걱 하는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린 요리사의 얼굴이 지독히도 현실성없게 느껴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눈 깜빡할 새에 사라졌기 때문에 진실이 거짓처럼 느껴지는 것 같이 붕뜬 느낌이다.

"미쳤군요."

손에 피도 묻히지 않은 채로 있지만 내 오감은 분명히 앞의 사람이라고 경계하고 있었다. 감이라고는 지금까지 계속 틀려서 단 한번도 믿은적이 없었는데, 왠지 지금은 믿어야. 꼭 믿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미쳤다뇨. 무슨 그런 예의없는..."

년이다. 분명 년이라는 끝말이 작게 들렸다. 자기딴에서는 분명히 작게 말한, 아무도 듣지 못할정도로 작게 읆조렸겠지만 내 청력은 생각지도 못할만큼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도 한다. 병같은건 아니다.

"살인마새끼."

이미 피칠갑을 한 것을 여러번 연거푸 본적이 있기에 어떤 일이라던지 나쁜일이든 좋은 일이든 다 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반항할 수도 없는 힘을 가진 그는 천천히 다가와 내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에스더.....너무 예뻐요...."

콱!
승냥이같이 잘근잘근 씹는 내 손가락을 그는 즐거운듯 내 찡그린 표정을 즐기고 있었다. 축축한 촉감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들락날락하는 탓에 간담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았다.

뭐야, 이거 기분나빠. 처륵처륵 얽히는 촉각과 청각이 신경질적이게 지직 지지직 진동하고 머릿속으로 더, 더,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었다. 손을 계속 훑고있는 나머지 남자의 손에 힘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닿고 내 이성은 외쳤다.

아직은 때가 아냐, 너는, 아니 나는 너무 앞서가고 있다고.

상반된 본능은 남자의 얼굴을 당장 주먹으로 때리고 도망치라고 했다.

잘못된 판단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는데도.

그리고 그 결단은 망설임없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으꺅!"

다른 손을 주먹으로 쥐고 금발의 이에게 주먹을 날릴 즈음에 남자는 주먹쥔 손을 비틀어잡았다.

"이게 무슨 짓일까요?"

눈가에 아마 잡힌 주먹이 아파 눈물이 팽그르르 도는 것을 보고 힘이 살짝 풀린걸 느꼈다.

"잔망스러워, 너란 여자는."

자주 이 방에 와서 네테로, 진 또는 개미라던지 알수없는 이상한 말들을 자주 지껄였지만 바깥과도 두절되어있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꺼져, 미친놈아!"

자유로운 발을 벌이 공격하듯이 발을 올려 걷어찼지만 오히려 왠지 모를 이유로 나는 넘어져 있었다.


정신병자같은 모습에다가 잘생긴 얼굴, 몸매는 여자의 원하는 삼박자에 다 들어 맞았지만, 이 남자는 답이 없다.









여전히 막힌 공간이다. 그는 내가 방안에서 혼자 자신만 바라보는 미치광이로 만들려고 의도하는 모습이 다분히 들어났다.

미친놈이란 단어를 좀더 실감나게 표현하려는 그의 몸부림은 돌아버릴 것같은 짜증남이 앞섰다. 참고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미친 짓은 난 느끼지 않는다.

저런 생또라이자식을 누가 좋아할까?



재수없는 여자 한명 붙잡아서 감금해놓으면 인생 좆망한거지. 그 재수없는 여자가 나다.



"에스더- 씻을 시간 입니다~"

어휴, 저 또라이.

내가 욕실에 있을 때 물에 코박고 뒤지려고한 다음부터 지가 직접 씻긴다.

나는 사생활따위 박탈당한지 오래였다.

"패리스톤-"

목소리를 달달하게 늘여붙였다.

"안에만 있으니까, 너무 심심해요."

같이 나가주시면 안되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키가 큰 그에게 발꿈치를 들어 촉 살짝 입술을 마주댔다.

그는 피식 웃었다.

"어딜 가고 싶은데요?"

예의 불길한 웃음을 짓고 그는 어깨가 으스러질만큼 날 껴안았다. 숨이 막히는데,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아서. 한참을 켁켁 거리고 나서야 그는 껴안았던 어깨를 놓았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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