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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하워드 스타크는 분명히 그 날로 돌아갈 것이다. 하울링 코만도즈가 낸 단 한 명의 실종자이자 사망자, 제임스 뷰캐넌 반즈가 임무 도중 추락해 실종되었던 날, 며칠이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던 그 때로.

버키 반즈의 실종이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인가? 아니다. 절벽에 떨어진 인간은 살아남지 못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연약한 몸을 날카로운 돌 위로 내팽개치는 것이다.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뼈를 부러뜨리고 내장을 뒤흔들고 몸을 찢어발긴다.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누구도 절벽에서 떨어진 버키 반즈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스티브 로저스조차도. 그야말로 오히려 그 비명이 끝없이 메아리치는 절벽의 높이를 알았다. 하워드가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하자 스티브는 마침내 수긍했다. 하워드는 스티브의 안에서 벼려지는 각오를 자신의 두 눈으로 보면서 그저 어깨를 두드리고 입을 다물었다.

하워드만은,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하워드만은 어쩌면 버키 반즈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망은 100%가 아니었다. 아주 작고, 작은 확률로 어쩌면 버키 반즈는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 버키에게는 아자노에서의 실험 때문에 혈청이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만큼 드라마틱하지도 않았고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혈청이 어쩌면 버키 반즈를 살려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워드 스타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정말로 실낱 같은 가능성일 뿐이었고 그 가능성 때문에 스티브가 멈추거나 뒤돌아본다면, 그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다면……. 아르님 졸라 박사를 생포한 후에도 그들의 앞에는 여전히 독일군과 하이드라가 버티고 있었다. 도주한 레드 스컬을 쫓아야 했다. 잠깐이라도 주춤거리고 뒤돌아볼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또한 하워드는 자신이 도출해낸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워드는 버키와 섹스하던 사이였으니까.

하워드가 생각하건대 깊은 사이는 아니었다. 바람둥이 이미지에 걸맞게 잠시 건드려볼 수 있는 사람을 건드려본 것 뿐이었다. 그럼 버키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한 번도 소중히 여겨보지 않았고 소유욕으로 버키를 붙잡아두려 한 적도 없었다. 버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눈이 마주칠 뿐. 때때로 수많은 말보다 웅변적인 그 커다랗고 푸른 눈과 마주쳤을 뿐. 그러면 마음의 바닥 어딘가가 술렁술렁하는 기분이 들었다. 끝없이 잘 돌아가며 말을 뱉어내던 입술이 멈추고, 분할되어 제멋대로 핑글핑글 돌던 뇌가 차츰 회전을 멈추고 오로지 그에게만 집중하는 낯설고 엉덩이까지도 들뜬 것 같은 이상한 순간.

그런 사람이 ‘버키 반즈가 살아있을 수도 있어’라고 말한들 어떻게 그게 사실이 될까. 그저 버키가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도출한 불공평하고 올바르지 않은 가능성일 뿐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하워드 스타크는 그 가능성을 마음 깊이 파묻었다. 버키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을 도출해낸 자기 자신은 얼마나 웃긴가.

그리고 이제, 나무를 들이받고 부서진 차에서 자신을 끌어내는 스나이퍼를 보며 하워드 스타크는 그 모든 것을 후회했다.

“서전트 반즈?”

늙어버린 자신에 비해 버키 반즈는 여전히 젊었다. 약간 젊어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수없이 되풀이해 생각했던, 둘이 만났던 그 때의 그 얼굴과 같았다. 그 급박하고 위험한 순간, 몸의 고통과 이미 기절해버린 마리아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 앞부분을 뚜렷하게 인식하면서도 하워드 스타크의 두뇌는 명철하게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버키 반즈가 살아있었다. 그 사이 무슨 끔찍한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버키가 살아있었다. 스나이퍼에 대한 두려움에 이어 후회가 그의 몸을 떨게 했다. 두뇌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정보를 교환하고 수많은 말을 끄집어냈다.

버키 반즈를 살릴 수 있었던 작은 기회를 자신이 날려버린 것에 대해, 혈청에 대한 정보를 숨긴 것에 대해, 이 암살자가 자신과 자신의 부인을 죽여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재회가 이런 식으로 되어버린 것에 대해, 그리고 젊은 시절 하워드 스타크가 한동안 바람둥이 노릇을 청산해버리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던 부패하고 썩어버린 사랑에 대하여.

하워드 스타크는 정말로 그 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것이다. 버키 반즈가 죽지 않았다고. 너의 생각은 옳고 그것은 단지 사랑에 눈멀어 도출된 가능성이 아니라고. 그러나, 어쩌면, 버키는 네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시간을 멈춘 그대로 끔찍한 일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지금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

두 눈이 마주쳤다. 격렬한 충격이 오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 하워드는 차츰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버키 반즈만을 응시했다. 




MCU:CA ST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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