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주의*







솔직히 주변에서 안 승호가 귀엽네 예쁘네 할 때 존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같은 남자 놈이 예쁘면 뭐 얼마나 예쁘다고, 그것도 시커먼 고등학생들이. 특히나 까만 콩처럼 까무잡잡하고 째깐한 안 승호는 내 미의 기준에서 제외 대상이었다. 아니, 제외 대상인 줄 알았다. 저 쓰레기 같은 여장 대회만 아니었어도.



" 저게... 뭐냐...? "

" 눈 뒀다 뭐 하냐? 안 승호잖아. 이 새끼 친구한테 저거란다. "

" 장 우혁 표정 지금 존나 멍청함. "

" 뻑간 거 아님? "

" 지랄. 장 우혁이 안 승호 못생겼다고 놀리는 거 못 들은 새끼도 있냐? "



옆에서 멋대로 떠들어대는 친구 놈들의 말을 무시하고 여전히 분장 중인 안 승호를 빤히 쳐다봤다. 염색을 한 건지 원래 머리색이 저런지 옅은 갈색 머리가 곱게 반으로 갈라졌고, 꼴에 예쁘게 꾸민다며 미용 전공한다는 놈이 옆으로 몇 가닥을 땋아주고 있었다.
뭔데 저렇게 얌전히 대주고 있어, 저 새끼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꼴을 보고 있으니까 배알이 꼴리는 게 예쁘게 땋여진 저 머리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분명 옆에서 다른 놈들도 대회에 나간다며 가발을 쓰고 머리를 묶고 난리를 치는데 왜 안 승호한테만 화가 나는 건지.




“ 우혁아, 안 승호 봐라. 이 새끼 꾸며 놓으니까 좀 귀엽지 않냐? “

“ 아 씨발, 알 게 뭐야. “

“ 왜 성질이냐? 헉… 설마 네가 하고 싶었는데 뺏겨서...? “

“ 너 좀 안 닥치냐? “




가뜩이나 옆에서 깐죽거리는 친구 놈들도 짜증 나는데 그 옆에서 동그란 눈을 끔벅이며 바라보는 안 승호의 시선이 더 열이 받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서 올려다보는 눈이 꼭 강아지 같은 눈이라 나도 모르게 그 눈과 한참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해를 못하겠는 건 안 승호도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치더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눈을 피하면 지는 기분이라 뚫어져라 더 쳐다봤더니 안 승호가 느리게 눈을 피하고는 다시 얌전히 남의 손길을 받는데 그게 또 배알이 꼴렸다.





“ 생각보다 사람 손 잘 타네, 너. “

“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 “

“ 안 승호. “

“ … … 어? 나? “

“ 어. 너. “

“ 사람 손을 탄다는 게... 무슨 뜻이야? “

“ 아니다. 됐다. “




아무것도 모르는 안 승호한테 나 혼자 무슨 쇼를 하는 거지. 신경 끄는 것처럼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내 자리로 돌아가서 털썩 앉아 폰을 뒤적여놓고 나도 모르게 또 시선으로 안 승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곱게 땋은 머리를 찰랑이며 반 아이들이 가져온 여자 옷을 뒤적이는 뒷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한참 고민하는 것 같더니 여자 교복 치마를 입고 자기 교복 바지를 쑥 내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미친 장 우혁. 쟤가 여자냐? 진짜 등신 같은 짓 하네. 머쓱하게 목덜미를 문지르며 다시 안 승호를 바라봤는데.



“ 야. 저 치마 가져온 새끼 누구야? “



치마가 존나 짧은 것이다. 그냥 짧은 것도 아니고, 조온나 짧았다. 허벅지 중간에 오는 길이라 다리가 훤히 보이는 꼬라지가 아주 엿 같았다. 저 치마를 가져온 새끼도, 그 치마를 입은 안 승호를 보며 환호성을 치는 반 새끼들도. 한 뼘만한 치마를 입고 만족스러워하는 안 승호도. 진짜 다 쳐버리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내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 승호 저 새끼는 엉덩이를 살랑이며 좋다고 헤헤거리는데 인내심이 끊어지는 기분이 느껴져 벌떡 일어나 안 승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 야. 안 승호. “

“ 어? 우혁아, 왜? “

“ 다른 거 입어라. 치마. “

“ 왜? 이거 별루야? “

“ 어. 존나 별로야. 그니까 다른 거 입어. 이거 좋네, 이거. “




발목까지 내려올 것 같은 기다란 치마를 안 승호 손에 쥐여주자 눈을 끔벅이던 안 승호 입꼬리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당연히 싫겠지. 우승하면 상금이 얼만데. 그래서 이 난리를 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짧잖아.





“ 싫어. 이게 뭐야. 한복도 아니고. 안 예쁘잖아. “

“ 이게 뭐가 안 예뻐. 지금 네가 입은 것보다 백배 더 예쁘거든? “

“ 이게 뭐가 예뻐! 안 예뻐! 이거 입으면 내 다리 다 가리잖아! 그럼 우승 못한다고! “

“ 아 씨발, 가리라고! 못난이가 짧은 치마 입으면 예뻐지냐? 남자 새끼가 존나 보기 안 좋으니까 가리라고! “

“ … … … … “




씨발. 실수했다. 내려간 눈꼬리 때문에 가뜩이나 울상인 안 승호의 눈가에 눈물이 와르르 차오르는데,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이다. 말을 해놓고 나도 아차 싶어서 입을 꾹 다물었고, 반 전체가 입을 다문 듯 조용해졌다. 그 중심에서 씨익씨익 성질난 얼굴로 울먹이는 안 승호랑 제 기능을 잃은 듯한 내 심장만 시끄러웠다. 안 승호도, 내 심장도 둘 다 미쳤나 진짜.




“ 너… 너 나한테 왜 그래…? “

“ …내가 뭘. “

“ 너 왜 나한테만 못났다고 그러냐구! “

“ 아 씨발, 못생겨서 못생겼다 하는데 그게 뭐. “

“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

“ 거짓말을 못해, 내가. “

“ 장 우혁, 진짜 미워. 너. “

“ 언제는 좋아했던 거처럼 말한다. “

“ … … … “




언젠가 친구 놈이 나보고 너는 재앙의 주둥이라고 했던 말이 하필 지금 스쳐갈 건 뭔지. 곧 대회 시작한다며 안 승호를 데려가는 반장이 없었으면 나는 또 안 승호에게 무슨 말을 지껄였을까. 분명 안 승호를 또 울리고 스스로 내 입을 쳤을 것이다.
여장 대회를 구경 가자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가는 내내 눈물 가득한 안 승호의 눈이 자꾸 떠올라서 기분이 아주 엿 같았다.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미친놈이 또 지랄하는구나 하면서 넘기면 될 걸 왜 그렇게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봤는지, 그리고 울었는지. 내 말 따위에 울어버린 안 승호가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원래 여린 놈이었나. 다른 놈들이 그렇게 말해도 울었을까. 나라서 운 게 아닐 수도 있지. 자의식과잉이다, 장 우혁.




“ 야, 야, 야, 나온다. 안 승호다. “




혼자서 정말 쓸데없는 생각만 한창 하고 있던 찰나에 안 승호가 나왔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무대에 올라간 안 승호는 내가 입으라고 소리치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 아, 장 우혁 너 때문에 안 승호 치마 저거 입었잖아. “

“ 그게 왜 나 때문인데. “

“ 네가 아까 지랄해서 그런 거 아냐. “

“ 내가 지랄한다고 쟤가 들을 이유는 뭐냐? 지가 입고 싶었나 보지. “

“ 교복 치마 그거 안 승호 저 새끼가 입겠다고 부탁해서 반장 여동생 거 빌려온 거란 말이야. “

“ 그걸 안 승호가 부탁한 거였다고? “

“ 그래, 새끼야. 근데 네가 아까 지랄해서 긴 거 입고 나왔잖아. 아 존나 아깝게. “





우승하고 싶다고 하더니 진심이었나. 아니 그래도 그건 존나 심하게 짧았다니까. 빤스 보이기 직전이라고.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속으로 계속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내 꼴이 보통 한심한 게 아니지만 안 승호에 관해서는 자꾸만 합리화를 시키고 내가 맞다는 걸 인정해야 살 것 같았다. 내 말에 안 승호가 따라줘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자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되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 안 승호랑 무슨 사이도 아니면서 왜? ‘
그러게.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안 승호한테 집착하듯 화내고 내 손에 쥐려고 하고 있는 걸까 장 우혁은.



“ 안 승호 참가자!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

“ 예쁜 척하는 게 아니라 원래 예쁜 승호 꼭 뽑아주실 거죠? “




지랄. 무대에서 애교를 뚝뚝 흘리며 예쁘게 웃는 안 승호를 보고 있자니 좀 전까지 터질 듯이 굴러가던 머리가 이젠 열이 받아서 터질 것 같았다. 그냥 장난으로 하는 이딴 대회에서 저렇게 열심히 애교를 부릴 건 뭐야. 다 꼬시려고 작정했나.
더 보고 있다가는 대회고 뭐고 다 부수고 안 승호 목을 조를 것 같아서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누가 우승할지 결과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으니 대회가 끝나고 특별공연이 끝날 때까지 조용한 교실에서 좀 쉴 생각이었다.

모두가 나가버린 교실에 의자를 연결해서 누워 있자니 좀 전에 애교 섞인 목소리의 안 승호가 천장에서 방긋방긋 웃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감으며 처음부터 진지하게 생각을 되짚어보았다. 내가 언제부터 안 승호한테 신경 쓰기 시작했더라.

첫인상은 그다지 강렬하지 않았다. 그냥 작고 마른 까만 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정도의 클래스 메이트. 그러다 언젠가 친구들 사이에서 예쁘게 눈을 접어가며 웃는 얼굴이 한 번. 방긋 웃으면서 나를 부르고 인사하는 그 얼굴에 또 한 번. 운동장 벤치에 앉아 살포시 눈을 감고 햇빛을 받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줄도 모르고 안 승호를 지켜보던 장 우혁의 대답은 조금 방향이 틀어진 채였다. 사실은, 못생겼다는 말 대신 웃는 게 예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실은, 못난이란 말 대신 좋은 아침이라는 말로 인사를 해주고 싶었다. 사실은, 벤치 옆자리에 같이 앉아서 네가 햇빛을 바라보듯 너를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도 못할 말들과 생각들을 곱씹고 있었는데 누군가 교실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열고 들어왔다. 굳이 누군지 확인을 할 필요가 없으니 무시하고 자는 척이나 해야겠다 싶었는데 내 허리에 털썩 올라오는 묵직함에 허억,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 … 뭐냐, 안 승호. “

“ …나 1등 했어. “

“ 뭐? “

“ 1등 했다고. 미인대회. “

“ 아 그러냐. 근데? “

“ … 네가 입으라는 긴 치마 입고도 1등 했어. “

“ 잘했네. 그래서? “




계속 무뚝뚝한 내 반응에 안 승호의 동그란 눈엔 불만이 가득 찼고, 입술은 또다시 비죽 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귀여워서 자꾸 놀리는 것도 있었지. 내가 나쁜 게 크지만, 네가 귀여운 탓도 있어, 안 승호.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내리며 무표정을 고수하자 안 승호가 벌떡 일어나서 입고 있던 긴 치마를 쑥 벗어내렸다. 순식간에 내려간 치마라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긴 치마 안에 내가 짧다고 욕했던 교복 치마가 입혀져 있었다. 아니 이걸 왜 안에 입고 있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치마와 안 승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자, 드디어 정신 나간 안 승호가 내 허리에 올라탔다.





“ ? 뭐 하냐? 미쳤어? “

“ 나 다리가 제일 예쁜데, 네가 보이지 말래서 안 보였어. “

“ 안 내려가? 정신 나갔냐? “

“ 이상한 치마 입고도 1등 했어, 나. 다들 내가 제일 예쁘댔어. “

“ 안 승호. “

“ 우혁아. “

“ … “

“ 내가 아직도 못생겼어? “





씨발, 안 승호.
욕지거리를 목구멍으로 삼키며 내 위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안 승호의 뒷덜미를 잡아당겨 입을 맞췄다. 밀어내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받아내는 안 승호를 보니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걸려든 모양이다.

너는 예쁘다. 남자 새끼한테 예쁘다는 말은 안 나오는데, 너는 예쁘다. 내가 너에게 하는 예쁘다는 말은 비단 예쁘다는 단어 하나의 뜻은 아니다. 좋아한다는 크고도 복잡한 마음이 담겨있다. 서툴기 짝이 없는 장 우혁의 마음을 가장 오롯이 나타내는 말이다. 네가 나를 보고 처음으로 웃어준 그날부터, 네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보던 그 순간부터, 네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온 그 순간부터. 안 승호, 너는 나에게 쭉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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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라는 단어 하나만 생각하고 빠르게 썼더니 이런 참사가..... 말이 여장이지 치마만 입은 승호였습니다...


쓰는 사람이 노잼인간이라 글도 매번 노잼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댓글에 답을 달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흑흑 하지만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답니다😂 오늘도 같이 톤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톤혁안에서 행복하세요



톤혁(톤수혁공)합니다. 리버스절대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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