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지 작업한 원고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추후 업데이트 또는 전체회차를 포함한 유료발행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츠키타] BUSINESS PARTNER - (1)

프로선수x야쿠자보스





“후…”


그는 흐른 땀을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닦으며 고개를 조금씩 숙이기 시작한 벼들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추수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적당한 시기를 정하기로 했다. 올해로 4년째인 벼농사는 첫해만 해도 이렇게 규모가 커질 거라고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보스, 트럭에 다 실었습니다.”

“회사로 먼저 가라.”

“아뇨 운전 제가 하겠습니다.”

“…….”

“…먼저 가보겠습니다.”


90도 허리를 접어 인사를 하는 흰색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는 그에게서 멀어져 다른 차를 운전해 사라졌다. 트럭에 차곡차곡 실린 쌀 포대를 손으로 쓱 만져보는 그는 단순히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키타 신스케는 가업으로 야쿠자 보스 자리를 이어받아 경쟁조직을 처리하고 나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어떤 취미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취미 찾기가 쉬울 리는 없었다. 차라리 연애를 하라는 키타가(家)주치의의 말을 듣고 시도는 했으나, 결국 자신을 노리는 스파이에게 먹이를 던져준 꼴이 되었다. 그러다 찾은 취미가 벼농사였고 해가 바뀔수록 수확량이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 수확한 쌀은 부하들의 집에 서너 가마니씩 보내주는 것으로 끝났는데 두 번째 해엔 그것만으론 쌀이 남아돌았고 소소하게 납품까지 하게 되었다. 가명을 만들어 오니기리 가게에 납품을 시작하고는 조직 일에서 더 멀어져 숨통을 트여줄 시간이 늘었다.

그에 키타의 부하들은 장난으로라도 보스께서 ‘이 자리 내놓고 농부를 하겠다.’고 하면 기겁을 하며 그를 말리기 바빴다. 본업과 취미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냐며 사정사정하는 걸 키타는 적당히 웃어넘겼다. 종종 조직일이 바빠 피뽑기나 손이 많이 필요한 일은 부하들이 대신 하기도 했는데 주변 농가에서 그들에 관해 물으니 키타는 덤덤하게 학교 후배들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차라리 흉작이면 그가 농사에서 손을 떼주실까 내심 기대는 했지만, 기대에 그칠 뿐 늘 열심히 피 뽑는걸 돕거나 허수아비 만들 헌 옷을 그에게 주곤 했다.


키타는 운전석에 올라 한 달에 두 번 납품을 하는 오니기리 가게로 향했다. 트럭 기어를 바꾸고 주차를 한 그는 쌀 포대를 반 정도 옮겨 놓고 오니기리 가게 뒷문을 두드렸다.


“아, 오셨습니까!”

“나머지도 여 두면 되나.”

“예, 창고 정리해야 되가, 여 두시믄 됩니더.”


오니기리 가게 젊은 점장은 그가 문 옆에 쌓아둔 쌀 포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위치를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 덕에 키타는 그와 짧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조직에 관련된 내용은 단 한 단어도 포함되진 않았으나, 농사를 4년째 해서인지 이야깃거리가 부족하진 않았다.


“담달에 추수한다. 그때부터는 햅쌀이다.”

“매번 신세지네예… 아, 이거 이번에 나온 신메늅니더. 객관적으로 평가부탁드려예.”

“맞나, 잘 먹을게…….”


키타는 그에게서 주먹밥이 담긴 비닐봉투를 받고 매장 쪽으로 눈을 돌리다 점장과 얼굴이 똑같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운동하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2년 전에 들었던 기억은 있는데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키타는 백금발의 탈색 머리에 위아래로 새까만 옷을 입고 있어 평상복의 드레스 코드가 자신의 부하들과 같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 남자와 시선이 꽤 오래 겹쳐버렸다. 키타는 씨익 웃는 그가 조금 의아했으나, 시선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두었다.


“…….”


그가 시선을 거두자마자 매장 쪽에서 쿠당탕 소리가 났다. 오사무는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험한 말을 했고 키타는 그만 자리를 뜨고 싶었다.


“점마, 저거 아직도 안 갔나…”

“이만 간데이.”

“예, 이거 먹어보시고 맛 평가 알려주이소.”


키타는 오사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뒷문를 닫아주었다. 트럭의 화물칸을 정리한 뒤, 그는 목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스나.”

[“대표님, 이쪽 다 정리 됐습니다.”]

“이사회는.”

[“대부분 동의하고 반대한 양반들은 구슬리고 있습니다.”]

“알았다. 지난번 △△건설건은……”

[“대표님? …키타상?”]


키타는 언제부터 나와서 자신을 보고 있었던 백금발 남자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거리상 통화 내용이 전부 들리진 않았을 테지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만한 이야기가 오갔던 건 사실이었다. 키타는 날카로워진 눈으로 그 남자를 보자 그는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차…’


“…10분 뒤에 다시 걸어라.”

[“네? 네, 알겠습니다.”]


저 남자가 뭘 얼마만큼 들었을 지는 가늠할 수 없어 키타는 전화를 끊고 모른 척 그가 더 가까이 오기 전에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고 그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내내 그 남자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으나, 그저 기우이길 키타는 바랐다.




그런 바람과는 다르게 아츠무는 오사무가 적은 장부를 토대로 그의 이름과 농원 위치 그리고 다음 납품일을 알아냈다. 이 주소로 바로 찾아가기엔 엄청난 무리수였고 그가 동생 가게를 방문하는 날을 노리는 게 가장 우연을 가장한 그럴듯한 만남이었다.


“내 오늘 너무 후줄근해가… 두고보이소.”


그리고 다시 돌아온 쌀 들어오는 날, 아츠무는 아침 일찍 운동을 마치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 인터뷰 때나 입었던 정장을 꺼내어 그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공들여 골랐다. 마지막으로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가장 잘생긴 얼굴로 웃어보았다. 그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오전부터 오니기리 미야 카운터석에 앉아 있었다.


“…….”

“뭐, 와.”

“…됐다, 됐어.”


오사무는 이제 저 백수 놈이 새까만 옷 입고 테이블에 볼을 붙이고 있던 거머리 놀이를 끝내고 다른 놀이를 시작했다며 혀를 찼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러고 있는지를 알 턱이 없던 동생이 아츠무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는 연신 시간을 확인해가며 스마트폰 액정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다양한 각도로 돌려가며 비추었다.


그렇게 대략 3시간을 기다리니 뒷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츠무는 황급히 머리를 매만지고 넥타이도 반듯하게 고치고는 뒷문에서 자연스럽지만, 자신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일만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날씨’를 검색했다. 그가 들어오는 순간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고 웃어 보였을 때 그의 반응이 기대하며 아츠무는 진지하게 절제된 표정을 유지했다.


“지난번 신메뉴 어떠셨습니꺼.”

“다 괘안았다.”

“짭다거나… 간은예?”

“…두번째 거 더 매워도 될것같다.”

“오오… 감사합니다.”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하고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츠무는 국내 날씨뿐만 아니라 해외날씨까지 보며 바쁜 티를 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릴 타이밍을 노리며 어느 정도 둘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그는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엎어놓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턱을 괴었다.


“…….”


키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입고 있는 오사무의 쌍둥이 형제를 보고 구체적으로 표현은 어려우나 확실한 건 그의 시선이 너무도 불편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티를 내기엔 잘 거래하고 있는 「오니기리 미야」의 점장의 가족과 어떤 형태로든 불편한 사이가 될 필요는 없었으니 그쪽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만 가보께.”

“예, 추수하시믄 알려주이소.”


대화를 더 이어갈 수 없었던 키타는 가볍게 오사무에게 인사를 하고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그걸 본 아츠무의 미간에 깊은 굴곡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 쌩까고 나간기가……”


‘내가 이렇게 빼입었는데 쳐다보지도 않아?’


아츠무는 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외쳤다. 그가 무시하고 나가버렸어도 아직 바깥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오늘의 컨셉인 ‘젠틀한 이케멘’을 깰 수 없었다. 자신의 짜증 섞인 몸부림을 팔짱을 끼고 간신히 막아내며 100% 성공할 거라 굳게 믿은 플랜A가 무참히 박살 나자 곧바로 플랜B를 실행하려고 아츠무는 머리를 굴렸다.






“저쪽도 전부 밀어버려.”

“예!”

“덥다, 오늘. 빨리 밀고 그늘에서 쉬자.”

“옙!”


선글라스에 양산 대용의 큰 검은색 우산까지 쓰고 논두렁 구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마무리하고 있는 부하 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키타에게 보내었다. 스나 린타로는 사실상 키타의 오른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것마저 어깨가 너무 무겁다고 박차고 적당히 중간관리자 정도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느긋하게 맑은 공기 마시며 놀 수 있었으니 스나 본인으로서는 충분히 좋았다.


“……저건 뭐야.”


주변 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삐까뻔쩍한 스포츠카가 딱 자신이 앉아있던 논두렁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남자도 지가 몰고 온 차보다 더 빼입고 있는데 스나는 어이가 없어 선글라스를 벗어 안주머니에 넣고 헛웃음을 흘렸다. 일단 부하들이 논일하는 모습을 찍는 걸 멈추고 저 수상한 남자의 차 번호와 얼굴을 선명하게 남겼다. 그리고는 바로 보스에게 사진들을 첨부해 메일을 보냈다.


[미확인 메일 1통이 있습니다.]


“…….”


키타는 회사의 대표실에서 서류에 서명을 하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을 듣고는 스나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보고 두통이 몰려왔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툭 하고 내려놓고 액정의 불빛이 꺼질 때까지 스나가 보내준 사진을 내려보고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선글라스를 썼지만, 누가 봐도 오니기리 미야에서 봤던 그였다. 무슨 목적으로 거기서 저기까지 찾아갔는지 연유 모를 상황에 키타는 메일로 스나에게 모른 척 잡아떼라고 지시했다.


“에? 뭐야…”

“왜그러십니까?”

“아냐, 그냥 모른다고 해.”

“예?”

“모른다고 하라고.”


스나의 말을 들은 부하는 몇번을 되물었으나,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게 무슨말인지 답답해서 한마디 더 하려는데 신수가 훤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이 논 주인분 어디 계십니까?”

“…모릅니다.”

“몰… 여기 안계십니까?”

“글쎄 모르겠다니까, 일하는 놈들 첨보냐?”

“아 예… 예. 근데 와 화를 냅니까?”


덩치로는 밀리지 않는 아츠무가 되레 화를 내는데 스나는 보스에게 귀찮은 게 붙었다며 오랜만에 재밌는 그림을 본다고 속으로 이죽거렸다. 그리고 보고를 제대로 안 했다간 나중에 쓴소리 듣기는 싫으니 키타에게 메일로 실시간 보고를 하였다. 그에 돌아온 보스의 대답은 잡아떼도 가지 않는다면 그냥 회사로 돌아오란 말뿐이었다.


“가자.”

“예, 예?”

“돈받은 만큼 했잖아 가자고.”

“예, 이만 가자!”


아츠무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끝난 차에 있던 인부들이 다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스나의 팔을 붙잡았다.


“여기 사장님 어디서 만날수 있습니까?”

“…이거 좀 놓고.”

“아.”

“저희는 알바라서요. 용건 있으시면 사장님께 직접 이야기하세요.”

“번호가 없어서 좀 알려…”

“그건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는걸요.”

“…….”

“그럼 이만.”


스나는 잡힌 팔을 그의 손에서 빼내고 적당히 웃으며 자리를 빠르게 떠났다. 논두렁에 덩그러니 남겨진 아츠무는 플랜B도 실패하자 이젠 물러설 곳은 없다며 급하게 사업계획은 수정했다.


“그런데 형님, 그런 법이 있습니까?”

“뭐, 있지 않겠어?”


스나는 뒷좌석에 앉아 못다 한 게임을 이어서 하며 적당히 부하의 말을 받아쳤다. 그러다 문득 찍어두었던 사진을 확대해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스마트폰을 눈앞에 가까이 붙였다.


‘그나저나 이 놈은 거기에 왜 온거지? 어디서 본 얼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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