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레벨 퀘스트


“더는 나눌 이야기가 없어 보이는군.”

 


눈에 띄게 침울해진 쌍둥이의 반응에도 군단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화의 끝을 알렸다. 그들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던 그가 손짓하자 근처에 대기 중이던 제국군들이 모여들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절도있는 걸음으로 정렬한 그들이 제각기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하디는 눈동자만 굴려 그들을 훑었다. 차량 내부로 들어온 이는 대충 일곱. 어렵지는 않았다. 전투가 시작된다면 쌍둥이들이 마냥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는 이어지는 퀸투스의 말을 차분하게 듣는 쪽을 택했다.


 

“해치지는 않겠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결정될 때까지 너희는 우리 쪽에 있어 줘야겠다.”


 

제국군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갈레말드까지 온 것이었기에 알피노는 저항할 의지가 없다는 듯 얌전히 손을 들어보였다. 알리제와 하디 또한 알피노를 따랐다. 저항은 하지 않겠습니다. 알피노의 목소리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알피노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하디는 지금 상황에서 그가 쓸 수 있는 수단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행히, 퀸투스가 알피노의 제안을 받아들였기에 하디는 생각을 접고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퀸투스를 살폈다.

 


“이 자들에게 ‘목줄’을 채워라.”


 

가장 가까이 있던 제국군 둘이 쌍둥이에게 다가갔다. 하디는 가만히 그들이 하는 양을 살폈다. 쌍둥이의 목에 무언가 채우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눈가가 찡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치가 채워지자 퀸투스의 목소리가 말없이 눈을 마주친 쌍둥이 사이를 갈랐다.


 

“너희는 감시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거슬릴만한 행동을 했을 경우, 쌍둥이에게 따를 고통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도 싫었기에 하디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에게도 목줄을 채우려는 듯 제국군 하나가 다가왔다. 하디가 가만히 제국군을 바라보았다. 어쩔까. 알리제와 알피노의 목에 장치가 채워진 이상 섣부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잠깐, 그자에게는 다가가지 마라.”


 

다급하게까지 느껴지는 어조였다. 군단장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겠으나 일개 용병에게 품기에는 지나친 경계심에 자리에 있던 이들이 눈빛으로 의문을 표했다. 그런 눈빛에도 퀸투스는 부하들을 질책하는 일 없이 침착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자가 바로 에오르제아의 영웅이다.”


 

하디에게 다가서던 제국군이 무심결에 뒷걸음질 쳤다. 병사들의 술렁거림이 느껴졌다. 바깥에 있던 제국군 중에서는 그를 보기 위해 창가에 붙어선 이도 있었다. 어깨를 으쓱인 하디가 팔을 내렸다. 알아서 무기를 거둬준 것까지는 좋았으나, 더욱 심해진 경계심에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너희들로는 그자를 막을 수 없어.”

 


그의 무위를 경계하면서도 쌍둥이의 장치를 운운하는 말이 신경에 거슬렸다. 하디가 한 발 내디뎠으나, 때맞춰 쌍둥이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 아직은 그들이 무사하니 괜찮았다. 정말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으나, 처한 상황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밝게 말하는 쌍둥이에게 하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퀸투스가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 너희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것이냐?”

 


하디는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는 깊게 말을 섞지 않았다. 퀸투스의 질문에는 대답해줄 의무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싸늘하게 파고드는 냉기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추우니까. 불을 좀 나눠볼까 싶어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대답에 퀸투스가 가만히 영웅을 살폈다. 허세인가? 하지만 허세로 가장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에 푸른색의 눈은 지나치게 덤덤히 퀸투스의 시선을 받아치고 있었다.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퀸투스였다.

 


“…이해할 수가 없군. 명성 높은 군단을 궤멸시킨 악귀조차 그런 허울 좋은 소리를 하다니.”

 


이해를 바라고 한 대답은 아니었다. 퀸투스와 더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하디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퀸투스 또한 그의 심정을 읽은 듯 율루스에게 그들의 감시를 맡겼다. 하디는 얌전히 율루스와 쌍둥이의 뒤를 따랐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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