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닌니












푹신한 모래알이 군화 밑창을 감싼다. 비릿한 바다향이 가득한 해변가, 돌아 온 사람 셋과 다시 가야할 사람 하나가 막 도착한 때.




“여주가 자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여기로 왔어.”

“잘했어. 가서 싸우지 말고, 일만 하고 와.”

“여주 자겠지?”

“응.”

“다녀올게에—.”




천러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 무너진 건물 앞에서 기다릴 지성을 포함한 팀원들 그리고 불순물처럼 뒤섞여버린 N팀을 데리러 가기 위함이었다.


비워진 자리를 바람이 채웠다. 짙고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영호는 적막을 즐겼다. 아주 어릴 적, 시카고 해변에서의 일상을 떠올리면서. 수영복 차림으로 반짝이는 모래알을 묻히고 파라솔로 달려간 두 아이, 장난감 양동이에 받은 물로 다리를 씻겨주던 다정한 아버지, 깨끗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먹여주시던 어머니. 네사람은 좁은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한 여름을 느꼈다.




‘엄마, 여주는 바다를 좋아하나 봐요.’

‘그러게. 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네.’




바다에서 놀다 지쳐 어머니의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워 햇볕 아래의 여주를 바라봤다. 사진처럼 사라지지 않는 추억 중 하나였다. 도넛 튜브에 몸을 끼우고 물장구를 치는 여주와 그의 손을 잡아주는 아버지. 바닷물에 푹젖어 짤 법도 한데, 그의 뺨이며 머리며 보이는 곳엔 죄다 입을 맞춰주던 아버지는 결국 여주의 물장구에 작은 파도를 뒤집어 썼다.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여주와 영호는 다음날 새까맣게 타서 며칠 후엔 살껍질이 벗겨질 정도였다. 껍질이 벗겨질 때마다 콩껍질이라고 놀려댔는데, 그럼 여주는 파들파들 떨며 콩 아니라고 목청을 키웠다.




“서 팀장, 안 들어갑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여주가 화를 내면 아버지가 여주를 안고, 어머니는 볼을 꼬집었는데. 문득 어린 날이 그리워졌다. 영호도 부모에게 보호 받던 그 시절이. 믿을 구석도 있고, 돌아갈 곳도 있던 세상.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던 영호는 이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아버지의 나라. 두사람이 사랑을 꽃 피우고 떠나 온 나라. 두사람의 어릴 적을 기억하는 이곳에 그들의 딸과 아들이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파도와 함께 밀려들었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여주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두 사람의 반응을 상상해보았다. 어릴 적에도 해보았던 상상이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고, 아버지는 허락하시고선 본인 짐도 함께 쌌겠지. 그러다 어머니께 혼이 났을 테고, 여주는 세사람 몫의 배웅을 받았을 것이다.




“서 팀장.”

“아직 안 갔습니까?”

“그게 아니라….,”




공항에서 이별할 적의 여주를 떠올리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방학 때 돌아오겠다, 종종 연락하겠다던 동생은 영호를 꽉 안아주고 손 흔들었다. 이별의 슬픔보단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을 더 많이 느끼던 동생에게 섭섭함을 느끼던 그 순간을.




“형!!”




나즉히 불렸던 호칭 다음으로 따라붙는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영호가 어둠 속에서 재현을 똑바로 마주하기도 전에 런쥔이 벼락 같은 목소리를 냈다. 고요한 동네의 적막을 깨트리는 소리에, 그의 힘 있는 목소리엔 배려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아서, 어떤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도 없어.”




푹, 군화가 모래알에 잡아 먹혀 중심을 무너뜨린다. 휘청이는 영호를 잡아낸 재현은 가로등 불빛으로 상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 단위로 수많은 감성들이 스쳐지나갔다. 당황, 절망, 분노, 슬픔, 부정, 믿음 같은 것 중 명명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영호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재현이 그의 팔을 놓치고, 한발작 뒤에서 영호를 쫓았다. 잠깐 사이에 도착한 숙소 잔디밭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부숴진 현관문, 깨진 거실 창. 잔디밭에 선 영호는 그것들을 바라보다 숨을 죽인 채 안으로 향했다.


재현은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N팀 숙소엔 넷이나 남았다. 비록 가이드 한 명과 능력을 잃은 센티넬, 비전투 센티넬 하나씩. 그래도 제노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투형 센티넬 중에선 누구보다 강한 아이니까 제 몫을 잘 해낼 거라고.




“제노야.”




인기척이 티끌만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러봤지만 미세한 소리조차 사라진 숙소는 새로운 손님이라도 맞이할 것처럼 깨끗했다. 빈즈 숙소와는 딴판이었다. 너무 멀쩡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실랑이한 흔적도 없고, 숙소를 나설 때와 똑같은 모습. 이 상태에서 팀원들만 증발했다는게 이상했다. 재현은 방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연 방은 자신이 사용하기로 한 방이다. 뒤적거린 흔적도 없고 멀쩡하다. 다음은 주연의 방, 이곳도 마찬가지다. 정돈에 영 재능이 없는 건지 대충 옷장에 옷을 쌓아두기만 한 것만 훑고 나왔다. 다음은…,




“저기요.”




열린 현관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을 나오자 런쥔이 문 밖에 서서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상체만 집어넣은 상태로 재현을 불렀다.




“패서네이트면 근방에 누가 있는지 탐색 가능해요?”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사람이 있는지까지만 돼요.”

“그거면 돼요. 저 좀 도와주시죠.”




숙소 내 볼일은 끝났다. 재현은 빼고있던 인이어를 다시 귀에 걸며 잔디밭 위로 섰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 선 영호를 지나친 런쥔이 바람에 몸을 실었다.




“최대한 넓은 범위로 알아봐주세요. 제가 확인하고 무전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최소 셋, 최대 여섯으로 잡고 확인해서 알려드릴게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재현은 런쥔이 불어가는 방향부터 살폈다. 다행이라면 이곳이 변두리 시골이라는 점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잠들어 있을 시간. 밖으로 나돌아봤자 도랑에 빠질 일 뿐이다.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하건만 해가 저물면 밖을 나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신경도 쓰지 않는 시골에서 밖을 헤매는 사람은 희박하다.




“런쥔씨, 오른쪽 방향 언덕 보여요?”

네.

“사람 셋이 언덕으로 향하고 있어요. 느낌상 우리쪽 센티넬 셋 같아요. 합류하면 말해요. 나는 서팀장이랑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찾으셨어요?

“아마도.”




재현의 손이 영호의 손목을 감싼다. 무게가 실린 힘에 영호의 시선이 재현에게로 향했다. 눈물 한방울 없는 건조한 눈인데도 불구하고 울고있다는 인상을 줬다. 쉽사리 말을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었으나 지금은 주저할 때가 아니다.




“서 팀장.”

“가죠.”




피곤에 절어 푸석한 것처럼, 심해에 잠긴 듯 푹 젖은 듯한 목소리를 낸 영호가 돌아섰다. 재현이 앞장 서고, 영호는 그 뒤를 따랐다. 언덕을 바라본다는 것은 같았으나 런쥔을 보낸 방향으로는 쭉 가다보면 언덕으로 향하는 입구가 나왔고, 재현과 영호가 달리는 방향은 언덕 주변을 돌아 마을 밖으로 나가는 입구가 있다.


사람은 총 여섯. 재현은 이를 악 물고 터져나갈 것 같은 허벅지에 힘을 줬다. 센티넬이 아니라면 걸어서 30분일 거리를 약 5분 정도로 단축 시켰다.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다. 상황 파악은 이후의 문제였다. 왜 N팀의 숙소는 멀쩡했는지, 빈즈의 숙소는 너덜거릴 정도로 망가졌는지, 왜 가이드 둘을 지키지 못했는지.


한참을 달리니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인기척이 잡히기 시작했다. 런쥔은 세사람과 합류했다는 말과 함께 재현이 알려 준 방향으로 오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린 몸은 아주 빠른 속도로 영호와 재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여주야!!”




재현이 런쥔과 통신하느라 집중하지 못한 사이 영호가 언덕 전체를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를 냈다. 앞을 보자 눈에 들어 오는 건, 검은 봉고차 한대와 막 여자 둘을 태우는 그림자들이었다. 체구가 작은 두사람이라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재현은 곧장 능력을 사용했다. 패서네이트는 상대를 홀리는 힘이다. 그가 바라는대로 움직이기도, 여주처럼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는 사람을 끌어올리기도 하는 능력. 재현은 그들이 행동을 멈추도록 했으나 봉고차 문이 닫혔다.




“오랜만이야, 존.”

“알렉스.”

“안타깝게 됐어. 하필 네 동생이라 이런 일을 당하게 됐잖아.”




퉁퉁, 봉고차 문을 두드리자 차가 출발한다. 재현은 인이어를 통해 런쥔에게 지시했다. 지금 마을 밖으로 봉고차 하나 빠져나가니까 반드시 잡으라고. 지시가 떨어지자 바람 결이 달라졌다. 조금 더 거세진 바람이 알렉스라 불린 남자와 영호, 재현 사이를 스쳤다.




“게다가 가이드라니. 네가 내게 주는 선물인가 했지.”

“이 빌어먹을 새끼가,”

“멍청하게 굴지 마. 어차피 네 능력은 통하지 않으니까.”




턱에 힘이 들어가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을 타고 오른 힘줄, 새빨갛게 분노에 찬 눈, 힘을 실은 주먹이 그의 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알렉스, 그는 라조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람이자 오랫동안 영호와 대치한 사람이다. 사기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이매진브레이커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능력, 이그노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능력이었고, 이는 미국에서 특히나 시카고에서 늘 화두에 오르는 주제였다. 과연 능력을 없애는 이매진브레이커와 능력을 무력화 시키는 이그노어 중 무엇이 더 강할까.




“걱정마. 오랜 친구의 동생이니까 험하게 다루진 않을 거야.”

“웃기지 마. 넌 여주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할 거니까.”

“글쎄. 너무 늦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머리 위로 바람이 불었다. 재현이 시선을 올리자 네개의 그림자가 봉고차가 향한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간다. 바람이 만든 길을 미끄러져 가는 것을 알렉스도 보았다. 아, 귀찮게. 그가 영호를 대할 때와는 달리 짜증이 깃든 눈으로 런쥔을 보았다. 이어지는 단말마의 신음, 당황한 목소리들. 그것들이 거리가 있는 아스팔트 위로 굴러 떨어졌다.




“존, 네 팀원들 말이야. 특히 새로운 팀원들.”




알렉스의 시선이 재현에게로 옮겨갔다. 그가 이를 악 물고 당장 달려가 그를 제압할 지를 따졌다. 이쪽은 둘, 저쪽은 하나. 악명 높은 라조라 할 지라도 머릿수엔 장사 없는 법이다.




“진짜 멍청하더라. 오히려 네 팀의 덜떨어진 막내가 나아 보일 지경이었어.”

“……….”

“마인더 C에게 당하다니. 레벨이 아깝던데?”




마인더 C,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재민을 핑계로 함께 내려왔던 그 의사. 안 그래도 재현이 숙소에서 가장 마지막에 본 방이 의사가 머무르는 방이었다. 가방 하나 남지 않은 텅 빈 방 안을 보고 재현은 쓴맛을 느껴야만 했다.




“가기 전에 선물이라도 하나 줄까?”

“네 선물따위 필요없어.”

“정말? 네 동생에 관한 건데도?”




꽉 다물린 입을 본 알렉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약점이라곤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한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일격에 모든 걸 무너지게 만들 수 있으니까. 간만에 벅찰만큼 즐거운 일을 만난 알렉스는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내리눌렀다. 번들거리는 짐승같은 눈빛이 심장을 옭아매는 듯한 감각을 전하는데도 공포심따윈 한 치도 없다.




“존, 넌 네 동생을 믿어?”

“하. 역시, 개소리나 지껄일 줄 알았어. 정 팀장.”




영호의 부름 한 번이었을 뿐인데도, 재현은 망설임 없이 발을 뻗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그건 재현 또한 바라는 바였으니까.




“서여주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재현이 그의 목을 쥐는 순간, 그의 몸이 안개처럼 흐려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또르륵, 기계처럼 눈알만 굴려 재현을 보는 눈이 웃고 있었다.




“왜, 서여주를 구할 수 없었을까?”

“…이, 개새끼가!”




여태 영호와 알렉스 사이의 신경전을 지켜만 보고 있던 재현은 주체 못할 분노를 느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알아차린 것이다. 여주가 건물을 뛰어내리던 그 순간에 벌어졌던 믿지 못할 상황을.




“존, 여태까진 네 동생이었지. 그쪽 가이드기도 했고.”




알렉스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으며 돌아버린 눈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이제는 내 차례인 거야.”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재현은 악을 쓰며 주변을 살폈다. 열이 올라 이마에 핏대가 돋아나고, 분노에 얼룩진 눈과 믿기 힘든 진실에 몸이 벌벌 떨렸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 찾아요.”




영호가 재현에게 말 한마디 남기고 언덕으로 들어갔다. 다시 한 번 능력을 써봐도 느껴지는 건 멀어져가는 영호와 멈춰선 봉고차 한 대. 재현은 펄떡이는 가슴을 붙들 새도 없이 신발코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런쥔씨, 봉고차 잡았습니까?”

네, 그런데…. 여주가 아니예요.

“……….”

이 마을 사람이래요.




재현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은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부드럽게 몸에 감기는 촉감과 포근한 온도, 기분 좋게 만드는 뽀송한 햇볕 냄새 속에 역한 약냄새가 풍겼다. 뻑뻑한 눈을 뜨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깨어났습니다.”




뚝뚝 떨어지는 수액을 체크하는 남자는 익숙한 얼굴과 차림새를 하고 있어서 순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다칠 때면 병동에서 보던 얼굴이었으니까.




“서여주씨, 어지럼증이나 구토감이 느껴지진 않습니까?”

“…조금, 큼.”

“도와드릴게요. 물 한 잔 가져다 드릴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 머리 뒤로 손을 밀어넣어 천천히 나를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아직 잠결이라 그런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N팀 담당의가 나를 봐주는 건 여태까지도 이어져 온 일이었고, 센터 병동과 비슷해서 좀 더 빨리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병원이야 어디든 비슷하니까.




“……여기가 어디예요?”




물 한 잔을 마실 때가 돼서야 모든게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침대와 링거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 안, 새하얗기만 한 벽에 존재감을 뽐내듯 쥐색 철문이 묵직하게 자리했다. 병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하나도 같지 않았다. 머리가 찢겨 나가듯 묵직한 통증이 찾아왔다. 순간 호흡이 멎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건들지 마세요. 흉집니다.”




머리를 집자 왼쪽 관자놀이 부근에 거즈가 붙어있다. 폭신한 가장자리와 달리 단단하고 까칠하게 말라붙은 중앙은 보지 않아도 상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내가 왜…, 여기 있어요?”




그제야 차츰 가위로 잘라낸 듯 부자연스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나재민과 이제노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찾아왔고, 마크는 그들과 대치했다. 그러던 중 찾아 온 홍주연과…, 뜬금없이 눈 앞에 나타난 서여주. 자신을 사랑하니 이정도 희생은 감수하라던 그를 지우고 나타난 홍주연을 끝으로 기억이 없다. 머리에 무언가 부딪힌 탓인 거 같은데, 이후에 어떻게 된 걸까. 영호가 돌아와 상황을 중재했나? 여기는…, 모르겠다. 숙소가 망가졌으니 새로운 숙소를 급하게 구한 탓에 뭣도 없는 곳에 온 걸지도 모르지.




“영호는요? 서 팀장이요. 돌아왔어요? 안 다쳤어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감정이라곤 싹 사라진 사람처럼 구는 의사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쳤다면 일도 다 미루고 내 곁에 있을 영호가 안 보인다. 또 임무라도 나간걸까? 아니면, 아니면…. 아, 마크는 어떻게 됐을까. 숙소를 그 꼴로 만들어 놨으니 영호한테 크게 혼났을 텐데. 내가 편들어줘야 하는데. 다 N팀 탓이고 마크는 날 보호했을 뿐이라고. 또,




“서여주씨.”

“아니죠? 영호가 알면 화낼 거예요. 영호 성격 아시잖아요.”

“존은 다시 보기 힘드실겁니다.”

“……….”

“덕분에 편하게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안 되는데. 영호가 진짜 많이 걱정할 텐데. 외면하고 싶은 불안감을 맞췄다는 듯 그는 답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했다. 나는 왜 그의 말을 이해했을까.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아, 시발. 인생 한 번 더럽게 고달프네.




“마크랑 이제노, 나재민은 어떻게 됐습니까?”

“글쎄요. 제가 떠나면서 괜찮아졌을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눈치 빠르시잖아요. 확인차 물어보시는 건가요?”

“마인더 C라고 했잖아요. 접촉 시 생각을 읽는 것 외엔 불가능한 거 아니었습니까?”

“서여주씨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레벨 C를 받았지만, 다른 C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거든요.”




하고 있는 생각을 극대화 시키는 것. 아주 작은 바람만 불어줘도 생각이란 건 금방 크게 부풀어서 무게를 가지기 쉽상이라는 그를 보며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은 가정이 하나 생겨났기 때문이다.




“설마 N팀이 홍주연을 택한 것도 당신이야?”

“그 정도의 능력은 없어요.”




그저 자신은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나재민과 이제노의 생각에 바람을 넣어줬고, 둘은 바람에서 의무로 건너뛰는 기상천외한 결론을 내리면서 숙소로 찾아가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저는 심겨진 씨앗에 물을 주는 역할이었어요. 볕을 쬐고 거름을 준 건 그 사람들 몫이었고요.”

“…됐고, 여긴 어딥니까?”

“라조의 본거지요.”

“그러니까 본거지 어디.”

“빠져나갈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 거예요. 다칠수도 있어요.”

“말 돌려하는게 취미입니까? 똑바로 답하기나 하세요.”




뭐 하나 쉽게 답하는 법이 없다. 그는 묵언을 택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안 그래도 다쳐서 아픈 머리가 지끈거린다. 급할 거 없다는 그의 말에 열이 뻗히려는 순간, 전체적으로 새하얀 공간에 홀로 이질적인 색을 띈 철문에서 도어락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도 없이 열린 문으로 빼꼼 내밀리는 머리통 하나.




“여주, 안녕?”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한 그가 문을 젖히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는 누가봐도 한국인은 아니었다.




“연예인을 만나는게 이런 기분인가? 반가워. 좀 더 일찍 데리러 갔어야 하는데 말야.”




밝은 텐션으로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다가 온 그가 나를 자신의 품에 넣는다. 너무 순식간에 혼을 쏙 빼놓는 행동에 얼결에 그의 등을 안아 줄 뻔했다. 서여주의 기억을 다 뒤져도 초면인 사람인데도 말이다.




“누구?”

“알렉스, 알렉이라고 불러도 좋아. 존의 오랜 친구이자 너의 연인이 될 사람이지.”

“뭐?”

“라조의 보스입니다.”

“…뭐요?”




내게서 한걸음 떨어진 그에 대해 의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영호의 오랜 친구이자 나의 연인이 될 사람이 라조의 보스라는 말도 안 되는 명칭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굳었던 머리가 잠깐의 정적 덕에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가 영호의 앙숙인 건 그렇다 치겠는데, 연인이니 데리러 오기로 했다는 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당신이 날 왜 데리러 와? 무슨 소리예요, 이게?”

“음? 여주 네가 데리러 오라고 했잖아.”

“내가?”

“기억을 잃었다더니,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듯하게 접힌 푸른 눈이 의사에게로 향했다. 깔끔하게 뒤로 넘긴 검은 머리, 푹 들어간 아이홀과 영호만큼 큰 키와 단추 두어개 푼 셔츠 아래에 잘 잡힌 골격은 척 보기에 호감을 살 법한 인상이었으나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는 뱀처럼 매서웠고 그 속에 숨겨진 의중은 더욱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뭐부터 설명할까….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까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도 나쁘지 않겠어. 아, 네가 뛰어내릴 쯤부터 말하는게 좋겠지? 내가 널 처음 본 날이니까 말야.”




의사에게서 내게로 옮겨 온 눈동자는 볕이 든 호수처럼 반짝였다. 시선 한줌일 뿐인데도 긴장감에 몸이 굳었다. 이런 나를 알아차린 그는 시원하게 웃으며 내 곁으로 자리 잡고 앉았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다정을 가장한 눈이 나를 훑었다.




“그날 널 데려왔어야 했는데, 일이 좀 틀어졌지 뭐야? 존이 생각보다 일찍 왔어. 망할 존.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 귀찮은 친구야.”




삐걱대면서도 머리는 굴러갔다. 내가 N팀을 향한 복수로 건물에서 뛰어내린 날, 라조의 보스인 알렉스가 근처에 있었다. 나를 데리러 왔고, 일이 틀어졌다고. 영호가…, 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 빠르게 구르지 않는 머리때문에 두통이 밀려온다. 그러고보면 라조의 보스 능력이—,




“이것도 기억 못하나? 네가 먼저 날 불렀잖아. 너의 죽음이 완벽할 수 있도록 N팀이 능력을 사용 못하게 막아달라고.”

“……….”

“죽지 않게끔 만드는 것까진 잘 해냈는데 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어. 널 빼돌리기 직전에 센터 요원들이 찾아왔거든. 원래 현장엔 안 오는 인간들인데, 존이 찾아왔다고 네게 알려주러 왔더라고? 그때 네가 쓰러진 걸 본 거지. 그 때문에 늦었어. 미안해.”




……그러니까, 이게 다 영호가 일찍 와서 생긴 변수라고? 원작에선 언급도 사라진 서여주가 N팀과 자꾸 부딪힌 이유가…, 라조로 빼돌려지기 직전이던 서여주에게 영호가 찾아와서….




“아무튼! 어서와, 네 진짜 팀에.”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던 가정 하나가 잡생각을 모두 밀어내고 홀로 남았다. 서여주가…, 라조와 손을 잡았던 것 같다.
















당장에 주먹이나 고성부터 앞설 줄 알았던 자리는 생각 외로 조용했다. 그래서일까, 예상치 못한 상황은 되려 위압감을 불러왔다. 몇시간 사이에 헬쓱해진 몰골을 한 영호에게 누구도 말 붙이지 못 했다.


자리한 건 여주, 주연과 남았던 세사람과 현장에서 돌아 온 셋까지 총 여섯 뿐이다. 다른 팀원들은 자리를 지키도록 아직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 전에 정황을 듣는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이 나가고,”

“……….”

“몇 분 지나지도 않았을 때 저 사람들이 찾아왔어.”




침묵을 먼저 깬 건 마크였다. 어렵사리 말문을 연 그는 당시 정황을 낱낱이 보고했다. 재현의 명령으로 찾아왔다는 제노와 재민, 그와 대치하던 마크, 한걸음 물러나 있던 여주. 네사람의 대치가 이어지다 제노가 능력을 사용하려 했고, 마크가 선방했던 것과 뒤이어 재민이 문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둔 것까지도.




“그리고…, 그 가이드가 내 팔을 잡았어.”




마크는 자신의 왼팔을 쓸어내렸다. 느껴지는 가이딩이 여주 것이 아니라서 바로 알아차렸다는 말과 함께,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날 붙잡았는데도 저 사람이 나무조각을 던지더라고.”

“…재민이가?”

“이상하죠? 초면에 봤던 모습이랑 너무 다르잖아요.”




불과 몇주 전의 이야기다. 한달도 되지 않은 첫만남에서 재민이 주연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봤던 마크는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저쪽도 마찬가지고.”

“……….”

“그 사람이 내 팔을 쥔 이유는, 여주가 다쳤기 때문이에요.”




테이블만 보고 있던 영호의 고개가 들렸다. 매마른 얼굴을 하고 멍하니 마크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아무것도 담지 않았으나 귀를 열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사람 말로는 여주 상태가 이상했대요. 뭔가에 홀린 것처럼 허공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고. …자기 이름을 남의 이름 부르듯 불렀다고요.”




마크가 영호의 눈치를 봤다. 자리에 앉은 절반만 알아들은 말이다. 런쥔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여주의 상황을 가늠했다. 누군가 여주에게 환각을 사용했던 것 같다. 분명 라조 측 사람이겠지. 미국에 있을 적엔 부딪히지 못했던 능력이니 신입일게 분명하다.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주워 온 새끼겠지. 안 그래도 힘든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여주를 찾으러 가기 전에 먼저 할 말이 있어요.”




건조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목소리가 깔렸다. 여주의 증상을 모르니 여주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넘긴 듯 했다. 환각에 사로잡히면 여러 일들이 벌어지니까.


재현은 푸석한 얼굴을 거친 손으로 쓸어내렸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꽉 막힌 목구멍을 한숨으로 뚫었다.




“여주가…, 라조랑 연관있는 것 같습니다.”

“예?”

“서여주가 무슨, 라조랑?”




개소리 말라는 듯, 무슨 소리냐 묻는 목소리와 눈초리를 보며 재현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또한 그들 속에 함께하고 싶었으나 알렉스가 했던 말이 귓가를 떠나질 않았다.


'서여주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왜, 서여주를 구할 수 없었을까?'


처음엔 그가 어떻게 여주의 죽음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직후엔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충격이 뒤따랐다. 많은 사람들이 'N팀은 여주를 구하지 않았다'라고 알았다. 레벨도 높고, 누구보다 능력 사용에 능숙하다 알려진 N팀이 추락하는 여주를 구하지 않은 건 고의적이었을 거라고.




“여주가 기억을 잃기 전에…, 뛰어내린 거 다들 아실 겁니다.”




테이블 아래로 재현의 두 손이 깍지 껴 잡힌다. 모두가 불편해하는 주제를 꺼낸 재현 또한 당시를 회상하고 싶지 않았으나 떠올려야만 했다.




“제노야.”

“……….”

“너 능력 사용 안 했어?”




마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능력이라니? 제노는 목울대를 움직이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달싹이는 입술이 떨리더니 이내 눈물이 툭 떨어진다.




“했…, 어요.”




어른에게 잘못을 시인하는 아이처럼, 제노는 겁 먹은 채로 답했다. 사이코키네시스, 한국에선 염력으로 불리는 그 능력을 누구보다 잘 사용하던 이제노. 여주의 몸이 하늘 위로 떠오르는 순간,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재현 또한 마찬가지다. 태양을 등지고 죽을 거라 말하는 여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몇 번이고 능력을 사용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아무리 밉게 굴어도 동생이었고, 몇년을 동고동락한 사이다. 그가 눈앞에서 죽겠다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서 팀장, 그 알렉스란 사람 이그노어 맞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으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그노어일 것이다. 영호의 능력을 막으려면 그 능력 뿐일 테니까.




“알렉스는 왜 여주를 구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어요. 알렉스는 여주의 죽음을 도왔고, 여주는….”

“…완벽한,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었겠네.”




재민이 숨을 삼켰다. 죽음으로 위장해 센터를 나가고, 라조와 손 잡았다면 언제가 됐든 N팀과 대립하게 되었을 거다. N팀에게 복수하지 못했더라도 배신감 하나만큼은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겠지. 터져나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은 재민은 두 손에 얼굴을 담고 감정을 삼켰다.


절구방아가 가슴을 짓이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숨을 쉬는 것조차 아프다. 머리가 맑게 개이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N팀 전원이 그들을 전담한 의사에게 놀아나고 있었다는 걸. 좀 더 정확하게는 그를 이용하는 라조의 보스, 알렉스에게 장난감처럼 다뤄지고 있었다는 걸.


함께 부산으로 내려 온 의사는 각 팀의 가이드 둘과 사라졌다. 그의 짐은 먼지 한톨도 남지 않았고, 여주는 환각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를 뒤따른 주연마저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주와 함께 사라진 것이겠지.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가진 가이드들이니까.




“서 팀장, 여주는 라조의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없이 앉아있던 영호의 얼굴에 감정이 실렸다. 짜증과 분노가 실린 눈빛은 당장에라도 재현의 멱살을 잡으려는 듯 했고, 빈즈 측에서 영호를 말리기도 전에 누군가 입을 열었다.




“여주가 환각을 봤다고 했잖아요.”




재민은 재현의 말을 부정했다. 자신이 알던 여주라면 그럴 리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골이 깊어지다 못해 완전히 떨어져 나갔대도 할 말은 해야만 한다.




“여주는 우리 중 계산이 가장 빠른 애예요. 돌발 상황이 생기면 형을 대신하던게 여주고요. 그런 애가 라조랑 손을 잡는 건…,”

“여주가 현장을 나오려 했던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걘 날 협박해서 어떻게든 현장에 나오려 했어. 만약 그 이유가 라조와 컨텍하기 위해서라면?”




복수를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라조의 손을 잡았을 것이다. 추락하는 여주를 보았으니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주는 N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싶어 했다고.


재민은 때늦은 죄책감에 몸부림쳤고, 재현은 서글픈 가정을 들었다. 작전에 이토록 많은 감정이 섞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억누를 수가 없다. 정말 여주가 라조의 사람이 되었다면 어떡하지. 재민은 두려워졌다. 여주를 데리러간다 한들, 그가 자신들을 봐주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여주가 복수를 부탁했다면, 라조는 뭘 받아갔을까요?”




제노는 마크와 대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다. 런쥔은 말을 골랐다. 영호 눈치를 보는 탓도 있었고, 쉽사리 답을 내놓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했다.


알렉스가 여주를 데려간 건 가이드라는 이유보다 영호의 동생이란 이유가 더 클 테다. 영호의 유일한 약점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여주의 쓸모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라조가 원하는 건 여주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가이딩이니 뭐니 다른 능력 하나 보지 않고, 여주가 노멀이었대도 잡아갔을 인간이란 거다.




“뭐가 됐든 좋은 마음으로 돕진 않았을 거예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마크가 기운없이 답했다. 여주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영호에게 미안하고,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고, 라조에 대한 분노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넋을 놓은 그는 이 상황이 너무나 힘겨웠다. 무엇 하나 알아낸 것 없는데, 여주를 어디서 찾아야할지 막막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어떡하지. 여주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최악 중 최악만을 골라 생각하던 그의 눈 앞으로 빨간 불이 반짝였다.


일순간 긴장감이 일렁인다. 누굴까. 혹시 여주가, 주연이 호출기를 가져간 건 아닐까? 재현은 인이어를 뽑아 마이크를 통해 모두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다.




“정재현입니다.”

나야.

“아…, 형.”




긴장감 이후에 찾아 온 티끌만한 기대마저도 사라졌다. 그래, 그럴리가 없다. 임무도 아니고, 두사람에겐 호출기를 쥐어 준 적도 없다. 재현은 무너져가는 기대감을 숨기기 위해 이마를 짚었다. 팀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습관이었다. 재현 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대감을 버렸다.




아까 회수한 파일에 적힌 코드번호 해석했어.

“…해석했다고?”

생각보다 단순하더라. 지금 그쪽으로 갈까 하는데,

“형.”




파일이란 말 한마디가 재현의 두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여주와 주연을 잃었다는 생각에 침몰되어 라조를 조사중이었다는 걸 잊었다. 그리고 어쩌면,




“센터에 라조 측 스파이가 있을 거야.”




재현은 눈 깜빡임 한 번에 계산을 끝냈다. 이대로 우는 소리만 할 수 없다. 슬퍼만 하다가 여주의 애정을 잃었고, 미안해 하다가 신뢰를 잃었다. 그 과정에서 여주는 더 아파했고, 더 울었다. 여주는 기억을 잃지 않았으니 정말 라조의 편에 선 걸지도 모르지만,




“코드는 아직 해석하지 못한 것처럼 협조 요청 넣어서 스파이 좀 찾아 줘.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해.”

…알았어. 만일을 위해서 바인더는 데리고 있을까 하는데 괜찮지?

“서 팀장.”




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만 했다. 도영은 파일 몇개를 보낼 테니 확인해보라고 했다. 일전에 도영이 코드번호가 주소지 같다고 했으니 잘만 풀어내면 여주와 주연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낼 수도 있다.


곧 천러와 동혁이 돌아온다. 그 전에 재현은 넋 놓은 다른 팀원들보다도 정신 못 차리는 다른 사람부터 챙겼다.




“서 팀장. 여주가 라조랑 손 잡았다고, 서 팀장까지 라조랑 손 잡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개소리할 거면 입 닫아요.”

“난 여주가 라조 사람이 됐대도 데리고 올 겁니다. 설득을 하든 납치를 하든 라조엔 남겨 둘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날 방해할 거라면 지금 여기서 빠져요.”

“……….”

“같이할 거죠?”




재현의 물음에 영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협박을 가장한 부탁을 하며 손 내미는 재현을 보고 영호는 그제야 호흡했다. 하나 뿐인 동생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느끼기엔 너무 일렀다. 다시 데리고 오면 그만이다. 재현의 말대로 어떤 방법을 써서든 데리고 와야만 했다.




“우리의 작전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주와 주연이를 비롯한 피해 가이드들 전원 탈환하고, 라조를 와해 시키는 것. 알렉스는 사살해도 좋습니다. 목표는 그 뿐입니다.”





















💭 여러분 안녕~ 이번엔 좀 빨리 왔다, 그쵸?ㅋㅋ


💭 오늘 폭탄이 너무 많이 터져서 여러분이 감당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여주가 다친데서 끝난게 아니라 납치까지 당했다는 것, 여주가 라조의 보스와 단순히 안면있는 사이인가? 했는데 실은 손 잡았을 수도 있다는 가정과 여주가 죽으려 들 때 N팀은 능력을 사용했었다는 것, 게다가 원작이 뒤틀린 원인이 영호인 것 같죠?ㅋㅋ


💭 왜 갑자기 폭탄이 많이 터지냐고요? 감정선 질질 끌었으니 이제 터져 줄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구여주는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우리의 현여주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는 의문을 남기고 이번 편은 별다른 사족 없이 넘어가볼까 합니다.


💭 참고로 영호가 화 많이 낼 거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화낼 멘탈도 안 남아버림ㅎ


💭 그럼 이만, 다음에도 빨리 올 수 있길 바라며!! 안녕~💚




━⊱༻ 아래는 18화 예고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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