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혹시 다른 데 생각했던 곳 있었어? 관둬.”


브룬힐데가 포트에 남은 차를 마저 따르더니 입에 콸콸 부어 넣었다. 졸업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몰래 위스키를 챙겨와 교수들에게 들킬라 몇 초 만에 목으로 넘겨버리던 모습이 떠오르는 행동이었다. 발전이 없네. 로키는 그녀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찻잔을 잡는 손가락,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 호흡의 정도를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법부 최고의 비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냥 보통의 브룬힐데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 로키는 팔짱을 풀고 다리 위로 지팡이를 잡은 손을 올려 두드렸다. 검은 바지 위 희고 매끈한 손가락이 지팡이와 함께 까딱였다.

브룬힐데가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끊어진 대화를 이어갔다.


“특히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는 안 가는 게 백배 나아. 거기는 그냥 네가 오딘슨이라 데려가겠다는 것뿐이거든. 오러국이 토르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면 우리는 로키다- 뭐 그런 거지.”

“……그건 대략 짐작했어.”


로키가 잔뜩 미간을 구기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정도야 로키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들 로키는 로키였다. 오딘의 입양아였다는 것이다. 입양아는 친자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었다. 로키의 녹색 눈이 어둠으로 흐려졌다. 이 자리에 토르가 있었다면 “이, 이 음흉한 집행부 놈들!!!” 하며 우람한 팔을 휘둘러 탁자를 엎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로키를 끌어안으려다 밖에서는 안 된다 언질한 것을 떠올리고 손을 꽉 움켜잡겠지.

“절대 아니다. 로키. 이상한 생각 말아라, 누누이 말하지만 너는 내 동생이고-”

오딘의 첫째 아들이 자신을 위해 길길이 날뛰는 상상을 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로키는 눈가를 문지르며 잡념을 털었다. 브룬힐데와 눈을 맞추고 톡 쏘아붙였다.


“미스터리 부서는 원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나? 그런 편지를 보내는 게 효과가 있어?”

“물론 아니지!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내 경우는 술내기 같은 거였고 –로키의 눈썹이 삐딱하게 솟아올랐다. 이 부서… 제정신일까?- 너는 특별히 재미난 편지였지. 나랑 부장님 추천이었어. 구성원 한 사람 이상의 추천이 있어야 신입 후보에 오르거든.”

“미스터리 부서의 부장?”

“그래. 우리 부장님. 영국 최고의 마법사.”

“그게 대체 누구……. 혹시 아버, 오딘이 겸직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말아줘.”

“오. 그건 아니야.”


브룬힐데는 블러저를 갓 쳐냈을 때처럼 자신만만했다.

“그보다 더 위대한 마법사지. 너도 동의할걸?”


오딘보다 위대한 마법사라. 로키는 예전에 읽었던, 금세기 최고의 마법사에 대한 책을 생각해보았다. 살아있는 마법사 중에 오딘 이상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네 명 정도인가. 마법약 마스터라 불리는 프린스가 출신이 최근에 놀라운 업적을 또 하나 이룩했다고 하던데… 아니 잠깐. 로키는 혀를 찼다. 애초에 미스터리 부서의 일원이 되는 기준이 뭐야?


미스터리 부서는 그 존재마저 안개처럼 희미한 조직이었다. 로키 또한 마법부 안에 누구도 모르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정도만 얼핏 알고 있었다. 구성원들끼리도 누가 자신의 동료인지 모르고, 역대 부장 계보 같은 건 당연히 존재하지 않고. 어쩌면 브룬힐데도 부장이 누군지 모르면서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말을 뱉은 것일지도…


로키는 깊게 호흡했다. 폐부 끝까지 들이마신 숨을 천천히 토해내며 브룬힐데를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미지를 기대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마법사가 된 이후로 자신이 늘 되뇌이는 말이었다. 진정한 마법사라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지. 그는 자신이 훌륭한 마법사 명단에 당연히 들어가 있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슬리데린 출신이라면 이 정도 자신감은 당연했다. 코를 울리며 픽 웃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미스터리쯤, 기꺼이 환영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브룬힐데가 손을 내밀었다. 그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알겠다는 제스처였다.


“악수나 하자고. 신입.”

“가르치려고는 하지 마. 그런 건 딱 질색이니까.”

“걱정 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서는 아주 자유롭거든.”

“흐음.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부서로군”

“사실 부실에도 잘 안가. 우리 부실에는 앉을 자리도 없다? 이상한 물건들만 가득하지. 책상이랑 의자 같은 재미없는 가구는 없어. 최고지?”

로키가 눈을 깜빡였다. 책상이랑 의자가 없다고?

“그럼 나는 무슨 일을 해?”

브룬힐데는 유쾌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지!!”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째로 로키는 이 부서가 제정신인지 의문을 품었다. 침묵하는 로키를 보며 브룬힐데가 낄낄거리며 테이블을 크게 두드렸고, 로키가 지팡이를 쥔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릴 때까지 난타는 계속되었다.


“네 일은 부엉이 편으로 전달될 거야. 부장님이 보내겠지 뭐.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일을 받고, 기본적으로 동료들과 만날 일도 적어. 나도 여기 와 있던 두 명 누군지 몰라.”


와 있던. 과거형의 말에 로키는 몸을 틀었다. 이런 식이로군. 분명히 앉아있던 층 내의 두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빈 찻잔만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걸어 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발소리나 인기척은 없었다. 그걸 죽이는 마법을 쓴 건가? 아니면 순간이동? 어느 쪽이라 해도 놀라웠다. 마법을 사용하면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기고 마는 게 당연한데, 근처에 있던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고 비밀스럽게 행동했다니. 로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료에게 호감을 품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부서가 조금 좋아졌다.


“앞으로 잘 해봐. 마법 세계를 위해서.”

“그런 거창한 건 내 관심 분야가 아니야.”

“모르지. 어떻게 될지. 토르는 그런 명분 좋아하지 않니?”

“여기서 토르가 왜 나와??”


로키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렇게 그는 마법부에 입사했다.

 


 

로키는 토르에게 마법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부서 특성상 정체를 숨기는 게 요구될 텐데, 토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시작부터 실수했나. 이마를 짚고 분위기에 휩쓸린 자신 –이게 다 토르와 호텔에 있었기 때문이다- 을 책망하고 있는데, 누군가 로키의 팔을 쿡쿡 찔렀다. 돌아보니 그 때의 그 부엉이였다. 내가 창문을 열었던가? 이 부엉이는 어떻게 남의 방에 막 들어오는 거야? 미스터리 부서 전용 부엉이라 남다르다 이건가? 혹시 애니마구스? 편지를 손에 들고 부엉이를 구석구석 뜯어보자 부엉이가 날개를 퍼드덕댔다. 몸보다 큰 날개를 쫙 피고 로키를 바라본다. 편지나 읽으라는 느낌이다. 로키는 꿈쩍하지 않았다. 부엉이는 자신을 관찰하는 마법사를 무시하며 날개를 접었다. 그래도 로키가 눈을 돌리지 않자 불만스러운 듯 부리를 여러 번 딸깍였다. 부엉. 저번과 같이 울기까지 했다. 살다 살다 비밀스러운 부엉이에게 핀잔을 듣다니. 로키는 일부러 봉투를 갈기갈기 찢어 부엉이 쪽으로 흩뿌렸다. 부엉! 부엉이가 뒤로 폴짝 물러나며 큰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로키는 실수인 척 입을 벌리고 미안, 짧게 말했다. 물론, 전혀 미안한 톤이 아니었다.

(*애니마구스 :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사를 말함)

편지는 이번에도 간결했다. 로키가 양피지를 펼치자 문자가 종이 위로 떠올랐다.


“오.”


고민이 이렇게 해결될 줄이야. 로키는 턱을 괴고 양피지를 내려다보았다.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에 로키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지도 모르겠군. 턱을 괸 상태로 로키가 슬그머니 웃었다. 그림자 속에 숨는 건 그의 특기였다. 점점 더 마음에 들어. 로키는 양피지에서 눈을 떼고 아직 날아가지 않은 부엉이에게 명령했다. 부엉이가 고개를 쭉 뺐다.


“알겠다고 전해.”

“부엉.”

“뭐야. 또 서명이 필요해? 이건 딱히 답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

“부엉.”

“알겠어, 알겠다고. 자- 아야!”


부엉이가 로키가 대충 휘갈긴 쪽지를 받아가는 척하다 손가락을 물었다. 크게 아프다거나 피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깜짝 놀라 물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고 말았다. 저 새 자식이! 부엉이는 만족한 것처럼 크게 울더니 쪽지를 물고 로키의 머리 위를 몇 바퀴 돌았다.


“…….”


마법을 날릴까. 로키는 지팡이를 굳세게 잡고 자신을 타일렀다. 침착해, 로키 오딘슨. 저런 미개한 털북숭이 생물한테 고등한 마법을 날리는 건 낭비야. 로키가 지팡이를 아래로 내리려는데 부엉이가 퍼덕이며 로키의 얼굴 앞에 섰다.


“부엉.”


……놀리는 게 분명했다. 관두자. 그래. 이런 심리전에 넘어가서는 안 돼. 로키는 지팡이를 휘둘러 창문을 열었다. 날아가는 부엉이를 지켜보며 동물의 털색을 괴상하게 바꾸는 주문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비밀이다.


그리하여 로키는 (겉으로) 마법부 법률 강제 집행부 소속이 되었다. 부서에는 로키가 직접 들어가겠다고 응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위장 취업이기는 했으나 법률 강제 집행부 일도 괜찮았다. 구식이지만 순수 혈통을 중시하는 부서라 그런지 직원의 대다수는 슬리데린 출신이었고, 바늘로 찔러도 흐트러짐 없이 서류에 마무리 사인을 넣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다. 뭐, 로키에게는 그런 분위기가 더 좋았으니 상관없었다. 같은 층에 오러 사무국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토르가 시도 때도 없이 문을 차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기는 했지만.


토르, 그의 형. 로키의 마법부 생활에 고민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연인. 눈을 떠 토르와 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같이 승강기를 타고, 같은 층에 내리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호그와트에 있을 때보다 더. 필요의 방에서 밀회하던 때보다 더. 빨리 오라고 토르를 재촉하며 로키는 몰래 웃었다. 남들이 그들을 보며 수군거렸으나 무시했다. 유난스런 형제라고 마법부 안에 파다히 소문이 퍼진 걸 알면서도 로키는 토르와의 거리를 물리지 않았다. 사귀는 것을 비밀로 하자는 말에 잔뜩 충격받은 얼굴을 하던 토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다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쯤이야.


“그래도 말이지. 너무 자주 오지는 말아줄래, 형?”

“흐으음. 알겠다.”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집행부의 제 자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토르를 쫓아내며 로키가 말했다. 평화의 시대라더니, 오러가 이러고 있는 걸 보니 의심할 나위 없이 확실하군. 로키는 토르의 등을 밀어 오러 사무국으로 집어넣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오러들을 보고 혀를 찼다. 수염을 문지르던 토르에게 계속 이럴 시엔 함께 출퇴근하지 않겠다 딱 잘라 말하자 풀죽은 토르가 찾아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토르는 종이비행기를 시간마다 하나씩 보내기 시작했다. 로키는 서류 위에 찰싹 달라붙어 일을 방해하는 토르의 종이비행기를 떼어내면서 다른 방안을 궁리해야 했다.


미스터리 부서에서 로키에게 내린 업무는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에 들어가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거였다. 어렵지는 않았다. 때때로 로키의 자리에는 미스터리 부서의 서류도 날아왔다. 당연하지만 미스터리 부서의 모든 서면 (종이비행기부터 부엉이가 보내는 편지, 서류까지)에는 철저한 마법이 걸려있었고, 부서 사람이 아니면 읽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로키는 당당하게 법률 강제 집행부 자리에서 미스터리 부서의 서류 작업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로키에게 마법사 로직과 낱말 퍼즐을 적당히 하라고 농담만 던졌다. 그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서류를 훑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로키는 미스터리 부서가 다루는 주요한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위대한 마법사라는 부장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신입이어서 그런 걸까? 로키의 자리에 날아오는 미스터리 부서의 서류란 직원 A가 고블린을 만났다, 직원 B가 H와 접선했다는 애매모호한 내용만 적혀있었다. 거기다 그는 아직 미스터리 부서 문 너머로는 가 보지도 못했다! 법정을 구경하러 가는 척 지나가며 지하 9층의 굳게 닫힌 문만 보았을 뿐이다. 몰래 손잡이를 잡아보긴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을 때 편지가 날아왔다.


마법부 지하 9층, 미스터리 부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아치문.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탔다. 로키는 글자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양피지에는 익숙해진 미스터리 부서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익숙해진 울음소리도 함께다. 부엉. 부엉이가 가슴 깃을 부풀리며 로키를 응시한다. 뭐야, 왜 네가 기뻐해? 그는 픽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부엉이를 슬쩍 쓰다듬었다. 첫인상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 녀석과도 이제 제법 친해졌다. 간혹 로키의 부엉이가 질투하며 날아들 정도로. 부엉이는 로키의 손길에 눈을 감고 부리를 딸깍였다. 그가 제법 부드러운 깃털의 감촉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아치문?’ 이건 무슨 소리지?”

“부엉.”

“그래. 알겠어.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하고 그냥 갈게.”


다음날. 로키는 태연한 얼굴로 마법부 승강기에 올라 지하 9층 버튼을 눌렀다. 낭랑한 안내음이 목적지를 설명한다.


“지하 9층. 미스터리 부서입니다.”


지팡이를 세게 잡고 로키는 9층에 내렸다. 어두운 복도가 음산하게 뻗어있었다. 횃불이 이따금 일렁여 그림자를 춤추게 했다. 복도 한가운데 덩그러니 문이 있다. 육중한 문은 주위보다도 어두운 검은색이었다. 아무 장식 없이 밋밋한 검은 문은 정말- 그냥- 검었다. 그가 조심스레 문 앞으로 다가가자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절로 문이 열렸다. 저번과는 달랐다.


“……이런 식이군.”


로키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미스터리 부서의 검은 문 안은 밖의 복도보다도 훨씬 넓었다. 마법부 안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꿀꺽 목울대를 울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자 열릴 때와 마찬가지로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스산했다.


그는 둥근 방 안에 서 있었다. 한밤의 어둠을 잘라내어 가져다 놓은 듯 방은 바닥과 벽, 천장의 구분 없이 모두가 검고 어두웠다. 드문드문 벽에 걸린 촛불은 주위를 비추는 용도보다는 어둠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분명하다. 희미한 초의 불빛이 금방이라도 어둠에 먹혀 삭아질 것만 같다. 촛불 사이, 정확하게 똑같이 생긴 검은 문이 열두 개나 나란히 벽에 박혀 있었다. 로키는 편지에 쓰인 말을 기억해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만약 벽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길을 잃을 모양새여서, 그는 서둘러 세 번째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에는 문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머뭇거리던 로키가 손을 대어 밀자 부드럽게 뒤로 물러났다.


“이건…….”


이 방은 사각형이었다. 어두침침한 것은 전의 방과 동일했으나 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더 차갑고 서늘했다. 위즌가모트 법정처럼 층층이 단차를 두어 원형 극장 같았다. 그는 죽 뻗은 돌계단 제일 위에 서 있었다. 가장 아래에는 돌로 만들어진 그리 높지 않은 제단 같은 구조물이 놓여 돋보였으며, 제단 위에는 역시나 돌로 만들어진 아치문이 존재했다. 틈과 틈 사이가 벌어져 있고 지지대도 없는 아치문은 누가 입김만 불어도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아치문. 저건가. 로키는 한껏 긴장해 돌계단을 내려갔다. 아치문에는 잔뜩 헤진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는 베일이 살랑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였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일은 반복적으로 일렁였다. 작은 속삭임마저 희미하게 들려왔다. 처음 듣는 언어 같기도, 익숙한 말 같기도 한 속삭임은 귀를 잡아끌었다.


저 너머에 누가 있는 건 아니겠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자꾸만 그렇게 흘렀다. 어느새 그는 제단 바로 앞에서 아치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베일이 크게 부풀었다가 줄어들고, 속삭임이 점점 더 커진다. 제단 옆으로 몸을 빼 뒤를 보아도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움직이는 베일의 다른 쪽 면만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한 마법이 걸려있는 게 틀림없어.”


홀린 듯 보게 되는 아치문과 베일에서 간신히 시선을 떼어내며 로키가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저를 불러낸 미스터리 부서의 누군가는- 악취미임이 분명했다. 피부에 소름이 돋아있었다. 로키는 고개를 돌리고 지팡이를 쥐었다. 아치문과 검은 베일을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솟았다. 그 때 타인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마법부가 왜 이 자리에 세워졌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지. 바로 이 아치문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단다. 저 베일 너머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 아치문은 고대부터 마법사들의 오랜 미스터리이자 두려움이었지.”

차갑게 질린 공기가 풀어졌다. 로키는 간신히 뻣뻣하게 굳은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간신히 입을 달싹였다.

“어머니?”


부드러운 미소를 띤 프리가가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당황해 뒷걸음질치자 그녀가 주의를 주었다.


“어머, 조심하렴.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어머니가 어째서, 저는, 그러니까,”

“네가 놀란 얼굴은 오랜만이구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프리가가 로키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온기가 스며들어 로키를 감쌌다.


“편지를 받았지?”

“……네.”

“이곳을 고른 건, 마법부의 시작이 이 장소였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이 마법부를 세웠고 우리를 만들었지. 놀라운 일이야.”

우리. 로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속삭였다.

“……제가 지금 추측하는 게 맞는 건가요?”

“음. 아마도?”

로키는 숨을 들이켰다. 프리가가 잡은 로키의 손을 쓰다듬었다.

“미스터리 부서는 수많은 비밀과 미스터리를 다루지만, 그런 우리도 위대한 여행인 죽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 누구도 이 여행의 여정을 모르고.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일지도 몰라. 그걸 말해주려 널 불렀단다.”

로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방안을 울렸다.

“어머니가 미스터리 부서의 부장이군요.”


브룬힐데는 말했었다. 미스터리 부서의 부장이 오딘보다도 위대한 마법사라고, 로키도 기꺼이 동의할 것이라고. 그렇군. 로키는 속으로 웃고 말았다. 오, 많이 놀랐니? 잔잔한 물음에 그가 양팔을 들어 올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아치문에서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태어난 이래 손꼽을 정도로요. 평소의 침착함과 유머를 되찾은 말투에 프리가가 고요히 웃었다.


“할 말이 많구나. 그렇지?”


두 사람은 아치문 놓인 방을 빠져나왔다. 문을 넘기 전 로키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여전히 펄럭이는, 아치문에 드리워진 베일을 바라보았으나 –상당한 거리였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프리가가 단호히 그를 잡아끌었다. 마음 한구석으로 아쉬워하면서도 그는 순순히 그녀를 따랐다.


처음의 방으로 돌아와, 프리가는 몇 개의 문을 더 로키에게 소개해 주었다. 개중에는 뇌가 담긴 –뇌라니! 로키가 질색했다- 수조가 있는 방도, 행성들이 떠 있는 방도 있었고, 수많은 종류의 빛나는 시계와 등피가 가득한 방도 있었다. 째깍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방의 반대편 끝, 로키보다 조금 낮은 정도의 커다란 크리스털 등피 너머로도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묻자 프리가의 안색이 미세하게 어두워졌다. 왜지? 로키는 프리가가 알아채지 못하게 문을 주의 깊게 살폈다. 프리가가 답했다.


“저 문 너머는 예언의 방이지.”

“예언이요?”

“그래. 마법 세계의 모든 예언이 놓여있단다.”

“흐음. 마법부도 아직 미신에 대한 믿음을 떨쳐내지 못했나 보죠? 말해주세요. 우리의 장관님도 이곳에 내려와 예언을 들어다보는데 시간을 쓰시나요?”

“오, 로키.”


프리가가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털 등피와 시계가 내뿜는 빛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부서져 찬란히 빛났다. 프리가의 눈 또한.


“예언은 무시할 것이 아니야. 미래를 읽는 강력한 마법이지.”

“글쎄요. 적어도 토르- 형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프리가가 한숨을 쉬었다. 로키는 토 다는 것을 그만두었다. 예언의 방에도 가보겠느냐는 물음을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프리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지만, 로키는 수상쩍은 예언을 듣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로키는 방을 몇 개 더 보았다. 다만, 맨 처음 방의 벽에 붙어있던 열 두 개의 문 중 두 개는 굳게 잠겨있어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저 뒤에는 뭐가 있나요?” 그가 묻자, 프리가가 비밀스럽게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마법이 감춰져있지.” 흐음? 로키는 눈을 깜빡였다.


프리가는 벽이 돌아가기 때문에 문의 위치는 자주 뒤섞인다며 잘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 감시역인걸요, 여기까지 직접 올 일이 있나요. 로키의 말에 프리가는 잠시 말을 찾는 것처럼 침묵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법이지. 알아두어 나쁠 것은 없잖니? 하지만 로키는 단순히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프리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 터였고, 그는 그녀의 의사를 존중했다.


“왜 하필 저였나요? 토르는요?”


승강기를 타고 지하 9층에서 벗어나며 로키가 충동적으로 질문했다. 브룬힐데는 그가 두 명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그는 그 두 명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다. 브룬힐데와 그의 어머니. 로키는 프리가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 프리가가 보이는 그에 대한 믿음에 의아함이 따라올 때가 있었다. 사춘기는 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망할. 로키는 주먹을 쥐었다. 그렇지만, 프리가가 그를 사랑한다 해도. 그와 토르의 관계를 알면 뭐라고 할까……? 심장이 두근댔다.


“토르는 네 형이고 내 아들이지만…… 비밀을 지키는 데에는 별로 소질이 없지.”

“그렇지만- 만약-”

“만약은 없단다. 로키. 나는 네가 누구보다도 이 일에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너를 추천한 거야. 내가 부서의 장이라는 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도 신입의 일 처리에 만족하고 있던걸. 앞으로도 그럴 테고.”

“……하나만 더 알려주세요. 아버지는 정말 모르시나요?”

“물론! 미스터리 부서의 일은 미스터리 부서만이 알고 있으니까. 너와 내가 미스터리 부서에서 일한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랄걸?”


로키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발끝이 시야에 담겼다.


프리가와 비밀을 공유하게 된 이후 로키는 집 안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웃었다. 미스터리 부서에서 그녀와 만난 것을 빼면 로키가 프리가와 사무적으로 대면할 일은 없었다. 그는 변함없이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에서 일했다. 뛰어난 성과로 법률 강제 집행부 부장실과 가까운 자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마법부에 들어온 지 이 년이 지났다. 토르와 로키는 집을 나왔다. 형이랑 나가 살게요. 로키는 프리가와 오딘이 혹여나 자신들의 관계를 눈치챌까 전전긍긍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놀라기만 할 뿐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저 반응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한 연기라면 그의 부모는 당장이라도 직업을 전향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미스터리 부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어둠의 마법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모든 직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로키에게도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다. 부장의 직속 명령이었다.


“일부러 들쑤시고 다니라니요?”

“그래. 그들이 너를 알아채도록, 큐브에 관해 묻고 다니렴.”

“다른 부서들은요? 마법부 전체가 나서야 할 일 아닌가요?”

“마법부에 첩자가 있어. 섣부르게 나서기는 조심스럽구나. 오딘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야.”

“오러국이라도…….”


프리가는 로키의 말을 끊듯이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걸었다. 로키는 혀를 찼다. 첩자가 오러 안에 있군.

그러나 의문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직원이 많을 텐데. 왜 굳이 자신일까. 이 년 동안 데스크 업무만 한 사람을 왜. 그래서 로키는 물었다.


“왜 하필 저인가요?”


그는 ‘네가 적임자기 때문이란다.’라는 답변을 기대했다. 혹은 널 믿기 때문이란다, 도 괜찮았다. 그러나 프리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가 놀랐다. 심장이 차게 내려앉는다. 한참의 정적이 있고 난 뒤, 프리가의 눈이 물에 젖어 조금 반짝였다. 로키는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더 깊숙하게 가라앉았다.


“곧 알게 될 거다.”

“어머니.”

“예언은 당사자를 기다리는 법이지.”


예언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질문이 울컥거리며 목 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프리가는 완강했으며, 슬퍼보였으며, 로키는 그녀의 아들이자 부하 직원이었다. 그는 침묵을 택했다. 뒤돌아 나오는데 외로움이 사무쳤다. 막연히 토르가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로키는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영국과 북유럽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직접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으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사용한 것이 임페리우스라 다행이었다. 로키는 니콜라스 플라멜의 후손을 찾아가 협박한 흔적을 남기고, 더러운 술집에 앉아 정보원을 기다렸다. 그리고 토르를 위해 단서를 흘렸다. 오러국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몰라도, 토르가 제대로 조사를 하려면 그가 흘리는 것들이 도움이 될 거였다. 오러 전체가 첩자라 한들 토르만큼은 아니었으니. 로키는 토르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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