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 검마여데슬




마셔라.

긴 테이블 양 끝에 앉아있는 두 인외의 존재가 각기 다른 무게감을 가지며 앉아있었다. 테이블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게 다행일 정도였다.

식탁이 지레라면 바로 균형을 무너뜨렸을 힘의 주인은 간단한 손짓과 권유로 탈바꿈한 강요로 잔을 들기를 명령했다. 이런 변덕은 한두번이 아니었던 터라 상대는 조금의 당황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잔을 들기까지 일각의 머뭇거림이 있었던 것을 보면 어지간히 당황했을 듯 싶었다. 그를 알아차렸는지 스산한 웃음이 주위에 뿌려졌다. 그녀의 등 뒤로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린 건 비단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감사합니다. 주군.

군단장의 격에 맞는 간소한 격식을 차리곤 잔을 입에 가까이 대었다. 농도 짙은 술냄새가 났다. 들고있는 잔의 열도 상당했다.

첫 모금을 넘겼다.

불덩이를 삼키는 기분이었다.

어떠한가.

그녀의 주군은 금세 무료해졌는지 턱을 괴고는 소감을 물었다. 독했다. 지독했다. 식도를 타고내려간 불덩어리가 위를 저며왔다. 타는 것만 같았다. 그 타는 듯한 열감은 빠르게 몸을 잠식해갔다.

 뜨겁습니다.

그럼에도 표정의 무너짐 하나 없고 올곧고 뻣뻣하게 펴진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금은 심술궂은 입매로 삐뚜름하게 명령했다.

단번에 마셔라.

죽으라면 죽는 것이 그의 명이 가지는 힘이었다. 고작 이까짓 것 한잔으로 머뭇거릴 일은 없었다. 다만 이만한 도수에도 몸 구석구석 퍼지는 취기에 혹여나 행할 추태가 걱정될 뿐이었다.

주군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까 두렵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마시기 싫은가.

아닙니다.

이미 첨언을 한 것 자체가 흐트러짐의 반증이었으나 이성을 마비시키는 화기를 억누르며 바르게 말하기에도 벅찼다.

잔을 들고 가까이 와라.

주인이 손짓했다. 번견은 틀에 갇힌 것처럼 반듯하게 일어서서 잔을 들고 그의 주인에게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지러운데다가 잔의 내용물을 흘릴까 주의하며 걸었다고 해도 완전한 반대편으로 가는 시간의 흐름이 너무나도 느리게 느껴졌다. 그녀의 주인이 사소한 장난질을 쳤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무력함을 절감하며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네, 주군.

무릎을 꿇어라.

반항없이 바로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번견의 턱을 들어올리고는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았다. 장난감마냥 각도가 제 마음대로 틀어지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그는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더듬었다. 평상시보다 붉은 빰, 나른히 풀린 눈동자가 그의 유희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입술을 지분거렸고 다른 한 손으로 가득 찬 잔을 들었다.

전부 마셔라.

검은 마법사는 간단히 경고했다.



그 뒤로 엄청나게 ㅅㅅ했다.

인생

탄화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