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07, 주제는 '오르골'.



Moment

w. Serinos



아이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귀신을 보며 귀신을 부리는 아이에게 밤은 자신이 아직 통제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날뛰는 시간이다. 그들이 아이를 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는 무언가를 요구하듯 호소하듯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울부짖는 그들의 존재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억울한 죽음, 원통한 죽음, 세상을 쉬이 떠날 수 없는 커다란 미련과 한(恨). 괴로움으로 얼룩진 비명. 목이 찢어져라 통곡하는 부모의 피눈물. 목청을 돋우어 가족을 찾는 아기들의 절박한 헐떡거림. 아이의 귀에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신음하고 있다. 거대한 원한과, 진한 슬픔과, 죽음에 가장 가까운 것들이.

유독 그들의 존재가 감각에 가득 들어차 차마 잠을 잘 수 없는 날이면, 아이는 얇은 이불보와 베개를 품에 끌어안고 걸음을 옮긴다. 자리에 앉아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익숙한 뒷모습.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옷깃을 잡아당기면, 항상 그렇듯이 고개를 살짝 돌린다.

잭은 안 자?

아이는 그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사실상 그 물음은 불필요했다. 그저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팔을 들어올리도록 하는 신호에 불과한 물음. 아이는 익숙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잠을 청한다. 그의 곁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 어떤 귀신도 아이의 눈과 귀에 닿지 못했으므로.

그러면 그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허리를 끌어안고 아무렇지도 않게 단잠에 빠져든 아이를 고요히 내려다보곤 했다. 들어올렸던 팔을 천천히 내려, 아이의 어깨 위에 얹는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온기가, 이토록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슴 깊숙한 곳을 파고들어, 잃었던 무언가의 끝자락을 더듬게 한다.

...잘도 자는구나.

생명이 뒤흔들릴 정도의 위압 없이는 타인과 눈을 맞출 수도 타인에게 목소리를 전할 수도 없는, 신이나 다름없는 이가 만난,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단. 감정을 느끼는 법을 잊었음에도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온기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염없이 아이의 자는 얼굴만을 내려다본다. 여명이 밝고 귀신이 물러가며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웃을 때까지.




로드 잭?

아이는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본다. 아이라 부르기에는 이제 어폐가 있을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때때로 다 자라 어엿한 성인의 모습을 갖춘 이에게서 아이의 흔적을 찾았다. 귀신을 부리거나 규율을 어긴 이들을 벌하거나 가무를 하거나 정사를 나누거나 하는 때에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그는 간혹 아주 의외의 곳에서 찾아내곤 했다.

예를 들어, 어설프게 귀를 막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는 고집쟁이의 얼굴에서, 그는 아직까지도 혼자 잠을 자기 힘들어하는 아이의 얼굴을 찾아낸다. 아이에게 귀신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누군가의 처절한 곡성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이 유쾌할 리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구나.

아이는 그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사실상 그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자연스럽게 옆에 앉으면, 아이는 잠시 어쩔 줄 몰라하며 뻣뻣하게 굳는다. 그가 태연히 한쪽 팔을 들어올린 채 눈짓하면, 아이는 망설이다가도 그의 품에 어색하게 안겨온다.

힘들겠구나. 귀신과 가깝다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밤잠을 설치던데.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턱이 있느냐.

태연히 대꾸하며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 아이는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표정을 가린다. 하기사 아무리 그에게는 아이라지만 다 큰 사내가 소년 모습의 이에게 안겨 있으니 어색할 만도 한가. 그리 생각하며 그가 문득 붉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춘다.

가볍게 눈을 한번 깜박이고 펼친 손바닥을 내려다보면, 작은 정육면체 모양의 물체가 놓여 있다. 옆면에는 붉은 모란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고, 윗면에는 금빛 열쇠가 하나 꽂혀 있다. 그는 구현한 물체를 조용히 아이의 손에 쥐여준다.

언젠가는 쓰게 될 날이 올 거란다.

사실 네가 그것을 영원히 쓰지 않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줄 수밖에 없구나. 그가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의아함을 안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 바라본다. 그는 그 안에서 다시 향수처럼 아이를 본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순박한 미소를 머금던 아이. 의무도 책임도 아무런 짐도 질 필요가 없었다면, 혼자 잠을 잘 수 없어 그를 찾던 아이의 모습 그대로 남겨둘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에서 오르골을 돌린다. 새어나오는 자장가가 삭막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온기를 가득 머금는다. 버릴 수는 없고 가지기엔 아픈 기억들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노래를 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의 뒷모습을 좇는다. 아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오르골을 감싸 안는다.

오르골 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안만큼은, 그 어떤 귀신도 아이의 눈과 귀에 닿지 못했다.


Hold on to this lull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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