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정신없이 일을 쳐내느라 생활이 뒤죽박죽이었다. 수시로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자는 일을 반복하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몸을 움직이는 거라곤 노트북 앞에 앉아 작업할 때뿐이라거나. 월급 받을 때는 염불처럼 외던 쉬고 싶다는 말이, 막상 (반강제로) 현실로 펼쳐졌을 때는 일에 목을 맨다는 역설. 


무소속 21일째. (업무종료일이 10월 말이니까 이틀을 제외하는 거로 퉁쳤다, 나름의 심리적인 기준이랄까)

운 좋게 초단기 알바를 재택으로 했다. 인터뷰 녹취를 푸는 일은 매번, 결과적으로, 뭐든 남는다. 물론 손목에 무리가 가서 그 후유증도 남았고. 


일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미묘하게 낯설다. 비슷한 일조차 소속되어 일할 때는 감흥이 덜했으니까. 그걸 매너리즘, 형식적(또는 능숙하게)으로 일하기, 또는 번아웃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무소속인 지금 그게 죄다 증발해버리고 말끔해졌을까? 글쎄.


무언가에 열중하고, 매진하고, 애쓰는 모습은 아름답다. 내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그 아름다움이 일의 영역으로 옮겨가면 왜 자꾸 퇴색될까. 일을 그저 돈벌이 수단, 욕심을 조금 내도 되는 상황이라면 하고 싶은 걸 택하는 정도로 빈약하게 바라봐서일까. 그렇다고 일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해 덕업일치(과거에 내 입으로 뱉었던 말이기도 하다), 자아실현, 삶을 뒤흔드는 무언가로 다루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시간이 남는 지금은 자꾸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보고, 이것저것 더하거나 빼보고, 거기에 돈도 집어넣어 봤다가, 상대를 상정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무소속이라는 전제로.


아직 퇴직금이 남았고, 어떻게 쓸지 나름의 계획도 누차 세워본다. SQL 수업을 결제해볼까, 운전면허를 이번엔 꼭 따야겠지, 이것저것 해보기 위해 복합기를 사볼까 등등. 돈 벌 때는 뒤로, 뒤로 미뤄둔 것들이 훅 앞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잠시 한눈팔면 12월. 연초에 세운 계획 가운데 몇 개는 줄을 그어야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최근 공부하고 있는 애자일 방식으로. 그 동력은 요 며칠 입 밖으로 반복적으로 외던 노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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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단 생각이 늘 어렵게 하지




애매하고 모호한 삶 사이를 헤집어 사람을 기록으로 남겨요. 프리랜서 인터뷰어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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