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한창 분노가 일렁일 때에 썼던




물론 나도 금이 좋다. 

하지만 얼음장같이 차가운 실버는 중학교 시절, 지독하게 앓았던 중2병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은. 차갑고 반항적인 이미지의 대표주자. 수갑. 수갑은 아니다.

 

한쪽 귀에 반짝이는 실버 십자가 귀걸이를 하는 것이 간지의 완성이었던 때, 나는 반항적인 모범생으로 컨셉을 설정했다.

컨셉 소화력은 엄청났었다. 전교 1,2등을 다투는 성적이었지만, 절대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학생은 아니고, 일진들과 시답잖은 농담도 곧잘 하지만, 그들보다 태생적으로 내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었다.

쓰고 보니 더 엄청나다. 정말 지독한 컨셉충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날고 기는 애들 사이에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어정쩡한 상위권의 숙명으로, 내신과 수능, 입학사정관을 모두 준비해야 했었다.

3학년 때는 정말 피똥 싸는 줄 알았다. 실제로 싼 적은 없지만, 그 1년 동안은 중세 암흑시대에 버금가는 시기였다.

수업을 들으면서 오로지 시험에 나오는 것만 좀비처럼 외운다. 자습시간에는 교무실로 가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선생님들께 검토받고,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내용을 전부 엎는다. 야자시간에는 모의고사 6개년을 미친 듯이 푼다. 틈틈이 예상 질문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면접 준비도 한다. 집에 가서는 입학사정관에 기재할 동아리 활동 보고서, 독후감을 작성한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말에는 내신 관리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자습했다. 이건 미친 짓이다.

 

2년의 노력과 1년의 피똥으로 대학은 나름 잘 들어갔다. 하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뺏긴 나머지, 중학교 시절 컨셉질을 하며 인생 재밌게 살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개고생 해서 대학 들어갔는데 학점이고 취업이고 아무것도 신경 쓰기 싫었다. 그래서 1학년 때는 동아리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술에 절어서 지냈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허무했다. 2학년 때부터 맘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점 4.2를 받았다. 그런데 역시 허무했다.

 

하라는 거 무시하고 꼴리는 대로 살아도 시시했고, 시키는 대로 생산적으로 살아도 재미없었다. 이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뒤질 것 같았다.

애초에 당연한 결과였다. 대학부터 억지로 들어간 건데.(대학이 이제 필수고 의무사항이지 않은가) 거기서 하는 활동이 재밌을 리가. 당연 노잼..

 

우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자본주의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 배우고, 내 재능을 돈과 연결 짓는 방법을 구상한다.

역시 생각 없이 살면 멍청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얼렁뚱땅 김제로의 진지하고 코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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