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이 파란 불꽃 위에서 달구어지고 있다. 포도씨유를 둥글게 뿌리고 프라이팬을 두어 바퀴 돌린다. 낡은 가스 레인지 옆에 놓인, 할부가 한참 남은 핸드폰에서는 요즘 즐겨 듣는 인터넷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오늘도 채팅창에 많은 분들이 모였는데요. 출석부터 부르고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서둘러 채팅창에 입장한다. DJ가 직접 기타를 치며 부르는 출석 노래의 거의 마지막 순서에 내 닉네임이 불린다. 그제서야 나는 만족스러운 듯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어느새 프라이팬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나는 달걀을 프라이팬 모서리에 힘주어 툭 치고는 껍질을 깬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걀 껍질 속을 들여다 본다. 비어 있다. 손가락으로 훑어보아도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달걀판에서 다른 달걀을 꺼내 깨본다. 역시나 비어 있다. 나는 깜짝 놀라 잠시 멈춰 서있다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다. 찰칵. 그리고 사진첩에 들어간다. 사진첩에는 한 장의 사진도 없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그제서야 라디오가 멈췄음을 깨닫고 홈 화면으로 돌아간다. 깨끗이 비워져있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만지는 것마다 껍데기만 남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새 것처럼 비워져 냉매가 우웅 도는 소리만 들린다. 옷장 문을 열자 모든 옷은 사라져 있고, 침대에 앉으니 매트리스가 푹 꺼진다. 책을 펼치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얀 종이뿐이다. 책상 서랍도, 장식장도, 봉제 인형도, 모든 것이 텅 비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놀람에 이어 공포에 질린 나는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껍데기만 남았다. 그 때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깐만, 내가 현관문을 연다면?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현관문을 열면 어떻게 될까. 방 안이 비워질까, 밖이 비워질까. 나는 현관문 옆에 맨발로 쭈그려 앉아(신발장도 비어버렸기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방 안이 비워지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 무섭다. 아냐, 침착하게 접근해보자. 이대로 여기 앉아있는다면 굶어 죽고 말겠지. 하지만 문을 열었는데 나는 안 사라진다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방 안이 비워지고 나도 사라진다면, 또는 방 밖이 비워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도, 문을 연다면 탈출구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남들이 들으면 믿어주지 않을 테지, 사실 나도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걸. 나는 무섭고 서러운 마음에 훌쩍이며 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눈물은 흐르지 않고 그대로 뚝뚝 떨어진다. 할 수 있어. 해야 돼.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며 심호흡을 한다. 셋 하면 여는 거다, 하고 혼자 마음을 먹었다. 하나, 둘, …

셋.

짧은 글을 씁니다.

작짐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