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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근친 입니다.






 

 

 

 여주네 아버지가 재혼을 하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폭발하여 대화도 거의 안하고 지내는 상태였다.

 누굴 만나는지도 몰랐는데 재혼이라니. 여주는 어머니가 떠올라서 화가 났다.

 그치만 본인이 재혼 하겠다는데 내가 뭐 어쩌겠어. 여주는 한숨을 쉬고는 누구와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토요일 오후 6시.

 

 그렇게 미야네 가족과 여주네 가족이 만났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자리에 나온 여주와 쌍둥이는 서로를 탐탁치않게 쳐다봤다.

 

'양아치...'

  

 이게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갔는데도 인상이 드러워서 나온 첫인상이었다.

  

 비싼 식당인데도 여주는 밥을 깨작대듯 먹었다. 불편해. 불편해. 앞으로 저 사람들이랑 한 집에서 살아야한다고? 시커먼 남정네 둘이랑 살아야한다니.. 그치만 새어머니 될 분은 되게 좋아보이네. 저분이 좋은 분이니까 아들들도 괜찮을라나.

  얘기가 오고가고 여주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려고 노력했다. 어머니 될 분이 보실때는 표정관리, 아닐때는 쉬어가기.

  

 아 제발 독립하고 싶다.

 대학이라도 좀 멀리 갔더라면 독립했을텐데.

 그러면 저 사람들이랑 불편한 동거 할 일 없었을텐데. 심지어 대화를 나눠보니 쟤네가 나보다 한살 많다네.

 여주는 죽어도 오빠 소리는 안할거라고 다짐했다.

  

"아 그럼 여주에게는 오빠인거네. 여주 어릴때 오빠 갖고싶어했잖아. 잘됐지?"

"아...하하...그랬..죠..."

  

 어릴때 뭘 모르니까 한 소리구요.. 그리고 핏줄도 아닌 사람을 오빠라고 할 생각은 더더욱 없구요...

 노란머리는 재밌다는듯 씨익 웃었다. 아 재수없어, 무슨 생각 하는지 뻔하다.

 

"내도 여동생 갖고싶었는데 잘됐네. 오빠 소리 함 들어보겠다."

  

 여주는 당장에라도 가운데손가락을 날려주고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갈색머리는 노란머리 말은 상관 없다는듯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맛있게도 먹었다.


 여주는 잠시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이터..라이터 어딨어...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나오지 않아 입에 장초만 물고 신경질을 내고있는데, 갑자기 라이터가 눈 앞에서 탁 하고 켜졌다.

  

"화장실 간다매."

 "아.." 

 

 덜 재수없는 갈색머리였다. 

 엉거주춤 불에 담배 끝을 갖다대어 습 하고 빨아들이곤, 여주는 갈색머리를 보았다.

 

"..고마워요." 

"내 앞에서도 예의 차리게?"

 

 반말 써라. 라며 가볍게 말한 그는 자신의 입에도 담배를 하나 물곤 깊게 빨아들였다.

 불편하다. 한살 많고 같이 살아야하는 피 안섞인 가족이라니. 진짜 진지하게 자취방 구해달라고 해볼까.


"내도 불편하다. 너도 불편하지?"

"..어." 

"피차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닌거같은데. 그냥 서로 터놓고 살자. " 

"......."

 

 터놓고 산다는게 뭘까. 대놓고 불편한 티 팍팍 내고 살아도 되는건가? 여주는 어느정도까지 예의를 지켜야할지 고민했다. 

 

"진짜 가족처럼은 못지내도 친하게는 지내자고. 한집 살아야하는데. 그리고 내는 울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효자구나?"

 

 담배가 다 줄어들기라도 하면 다 피웠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할 수 있으련만. 천천히 타들어가는 담배에 여주의 속도 타들어갔다.

  

"너거들 안들어오나!" 

 

 노란머리가 둘을 불렀다. 여주는 바로 담배를 끄곤 들어갈 시늉을 했다. 그러자 갈색머리가 여주의 손목을 살짝 붙잡았다. 으 닿았어. 여주는 살짝 소름끼쳐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내 효자처럼 굴려는것도 있긴 한데....니랑 잘지내면 재밌을거 같기도 해서 그런다." 

"...난 재미 없을거 같은데." 

"술 좋아하나."

 

 

.

 

.

 

 

 

 그 질문에 망설이다가 "좋아한다"라고 대답한 여주였다. 이 불편한 식사 자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마실래? 

"지금?" 

-어. 츠무도 있다.

 

 츠무? 아, 노란머리 아츠무 별명인가. 아까 술 좋아하냐고 물어본게 이거 때문이었나 싶어진 여주는 다시 또 망설였다. 친해지면 재밌을거 같다니, 진심일까. 되게 재수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엄마 될 분은 몹시 좋은 분인것 같아 보였다. 얘네랑 잘 지내두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주는 "그래 그럼. "이라고 대답하곤 약속 장소로 나갔다.

 

 쌍둥이는 미리 술집에 들어가 앉아있었다. 대화를 좀 나누려는 마음에 룸에서 먹자고 했더니 나름 괜찮은 곳을 골라왔다.

  

"여동생 안녕?"

 

 노란머리가 킥킥대며 인사했다. 갈색머리는 예의없는 제 형제를 퍽 때리곤 여주에게 앉으라고 했다. 여주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야 노란머리. 너 재수없으니까 적당히 해."

  

 여주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에 노란머리의 입이 벌어졌다.

  

"부모님도 안계시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거라 생각하지마."

"와..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니 학벌만 좋은 양아치제?"

  

 양아치는 무슨... 여주가 궁시렁거렸다.

 

"됐고 뭐 시킬까? 뭐먹고 싶나."

"매운것만 아니면 다 괜찮은데.."

"오.. 매운거 싫어하나. 여동생 취향 하나 알아가네." 

"재수탱이."

"이게 왜 재수탱인데!"

  

 노란머리가 하는 말은 다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미운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힌것 같았다.

  

"됐다 둘 다 그만해라. 이거랑 이거 어떠나. 술은 뭐 마실래."

  

 갈색머리의 중재 덕분에 티격태격대던걸 멈추고 주문을 해나갔다.

 

 

.

 

 

"여↘주↗야↘."

"오사무, 내 이름 여주라고. 여.주."

"알긋다.. 여-주-."

  

 오사무가 사투리 억양으로 이름을 부르자 여주는 장난스럽게 표준어로 바꿔주었다. 여주는 이제 갈색머리를 오사무라고 불렀다. 노란머리는 여전히 맘에 안들어서 노란머리. 아츠무는 저도 이름으로 부르라며 찡찡댔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셋이서 술 마시자."

"셋이서? 쟤는 빼면 안돼?"

"아 진짜 너무하네 니"

  

 여주가 킥킥대며 아츠무를 놀렸다. 재수탱이긴 하지만 오사무가 내 편이 되어주니 놀리는 맛이 있었다.

  

"삐약삐약대지 말고, 술 자꾸 빼네 너"

"내 술 잘 못마신다...."

 

 여주는 아츠무의 말을 무시하고 술잔을 가득 채워줬다. 놀리기 좋은 후배가 생긴 기분이었다.

  

"오빠라고는 안할거가."

"웩. 극혐."

"됐다. 바라고 말한거 아이다."

 

 의외로 오빠 소리를 듣고싶어하는 오사무에 여주는 싫은티를 팍팍 냈다. 그걸 본 아츠무가 푸스스 웃으며 여주를 바라보았다.

 

"내는 오빠 소리 듣고싶은데. 귀엽다 아이가. 여동생이 오빠오빠카면."

"틀니 압수. 넌 진짜 왜그러냐?"

"아 와~ 여동생 생기믄 좋잖아~ 사무 니도 여동생 갖고 싶어했다 아이가. 어릴때 막 낳아달라고 울고.."

  

 술 잘 못마신다더니 볼이 발그스름해서는 얼굴 근육이 풀린채 헤헤대며 웃는다. 진심으로 여동생을 갖고 싶었나. 아츠무는 말을 이어갔다. 

 

"니 처음 봤을땐 양아치같았는데... 그래도 말 나눠 보니까 내 또래 같고 좋네. 여동생한텐 뭐 해줘야 좋아하나? 누가 괴롭히믄 말 해라"

"뭐래..." 

 

 아츠무의 직설적인 표현에 여주는 왠지 귀가 빨개지려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귀 뒤로 넘긴 머리카락을 앞으로 빼내어 가렸다.

 오사무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츠무보고 이제 그만 마시라며 술잔을 뺐었다.

  

"즉당히 해라 니 취했다."

"동생아, 니 매운거 못먹으면 뭐 좋아하나?"

"오글거려, 그냥 이름 불러."

"느끼한거 싫어하나. 자꾸 오글거린다카네."

"말을 말자."

 

 아츠무는 혼자서 "그름 달다구리 좋아하나.."라고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떨궜다.

 에휴. 오사무는 아츠무를 옆으로 밀어 쇼파 의자에 눕혀 놓고는 잔을 채웠다.

  

"니 원래 이래 독하게 타주나."

"놀리고 싶어서."

  

 맛있는 소맥을 타주겠다며 아츠무의 잔에 소주 비율을 확 높인 여주였다. 덕분에 훅 가서 저렇게 잠들었고. 주는대로 받아 마시는것도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오사무는 여주의 표정이 풀어지고 자세도 편해진것 같아보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볼때는 표정관리도 못할정도로 불편해하더니, 역시 술마시자고 하길 잘했네.

  

"사귀는 사람은 있나."

 "응."

 "같은 학교?"

 "아니."

  

 여주가 핸드폰을 켜서 제 애인을 보여주었다.

 

"잘생겼지." 

"....아이돌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여주의 핸드폰 화면에는 아이돌 사진이 있었다. 여주는 웃고는 화면을 껐다.

 

"뻥이야. 좋아하지도 않아. "

"니 은근 장난기 많네."

  

 여주도 볼이 살짝 발그스름해져서는 살짝 취한게 보였다. 기분 좋은가보네. 이쯤에서 들여 보내야하려나. 오사무는 속으로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너는?"

"내도 없다. "

"그으래..."

  

 아까 식당에서는 깨작거리더니 이제는 안주 없인 술을 못마시는 사람인것 마냥 와작와작 맛있게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뭘 더 시켜줘야하나, 아니면 진짜 들여보내야하나 한층 더 고민되는 오사무였다.

  

"야. 우리 한 집에서 살면 진짜 불편하겠다. 그치?"

"..그르게. 방구도 맘대로 못뀌겠네."

"아 그게 제일 불편하겠다. 아 벌써 불편해."

  

 여주는 깔깔대며 웃었다.

 

"하~진짜, 근데 너희 어머니 진짜 좋으신분 같더라. 너무 아까우셔. "

"와, 너네 아버지도 좋은 분 같던데."

"... 됐다. 어차피 잘 지내야하는데, 그치?"

  

여주의 표정이 한순간 안좋아졌다가는 입에 고기를 한점 물고는 다시 좋아졌다.

 

"한집 살더라도 각자 방은 있을테니까... 집 어디에서 구한대? 들은거 있어?"

 "ㅇㅇ동. 못들었나."

 "아.. 대화를 별로 안해서. 집 봤어?"

 "엉. 각자 쓸 방은 널찍하니 괜찮드라."

 "오~ 안방 다음으로 넓은방 내꺼!"

  

 난 옷이 많거든. 하며 여주는 냠냠 안주로 나온 꼬치를 먹었다. 오사무는 그래그래.하며 잔을 채워주었다.

  

 

.

 

 

 

 일찍 들여보내야하나 고민했지만, 결국은 오사무도 욕심이 나서 늦게까지 술을 마셔버렸다. 여주는 기분좋게 취한 정도였고, 오사무는 조금 알딸딸한 정도였다. 여주는 더 마실수있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걱정할수 있으니 그만 마시자고 했다. 아직 덜 깬 아츠무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는 여주를 택시에 먼저 태웠다.

 

"도착하면 연락해라. "

 "응, 너도 잘들어가."

 

 아츠무도 웅얼거리며 "잘..가..."하고는 손을 까딱였다. 여주는 피식 웃고는 차 문을 닫았다.

 

 좋은 친구 하나, 귀여운 재수탱이 하나. 이렇게 두명의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앞으로도 재미있겠다. 하고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첫인상 진짜 구렸는데. 근데 친구라서 편한거지 한집에서 사는건 불편하지 않을까?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는 의문이 올라왔다. 흠... 하고 제 핸드폰의 일기장에 토독토독 오늘 있었던 일과 고민거리를 적는 여주였다.

  

 

 

.

 

 

 

"...택시 번호 외워라..."

 "어. 사진 찍어뒀다."

 

 오사무에게 기댄채 비틀거리며 아츠무가 말했다. 오사무는 진작에 멀어지는 택시의 차 번호를 핸드폰으로 찍어둔 상태였다.

 다음 택시를 잡고는 아츠무를 집어넣었다. 아츠무는 눈을 감은채로 중얼거렸다.

  

"여주 재밌드라..."

 "......어. 재밌드라."

 

 그러곤 다시 고개를 떨군채 잠에 들었다.

 오사무는 여주가 집에 도착해서 문자를 하면 바로 답장하려고 폰을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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