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05

Dolce ; 드림 평일 전력

제 1회 주제 : 봄비, 그리고 우산 하나

하이큐 야쿠 모리스케 드림

 


 빗줄기를 가늠하던 손을 내리지도 못하고, 갈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체육관 밖에서 만날 땐 더욱. 손가락 끝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선배는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항상 잠그지 않았다. 곧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때문일까. 그 틈으로 드러나는 목선을 훔쳐보곤 했다. 생각보다 굵고 단단해보여서 영락없는 남자라고 느꼈다.

선배에게서 보이는 의외의 모습에 당황하고, 또 당황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황하다가…… 갑자기 비를 뿌리는 하늘을 황망히 올려다보았고, 나를 부른 선배에게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못했다.

“우산 없어?”
 “엑.”

결국 고개를 기울인 선배가 먼저 물었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선배는 허둥대는 나를 의아하다는 듯 보다가 자기 우산을 펼쳤다.

“같이 쓸래?”
 “에에에엑. 아, 아뇨. 괜찮아요! 이 정도 비야 얼마든지 맞을 수 있고!”
 “뭐?”

나는 무작정 뒷걸음질 쳤다. 순전히 호의라는 걸 알지만 선배와 한 우산을 쓸 수는 없었다. 못 이기는 척 저 아래로 기어들어갔다간 나는 호흡곤란으로 죽을 것이다. 죽어버릴 것이다. 신이 주신 기회라며 타협하고, 병약소녀도 아닌 주제에 내숭을 떨다간, 심장이 폭발하거나 숨이 멈추거나 어떤 사인으로든 나는 죽을 것이다.

기껏 권유해준 사람에게 팔을 내젓고 발을 구르며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오히려 실례에 가깝지만, 저 우산을 함께 썼다간…… 내가 죽는 것은 둘째 치고, 선배의 명예가 실추될지도 모른다.

어제 리에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너. 야쿠상 좋아하지?”

오늘 저녁메뉴에 대해 읊는 말투였다. 마지막 드링크를 리에프에게 건네던 나는 잠깐 숨이 멎었다. 간신히 되찾은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고, 팔다리를 휘저어대다가, 소리 없이 리에프를 구석으로 끌고 왔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감싸 안으며 물었다.

“어, 어떻게 안 거야?”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뭐라고!”
 “비밀이었어?”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눈에 보이잖아. 야쿠상 대할 때만 완전히 다르니까…… 뭐야, 비밀이었구나. 좋아! 나도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선심 쓰듯 말하더니, 상체를 낮춰 소곤거렸다.

“사실 다른 사람은 모를지도. 나, 눈치 빠르잖아.”

아니, 네가 알면 전부 다 아는 거야. 야쿠상까지.

나는 밤새 퇴부를 고민했다. 그러나 옹졸한 욕심에 져버렸다. 퇴부해버리면 선배를 만날 핑계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뒤로 부원들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오늘만큼은 부활동을 쉬고 싶었지만, 주전에게 흑심을 품은 주제에 일도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줄까봐 겁이 났다. 어쩌면 뒤에서 비웃음을 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야쿠상은 매일같이 놀림을 당해왔을지도 모른다.

날뛰는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야쿠상과 마주쳤다. 봄비가 조용히 내렸고, 우산이 없었고, 친절을 베푼 선배에게 내가 있는 힘껏 내지른 말은.

“체육관 가까운 걸요!”

토독토독. 빗소리만 들려왔다. 선배는 눈가를 찌푸렸다.

“……나랑 같이 쓰는 게 그렇게 싫어?”
 “으어!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절대로 아니에요!”

싫냐니! 나는 양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어디선가 리에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헤에에에, 비오는 걸 핑계로 우산을 얻어 쓴 거야? 매니저 패기 대단. 으, 안 돼! 더 이상 선배를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어!

나는 비가 내리는 흙바닥으로 뛰어들었다. 아아…… 물뿌리개로 적셔지는 난초가 된 기분……. 놀란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야, 너…….”
 “하하. 사실 비 맞는 거 좋아해서요.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빗물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번졌다. 다행이야. 선배가 조금이나마 흐릿해서. 대충 선배가 있을 곳을 향해 웃어 보이고 뒤돌았다. 한걸음을 떼기도 전에 어깨를 붙잡혔다.

“농담 말고 같이 써. 전에 비 싫어한다고 말하는 거 다 들었거든?”

정수리를 두드리던 비가 멈췄다. 야쿠상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선배의 손이 자연스럽게 어깨에서 떨어졌다. 빗물이 앞머리와 속눈썹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선배도 나도 말을 안 하는데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 제발. 심장아. 죽지 마. 폭발하지 마.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애초에 네가 먼저 가봤자 내가 더 빠르다고.”
 “으아아…….”
 “너한테 우산도 안 씌어준 걸 다른 녀석들이 알면 날 쓰레기취급할 거야.”
 “으아아아아아…….”
 “고개 들고 앞 봐야지.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뭐, 잡아주면 그만인가.”
 “죄송해요…….”
 “뭐가?”
 “우산…… 없어서…….”
 “왜 사과하는 거야?”

손가락 사이로 내 단화와 선배의 운동화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려고 노력했다. 옆을, 안 보면 되니까. 그래. 넘어지면, 민폐니까. 돌이킬 수 없으니까. 힘내. 힘내자.



+

비의 계절의 모티프가 된...ㅋㅋㅋㅋ 전력입니다. 16년도라니... 1인칭이고 드림주 성격도 많이 달랐네요. 저때는 리에프까지 알아차려서, 리에프가 알면 부원들 모두가 다 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눈치 없는 걸로 바뀐 리에프가 폭탄 발언을 해줘서... 네... 다시 보니까 그때 감성이 새록새록... 야쿠한테 치이고 제일 먼저 쓴 드림이라 설렘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ㅎㅎ(그리고 2년째 연재 중)(완결은 나나요?)

@brise_muscat/하이큐 드림

청포도홍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