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난 널 - 윤현상







키스 앤 라이드

Kiss and ride








밤 추위로 얼어붙은 모래가 발밑에서 서걱거렸다. 리조트 소유의 프라이빗 비치라 인적이 많지는 않았다. 드문 불빛들로 길눈을 만들어가며 걷는 옆으로는 센 파도가 들이쳤다. 너무 빨리 나왔나. 몇 시지. 자정까지는 아직 조금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귀 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렸다. 후드를 뒤집어쓰려고 패딩 주머니 안의 손가락을 곰지락대는데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사위가 까만 와중에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 액정이 요란하게 빛났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동영이었다.

 

―모래모래. 겁도 없냐. 혼자 나가게. 빨리 들어오지.

―들어오라고? 야. 약속 어긴 건 너희들이거든.

 

애초에 여행지가 S시로 결정된 건,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열리는 불꽃놀이 때문이었다. 축제는 여기서 산 하나쯤은 더 넘어야 하는 반대편의 해변에서 열리지만, 이 곳 리조트의 해변이 지대가 비슷해 멀게나마 불꽃놀이를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숨은 명소라고 했다.

부모님께서 리조트 회원이셔. 내가 엄마께 여쭤볼게. 하고 나선 건 강이겸이었다. 강이겸의 부모님께서는 흔쾌히 패밀리 스위트룸을 내어주시는 대신, 위험하니까 술을 마시고서는 절대로 해변 가에 나오지 말아달라는 당부 하나만을 남기셨다.

어차피 밖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들어온 뒤엔 새 해가 되어 있을 테니, 합법적으로(?) 음주를 하자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게를 양껏 먹고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생각보다 일렀고, 이미 늘어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적당히 베란다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술병을 열기 시작했다.

한동영. 그걸 주도한 주제에 너무 당당하게 들어오라고 하는 거지, 지금. 추위도 잊을 만큼 부글부글해진 속을 달래는데. 수화기 건너편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랑 전화해, 모래야?

 

강이겸 목소리였다. 줘 봐. 강이겸의 목소리가 본격적이 되더니 전화기가 넘어간 것 같았다.

 

―나 술 안 마셨어. 내가 나갈게.

“아니야. 완전 괜찮아! 여기 사람도 좀 있고. 하나도 안 위험해.”

―동영이 말이 맞아. 너 위험해. 거기 사람 많대도 일행은 아니잖아.

 

강이겸은 참, 유전적으로 다정하다. 문득 지난 학기의 체육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월요일마다의 체육 수업이 강이겸의 반과 겹쳐, 매 주 한 번은 만나야 했던 때.

학기 초에 강이겸 앞에서 여자애 하나가 넘어졌다.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도 남자애들은 특유의 어리숙함이 있어서 그런 상황에선 모른 척 옆으로 빗겨가거나 고세희, 얘 넘어졌어. 하고 알고 있는 다른 애를 부르기 마련인데, 강이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애 앞으로 손을 뻗었었다. 몸을 숙여 괜찮아? 묻고,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그 애의 손바닥이나 드러난 무릎을 살피는 것을 모두가 몇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았다. 무릎이 까졌다는 진단 까지 남기곤 그 애의 친구가 달려올 때까지 강이겸은 여자애의 옆을 지켰었다.

강이겸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면, 꼭 그런 류의 말을 하면서 사람 얼굴을 빤히 본다는 것. 잘생긴 얼굴 믿고 이렇게 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더라, 하는 걸 꿰뚫어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그냥 전부 몸에 배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런데 나 왜 이렇게 강이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응? 모래야.

 

강이겸이 수화기 너머로 채근하는 소리에 금새 현실로 돌아왔다.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강이겸에겐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내저었다.

 

“어, 저기 준우랑 미나 있다. 나 쟤네랑 같이 있을게. 그럼 안 위험하잖아. 그치?”

―…….

“왜 말이 없구 그르냐.”

―알겠어. 애들이랑 다 조심하고.

“어. 그럴게.”

―응.

“그럼… 끊을게!”

 

끊긴 전화를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후드를 푹 눌러 쓰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준우랑 미나가 근처에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찾아보면 해변 가에 있긴 있겠지. 하지만 미나는 오늘 준우에게 고백한다고 했었다. 둘이 같이 있을 시간을 만들려고 미나가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아는데 미나에게 가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몇 걸음 걷다 뒤를 돌았다. 널찍한 리조트 건물 어디 쯤 우리 방을 찾아보았다. 애들은 아직 베란다에 나와 있지도 않았다. 아마 재현인 이미 잠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사실 이렇게 혼자 나온 건 어느 정도 반항 심리였다. 자정의 불꽃놀이가 하이라이트라는 말로 나를 설득한 미나는 정작 준우랑 둘이서 쏙 나가버리고, 재현이랑 동영이는 초저녁부터 술에 취해 늘어져 있질 않나, 원래 불꽃놀이니 새해에 의미부여 하는 거 감흥 없어 하는 세희도 나가잔 말에 심드렁했다.

좀 토라져서 혼자 나올 때만 해도 무섭단 생각 안 했었는데, 위험하다느니 하는 얘기를 듣고 나니까 괜히 오싹해서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불꽃이 터지기 까지는 아직까지 십오 분 정도 남아 있었다. 들어갈까, 그냥…

운동화 앞코로 덩어리진 모래를 쪼아대었다. 얼어서 굳어 있던 모래알이 사그락, 소리를 내며 가루로 갈라졌다. 어둠 속에서 겨우 시야를 틔워가며 의미 없이 모래를 어그러뜨렸다. 젖은 흙이 스니커즈 앞코에 달라붙었다.

 

“모래야.”

 

갑자기 들린 강이겸의 목소리가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아까부터 계속 강이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까 낮에 내 이름 부르는 줄도 모르고 딴소리를 한 게 생각나서 새삼 민망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운동화라서 괜찮기는, 흙 다 들어갔네. 양말 아래 까끌대는 이물감을 느끼며 다시 바다 쪽으로 반 바퀴를 빙 돌았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안 그래도 바다 물결도 겨우 보일 만큼의 새까만 밤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시야가 너무 까만데.

 

“윤모래.”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든 곳엔, 강이겸이 있었다. 좀 전에 내 시선을 암흑으로 만든 것이 검은색 옷을 입은 강이겸의 가슴팍인 걸 깨달았다. 화들짝 놀란 내가 뒤로 반걸음을 물러났다.

 

“애들이랑 같이 있겠다더니.”

“그게, 지금 막 찾으러 가려고…”

“공준우랑 강미나 저 뒤에서 키스하고 있던데.”

“뭘 해?”

 

너무 큰 소리로 되물어놓고, 스스로도 놀라 급하게 입을 막았다. 벌어졌던 반 걸음을 한 걸음으로 좁혀 다시 강이겸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소리 낮춰 물었다.

 

“진짜야?”

 

강이겸이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두 눈으로 봤다는 애가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내가 심각해져선 우뚝 세운 검지를 강이겸의 입술 앞에 갖다 댔다.

 

“비밀이야. 다른 애들한테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왜?”

“아니,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무슨 입이 이렇게 가벼워?

“내가?”

“그렇잖아.”

“아닌데. 나 입 무거운데.”

“뭐?”

“하나도 기억 안 난다는 말, 진짜였구나.”

 

‘그 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았다. 미나 이야기에 잠깐 잃고 있었던 경계가 재빠르게 돌아왔다. 강이겸의 입술에 닿았던 손가락이 서서히 떨어져 내려갔다.

 

“한 번 입 가벼워 볼까.”

“아, 잠깐만! 아무 말도 하지 마!”

“뭐, 기다릴게. 마음의 준비 될 때 까지.”

“재현이한테 말 안한 건 고마워.”

“음.”

“근데 나 정말, 아무 기억이 안나. 업혀 들어왔다는 거 아빠한테 들었어.”

“…….”

“미안. 강이겸.”

“…….”

“아니… 아니다. 고마워. 그날 나 데려다줘서.”

 

강이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강이겸의 처분을 기다렸다. 듣고 있는 강이겸은 말이 없었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인지 후련한 기분이었다. 진작 이렇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동안 강이겸을 피해 다녔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 날 내가 혹여 어떤 추태를 부렸든, 강이겸과는 뭔가를 실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이였는데 왜 그랬을까.

 

“나는 모래 네가 그날 일 때문에 일부러 나 피하는 줄 알았어.”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기억이 안 나서 그랬다고 하니까, 다행인 것도 같고.”

“뭐?”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얘길 늘어놓곤, 강이겸은 잠시 음. 하며 말을 가다듬었다.

 

“처음부터 모래 너인 줄 알았어. 유원지에서.”

“아….”

“모래야.”

“응?”

“사실은 그 날,”

“…….”

“…네가 나한테,”

 

강이겸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어떤 예고도, 심지어는 사람들이 연호하는 카운트다운조차도 없이 터져버린 폭죽 때문에. 퍼엉, 거대하고 느린 폭발음과 동시에 사위가 순간 백색으로 뒤덮일 만큼 강렬한 섬광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강이겸과 내가 동시에 몸을 해변가로 향했다. 피융, 하고 한 줄기 불꽃이 구불구불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내 우두두두, 하고 원형을 만들며 넓게 퍼져나갔다. 초록색, 분홍색, 주황색이 마구 섞여 결국에는 하얗게 부서지는 그 움직임에 따라 사위가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가까이서 봤다면 연기나 화약가루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선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해변 건너편의 축제장 소음이 그제야 희미하게 들려왔다.

 

“와아….”

 

끊임없이 터지는 불빛에 현혹되어 감탄을 내뱉느라 좀 전까지 강이겸과 나눴던 대화들이 모두 휘발되어 버렸다. 어릴 때 부모님과 여기서 불꽃놀이를 봤다던 강이겸도 넋을 놓고 새카만 하늘에 뿌려지는 형형색색의 모양새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쌕쌕거리며 치던 파도도 일순 고요해지고, 일정한 리듬으로 울렁거리는 검은 물결 위로는 반사된 불꽃들이 자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12월 31일이 아니라 1월 1일. 나와 내 옆의 강이겸은 스무살이 되었다.

토스터기에서 갑자기 튀어 오른 식빵처럼 무방비했고, 그런 생각을 하자 무서워서 눈물이 좀 날 것도 같았다. 아직 불꽃놀이가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고,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 스무살이네.”

“그러게.”

“싱겁다.”

“난 아닌데.”

“왜?”

“모래 너랑 둘이서 새해를 맞는 건 계획에 없었으니까.”

“음… 어제까지만해도?”

“응. 어제까지만해도.”

 

불꽃놀이 같은 거, 순간적이고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절정이 지나고 막바지 잔류 불꽃들만이 간헐적으로 튀어 오르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아이들이 생각나 뒤를 돌았다. 불 켜진 발코니에 익숙한 무리가 우르르 달라붙어 있었다. 술이 다 깬 아이들의 시선이 마지막 불꽃을 향해 일제히 높이 솟았다가 불꽃이 꺼지는 방향으로 내려왔고, 땅거미로 마지막 불빛이 사라진 뒤에야 나와 강이겸을 보고 손짓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재현이와 세희는 허리를 감고 붙어서 불꽃놀이의 잔상에 기대고 있었고, 동영이가 멀리서도 표정이 보일 만큼 크게 씩 웃으며 외쳤다. 야! 축하해! 우리 이제 스무 살이야!

 

“그게 축하할 일인가.”

 

혼잣말에 가까운 강이겸의 읊조림은 나만 들었겠지. 그건 순수한 궁금증에 가까워 보였으나 어쨌거나 내 막연한 감정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좀 위로가 되었다는 생각. 뭐라고 해석할 수 없는 무표정의 강이겸을 흘긋 보자 눈이 마주쳤다. 쳐다보는 데에도 용건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어서,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 내가 먼저 말했다. 이제 들어갈까?

 

 

 

 

 

 

 

 

“공항에 나올래?”

 

리조트로 돌아오는 길에 강이겸은 그렇게 말했다. 왜 나한테? 순간적으로 드는 의문을 애써 얼굴에서 지워버리며 내가 대답했다. 언젠데?

 

“2월 1일.”

“헉. 야, 그럼 졸업식은?”

“못가지 않을까. 비행기로 네 시간 정도 걸려서.”

 

그렇구나… 하고 내가 중얼거리자 강이겸이 눈을 휘고 웃었다. 왜, 아쉬워?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홧홧해졌다. 얘 웃는 얼굴에 왜 여자애들 심장이 두동강 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당연하지. 그래도 삼 년을 보낸 곳인데. 마무리를 다 못하는 거 같잖아.”

“…그래서,”

“응?”

“올 거야? 공항.”

“아.”

 

2월 1일. 낯설지 않은 날짜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뭔갈 깨닫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강이겸의 팔을 잡았다. 내 미안한 얼굴을 보고 강이겸은 이미 답을 예상한 것 같았다.

 

“나 그날 고연대에 시험 보러 서울 가야해.”

“문창과 실기?”

“나 문창 지망인 거 어떻게 알았어?”

“왜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야, 내가 말한 적 없으니까.”

“아닐걸.”

“뭐?”

“기억이 안 나신다면서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강이겸이 걸음을 옮기자 그 애의 팔을 잡고 있는 내가 자연스럽게 딸려가 안으로 들어갔다. 또 ‘그 날’얘기를 던져놓고 강이겸은 아무렇지 않게 층수를 눌렀다.

나 대체 어디까지 얘기한 걸까. 친구들 다 붙었는데 나만 떨어졌다고, 강이겸 붙잡고 자정이 넘도록 신세 한탄만 35절 까지 한 거 아냐?

지난 두 달간, 강이겸이 나에 대해 오해 했을까봐 피하면서도 동시에 해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나는 아무래도 이상한 애가 맞는 것 같다.

 

“강이겸. 내가 정말, 기억이 나면 정식으로 다시 사과할게.”

“음.”

“너 가고 나서 기억나면… 그럼 어떻게 하지? 아. 편지 쓸게. 손 편지.”

“혹시 몽골에는 인터넷이나 전화가 안 터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당연히 아니지! 그냥, 음…”

 

우리가 전화를 할 사이는 아니니까. 라는 말을 어떻게 순화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대뜸 강이겸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응?”

“알겠어. 편지 써.”

“어? 어. 그래. 몽골 가면 재현이 통해서 주소 보내줘.”

“알겠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또 먼저 걸어 나가는 강이겸에게 끌려가는 느낌을 받을 때에야 나는 내가 아직도 그 애의 팔을 잡고 있다는 걸 알았다. 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에 복도를 다 걸어 문 앞에 도착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야 나는 겉옷을 벗는다는 핑계로 강이겸을 붙잡은 팔을 떨어뜨렸다.

한동영은 담배 피러 나갔어. 제일 안쪽의, 남자애들이 쓰는 방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고로 우리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냐. 재현이가 그렇게 덧붙이자마자 방 안에서 세희와 재현이가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머리 맞대고 유튜브나 보고 있을게 뻔해서 내가 막 팔을 빼낸 패딩을 껴안으며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보냈다. 그래. 어련하겠어. 역시 코트를 벗고 난 강이겸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좀 멋쩍어서 콧등을 긁다가 내가 먼저 말꼬를 텄다. 준우랑 미나는 아직 안 들어 왔나봐.

 

“그러게.”

“강이겸. 네가 준우한테 전화라도 해 볼래?”

“뭐가 걱정이야. 같이 있을 텐데.”

“그래도….”

“내버려 둬. 동영이가 나갔다가 데리고 올 수도 있고.”

 

아, 그런가. 반박할 틈 없는 강이겸의 말에 바보같이 수긍했다. 텁텁하고도 후덥지근한 실내의 공기를 느끼며 내가 후드를 벗었다. 내 등 뒤에 현관과 가까운 쪽의 큰 방이 있었다. 욕실이 달린 여자애들 방엔 들어가 봐야 나 혼자일 거였다. 혼자 방에 있는 게 그렇게 내키진 않았지만, 나와 있으려면 남자 방을 빼앗겨 거실에 있어야 할 강이겸과 어색한 시간을 연장해야 할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머뭇거리며 몸을 반쯤 돌려 문 손잡이를 잡았다.

 

“준우랑 미나 오면 애들 다 같이 술 마실 테니까, 난 그때까지 좀 쉬고 있을게.”

“모래야.”

 

목소리에 붙들린 사람처럼 내가 문고리를 쥔 채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응?

 

“기억 안 나더라도 편지 해줘.”

“그래도 돼?”

“그냥. 네 편지 받고 싶어서. 재현이한테 주소 꼭 보낼게.”

“…어. 알겠어.”

 

강이겸이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혼자 픽 웃고는 다시 얼굴을 들어 나를 마주했다. 안이 따뜻한데 강이겸은 아직 추운 모양이었다. 하얀 강이겸의 얼굴 양 옆으로 귀 끝이 붉었다.

 

“진작 이럴걸 그랬다, 너랑.”

“뭐라고?”

“아냐. 고연대 시험 잘 봐.”

 

고연대 시험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지만 강이겸은 벌써 그렇게 말했다. 어떤 종지부처럼 느껴졌다. 졸업 여행은 내일 아침이면 파하고, 곧 있을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선 강이겸과 내가 늘 그랬듯 끝과 끝에 자리해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는 분위기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서로 단둘이 나누는 마지막 대화가 될 거라는 걸 강이겸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 공업화 수준의 도시라는 그 곳. 겉모습만을 보고는 차마 어느 문화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다양한 나라의 색들이 혼재되어 있고, 종합병원도 대학교도 딱 하나씩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작 울란바토르 도시 경계만 벗어나도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나라랬다, 몽골은. 문명국가라기 보단 대자연이라는 말이 더욱 압도적인 곳.

그저 정석의 인간, 또 더없이 도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강이겸이 대입까지 포기하고 곧 그런 곳으로 떠난다는 걸, 내가 감히 의외라고 해도 될까.

 

“고마워.”

 

충분한 말이라고 할 순 없을지 몰라도 어쨌거나 최선이었다. 고작 그 한마디로 전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말들을 강이겸은 이해했을까. 이과 전교 1등이니까, 똑똑한 애니까 그랬음 좋겠다고 막연하고 어이없는 기대를 멋대로 했다. 바보 같은 나에게 강이겸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당연하게 강이겸을 넘겨짚었던 날들이 너무 많았다. 만인에게 다정하고 상냥하지만, 그 안에서 확실한 선이 있는 사람.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갈 건지조차도 스스로 선택할 것만 같은 강이겸의 그 견고한 바운더리 안에, 겨우 나 같은 애는 평생 들어갈 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이제 와서야 네가 어떤 앤지 알고 싶다고 하면, 너무 늦은 거겠지.

이런 표정일 때의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면 말야.

 

 

 

 

 

 

 

 

실기고사 시작이 십여분 남았을 때 감독관이 핸드폰을 걷으러 왔다. 앞줄부터 폴리백에 차례대로 핸드폰을 넣는 걸 보며 주머니에서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전원을 끄려던 찰나에 미처 확인 못 한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봤다.

 

[한동영이 운전해서 공항 간다.]

[근데 얘 깜빡이 어떻게 켜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 아직 30km도 안 갔는데 벌써 죽을 고비 두 번 넘겼어.]

[걔가 돌아가는 길에 서울 들러서 너 데리고 C시 간다고 벼르고 있으니까 알아서 도망쳐.]

 

발신인은 재현이었고, 이미 두 시간도 전에 온 문자였다. 애들이 공항에 왜 가는지,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몇 시 비행기일까, 그런 생각을 하느라 실기시험 직전인 걸 잊을 뻔했다. 답장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핸드폰을 껐다. 마침 내 앞으로 다가온 폴리백 입구에 휴대폰을 넣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고연대. 실기 비중이 높다는 데에 희망을 걸고 상향으로 지원한 곳이었다. 올 대입의 마지막 실기이기도 했고. 사실 어느 정도는 포기한 마음으로 왔다. 앞자리에서 시험지가 넘어올 땐 어쩐지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시험지에 이름을 쓰는데 칠판에 제시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어수선하던 분위기마저 잡아먹힌 듯 고요해졌다. 또각이는 소리와 함께 분필을 내려놓은 감독관이 자리를 비켜 옆에 바로 서자 이윽고 제시어가 눈에 들어왔다.

 

배웅. 밤. 계단.

 

정해진 시간 안에 제시어를 관통하는 글을 시험지에 손으로 적는 것이 규칙이었다. 고삼 내내 학원을 다니며 모의 실기를 봐온 결과 내겐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긴 나머지 시험지에 그걸 옮겨 적는 시간이 늘 빠듯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제시어를 보자마자 나는 스케치용 용지를 한 쪽으로 밀어놓고 바로 답안지를 펼치곤 연필을 들었다. 그리곤 여기저기에서 연필이 사각대는 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기도 전에 제목을 적었다.

 

<KISS AND RIDE.>

 

심사를 할 문창과 교수들 중 절반이 영어로 된 제목은 읽지도 않고 넘겨버릴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내가 쓰는 글이지만 그 속의 이야기가, 그리고 인물들이 저절로 움직여서 그들끼리 이야기를 만든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랬다. 오늘따라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 이미 원고를 반 이상 채운 뒤였다.

 

“어…?”

 

이미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간 종이를 다시 앞으로 넘겼다. KISS AND RIDE라니. 나 이런 단어 모르는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왜 이런 제목을 적었지? 내 이야기 속의 남녀는, 기차 역의 ‘KISS AND RIDE’ 라고 적힌 표지판 아래에서 이제 막 이별의 단계를 끝내고 헤어지려는 참이었다.

표지판.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밤이었고, 차가 끊겨 인적이 없는 전철역 앞이었던 것 같다. 짙은 남색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나는 그 앞에 세워진 동그란 표지판을 봤다. 파란 표지판 안에 하얀 글씨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KISS AND RIDE.

 

‘윤모래.’

 

강이겸이 나를 이름으로 부른 게, 졸업여행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그 날의 목소리였다. 유원지에서 강이겸을 봤던 날.

필름이 아주 빠른 배속으로 되감기 되었다. 영영 생각 안 날 것만 같았던 그 날의 기억들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하자, 나는 들고 있던 펜을 손에서 떨어뜨려 버렸다.

 

 

 

 

 

 

 

 

 

“나 윤일고 3학년 2반 강이겸.”

 

윤모래, 하고 불러놓고 곧장 신원을 밝힌 건 내가 걷듯이 뛰고 있어서였을 거다. 만취 상태에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는 걸 알았고, 이런 시각에 누가 뒤에서 쫓아온다고 생각하자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한, 또 알고 있는 목소리에 발걸음이 급히 멎었다.

 

“미안. 나쁜 의도로 따라온 거 아니니까 무서워하지 마.”

 

다행이다,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차마 뒤는 돌아봐지지 않았다. 그 정도의 경계심을 상대 역시 허물지 않고 강이겸은 꽤 거리를 두고 따라 멈춰 섰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 김재현 친구고.”

“…….”

“이건 확실히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긴데 너 지금 되게 비틀거리고 있어.”

“그래서 따라온 거야?”

“어. 데려다 줄게. 아니면 재현이 불러줄,”

“안 돼!”

 

앞뒤 안 재고 내가 홱 뒤돌았다. 그러자 그 곳엔 정말로 강이겸이 서 있었다. 내가 냅다 강이겸에게 다가갔다.

 

“김재현은 안 돼. 걔가 알면 아빠도 알고 세희도 알고. 나 큰일 나.”

“그럼 데려다줄게. 가자.”

 

강이겸은 제 3의 선택지를 제시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항공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나를 앞서가려는 강이겸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아직 야간버스 있어! 나 여기서 버스만 타면 집에 한 방에 가거든. 나 진짜 혼자가도 돼.”

“버스를 타겠다고 여기까지 걸어 온 거면 더 문젠데.”

“왜?”

“여기 전철역이야,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분명히 버스 정류장 팻말을 보고 걸어왔는데. 강이겸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지상전철역 앞이었다. 한산한 도로 위에서는 내가 탔어야 할 막차가 반대편에서 텅텅 빈 채로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헐. 당황한 내가 강이겸을 붙잡은 채로 휘청거렸고, 그걸 강이겸이 팔의 힘으로 단단히 받쳐 세웠다. 내 몸이 완전히 기대어져서, 언뜻 강이겸이 나를 뒤에서 안고 있는 것 같은 자세였다. 거 봐, 너 비틀댄다니까. 강이겸의 말이나, 몸과 몸이 붙어 있다는 사실 같은 게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 버스 타려고 내가 얼마나 빨리 걸었는데… 내가 씩씩거리자 뒤의 강이겸이 헛웃음을 뱉었다. 너 별로 빨리 안 걷던데.

 

“아니, 나 분명 파란 표지판 보고 걸어 온 건데!”

 

손으로 머리 위를 가리키며 고개를 바짝 들었다. 눈을 찌푸리고 시야를 좁히자 낯선 영어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Kiss and ride? 이게 무슨 뜻이야?”

“정차 전용 구역이니까 주차 하지 말라고 세워둔 거야. 역까지 데려다줄 때 여기서 내려주고 가는 거지.”

“와.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

 

 

난데없는 감탄에, 강이겸이 반짝거리는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검색했지, 방금. 싱거운 대답에 내가 더 싱겁게 응답했다. 아. 그렇구나. 그러고 나서 찾아온 잠깐의 침묵은, 술기운에도 너무 어색했다. 내가 짐짓 목소리를 고르며, 뭐라도 할 말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아니, 처음부터 주차금지라고 써 놨으면 내가 헷갈릴 일도 없을 거 아냐. 안경 없어서 대충 영어만 보고 BUS STOP인 줄 알고 왔단 말야.”

 

어색함을 지워보려는 내 아무 말에 강이겸이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게. 왜 그럴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도 덧붙여주면서.

 

“아. 알 것 같아. 배웅하기 전에, 보통 잘 가라고 키스하고 내려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왜, 엄마가 아이들 학교 내려주면서 뽀뽀해주는 그런 거!”

 

강이겸의 동의를 얻고 싶은 내가 뒤를 돌았고, 그와 동시에 마주친 강이겸의 얼굴에 놀라 입을 닫아버렸다. 강이겸은 상체를 낮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강이겸과 내 사이가 얼마나 가까웠는지 순간적으로 코끝이 닿은 것도 같았다. 내가 갑자기 뒤도는 바람에 강이겸이 반사적으로 내 허리를 감싼 자세였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당황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이겸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런가보네.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저기, 강이겸.”

“응.”

“나도 너 알아.”

“…….”

“재현이랑 동영이 친구라서가 아니라, 그냥. 너 몇 반인지도 다 알고 있어. 우리 논술학원도 같이 다니잖아. 반은 다르지만.”

“그렇지.”

“그런데 너는, 나 어떻게 알아?”

“무슨 뜻이지?”

“너 사람 이름 되게 못 외우잖아. 우리 밖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나 교복도 안 입었고. 그래서 나는, 당연히 네가 몰라볼 줄 알았어.”

 

왜 갑자기 그런 말이 쏟아졌는지 모르겠다. 사실 너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는 단서라도 되는, 말하는 동시에 나조차도 깨달아 버리게 되는 말들.

 

 

“그럴 리가 없잖아.”

 

참 한결같게도 침착하고 다정한 강이겸은, 말을 다 끝내고 숨을 잘게 몰아쉬는 내게로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이미 고개를 뺄 만큼 빼서, 더 이상은 물러날 곳도 없는 나는 온전히 내게로 쏟아지는 강이겸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았다. 강이겸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웃고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

 

“정말 몰랐어?”

“…….”

“내가 너 좋아해, 모래야.”

 

뭐? 하고 입모양으로 되물었지만 미처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나를? 왜? 하는 의문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만큼 갑작스러웠다.

 

“진작 말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여태 못 해서, 그냥 안하려고 했었어. 사실 나 어디 멀리 가거든.”

“…….”

“놀랐지. 미안.”

 

둔하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미끄러운 아스콘을 헛 밟은 내가 중심을 잃었고, 강이겸이 내 이름을 부르며 두 팔로 넘어지려는 나를 감싸 힘껏 지탱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일이 일어났다.

겨우 몸의 중심을 잡았을 땐, 이미 입술과 입술이 닿아 있었다. 충돌이었다. 내 윗입술이 강이겸의 입술 아래 언저리에 달라붙었다가, 그걸 인지하고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한 순간 일어난 사고치고는 너무 달콤한…

 

 

 

 

 

 

 

 

 

“학생, 답안지에 볼펜으로 덧쓰기 안하면 연필이 번질 텐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고사실에서 제일 먼저 답안지를 제출하고 복도로 달려 나갔다. 고사실 옆 대기실에서 핸드폰을 찾았고, 시험을 본 건물을 벗어나 근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어디로든 찾아 가는 동안에는 그 뒤의 기억까지가 서서히 돌아왔다.

벼락같이 멎었던 술기운이 입술이 닿은 온도에 열 기운처럼 다시 돌기 시작했고, 그대로 필름이 끊기며 다리가 풀린 나를 강이겸이 업어 올렸던 것, 택시에 함께 타 우리 아파트를 말하던 강이겸의 목소리…

어떻게 잠을 잤을까. 어떻게, 그런 걸 다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늦어서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강이겸의 고백보다도 어떻게 더 늦을 수 있는지.

쉴 새 없이 자책하며 일단 지하철에 올라타고 봤다. 역사 안 지하철 노선도를 짚으며 공항철도로 환승할 수 있는 역이 어딘지 무작정 찾는 것과 동시에 재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길고도 길게 느껴졌다.

 

―윤모래. 시험 잘 봤어?

“나 지금 공항 가는 중이야, 재현아!”

―뭐?

“강이겸, 이겸이 봐야 해!”

―너 뭔 소릴 하는 거야? 너 어딘데? 시험은 보고 나온 거야?

 

공덕역에서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을 비집고 바깥으로 빠져나가자 곧장 환승구간이 눈에 보였다. 내 다리는 어느새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강이겸한테 좀만 기다리라고, 나 좀 보고가라고 해. 재현아, 어?”

―윤모래. 잠깐만,

“일단 끊을게. 나 빨리 갈게!”

 

달리고 또 달리던 다리가 멈춘 건 코앞에서 객실 문이 닫히고 떠나버린 공항 철도의 스크린 도어 앞에서였다. 양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찬 숨을 마구 내쉬었다. 너무 숨이 차고, 너무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묻고 싶어. 언제부터인지. 어느 순간에, 또 어떤 이유로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얼마 없었던 우리의 접점. 그중 어느 순간에서 네가 그런 확신을 가졌는지. 그런 것들 말이야.

또 궁금해졌어. 고작 움트기 시작한 이 작은 마음이, 이대로 영영 남이 될 것만 같던 너와 나의 미래를 어디까지 데려다 놓을 수 있을지.

너를 본다면 내가 말할 수 있을까. 나도 네가 좋다고. 내가 너보다 더 늦은 탓에 차마 고백하지 못하더라도, 이겸아. 나는 지금 널 보러 가.

부디 시간이 허락해주기를. 너와 내가 끊임없이 엇갈리는 사이에서, 이 짧은 마주침을.

 










다들 아시겠지만 키앤라는 성장물이자 세월물(?) 입니다.. 이야기 안에서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장편이에요.

그리고 조금의 리마스터링이 있을 예정이에요! 원래의 이야기에서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있더라도 나름의 재미로 즐겨주세요!


나는 사랑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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