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나의 차이점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만. 정말, 정말… 유진은… 평소처럼…


'이걸 어쩌면 좋지?'


이 사태를…


"아이씨! 사람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쩌자는거야!!"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도 오늘 처음 몸소 겪게 되었는데 해결이 가능하다면 과학으로 이 세상을 정복했겠다며, 평소보다 과격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유권은 나름대로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 화를 내는 중으로, 어쨌건 둘 다 화가 났다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원래 몸의 손바닥 정도의 크기가 아니였다면 유권도 진도 사뭇 위협적으로 보일 법도 하였으나 지금은 겨우 그 정도 크기로 침대에서 내려가는 것도 큰일로 보였다.


"우선 커피 한 잔 하면서 생각해보는건 어때요?"


겨우 나온 결론은 그것이었다. 카페인! 그래, 피곤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필수품! 


"이 판국에 커피 소리가 나와?"

"그럼 지금 당장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수나 있나요?"

"아니,"


커피가 필요한 이유를 바로 댈수도 있지만 꼭 그래야만 알아들을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뚱한 표정으로 유권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너도 진짜 사람 태평하다. "


흥, 유진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곤 먼저 침대 아래로 폴짝 뛰어내려버렸다. 




부엌으로 나온 진은 어떻게 해야 저 커피 머신에 닿을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중이었다. 뒤이어 유권이 방 밖으로 나온 것을 알았으나-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인 것도 알았지만-개의치 않고 커피 머신을 향한 여정의 첫발짝을 내딛기로 했다.


"유권씨."


이리 와 보라는듯 바닥에 놓인 책 옆에서 유진이 손짓했다. 이렇게까지 커피를 마셔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면, 아마 이건… 현실 도피의 일종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며 상황을 잊고 싶은 것도 한 이유로 작용했지 않을까. 지금이야 당사자들은-적어도 유진은-평범한 아침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한 쪽을 들어볼래요? 식탁 의자까지 옮기면 올라가기 수월 할 거예요."


지금 몸의 반 조금 안 되는 두께의 책을 옮기는 내내 유권은 생각외로 협조적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일어나자마자 힘쓰는 일을 하냐. 지치지도 않아?"


"커피 안 마시면 죽어?"


"몸 이렇게 된 것도 화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


지칠 수록 유권의 불평은 늘었으나… 그것도 조그마한 상태로 하니 들어줄만 했다. 다시 말하자면 평소처럼 흘려듣는게 어렵지 않았다는 말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저 불평도 끝날 것이라 굳게 믿으며, 진은 책 위로 올라서서 유권을 불렀다.


"유권씨!"


저 좀 올려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대강 요구사항이 파악되는 상황이었다. 책을 딛고 선 유진, 조금 모자란 높이…


"야 이…!"


"한 번만요…"


정말 안 해줄 것이냐, 묻듯 유진은 힘없이 책 위에 쪼그려 앉아 성질이 빼죽 돋은 유권을 바라보았다.


"커피 맛있게 내려줄게요."


커피 머신이.


조금 크게 성질을 내나 싶던 유권은 결국 평소와 다름없이 진의 바람을 들어주게 되어있었다. 그 정도 성질에 유진이 기가 죽을리는 없지만서도, 황당무개한 일이 일어나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한 몫 했을 테다. 사실 이 상황에서 화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럴 바에는 뭐라도 정신을 돌리는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오!"


결국은 한 번 큰 소리를 내면서도 결국은 유진을 들어 의자 위로 올려주는 것이다. 유진은 만족스럽게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의기양양하게 커피 내려올게요, 말하곤 식탁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말하고 가네…'


작은 발자국 소리가 여러번, 그리고 컵을 끄는 소리에 이어 삑, 삑, 무사히 커피 머신을 누르는 소리까지. 이젠 됐겠지 싶을 즈음, 저 위에서 답지않게 조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권씨, 조금 큰일났어요."


"뭔데?"


"저희 크기로 커피를 이만큼 마시면 죽지 않을까요?"


"뭐?"


"카페인 너무 많이 마셔서 죽는거 아니냐는 말이에요."


"아니, 진짜 골 때리네. 그래서 뭐 어떡하자고?"


"그렇게 골 때리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요?"


진은 따끈한 커피잔을 피해 다시 식탁으로, 식탁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며 종알거렸다.


"이러다 이 상태로 죽으면 무슨 꼴이래요? 장례식도 못 열어줄거라구요. 거기다가 이 모습 그대로 죽으면 저희는 영영 실종 처리가 될지도 몰라요. 끔찍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라구요."


"참, 당신도 신기하다…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이 다 드십니까? 아니, 이런 상황이라서 그러나…"


차근 차근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유권은 어이없이 대꾸하며 털썩, 쌓아둔 책 더미 위에 앉았다. 평소라면 책 깔고 앉지 마라, 잔소리를 했을 유진도 그 옆에 앉는 것 외에는 별 대꾸도 하지 않았지. 하기는, 그 전에 책을 밟고 올라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더라면.


"무슨 커피 하나 마시는 걸로 생각이 거기까지 가냐?"


하지만…, 운을 뗀 유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죠. 웬걸, 이 몸 크기면 커피를 얼마나 마셔도 괜찮은지 가늠하는 것도 어렵다는걸 깨닫고 나니까."


힘이 쭉 빠지네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고 만다.


"유권씨는 다른 생각이라도 있어요? 지금 이 상황 말이에요. 뭘 어쩌면 될 것 같아요?"


"글쎄… 그래도 커피는 안 떠오를 것 같은데."


놀리듯 말한것 치고는 꽤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하자 유진은 꽤 불량한 태도로 턱을 괴고 이젠 낯설어진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앉은채 그대로. 온통 이렇게 크게 보이다니. 걸리버 여행기에 나온 것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깔고 앉은 책의 표지를 보고, 또…


"유권씨, 이 책 내용 알아요?"


"뭐?"


"저희가 지금 앉아있는 책이요."


유권은 '뭐길래 그래, 힘들어 죽겠네.' 중얼거리면서도 제목이 궁금하긴 한지 폴짝, 내려와 읽곤 다시 옆에 앉는다.


"'잠자는 경찰과 일곱 범인' 이게 왜?"


'제목 참…'


"제목 제가 지은거 아니니까 표정 좀 풀어요."


"그래서, 이게 왜?"


"이 책이 동화에서 차용한 설정을 쓰거든요. 그리고 동화에서 흔히 쓰이는 클리셰가 뭔지 알고 있나요?"


"몰라. 뭔데?"


하기사, 동화 같은 케케묵은 유년기의 이야기는 아마 성인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기 없을 소재기는 했다. 유진도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므로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주와 키스요."


시큰둥하게 듣던 유권이 그래서 뭐? 묻듯 고개를 까딱이고, 진은 정말 이게 꿈이 아닌지 재차 의심하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정말 손바닥만한 외계인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것도 저주라면 키스로 풀리는게 아닐까요?"


그리고 유진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가정이 틀리더라도 가정 외의 무언가는 맞출 수 있다는 데에 이 책을 걸어도 좋았다. 유권의 지금 표정이 딱, '진심이야?' 라고 묻기 직전의 표정이라는 것. 초면이었어도 이건 알아 보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보지 말아요. 별 다른 방법이 있는게 아니라면."


"하다 못해 해결책 정도는 좀 이성적으로 판단합시다. 이게 뭐 우리가 동화속에 들어와있는 줄 알아?"


"그럼 이 상황이 현실 같아요? 이성적인가요?"


"아, 그런걸 따지자고 한 말이 아니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거죠, 유 진씨~"


"그럼 이제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지 들어보죠."


하곤, 팔짱을 끼고 오만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다.


"그건… 없는데…"


입을 삐죽거리는 모양에 그쵸? 대꾸하곤 의기양양하게 콧방귀를 흥, 뀌었다.


"그럼 해봐요, 키스."


"뭐?"


"제가 할까요?"


"뭐?"


유권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기를 반복하자, 답답해진 유진은 다시 제 팔로 팔짱을 끼곤,


"키스요. 제가 할까요, 아니면 유권씨가 할래요?"


"그… 진심으로?"


"진심으로."


이거 말곤 방법이 없는데 뭐라도 해봐야 돌아갈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냐, 구구절절 설명하느니 한 번 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놀라운 논리의 비약으로, 유진은…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해보자면, 이 상황이 조금이라도 현실적이었더라면 이런 방법은 죽어도 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그래서 유진은, 간단히 말해서… 공주를 구하는 기사처럼… 정신이 저기 식탁 즈음에 올라가 있는 유권에게 입을 맞췄다.


"미, 미, 미, 아니, 미쳤, 아니…"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키스라기 보단 뽀뽀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뭐, 크게 상관은 없지 않을까. 말도 안된다고 하지만 정말로 돌아왔으니까!


유진은 우당탕탕, 의자 넘어지는 소리와 정말 돌아왔다는 현실에 덩달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뒤늦게 복잡한 얼굴로 굳어버린 유권을 발견했다.


"봐요, 진짜죠?"


근데 지금 정신 없는건 유권씨 같아요… 말하는 대신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기다리면, 금방 돌아오겠지.


유진의 생각과는 다르게, 새로 커피를 내려오자 유권은 베란다로 나가버렸다.


그게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어쨌건 유진은 평화로운 아침을 되찾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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