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마녀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였다. 그리하여 삿된 힘을 쓰고, 신의 의지에 반하며, 교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도원이'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으나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다정한 이들은 곁에 없고, 이곳에서조차 그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손에 묻은 것이 끈끈하다 못해 뻣뻣하게 말라갈 때 즈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그의 입을 눌러 막는다. 죄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마녀'들도 죄를 제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니 저 역시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을 죄인이라 부른다면 마땅히 그리될 것이었다. 진실과는 별개로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 세상이 아니던가. 그러니 도원이는 진실을 아는 유일한 창구를 닫는다. 단절의 사유는 체념. 그런데도 떨리는 다리를 뻗어 더 깊은 숲으로 향하는 것은 살고 싶기 때문이다.


1.

그는 자신이 헤매고 있는 곳이 어딘지는 정확히 알았다. 이름하여 마녀의 숲. 그토록 경멸하면서도 힘을 두려워하여 감히 누구도 발걸음 하지 못하는 곳. 적어도 이곳에서 경비병들에게 잡혀 교수형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죽음이 찾아온다면 모를까. 그는 물 흐르는 소리를 쫓아 터벅터벅 걸었다. 우선 뻣뻣하게 굳은 피를 씻어내고 싶었다. 지독한 피 냄새가 어떤 짐승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


작은 개울에 손을 씻어낸 원이는 얼굴에 튄 핏방울도 꼼꼼히 닦아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얇은 옷가지를 하나 버려야 했지만 장기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마녀의 숲에서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기간이 얼마가 되었든, 마을에서 생존하는 것보다는 길게 살아남겠지. 살인은 아주 무거운 죄였으니. 그는 차가운 물에 식은 체온을 높이기 위해 마른 가지를 주워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나뭇가지 타는 소리가 탁, 타닥, 불규칙적으로 튀는 것을 들으며, 졸음에 고개를 숙였다.


2.

깨어난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쫓기던 몸이었으니 사람의 목소리에 예민한 것은 당연지사. 특히나 산 사람이라고는 없을 마녀의 숲에서 들리는 목소리라 하면 당연히 마녀의 것일 테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는가? 마녀는 씻지 못할 죄를 지었고, 이제는 자신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데.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살려줄지도 모른다. 정말 턱도 없는 생각인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답은 죽음뿐이었다. 삶이 절박한 것은 아니었으나 죽음에 목매달지도 않았다. 그뿐이었다.


"어디 보자, 여기쯤 숨었나?"


마치 노래처럼 운율을 가진 목소리가 들린 것은 기껏해야 개울 너머였다. 이대로라면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였으므로 그는 주저 없이 일어나 소리가 나는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했다.


"찾았다."


가벼운 웃음소리, 이곳이 마녀의 숲이 아니었더라면 마음을 놓을 만큼 사랑스러운 소리기도 했다. 마녀가 가볍게 손짓하자, 도망치던 원이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 높게 떠오르진 않았지만, 도망을 저지하기엔 충분한 높이였다. 놀란 얼굴로 굳어버린 그는 미약한 반항을 했으나 그 정도로 도망칠 수 있다면 마녀의 손아귀에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완전히 잡혔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마녀는 그 꼴을 보곤 큰 소리로 웃었다.


"어머머, 우는 것 좀 봐! 왜 우니?"


원이는 작게 몸을 떨었으나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말을 못 하니?"


고개를 젓는 모양에, '그럼 왜 말을 안 하고 그러니?' 하고 되묻는 것이 조금은 답답한 모양이었다.


"저… 그…"


마녀는 귀를 쫑긋 세우듯 소리에 집중했다. 바람이 스치는 나뭇잎의 소리, 작게 흐르는 물소리 사이로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


"…누구신가요…?"


"멍청하기도 하지! 네가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모르니? 하긴, 여간 멍청한 사람이 아니면 이 숲으로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지."


침 삼키는 소리가 목소리보다 큰 것 같다. 마녀는 웃음을 멈추고 공중에 띄운 그를 향해 손을 까딱거렸는데, 그러기 무섭게 마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것을 눈앞에서 보니 겁을 먹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죄… 죄송합니다…"


"됐어. 너, 사람이라도 죽인 얼굴을 하고 있는걸 보면…"


"……."


재밌겠네. 바람 소리에 묻혀 크게 들리지는 않았으나 겁에 질린 초식 동물처럼 귀가 바짝 선 원이는 분명하게 들린 네 글자에 오한을 느낀다. 왜 당장 죽이지 않지? 죄를 물을 생각은 없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오두막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곳이 마녀의 집이겠지. 문을 열고 원이를 내팽개치듯 내려놓은 마녀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마녀는 금실 같은 머리칼을 늘어트리고, 눈동자는 어둠보다 검게 빛났다. 어딜 보아도 마녀라고 부를 만한 구석은 이상한 요술 밖에는 없는 것만 같았다. 마녀의 집이라고 해도 펄펄 끓는 수상한 가마솥이나 말린 개구리 같은 것으로 가득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내 숲에 들어온 건 전부 내 것이야."


"…?"


"그러니 너도 내 것이라는 말이지."


짓궂은 어린애처럼 웃은 마녀가 웃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더러웠던 옷이 눈 깜빡할 사이 깨끗해진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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