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Night


W. Micostella











화면 속의 너를 바라보았다. 미모의 여성과 정신없이 입술을 나누는 너를. 유난히도 도톰한 입술이, 그 아래위에 알알이 박힌 작은 점들이, 여자의 뺨을 쥐는 길다란 손가락들이, 하나같이 내것이 아닌 그것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아 손을 뻗어보아도-

닿는 것이라곤 차디찬 스크린뿐.


화면을 정지해 놓은채 감은 너의 기다란 속눈썹을 쓰다듬어본다. 움찔대지도 않는 너는 그저 액정 속에 갇혀 멈춰있을뿐. 그 투명함 위에 손자국을 남기며 주욱, 내 손이 미끄러져 내 다리를 스치며 떨어졌다. 소파로 돌아간 나는, 다시 리모콘을 눌러, 너를 움직이게 했다. 동그란 눈을 예쁘게 뜬, 한없이 다정한 너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린다. 그 상냥함이 고독의 냉기가 되어 나는 찬바람에 발발 떠는 어린애처럼 무릎을 두팔로 감싼채 한껏 움츠러들었다. 내게 향한 것이 아님에도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너의 눈동자가 미워서 고개를 푹 묻어보지만, 거실 가득히 울리는 너의 목소리만은, 파도에 쓸려가지 못한 조개껍질처럼, 내 머릿속에서 잘그락잘그락, 부서지는 일 없이, 그렇게, 잘그락댈 뿐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고요한 정적속에 나는 가만히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새벽 두시 반. 내일 오전 스케줄이 없는 네가 아직까지 잠들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삑삐빅-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도 없이 눌러본 익숙한 번호를 액정 위에 새겨보았다. 통화 버튼으로 향하려던 손이, 미처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정지한채 떨리는 것을 그대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후우- 내쉬는 한숨이 잘그락대는 조개껍질을 바스라뜨려 그 조각조각난 파편들을 심장 안으로 박아넣는다. 휴대폰을 소파 위로 냅다 던지고는 탁자 위의 맥주를 한캔 더 뜯어 피가 흐르는 마음에 들이부었다. 쓰라림이 방울방울 볼을 타고 떨어져 무릎을 적신다. 닦아낼 생각은 애저녁에 접어놓고, 끅끅 소리가 나도록 마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터뜨리고 나면, 내일 아무렇지 않게 너를 마주할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오늘같은 밤은, 혼자만의 비밀이어야 했다.











*          *          *











- 영화, 잘 봤어. 영화관에 가서 봤으면, 더 좋았을걸. 아쉽네.


새벽 세시 반. 네게서 짤막한 메일이 한 통 왔다. 두어번 입술을 달싹여 읽어보다가, 네 목소리가 그리워져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번이고 흐르도록, 너는 나타나질 않았다.


"음성 사서함에 메세지를 남기시려면 2번-"


마음에 작은 돌을 던진듯, 일렁이는 심장이 하마터면 손가락을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게 둘 뻔했다. 급히 통화종료를 누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한동안 그렇게 휴대폰을 끌어안고 있다가 메일 보내기를 눌러 짤막하게 한 줄 적었다.


- 내일도 일찍부터 촬영이라며, 왜 여직 안자고 있어.


보내기를 누르려다, 입술을 깨물고는 쓴 문장을 죄다 지워냈다.


- 다음 영화는 같이 가서 보자.


네 손을 잡고 영화관에 앉아있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고장난듯이 덜컹거렸다. 상상 속의 나는 영화 내내 너의 뭉툭한 손끝을 하나하나 쓸어보고 있겠지. 스크린에 고정된 너의 옆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겠지. 그리고 스크린 속 내가 여자의 볼을 감싼 순간, 내 손도-


어둠 속에 뻗은 손이 허공을 헤집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공허. 들고 있던 휴대폰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낙하했다. 멍하니 집어들고는 내 손으로 적은 문장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손가락을 움직여 모두 지워내었다. 새하얗게 빈 화면 위로 아주 간단한 한 문장을, 많은 것이 담긴 한 문장을 입력했다.


- 고마워, 좀 이따 보자.


'메일이 성공적으로 전송되었습니다.' 그 사무적인 글자를 눈으로 훑고는 휴대폰을 뒤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너를 만날때까지 앞으로 13시간. 이 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려면, 내게는 잠이라는 마법이 필요했다. 침대 위로 몸을 누이고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 네가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런 이루어질리 없는 소망을 끌어안고 입술을 달싹여 말해본다.


"おやすみ。"


닿을 수 없는, 닿아서는 안될 마음만이, 아스름한 달빛에 파랗게 빛나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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