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첫사랑


백루운은 잠시 4반 앞에 멈춰섰다. 2학년 4반. 여기도 여름의 더위는 피해가지 못했는지 많은 아이들이 에어컨 바로 밑에서 셔츠를 팔랑거리며 몸에 담긴 열기를 식히려 하고 있었다. 많이 더운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이 괜히 더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더 녹기 전에 전해줘야하는데. 잠시 머뭇거리다 평소처럼 자기 반인냥 4반에 발을 들였다. 백루운 왔냐? 저를 쳐다보는 눈빛에 백루운은 고개만 까딱인채 창가에서 책상에 입맞춤을 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졸린가. 여름이니 힘들기도 하겠지. 아쉬운 대로 뒤통수만 바라봤다. 이왕이면 한 쪽 얼굴 보이게 자주면 안되나. 


“강세하.”


그래도 깨워야 하니까. 조심스레 이름을 담아보며 손을 뻗었다. 복슬거리는 머리카락.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베이지빛을 바라보다 아예 의자를 가져와서 옆에 앉았다. 


“일어나 강세하.”

“...으응...”


습관처럼 손을 가져와서는 자기 볼에 댄다. 사람 놀라게. 잘 안자는 놈 걱정되서 깨웠더니 사람을 놀래키기나 하고. 괜히 심술나서 강세하의 볼을 조금 잡아당겼다.


“일어나 바보야.”

“...백루운?”


악몽을 꾸진 않았나. 날카로운 눈이 백루운을 향해 끔뻑이다 다시 반쯤 감긴다. 어제 뭘하고 잔 거야. 백루운은 걱정스레 강세하의 왼쪽 뺨을 만지작거리다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댔다. 아직 다음 수업이 있는데 자려고.


“차가워!”

“안 먹을 거면 말고.”

“어, 스크류바.”


자기가 좋아하는 딸기맛이라고 눈이 커진다. 덥긴 더웠던 모양인지 빠르게 포장지를 까더니 입에 쏙 집어넣는다. 귀여운 놈. 심장이 기분 좋게 박동한다. 백루운의 시선이 강세하의 얼굴에 닿았다가 다시 떨어진다. 


“덕분에 살았다.”

“너 또 늘어져 있으면 다음에는 안 깨운다?”

“깨워줄거잖아.”


14년차. 말을 안해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안다? 그건 소설에서만 있는 얘기다. 아니 있어도 적어도 강세하와 백루운 두 사람을 설명할 단어는 되지 못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강세하나 그걸 부정하지 않는 백루운에겐 설명이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백루운이 강세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단어니까. 


“나 간다.”

“이따 데리러 갈게.”

“그러든가.”


1반. 백루운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4반을 나오고서는 잠시 복도끝에 있는 자신의 반 팻말을 바라봤다. 딱 이 정도 거리가 있으려나. 고개를 돌려 4반 창 너머에서 강세하를 바라본다.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문채 누군가를 보기라도 했는지 저 멀리 창가를 바라본다. 


“...보고싶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망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그 원칙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첫사랑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너무 알것만 같았다. 아니 아직 첫사랑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겠지. 심장이 그저 멋대로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멋대로.


“...씨발.”


수돗가에 있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 너무 빨개서. 부정하는 자신이 우스워 지면 어쩌자는 거지. 백루운은 괜히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흘러서 손을 적심에도 수돗가로 향하지 않았다. 굳이 보고 싶지 않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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