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이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반쪽, 아니, 나 자신이 기억을 하나도 못 하다니.

 

 본래 칠흑깃과는 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 사실 모르지만 그냥 그러기로 했다.) 둘은 하나였다. 둘이 하나였을 때의 모습이나 정체 등에 대해서는 본인조차 기억이 희미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건 없다. 본래 자신들이 '크루하'라는 한 남자였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네 존재가 그의 환생이라면, 원래는 한 사람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둘로 나누어져 버렸고, 그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을 뿐,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다.

 하기야 이런 일을 보통은 기억을 못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잠시 머뭇머뭇했지만 이내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고, 잔디 바닥을 손으로 탁탁 치며 얘기해줄 테니 너도 와서 앉으라 권했다. 잔뜩 경계하던 그와 그의 소환수도 궁싯거리다 슬며시 순백깃과 마주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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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미안하지만 모두 사실이야."


"믿지마라묘. 원하는 게 뭐냐묘, 어디서 개수작을 부리냐묘."


"망고야..."


 자신의 얘기를 듣는 칠흑깃의 뒤에 살짝 숨은 소환수가 털을 세우며 위협적으로 하악질을 해댔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힘이 빠져 휘청이던 칠흑깃은, 잠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소환수를 토닥이며 달래준다. 

 

"뭐,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난 흑이한테는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아."


"그런데... 그래서 대체 넌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너랑 같이 있는 거!"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소환수를 흘겨보던 순백깃은, 칠흑깃의 대답에 귀가 쫑긋서며 한껏 기쁜 표정으로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놀란 칠흑깃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지만, 순백깃 덕분에 조용할 걱정은 없어 보였다.


"너와 난 원래 하나였지만 지금까지 떨어져 있었잖아? 지금까지 지내온 네 얘기들도 듣고 싶고, 앞으로는 어디든 함께 다니면서 너와 새로운 나날을 보내고 싶어! 내 반쪽인데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는 게 얼마나 분한 줄 알아? 그리고 우린 생긴 건 비슷하지만 서로 목소리는 이렇게나 다르잖아! 진짜 신기해! 내 목소리는 이렇게 얇은데 네 목소리는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아. 내가 오히려 우리가 하나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풍성한 꼬리와 귀를 살랑거리고 폴짝대며 잘도 재잘대는 순백깃 앞에서, 칠흑깃은 생전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생각하곤 커진 눈으로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소환수는 두 귀를 양손으로 막으며 눈쌀을 찌푸렸다.


"시... 시끄럽다묘..., 무슨 말이 이렇게 많냐묘."


"건방진 고양이놈..."


 순백깃과 소환수는 서로 으르렁대며 대치하고 있지만, 칠흑깃은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주변의 소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황당무계한 얘기가 다 있지? 혹시 꿈을 꾸고 있나? 하지만 저 흰 린족은 분명 내 눈앞에 있는데. 


"흑아, 나 배고파.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응?"


"어...? 어..., 아..."


 그때, 저 멀리서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올백 머리에 옅은 갈색 피부, 오른쪽 뺨에 X자 상처가 있는 거구의 곤족 역사였다. 그의 한쪽 어깨엔 쳐진 모양의 귀를 한 린족 여자가 타고 있었다.


"여어, 까만 꼬맹이. 그런 데서 뭐하냐?"


"아... 토라바사미..."


"?"


 칠흑깃과 아는 사이인 듯 보이는 거구의 사내가 나타나자, 기분탓인가 내 반쪽이 조금은 안도한 듯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마음에 안 든다.


"꼬맹이가 또 한 명 있었네?"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던 거구의 사내는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더니 실눈을 뜨며 칠흑깃에게 물었다.


"...뭐야, 너네 쌍둥이 이런 거냐?"


"많이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아냐. 그런데 짱버, 너야말로 네 어깨에 있는 건 누구야?"


 토라바사미라고 불린 사내의 오른쪽 어깨에 올라타 있는 강아지 꼬리의 린족 여성은, 고개를 그의 얼굴과 정반대쪽으로 한껏 돌리고는 애써 그를 무시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니, 마치 자신에게 상관말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아, 이 녀석은 하오방에게 곤란에 처해있던 걸 도와주고 오는 길이다."


"하오방이라니 위험했네... 뭐, 네 일에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너무 험하게 대하진 마."


"앙? 내가 어딜 봐서 험하다는 거냐?"


"......"


"걱정마라, 안전한 곳으로 잘 보내주고 올 테니까."


 둘이 아주 신났구만. 제 앞에선 잔뜩 움츠리거나 멍 때리면서 말도 제대로 안 붙여놓고, 저 거구의 사내와 잘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계속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았다. 저 '토라바사미'라 불리는 사내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내 소중한 단 둘만의 시간에 이렇게 훼방을 놓다니!


"흑아!! 나 배고프다니까!!"


"아? 뭐야, 너희들 밥 먹으러 가는 길이었냐. 그럼 난 이만 간다, 맛있게 먹어라."

 

"아..., 응. 나중에 보자."



 칠흑깃이 그렇게 인사를 하고 보내자, 순백깃은 곧바로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저 남자는 누구야? 누군데 너한테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거야? 하오방? 하오방이면 위험한 놈들이잖아? 걔네랑 연관있는 놈이야? 그럼 멀리해야지!"


"그런 거 아냐..., 그냥 친구야. 너야말로 오늘 만난 주제에 왜 이렇게 친한 척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맞지 않냐묘."


 그렇게 셋이 식당가로 걸어가며 투닥거리는 동안, 어느덧 해는 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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