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독자님들에게>

역시 비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9

세훈의 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에 떠 있는 김종인이라는 이름 세 자가 귀해서 가만히 바라만 보다가 문득. 받지 않으면 또 볼 수 있을까 해서 보기만 했다. 전화는 또 울렸다. 세훈은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화는 더 울리지 않고 끊겼다. 세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전화를 받지 않은 건 본인이면서 정작 전화가 다시 걸려오지 않자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세훈은 몸을 굴려 엎드렸다. 본인의 모습을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어리석고 찌질하고.

"오세훈."

'이젠 환청도 들리는구나.'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 이번엔 맑은 문소리가 들렸다. 이것도 듣고 싶은 탓인가.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화면에 뜨는 건 여전히 종인의 이름이었다. 세훈은 자신의 환영에 속아줄 생각으로 팔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답이 올 리 없지. 세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실실 웃으며 핸드폰을 손에서 놨다.

"오세훈."

"어?"

세훈이 반동을 받은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단걸음에 뛰어가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놀랐잖아."

종인은 핸드폰을 붙잡고 묘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놀랐다고 말했다.

"어떻게 왔어?"

"요즘 너 좀 이상해."

종인의 표정이 변했다.

"잠깐 들어갈게."

종인은 세훈의 답을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반쯤 멍해 있는 세훈을 제치고 열려있는 현관문의 틈으로 몸을 낮춰 들어갔다. 세훈이 뒤늦게 종인의 뒤를 따라갔다. 종인은 꼭 닫혀 있는 커튼을 끝까지 쳤다. 네 집인 양 창문이란 창문, 커튼이란 커튼은 다 활짝 열어놓았다.

"안 그래도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면서."

"어?"

"비타민이라도 섭취하라고."

'무표정으로 그런 농담을 해도 웃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진담인 건가.'

"혼자 살면 더 잘 챙겨야지."

"세훈아."

"응?"

"같이 살까?"

"뭐래."

세훈을 부르는 종인의 목소리가 너무 과하게 다정한 탓에, 세훈은 과하게 목소리를 굳혔다.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과하게 정색했다.

내가 놀라서 얼떨결에 그에게 안긴다든가 하는 흔한 드라마를 상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어쩌면 그보다 자극에 등골이 오싹오싹하다. 어디선가 찬기가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인 것만 같다.

"어이."

그가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면서 손을 강하게 잡아 온다.

세훈은 일어나 앉았는데도 정신이 멍했다. 이런 상황에 이런 꿈을 꾼 건 무슨 의미일까. 시계는 그가 평상시 일어나는 때보다 이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회사에 가 있어야 할 시간, 세훈은 병원에 있었다. 회사에는 오후 반 차를 내고 종인에게는 회사에 가는 척하며 온 병원은 불편했다. 이번엔 회사에서 또다시 한 쪽 얼굴이 굳어 곤란한 탓이었다. 언젠가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긴 했었지만, 막상 지척에 다가오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부분적인 신경 장애가 온 것 같습니다."

의사는 세훈이 아무리 봐도 알지 못할 엑스레이 사진의 일부를 짚으며 말했다.

"혹시 최근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던 적 없나요?"

"없어요."

"다행이네요. 일단 지금 소견으로는 일과성 허혈 증상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환자분도 아시다시피 장기적인 치료는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할 거고요."

"네."

"처방해드린 약을 다 복용하기 전에 몸에 마비가 오는 것 외에 다른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에 오셔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세훈에게 유리한 상황은 의사가 친절하다는 것뿐. 그는 더이상 의사의 말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의사의 말은 세훈의 한쪽 귀를 거쳐 다른 쪽 귀를 통과해 흘렀다. 그는 의사가 말하는 내내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다녀왔어."

세훈의 발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그러나 티 내지 않으려 목소리를 높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섰다. 곧바로 대답 없던 종인이 보였다. 그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흘리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훈의 호기심이 일었다.

"김종인."

"어?"

깊이 생각에 빠져 퍼뜩 깨듯 반응하는 종인.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그냥."

"별일 아니야."

"나한테 좀 의지하면 안 돼?"

"괜찮아."

"안 괜찮은 거 다 보여서 그래."

"너한테 말해도 나아질 건 없잖아."

"뭐?"

"네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잖아. 괜히 네 마음만 더 불편하게 만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미안."

싸늘한 공기가 몸을 에워쌌다. 세훈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씻으며 머리를 비우고 싶었지만 비어서 허전한 건 마음이었다. 머리는 꽉 차 새 폴더가 10개 이상 들어있는 휴지통 같았다.


밤은 왔다. 서로 간의 관계가 서먹해도 잠은 자야 했다. 먼저 잠든 세훈과 소리 없이 뒤척이는 종인.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까웠다.

"……인아."

"응."

종인은 자신을 부르는 세훈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알았다. 세훈은 자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종인은 그 느낌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우려는 있었다. 이게 맞는 길일까. 자신의 서투른 행동 때문에 세훈이 오히려 상처 입지는 않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모두 지나온 일이지만 이제 와 다시 돌이켜보면 종인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과거의 실수 혹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종인은 세훈을 보지 않는 시간에도 그를 생각했다. 세훈과 함께 살게 된 종인의 선택 또한 그 때문이었다. 절대 가볍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세훈도 종인이 자신에게 주는 만큼의 감정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진심 없는 감정은 세훈을 상처입힐 것을 알기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종인아……."

"응."

"……인 사랑해."

"고마워."

종인이 깨어있다면 절대로 하지 못할 말. 말의 무게를 알기에 자신을 좋아해 주는 세훈에게 하기 힘든 말. 책임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 꺼내지 못할 말. 밤은 상냥했다.

반갑습니다! 상풀에서 활동하다가 시크릿 러브로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연이 닿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제 글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고, 댓글 남겨 주시는 한 분, 한 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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