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말 사랑한 ALT 님(https://altctrl.postype.com/)의 안녕 선배가 완결 되었습니다. 지호와 헌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둘과 작가님의 오랜 행복을 기원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보시는 독자님들께서도 올해의 마무리가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연말. 크리스마스.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들.

 캐리어 손잡이를 꼭 잡은 손이 무빙워크를 걸을 땐 더욱 덜덜 떨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심장이. 더욱 들썩거리는 중이었다.

 5년만의 유럽. 이를 위해 1년 간의 연차를 모으고 모았다. 그렇게 떠나는 연말의 유럽 여행이 설레지 않기는 힘든데. 나는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나의 두근거림은 설렘의 그것이 아니었다. 불안. 그것이 내 두근거림의 이유였다.

 

 5년 전 이맘때였다. 오랜 취준 끝에 취직에 성공하고 첫 출근까지 2주가 남았던 시점. 무엇을 하고 보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대책 없이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짐 쌀 시간도 없이 거의 몸만 떠난 여행이었기에 계획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첫 번째 숙소만을 정해놓았을 뿐이었다. 

 첫날 밤. 에펠탑 뷰라고 해서 골랐던 숙소에선 에펠탑 꼭대기만 겨우 보였다. 그래도 그를 올려다보며 설렘에 가득 차 열심히 유럽 배낭여행 카페를 뒤졌다. 나의 계획 없는 시간을 알차게 채워줄 동행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 그다음 날 점심. 에펠탑 남쪽 광장 앞. 파란 하늘 아래에서 그를 만났다. 까만 데님 자켓에 까만 운동화를 신은 그를 나는 첫 눈에 알아보았다.
 

 '저 혹시....'

 '카페?'

 '네. 반갑습니다.'

 '생각보다 어리네요?'
 

 대뜸 그렇게 말한 그를 다시 한번 보곤 나는 단박에 알아챘다. 아, 나는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지겠구나.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그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므로.

 

 꽤 괜찮은 여행 메이트였다. 그는 파리의 골목들을 쏘다니는 데 익숙해 보였고 나는 그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무런 마찰이 없었다. 다만 부싯돌끼리 부딪칠 때의 스파크는 걷잡을 수 없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차디 찬 두 손이 스쳤을 때 서로의 손을 꽉 감아쥐는 것이나 약간의 취기를 빌려 그의 어깨에 기대면 그가 나를 품에 안고 토닥여주는 것. 그때마다 이는 내 마음의 불꽃은 어찌 다루어야 할지 모를 만큼 강렬했다. 너무 뜨거워 데일까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난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리고 조금 더 무모했으므로 대뜸 그에게 물었다.
 

 '왜 키스 안 해줘요?'

 '응?'

 '왜 나한테 키스는 안 하냐고요. 손도 잡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왜 키스는 안 해줘요?'
 

 다 큰 성인 남성이 파리 길바닥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봐 한껏 걱정하며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면서. 그것도 내 손을 꼭 잡고 걸으면서. 당장 다음 날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는데 우리의 다음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는 그가 미웠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그는 나에 대해 어떤 깊은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까봐. 

 그런데 그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 같다. 호텔 앞 트리 아래서 그는 나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양 어깨를 가볍게 감싸 쥐었다.
 

 '트리에 있는 저 초록색 이파리. 저게 뭔지 알아?'

 '...아뇨.'

 'Mistletoe. 한국말론 겨우살이. 이 아래 두 사람이 서면 키스를 해도 좋다, 는 뜻이 있대 서양엔.'
 

 나는 아리송한 그의 말을 여러 차례 곱씹고 나서야 그 말이 키스를 해도 좋다는 뜻임을 깨달았다. 나보다 키가 큰 그의 입술에 닿기 위해 약간의 까치발을 들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가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옅게 뜬 눈 틈새로 푸스스 웃는 그의 입술이 보였다.
 

 '이게 키스야?'

 '몰라요.'

 'Mistletoe에 대한 미신이 하나 더 있는데.'

 '네.'

 '크리스마스에 그 아래서 키스를 하면 그 커플은 오래 간다더라.'

 '오늘은 크리스마스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마스에 여기서 다시 보자.'
 

 그렇게 5년 후 크리스마스를 그는 이야기했다. 왜 5년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 5년동안 나는 일을 했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았고, 연애도 했다. 하지만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그를 완전히 잊을 수 없었다.

 파리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그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과연 5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 기억한다고 해도 그곳에 나올 의향이 있는지. 

 나만 그를 지워내지 못한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고, 그도 나를 지워내지 못했을까 기대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5년 전의 그를 내 안에서 지워내야만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없는 사람이 되거나 지금의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되거나. 5년 전 12월 31일의 마침표를 마침내 찍고야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짐을 하며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정신 없이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은 다음엔 바로 파리 1구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다. 생각보다 도착이 늦어져 마음이 급한 탓이었다.

 이번에도 그날 그와 입을 맞추었던 트리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같은 호텔을 예약했다. 정말 마지막이라면 그를 지독하게 그리워하다가 끝낼 수 있길 바랐다. 그래야 깔끔하게 정리가 될 테니까.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회사 생활을 잘 하면서 당신을 떠올렸고, 몇 명의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면서 당신을 떠올렸고,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당신을 떠올렸고, 일주일에 한 번은 꿈에서 당신을 만났다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그동안 연애 경험도 조금 쌓았고, 그날 내가 한 건 키스가 아니라 뽀뽀였다는 것도 알았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과 진한 키스를 나누고 싶다고. 당신이 말한 크리스마스의 겨우살이 아래서.

 한 시간이 되지 않아 택시가 파리 시내에 들어섰고, 곧 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크나큰 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남자가 트리의 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갑의 지폐 몇 장을 기사에게 건네는 손이 달달 떨렸다. 저 남자는 그일까? 그가 아니면 나는 어떡하지? 그가 맞다면 그는 얼마나 기다린 걸까?

 택시가 떠나고 나는 한참을 그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보아 그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가, 만약 아니라면 무너질 내 마음을 위해 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부러 했다.

 그렇게 안 좋은 결말로 생각이 닿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를 다시 만나든 아니든 나는 그를 원망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그리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를 만날 수 없다면 마음은 많이 시리겠지. 한국의 한겨울에 비해 따뜻한 날씨지만 만날 사람이라곤 그밖에 없는 파리 한복판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 것이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그가 맞는지. 그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까.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돌았다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였다.
 

 "어. 진짜 온 건가?"

 "얼마나...기다렸어요?"
 

 말하는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나는 소매로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았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다가 결국은 잰걸음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풀썩 안겼다.
 

 "나는...기억도 못할까봐...그럴까봐...."

 "내가 약속해놓고 내가 어떻게 잊어."

 "흡..흐윽...."

 "...너를."
 

 그가 내 두 뺨을 잡아 올렸다.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겨우살이 아래 함께 서줘서 고마워."
 

 하고 싶었던 말들은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그렇게 다가오는 그에게 매달려 입을 맞출 뿐이었다. 이번엔 진짜 키스였다. 애들 장난 같은 뽀뽀가 아닌 진한 키스. 짜고 씁쓸한데 달디 달던. 키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할 얘기는 많다. 별거 아닌 걸로 다투고, 서운해하고 그러다가 화해하길 반복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믿고 사랑함에는 의심이 없으니 그 짓을 계속 하는 거겠지.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그와의 엔딩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나는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말할 것이다.
 


Happly Ever After. 

 Not because we kissed underneath the mistletoe.

 There's no reason to be unhappy if we are together.












술래의 말 :-)

안녕하세요, 여러분. 벌써 2022년의 마지막날입니다.

올해도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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