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할 수 없는 소리가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쿵, 쿵, 쿵. 하필 사요의 기타를 듣고 와서, 휘몰아치던 사요의 기타를 중심으로 음이 하나씩 잡혀갔다. 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이 없어서

 

밤을 새워 펜을 움직였다.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빼곡한 노트만 3장이었다. 글씨와 음표가 뒤섞인, 절대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 노트를 버리지도 못하고 학교까지 가지고 왔다. 수업 시간 내내 반복해서, 보고, 또 보기만 했다.

 

‘반짝임이 넘쳐흐르는 당신의 소리를 나의 소리로… 전하고 싶어’

 

아직은 서툴고

 

‘운명을 이루기까지 이대로 계속’

 

아직 다듬고 덧붙여야할 것이 많은 가사와 노래.

 

“…….”

 

아직은 유키나의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기만 한 노래, 유키나 밖에 알 수 없는 메모들. 모든 게 엉망이기만 하지만, 찢어버리거나 지울 수가 없었다.

 

‘전부 전하고 싶어. 당신이 있었기에 내가 있는 거야’

 

가사 그대로였다. 전하기 전까지 영원히 끝나지 않겠지. 눈을 감고 자조적인 한숨을 쉬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점심시간. 노트를 두고 가야할지, 가져가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유키나는 결국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카스미에게 향했다. 고민한 시간이 길었던 탓에, 건물을 나가는 내내 머리 위에선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민하지도, 걸음을 빨리하지도 않았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걸어갔지만

 

“…악기의 밸런스가 나쁘네.”

 

저도 모르게 한숨을 흘리기도 했다.

 

학교 건물의 뒤뜰. 카스미가 여기라고 손을 흔들었지만

 

“…….”

 

사람이 북적거려서 잘못 온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밴드 사람들…은 아니고, 유키나를 제외하면 다들 1학년이었다. 카스미의 친구들일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유키나의 눈에 랜덤 스타가 아닌 다른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옥상 위에서 기타를 치던 아이. 거기까지 기억이 돌아오고 대충이지만 카스미가 하려는 일을 알았다.

 

“유키나 선배. 소개할게요. 여기는 우리 학교에서 보컬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여기는 란이고, 여기는 코코로고. 늘 유키나보다 먼저 옥상을 차지해있던 밴드 중 한 명과 처음 보는 금발 머리의 아이, 그리고

 

“여긴 파스텔 파레트라고, 유키나 선배도 아시죠? 우리 학교의 자랑이에요!”

“안녕하세요, 둥근 산을 화려하게! 마루야마 아야입니다!”

 

히나네 밴드의 보컬. 이쪽도 같은 학교인줄 몰랐는데. 표정을 지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명한 보컬이 4명, 그것도 두 명은 기타를 매고 있었다. 노래할 거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카스미와 보컬들을 중심으로 거리를 두고 구경꾼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어이, 카스미. 점점 일이 커지는 것 같지 않아?”

“나…, 소속사 허락 맡은 일이 아니라서 이따가 치사토에게 혼날 것 같은데….”

“모두~ 해피! 럭키! 스마일! 예! 하고 있어~?”

 

개성강한 보컬들 사이에서 카스미가 가볍게 기타 줄을 튕겼다.

 

“유키나 선배. 들어주세요.”

 

너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삼키며, 주먹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퀸터플☆스마일”

 

어차피 두 귀를 막아도, 이 자리를 피해도 노래는 돌아온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각양각색의 소리를 들었어

모두 다 멋진 매력으로

Let's shining!

 

보컬들의 노래와, 기타 소리가 유키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노래 속에서 느껴지는 반짝이는 빛. 이제는 그 빛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빛나는 별

처음에 생각해버린 불안을 추월해

반대로 대접해서 놀라게 하자

 

보컬들이 모두 노래를 멈추고, 카스미 홀로 노래했다.

 

문조차 연다면

별 거 아니야

마음껏 도전해

너 다움이

자, 봐. 보였어

 

이 말을 그렇게도 유키나에게 해주고 싶었다는 듯이. 기타 소리에 담은 카스미의 목소리가 청량하고 담백하게 뻗어나갔다.

 

자 가자

하나 둘에 피스!

두근두근하고 즐거워

 

신나는 리듬에, 모두가 마음을 맞춰 노래하고 있었다.

 

“…….”

 

연습은 몇 번이나 했을까. 중간 중간 리듬이 틀리는 사람이 있질 않나, 발음이 뭉개진 사람이 있질 않나, 카스미는 자기가 주도해놓고 2마디나 연주를 틀렸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란이 카스미와 아야를 비난하고, 즐거웠으니 됐다며 코코로가 웃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일 이상한 유키나 자신이었다.

 

나도, 하고 마음이 외쳤다.

 

나도 저 아이들과 같이 노래하고 싶다고.

 

“…유키나 선배.”

 

노래 같은 건 싫어해.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엉뚱하게 다른 질문이 나왔다.

 

“너희는 왜 노래하는 거야.”

 

유키나의 질문에,

 

“모두를 반짝반짝하게 만들고 싶으니까요.”

 

카스미가,

 

“세상을 웃는 얼굴로 만드는 게 우리 헬로! 해피 월드!의 목표야!”

 

코코로가 대답했다.

 

“…터무니없어.”

 

말도 안 돼, 가능 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냥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편해서요.”

 

란이,

 

“최고의 아이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야가 말했다. 표현, 최고. 그건 유키나도 이해할 수 있는 동기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쉽게 긍정하고 싶지 않았다.

 

“유키나.”

 

코코로의 목소리가 닿아왔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니?”

 

발끈해서, 싫어해! 하고 외치며 눈을 마주치고, 곧 후회했다.

 

“그럼 노래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그래? 그건 좀 이상한 걸.”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때문일까, 햇살이 너무 잘 어울리는 금발이라서일까. 유키나에게는 눈이 부신 존재였다.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고 있는 거라면 잘 된 일이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기어이 코코로가 했다.

 

“유키나가 웃기 위해서는, 사실 노래가 필요한 거 아니야?”

 

카스미가 코코로의 입을 막았지만, 너무 늦어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유키나에게 어떤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마루야마 아야씨. 잠깐 나 좀 볼까?”

 

아야가 히익, 하고 귀신이라도 본 소리를 냈다.

 

“코코로! 또 너지!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뭐야!”

“미사키~ 노래하고 있었어!”

“뭐? 갑자기? 아무튼 일단 따라와.”

 

코코로가 질질 끌려갔다.

 

“라안~ 유후~ 거기 멋진 보컬~”

“모카!!! 놀리지 마!!!!!”

 

약속한 노래는 끝냈으니 그만 가보겠다며 란은 옥상으로 향했다.

 

“이 바보 녀석. 너무 요란했잖아.”

“아…, 아리사.”

“어떤 것 같아? 잘 전한 것 같아?”

“잘 모르겠네…….”

 

아리사와 카스미의 시선을 받으면서

 

“…….”

 

유키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몸을 돌렸다.

 

 


풀뜯는염소님께 그림 선물 받았습니다. 글 읽고 만화를 보시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메세지 다시 열었습니다. 하고싶은 말은 댓글이나 메세지로~

토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