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날이 제법 더워지면서 녹음이 우거져 창밖이 온통 어두웠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마차가 성도(省都)에 닿을 터였다. 붉은 천과 금색 실로 만든 술을 둘러서 장식한 마차를 옆에 두고 길을 지나는 사람마다 소곤거리며 한 마디씩 중얼거리는 소리가 안에까지 들렸다.

“대관절 어느 집에서 들이는 새 신부기에 마차가 저리도 화려한 거지?”

“성도에 혼례를 치르는 세가가 있다던가?”

“글쎄? 어디에 납채(納采)가 들었다는 소문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보게, 실없는 소리는 관두게. 신부가 성도 바깥에서 들어오는데 납채가 성도에서 오갔을 리가 있나?”

“아니 예물이 아니더라도 소문이 돌기는 돌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저 마차를 좀 보게. 저게 어디 보통 집안에 들어갈 마차로 보이느냐는 말이야.”

이달재는 괜히 붉은 면사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애써 숨을 골랐다. 평소에 입던 옷보다 폭이 넓은 천이 허리를 휘감은 탓에 호흡이 편하지 않았다. 금사로 수를 놓아서 반짝거리는 붉은 치마를 괜히 손끝으로 긁적거리던 이달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시집을 가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뒤숭숭하여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몹시 불안하기만 했다. 이달재가 마른침만 꼴깍 삼키면서 굳어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깥에서 마부 역할을 하던 노구식이 가볍게 마차를 두드리며 말을 붙였다.

“드디어 다 왔어요. 성도가 코앞입니다.”

이달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가 대꾸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주변에 사람이 있어서 함부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 이달재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손에 쥐고 있어서 살짝 구겨진 면사포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혹여 검문을 핑계로 마차를 들여다본다고 해도, 새 신부의 면사포까지 들춰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탓이었다.

그런데도 면사포를 벗으라고 하면 어떡한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초조함에 애꿎은 팔찌만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어느새 마차가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기어이 성문 앞에서 멈춰 섰다. 바깥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문지기와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양호열의 목소리였다. 이달재는 제발 무사히 성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심하게도 곧 마차의 문이 열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올 게 왔구나.

입술을 잘근 깨물어 버린 이달재가 흠칫 몸을 굳히자, 곧 문을 열어젖힌 사내가 몹시 미안한 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마차는 모두 안까지 들여다보고 확인하는 것이 절차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달재는 초조한 낯이 드러나지 않도록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제야 사내는 확인을 마쳤으니, 금방 들여보내 드리겠다면서 얼른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고 김대남과 노구식이 가볍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봐도 시집가는 아가씨가 타실 마차인데, 뭘 안까지 들여다본다고 난리인지.”

“혼례를 올리기 전에 부정이라도 타면 어쩌려고.”

“……거참, 미안하게 됐다고 했잖소. 안에 들어계신 아가씨께도 사죄했다니까.”

“예, 예. 우리 아가씨께서 워낙 마음이 여리고 몸이 약하셔서 조금 전의 일로 많이 놀라셨을 테니,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빠르게 말을 마친 김대남이 먼저 앞서 나간 듯, 말발굽 소리가 울리더니 곧 마차가 출발했다.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세운 이달재는 이미 몇 번은 와 보았던 성도의 길거리를 창문 틈 사이로 살짝 훔쳐보았다. 길에 나온 사람마다 붉은 장식을 휘감은 마차를 보고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꼴이, 이대로라면 그의 의도대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단단히 끌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뜻에 맞춰서 이대로 성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분명 해볼 만하겠으나, 이달재는 이미 지쳐있어서 차마 머리로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오는 길에 몇 번이나 뱉어낸 깊은 탄식이 이번에는 기어이 마차 밖으로 새어 나갔는지, 바깥에서 양호열이 말을 걸었다.

“거의 다 도착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

이달재가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양호열이 느긋하고 가벼운 투로 말했다. “지금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몇 마디 정도는 떠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제야 이달재는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번 일을 마치고 나면 너희는 속히 성도를 떠나는 편이 나을 텐데. 곧바로 돌아갈 수 있겠니?”

“쉬지 않고 출발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죠. 게다가 그분은 사나흘 정도는 쉬었다가 출발해도 괜찮다고 하시던데요.”

이미 방까지 전부 준비해 두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 말에 이달재는 잠시 가늠하듯 침묵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 그래도 안전이 제일이니, 최대한 빨리 출발하는 게 좋을 거야. 나서기 어려웠을 텐데도 이번 일에 손을 보태주어서 정말 고맙다. 너희가 아니었더라면 우리 상단에서 사람을 써야 했을 거야.”

진심이었다. 이번 일에 강백호의 친구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상단에서 사람을 뽑아 오거나, 혹은 사람을 따로 사야 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확실히 입단속이다. 돈을 주고 산 사람의 입은 무릇 또 다른 돈으로 열리기 마련이라, 이렇게 호의를 사서 도움을 받는 게 가장 최선이었다. 물론 이달재는 상단에서 자라나 돈과 사람을 같이 보며 자란 탓에, 그저 고맙다는 인사로 모두 갈음할 생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북산으로 돌아가는 즉시 모두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줄 셈이었다.

이런 이달재의 생각을 알지 못할 양호열은 여전히 느긋한 어조로 떠들었다.

“이것도 나름대로 호위 역할 아닌가요. 우리가 언제 이런 번듯한 일을 해보겠어요. 게다가 백호를 북산에 올려보내면서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으니 이렇게나마 갚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백호가 북산에 들어온 건 재능이 많아서야. 북산은 제자를 받으면서 돈을 요구하지 않아.”

“그런 것 치고는 그쪽이 사문에 가져오는 재물이 적지 않다고 하던데요.”

귀가 있는지라, 어쩌다 보니 주워들었다고 말하는 양호열의 대꾸에 이달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안화 상단에서 북산으로 매년 가져가는 재물의 양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안타깝게도 금전과 약초 따위를 베푸는 것 정도가, 북산에 형제와 같은 친구를 보낸 뒤에 이달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안화 상단에서 보내는 재물은 결국 송태섭이 먹는 음식과 입는 옷, 그리고 그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겨울의 따뜻함과 여름의 시원함이 될 테니까.

“……. 그건. 그저 내 의지로 가져가는 거야. 누가 강요하거나 바라는 게 아니라.”

“네, 그러니까 이것도 저희의 의지고 저희의 뜻이에요. 가장 아끼는 친구를 받아주셨으니, 그에 따른 고마움을 표시하는 셈이죠.”

“그래, 그렇구나. 너희는 정말로 서로를 많이 아끼네.”

조그맣게 웃어버린 이달재는 곧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시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린 이달재 덕분에 마차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차가 멈춰 섰고, 문이 열렸다.

면사포 덕분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달재는 바깥에서 불쑥 들이밀어진 손을 잡고서야 천천히 땅으로 내려섰다. 장정 여럿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도 서로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대문 앞에 선 이달재가 이제 혼자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움켜쥐었던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허락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왜 손을 놓아주지 않는 거지?

양호열인지 혹은 김대남인지 모를 상대를 올려다보려던 이달재는 곧 재촉하는 손길에 이끌려 걸음을 떼었다. 계단을 올라, 활짝 열린 문지방을 넘어서며 잠시 휘청거렸던 이달재는 곧바로 닫히는 문소리를 듣고서야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왕부(王府)로 들어서기 전까지 이목을 많이 끌어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렇게 문을 금세 닫아버리면 안 될 텐데?

이달재가 무심코 뒤로 돌아서려는데, 손을 잡은 상대가 그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순간 기울어지는 몸을 받치듯이 어깨를 쥐어온 상대가 어쩐지 친밀하게 닿아오는 것만 같아서 불편했다.

강백호와 그의 친구들이 서로 친동기간과 다름없어 거리낌 없이 군다는 건 이미 북산에서 보고 겪어서 알고 있었지만, 오늘 자신에게까지 이리 편하게 닿는 것은 의외롭고 난처하기만 했다. 이달재가 불편하다는 듯이 몸을 뒤틀자, 곧 머리 위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쉬이, 그리 자꾸 움직이면 넘어진다. 마차에서 내릴 때 보니까 신발이 불편해 보이던데.”

“……. 전하?”

예상외의 등장에 깜짝 놀라 굳어 있으려니, 곧 면사포가 거두어지며 시야가 금세 밝아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자, 이마 근처로 손날을 새워서 그늘을 만들어 준 이명헌이 가벼운 투로 말했다.

“오, 화장까지 했을 줄은 미처 몰랐군. 내 상상력이 꽤 빈약했던 모양이지.”

이달재는 순간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애꿎은 소맷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혹여나 성도에 들어설 때 검문에서 면사포를 들추기라도 할까 봐 염려되어서…….”

“검문을 맡은 문지기가 나라의 녹을 먹는 이상, 감히 새 신부의 면사포를 들춰댈 정도로 무뢰한은 아닐 텐데. 성도에 대한 평가가 조금 박하군.”

“……그게.”

이달재가 얼른 그런 뜻으로 했던 걱정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려는 찰나, 이명헌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그래도 그대의 노파심이 내게는 좋은 일이 됐어.”

“네?”

무슨 뜻인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조심성 있는 상대와 협력하게 되어 기껍다는 뜻이려나? 이달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틈에 이명헌이 뜻 모를 말을 더했다.

“입술이 붉은 게 잘 어울려서. 보기 좋거든.”

말을 마치며 입술을 살짝 건드린 손길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이달재를 옆에 두고, 이명헌은 먼저 걸음을 떼며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는 왕부를 한 번 둘러보는 게 좋겠소. 산왕비(山王妃).”

촌극에 가까운 이 거짓 혼례 놀음이 기꺼운 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서 웃는 이명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달재는 어느새 몸에 밴 한숨을 내쉬며 그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손을 잡지 않고 옆에 서자, 이명헌은 괜히 빈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펼치면서 아쉬운 티를 냈지만, 이달재는 그의 이런 행동은 그저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달재는 이 성도의 중심인 황궁에서 그와 함께 한바탕 사기를 쳐야 할 운명이었으니까.

 

 



이 소설은  이쪽과 이어지는 연작입니다.

하지만 굳이 파룡지법을 꼭 봐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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