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AU 녤윙 보고싶다


경찰대 졸업하고 강력계에서 경위로 근무하던 윙은 윗선에서 덮으라는 사건 끝까지 파다가 보복으로 파출소로 좌천 될 처지에 놓였음 억울해 미치려고 하는 윙에게 한가지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음


서울을 꽉 쥐고 있는 조직 정우파에 일년동안 언더커버로 들어가서 활동하면 원래 보직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음 경찰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드럼통에 갇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빠져도 이상할 게 없는 위험한 일이었음 하지만 어릴때부터 승부욕 남달랐던 윙은 오히려 피가 끓었음


그런데 윙은 왜 하필 제가 언더커버로 지목되었는지 의문이었음 경찰대 졸업 성적이 좋은 건 저 뿐만이 아니었고 자신은 경력도 짧았음 언더커버를 제안한 경찰 간부에게 묻자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음


- 그런데 하필 왜 저인가요?

- 그야 박지훈 경위가 잘생겼으니까

- 네?


쉽게 조직원을 받지 않는 정우파에 말단으로 들어가는 일도 어려웠고 들어간다 해도 간부의 신임을 쉽게 얻을수도 없었음 한 번에 실장급 이상에게 눈도장을 찍어야만 했음 


그래서 시나리오를 하나 짰는데 바로 정우파가 운영하는 호스트바에 위장취업 한 후 의도적으로 싸움을 일으키고 남다른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음 당연히 호스트바에 취직할 정도의 외모가 전제 사항이었고 당연하게 윙이 뽑히게 된 것이었음 윙은 제가 선발된 내막을 알고 나자 어이가 없었지만 호스트바에 조폭까지.. 경찰 하다보니 재밌는 경험도 많이 해본다 싶었음


그리고 그 생각은 호스트바 위장취업 하루만에 바뀌었음 첫날부터 미치게 잘생긴 신입 새로 들어왔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1분도 못쉬고 지명되어 룸에 들어가야 했고 각종 더러운 요구를 들어주느라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음 그냥 파출소에서 동네 민원이나 해결하며 살걸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음


윙이 그렇게 호스트바에서 분노의 나날들을 보내는 동안 디데이가 다가왔음 실장급 조직원이 윙이 근무하는 호스트바에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 측은 싸움을 일으킬 사람들을 미리 호스트바에 잠입시키고 윙에게도 작전 시작을 알렸음 언제까지 뻘짓을 하고 있어야 하나 회의감에 몸부림치던 윙은 그제야 좀 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었음 


새끼들 오늘 아주 죽었어... 간부의 눈에 들만큼 적당히만 싸우면 되는 일이었지만 윙은 오랜만에 현장을 뛰는 기분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음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 배우지 않은 격투 종목이 없는 윙은 현란하게 덩치들을 때려눕혔음


저 새끼 봐라..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인 윙을 말없이 응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음 무서운 기세로 조직 입성 3년만에 실장을 단 녤이었음 앞에서 다가오는 덩치의 머리통을 돌려차기로 쓰러뜨리고 뒤에서 각목으로 내려치려는 조직원의 명치에 팔꿈치를 박아 넣는 윙을 보며 녤은 씩 웃었음


아니 도대체 몇명을 집어넣은거야...? 분명 윙이 쓰러뜨린 인원만 해도 열명은 족히 넘을텐데 아직도 여러명의 조직원이 흉흉한 기세로 버티고 있었음 사실 경찰 측에서 준비한 인원은 대여섯명 정도였지만 싸우는 윙을 지켜보던 녤이 어디까지 하나 싶어 정우파 조직원들을 투입시킨 것이었음


맞은 것보다는 분명 많이 때렸지만 수적으로 열세다보니 이미 여러대 맞은 윙은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음 언더커버는 무슨.. 여기서 뒈지게 생겼네.. 터진 입가를 대충 닦아내고 주먹을 날리려던 윙은 선명히 들려오는,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에 그만 동작을 멈출 수 밖에 없었음


-그만, 불곰은 업소 정리하고 애들 데리고 나가라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니는 이리 좀 와봐라


기진맥진 한채로 숨을 고르고 있는 윙에게 녤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했음 지금까지 싸우던 게 진짜 조직원이었어? 어쩐지 칼빵 하나씩 달고 있는게 지나치게 리얼하다 했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윙을 보며 녤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음 말하면 바로 안튀어오는 저 버릇부터 고쳐놔야겠다 싶었음


- 윙크야

- ...네


윙은 제 가슴팍의 명찰에 달린 닉네임으로 자신을 부르는 녤에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꽂아넣고 싶었음 나이 지긋한 사모님들이나 누나들이 부를때는 

이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는데... 명백한 상하관계가 느껴지는 뉘앙스와 그것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음 윙은 떨리는 주먹을 애써 말아쥐고 녤의 앞으로 다가갔음 


-우리랑 일 할래? 기집애들 비위 맞춰주는 거 그만 하고

-.....


원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긍정의 대답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윙은 뒤늦은 갈등에 빠졌음 조직원들과 한판 싸우고 나자 실감이 났음 규칙을 정해놓고 싸우는 대련이나 강력계에 있을 때 몸싸움을 했던 범죄자들과는 차원이 달랐음 


분명한 살의를 가지고 덤벼드는 승냥이들의 틈에서 윙은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음 윙의 대답이 늦어지자 녤은 제 앞의 대리석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며 말했음


-윙크야 내가 싫어하는게 딱 두가지가 있는데...

-....

-하나는 대답 안하는 거, 그리고 하나는 불렀을 때 바로 안튀어 오는거

-....

-대답

-...네.


서늘한 위압감에 주변의 소리는 저절로 멀어졌음 윙이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나서야 굳어있던 녤의 표정이 풀어졌음


-이제 우리 식구 됐으니까.. 내가 방금 말한 거 또 하면 뒤진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윙은 미소를 띤 얼굴로 살벌한 소리를 하는 녤을 보며 소름이 돋았음


윙이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하자 녤은 귀엽다는 듯 윙의 머리를 살짝 헝클이고는 어깨에 손을 올렸음


- 우리 신입 들어온 기념으로 술 한잔 해야지!

- 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쉬워도 돼? 작전은 분명 성공했지만 윙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음


무엇보다... 제 어깨 위에 올려진 녤의 손을 보자 복잡한 감정이 들었음 언더커버 임무로 인한 불안감과 두려움과는 결이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거짓된 마음으로 진실을 가장하는 행위가 주는 중압감이 윙을 짓눌렀음 하지만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음 윙은 애써 밝게 웃었음


-저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그럼 뭐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원래 하던 가락으로 누님?

-...그런거 아닙니...


능글맞게 웃으며 장난을 거는 녤에게 윙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음 그러자 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녤은 훅 다가와 윙의 귀에 속삭였음


-투잡 절대 안 된다. 특히.. 호스트바는 아주 뒤지는거다 알겠나?

- ....

-대답.

-..네! 알겠습니다


괜히 실장급 조직원이 아닌지 뒤진다는 소리가 그렇게 살벌하게 들릴 수가 없었음 윙이 세차게 고개까지 흔들며 대답하자 녤은 아주 고개까지 꺾어가며 웃었음 도대체 웃음포인트가 어디야..


그렇게.. 윙은 3년이 지나 실장을 달게 되었음 애초에 1년을 말하던 경찰 간부들은 한 달 두 달, 임무 종료를 미루더니 3년 째 복귀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 윙은 이제는 정말 제가 경찰인지 조폭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음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경찰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몸부터 숨기는 자신에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음 한 달에 한 번 e-스포츠 경기 관람을 가장하여 관객으로 변장한 경찰측과 접선하는 것을 제외하면 완연한 조폭의 삶이었음 업소를 관리하고 구역 싸움을 밥 먹듯이 하는...


그리고 3년 전에 실장이었던 녤은 어느새 보스의 오른팔 격으로 올라갔음 한 번 눈이 돌면 살아나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폭력성과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릴 줄 아는 비상함을 두루 갖춘 결과였음 윙은 사실 아직도 녤의 싸우는 모습에는 적응을 할 수 없었음


평소에는 조폭인가 싶을 정도로 말랑하게 굴다가도 순식간에 맹수처럼 눈빛이 변하고는 했기 때문이었음 마침 녤이 이 주 동안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는데 굳이 윙을 콕 집어서 마중 오기를 지시했음 실장급이면 그런 잡무에서 제외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까라면 까야 했음


- 우리 윙크~~! 형님 온다고 이래 마중나와 있었나!

- 그렇게 부르지 말랬죠. 그리고 본인이 시켜놓고 모르는 척 묻는 거 되게 고약한 버릇인거 아세요?

- 윙크를 윙크라고 부르지도 못하나.. 내가 홍길동이가...? 선물까지 사왔는데 너무하다 진짜.

-영양가 없는 소리 그만 하시고 얼른 갑시다


윙의 자연스러운 하극상에 신참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짬 좀 찼다 싶은 조직원들은 그러려니 했음 윙은 녤이 유일하게 기어오르는 것을 봐주는 부하였음 상하관계가 명백한 조직의 특성상 윙의 태도는 여럿에게 눈엣가시였는데 한 번은 녤에게 그런 불만을 토로하던 조직원이 녤에게 맞아 반병신이 되는 바람에 그 뒤로는 아무도 녤에게 윙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음 


- 윙크야 선물 안궁금하나?

- .....

- 아, 알겠다 진짜 까탈스럽기도 하지. 훈아 선물 안궁금하나?

- 안궁금합니다.

- 와 진짜 니는 엘사가? 어째 그렇게 차갑노.. 혹시 레리꼬도 부를 줄 아나?


점점 장난스러워지는 녤의 말투에 윙은 그대로 녤을 자동차 뒷자석으로 밀어넣었음 시트에 몸이 구겨지는 녤을 보며 신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음 윙의 직속 부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음.. 제 형님들의 이 기묘한..아니 기괴한 관계를 신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골치가 아팠음


옆자리에 윙이 앉자마자 녤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음 현란한 그림과 일본어가 뒤섞인 상자였음 의심스러운 눈으로 상자를 바라보던 윙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음


- 맘에 드나?

- 형님 진짜...

- 그 가게서 젤 큰걸로 가져왔는데.. 그래도 내거보다는 쪼매 작다

- 이거 성희롱인거 아시죠?

- 에이 사람 죽이고 패고 다 하면서 그게 뭐 대수가?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진핑크색의 딜도였음 힘줄까지 아주 섬세하게 표현된 물건은 제일 큰 사이즈가 맞는지 아주 흉흉할 정도의 크기였음 시발 진짜... 더 대꾸도 하기 싫다는 듯 윙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음


- 아 들개야, 집 말고 서부창고로 가자.

- 예, 형님

- 서부 창고는 왜...

- 아아, 훈이한테 말 안했었나. 프락치 하나 잡아서... 오랜만에 작업 좀 할라고

- 아...


윙은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다리 사이로 감추고 고개를 숙였음 덜덜 떨리는 손과 눈동자를 들켜서는 안됐음


- 훈아.. 자나?

- .....

- 그래, 피곤하면 도착 할 때까지 지라.


윙은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음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음 제가 주는 정보가 조금씩 어긋나자 경찰 간부들은 못참고 얼마 전에 언더커버 하나를 더 정우파에 밀어넣었음 아직 말단이라고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원들의 처분이 주로 행해지는 서부창고에 도착했음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터에 덩그러니 세워진 시멘트 창고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로 폐쇄적이었음 윙은 애써 불안함을 감추고 녤의 뒤를 따랐음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윙은 탄식이 나왔음 피칠갑을 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제가 아는 얼굴이 맞았음 저도 들키면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음 밧줄로 꽁꽁 묶인 남자에게 녤이 느릿하게 걸어갔음 그 앞에 선 조직원들을 옆으로 물리고 앉았음


- 어.. 니 이름이 전갈이었나?

- .....

- 내 대답 안하는 거 싫어하는데.. 이제 다 들켰다고 막나가나?

- .....

- 그래, 이름부터 맘에 안든다 했다. 내가 갑각류 드럽게 싫어하는데 하필이면 전갈이라고 지었노.. 니는 그냥 내 손에 뒤질 운명이었나 보다 맞제?


녤이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윙의 속눈썹도 함께 파르르 떨렸음 꽉 쥔 주먹에는 식은땀이 맺혔음 저 새끼가 내 얘기까지 다 불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그렇게 된다면 돌변할 녤이 두려웠음 그 앞에서 몇 마디 더 건네던 녤이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순식간에 남자의 배에 박아넣었음


커흑, 하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지고 녤의 뺨에도 핏방울이 튀었음 박아넣은 단도를 뭉근히 한바퀴 돌리고 빼낸 녤은 핏물이 줄줄 흐르는 칼을 옆에 선 부하에게 건네고 수건을 받아 손을 대충 닦아냈음 그리고는 넋이 나가 서 있는 윙의 앞에 마주섰음


- 지훈아, 저놈이 프락치인거 알았나?

- .....아니, 아니..요. 몰..랐습니다.


윙은 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간신히 대답했음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음 알고 묻는걸까.. 그러면 나도 이제 죽는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켰음 둔탁한 주먹이 날라오든, 날카로운 칼날이 제 옆구리를 쑤시든 둘 중 하나일거라 생각했는데..녤은 윙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두드렸음


-그래야지.


녤의 말은 의미심장했음. 곱씹어도 그 속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음 윙이 의아한 눈으로 녤을 바라보자 녤은 말없이 윙의 어깨에 팔을 걸쳤음 그리고는 방금 사람을 죽인 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밝게 외쳤음.


- 피도 봤는데 육회에 소주나 땡기러 가까?

- 우워어어! 좋습니다 형님!

- 들개는 뒷처리 잘 하고... 어이. 훈아, 고만 멍때려라. 니는 어째 실장 달고도 사람 죽는거만 보면 넋이 나가노... 

- ..아, 네, 네.


귀엽다는 듯 코를 살짝 쥐고 떨어지는 녤의 손길을 느끼며 윙은 역설적으로 안정을 느꼈음


나락으로 떨어져 팔딱팔딱 뛰던 심장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왔음 녤의 핏물 밴 셔츠에서 나는 비릿한 피냄새가 코끝을 스쳤음 외면하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현실을 직시하고는 했음 윙은 이제 더는.. 견딜 수 없을것만 같았음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었음 그게 조폭짓이든 경찰질이든..


윙은 다음 날 바로 접선 날짜가 아닌데도 경찰측과 접촉했음


- 무슨 일이야? 태범이 일 때문에 그러는거면...

- 못 하겠습니다.

- 뭐?

- 더는 못해먹겠다구요! 3년이에요, 3년! 도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하는데요?! 이제는 내가 조폭인지 경찰인지 분간도 안돼요 시발...


고통스러운듯 얼굴을 감싸는 윙을 보며 간부는 고심했음 어젯밤에 죽임을 당한 언더커버 얘기가 나오면 살살 달래서 돌려보낼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윙의 반응이 격했음 하긴.. 3년은 지나칠 정도로 긴 세월이었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동안 들키지 않은 것도 지나치게 운이 좋았음


그래서 더 아깝다고 생각했음 조직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큰 건 하나만 잡을 수 있다면... 간부에게 윙의 심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음 


- 그래, 미안하다. 차일피일 미루다 벌써 3년이네... 박지훈 경위 이제 딱 하나만 더 하고 진짜 손 털자.

- 뭡니까...


몇 번이나 번복되기는 했지만... 들을 때마다 희망을 주는 끝을 기약하는 말에 윙의 고개가 들렸음 


- 이번에 정우파 야쿠자랑 마약 거래하는거 알고 있지?

- ...네.


녤이 일본 출장을 간 이유도 마약 거래건을 성사하기 위함이었음


프락치가 또 있는건지 제가 보고하지 않은 정보도 꿰고 있는 경찰에 윙은 이제 질리는 기분이었음


- 현행범으로 잡을거야. 그 자리에 있는 정우파 간부들 다.

- ..... 시간이랑 장소 알려드리면 되는 겁니까.

- 그래, 마지막 임무다. 이번 건만 잘 끝내면 돌아와서 특진할 수 있도록 내 힘 써보지..


그 힘 좀 미리 써서 프락치 짓 그만하게나 해주지.. 윙은 속으로 욕을 삼켰음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음 야쿠자와 마약 거래건은 정우파의 숙원사업이자 녤이 도맡아 하고 있는 일이었음 경찰에게 발각된다면 말단 조직원 몇이 깜방에 들어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음


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장부터 중간보스급까지 줄줄이 엮여 들어갈 것이 분명했음 자연스레 녤이 떠올랐음 말도 안되는 선물를 주며 능글맞게 웃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잔인하게 목숨을 끊어내 버리는.. 3년을 붙어 다니며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게 녤이었음


윙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접선 장소를 빠져나왔음 이번 일만 끝내면.. 더는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음 그럼에도 자꾸만 망설여지는것은 제가 거래 시간과 장소를 다 불어버리면 그 자리에 나올 녤은... 혐의를 의심받는 것과 현행범으로 붙잡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음


전자는 유능한 변호사만 있다면 빠져 나올 수 있지만 후자는 적어도 십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했음 게다가 언뜻 듣기로 이번에 거래하는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음 그렇다면 가중처벌까지.. 윙은 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음 말이 씨가 된 듯 이제는 자신이 경찰인지 조폭인지..


어느 편에서 누구를 걱정하는지도 확신하기 어려웠음 윙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사무실책상에 이마를 쿵쿵 박고 있었음 그런데 어느 순간 이마에 딱딱한 책상이 아닌 말랑한 손바닥의 감촉이 느껴졌음 


- 우리 훈이 이마 짱구라서 더 튀어나오면 안된다

- 뭐에요...

- 뭐긴, 혹 생길까봐 그러지


그리고는 정말로 혹이라도 생긴건 아닌지 녤은 꼼꼼히 윙의 이마를 살폈음 얼굴을 바로 앞까지 들이대는 바람에 윙이 고개를 빼려 하자 녤은 제법 거센 악력으로 윙의 어깨를 붙잡았음 녤의 숨결까지 그대로 느껴지는 거리였음 윙은 점점 얼굴에 열이 올랐음


멀쩡한 윙의 이마를 몇번 쓱쓱 문지르던 녤은 순식간에 입을 맞추고 떨어져나갔음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 닿은 말랑한 감촉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큰 소리가 나왔음


- 아!!!

- 훈아 이게 뭐게?


기습 뽀뽀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전에 녤은 윙에게 티켓 두장을 흔들어보였음


- 일본행 티켓이잖아요


습관처럼 성실히 대답하는 윙에게 녤이 잘 했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음


- 이번에 야쿠자놈들이랑 거래 하고나서 내랑 일본 가자 훈아. 온천도 뜨끈하고 밥도 맛있고 다 좋던데..니랑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나더라. 그래서 오는 길에 바로 두 장 끊어뿠다.


그게 뭐에요... 윙은 말을 끝맺지 못했음 속에서 울컥 차오르는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음 누구는 배신할 타이밍이나 재고 있는데.. 제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는.. 그 한치의 거짓도 없는 고백이 윙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버거웠음 당신이 자꾸 이렇게 굴면..나는, 나는...


윙이 참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터뜨리자 녤은 어쩔 줄 모르며 커다란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음


- 훈아 왜 우노... 여행 가자는게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진작 가자고 할걸... 내가 잘못했네 맞제?

- ...아니, 그게 아니라...


녤은 윙을 품에 안고 윙의 떨리는 등을 쓸어내렸음


윙은 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느꼈음 아.. 내가 이 사람을 배신할 수는 없겠구나. 머릿속으로는 수백번을 생각해도 찾지 못한 답이 너무도 쉽게 풀렸음 윙은 그동안 살면서 만난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는 녤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음 그냥.. 제 마음 가는대로 하고싶을 뿐이었음


윙은 경찰측에 거짓 정보를 흘렸음 같은 날짜 같은 시간이되 전혀 다른 장소를 마약 거래 장소로 말했음 한 번 마음을 먹고 나니 생각보다 거짓말은 쉬웠음 그대로 믿는듯한 간부의 태도에 윙은 가슴을 쓸어내렸음 이제 이틀 후면 정말 끝..


윙은 조직에 들어올 때 받았던 칼을 버리는 대신 경찰증을 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음 조폭이 된 경찰.. 윙은 자조했지만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음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이 지나고 거래날이 되었음 녤을 포함한 간부들 몇과 야쿠자 측에서 나온 이들이 항만 구석의 컨테이너 창고에 모였음


녤을 수행하러 따라온 윙도 그 자리에 있었음 녤이 상자를 건네받고 순백의 가루가 담긴 비닐포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음 바깥에서 귀를 찢을듯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음 이게 무슨.. 윙은 제대로 사고가 되지 않았음 분명 제가 알려준 곳은 두 시간 거리의 야산이었는데...


곧이어 창고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총을 겨눈 형사들이 들이닥쳤음 제가 정보를 줬던 간부도 함께 있었음 이게 무슨.. 그런데 당황한 것은 윙과 경찰들 뿐이었음 너무도 태연한 정우파와 야쿠자들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낀 형사 하나가 상자를 뒤집에 내용물을 쏟아내자 그 속에 있던건 온갖 종류의 성인용품이었음 다양한 모양의 딜도며 sm 플레이 도구까지.. 출동한 경찰들도 얼굴이 다 화끈해졌음


- 아아, 이게 좀 민망한 물건이 아니다보니.. 소금인 척 하고 몰래 받으려고 했는데 또 어찌 알고 이렇게 출동까지 하셨습니까...하하하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녤을 보며 형사들은 잇새로 욕을 삼켰음 아주 물 먹은 상황이었음 경찰 간부는 윙을 노골적으로 노려보고는 형사들과 함께 창고를 빠져나갔음 다리에 힘이 풀린 윙이 벽을 붙잡고 간신히 서 있었음 야쿠자들이 짤막한 인사를 하고 나간 후로 내부에는 적막이 맴돌았음


윙에게 노골적인 시선이 쏟아졌음 말은 없었지만 티나게 윙을 의식하던 경찰들의 분위기를 노련한 조직의 간부들이 알아채지 못할리가 없었음 제법 다혈질인 간부 하나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윙에게 다가서자 녤이 그 앞을 가로막았음


- 제가 키운 놈이니까.. 조지는 것도 제가 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잔뜩 가라앉은 녤의 목소리에 간부들은 이해한다는 듯 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창고 안을 빠져나갔음 숨통을 죄는 적막에 윙은 금방이라도 주저 앉아버릴 것만 같았음 도청을 당한걸까. 아니면 또 다른 프락치에게서 진짜 정보를 입수한걸까..


전말이 어떻게 되었든 언더커버로 조직에 들어온 사실을 들킨 것은 확실했음 윙은 얼마 전 녤의 손에 죽었던 태범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떠올랐음 사람을 먼지를 보듯 보던 녤의 눈.. 녤이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음 


- 일단... 따라와.


녤은 수행원들을 모두 물리고 직접 운전해서 윙을 사무실로 데려왔음 모두가 퇴근하고 불이 꺼진 사무실에는 적막이 내려앉았음 녤은 정교하게 고안된 금고의 복잡한 잠금장치를 풀고 서류철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음 표지 부분이 닳은 걸로 보아 최근에 작성된 것은 아닌게 분명했음


- 봐.


윙은 녤의 명령같은 말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한장 한장 넘겼음 그리고 마침내 정복을 입은 제 증명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만 쥐고 있던 파일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음 도대체 어디서 구한건지.. 신상명세서와 경찰대 졸업장, 등본까지 있었음


- 이게 도대체...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간신히 서있던 윙에게 녤이 성큼 성큼 다가왔음


- 내가 그걸 보고도 박지훈 널 옆에 둔 건.. 

- .....

- 믿고 싶어서였다. 아나? 사람을 좋아하면 덮어 놓고 믿고 싶어진다. 병신같이.. 머리로 저새끼 프락치다 백 번 생각하면 뭐하노 족칠 마음이 안드는데..


윙은 저도 몰랐다.. 도청을 당한 것 같다. 결코 배신할 생각이 아니었다..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뱉어낼 수가 없었음 말한다 해도 믿을 수 없을 뿐더러 애초에 녤을 속인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음 나는 뭘..어떻게 해야하지. 윙은 차라리 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음


이윽고 윙의 관자놀이에 선명한 금속의 촉감이 느껴졌음 녤이 금고에서 꺼내 윙의 머리에 갖다댄 것은 총이었음 딸깍.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었음 한 발만 맞아도 바로 즉사.. 윙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음 결코 이런 끝을 바라지 않았는데.. 바라는대로만은 되지 않는 삶이었음


적막을 가르고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렸음 이제 정말 끝.. 질끈 감은 눈에서 한줄기 눈물 방울이 흘러내렸음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턱끝에 맺히고 바닥으로 떨어질때까지도 총성은 울리지 않았음 이내 금속성의 압박감이 사라지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음


- 씨발.. 나는 진짜 병신이다. 훈아 니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 ...다니엘.


윙이 처음으로 녤을 이름으로 불렀음 윙은 눈물에 푹 젖은 속눈썹을 힘겹게 들어올렸음 흐릿한 시야에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녤의 얼굴이 가득 들어왔음 그리고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하려던 말은 녤의 입속으로 삼켜졌음


녤은 윙의 입술을 거칠게 베어 물고는 벌어진 틈 사이를 파고들었음 점점 떠밀려 책상 위에 걸터앉다시피 한 윙의 목과 아랫턱을 꽉 쥐고 빈틈없이 몰아붙였음 숨막힐듯한 긴장감이 야릇한 열락으로 뒤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음 으응..으.. 윙의 잇새로 달뜬 신음이 터져나왔음



녤의 움직임을 느끼던 윙은 다시금 눈을 감았음 눈꼬리에 맺혀 있던 눈물 한방울도 함께 흘러내렸음 섹스를 연상하게 하는 거친 키스도, 목 전체를 감싼.. 단단하지만 다정한 손길도 모두 녤이었음 윙은 책상을 위태롭게 지탱하던 두 손으로 녤의 허리를 감쌌음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순간이었음




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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