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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걸로 들으세요. 반복재생 해주심 안될까? 처돌 소원!













황제, 국민들의 걱정에도 3년 동안 황후의 자리를 비워둔 이유.

전 황후의 옆자리에 앉은 황제의 마음은?

황제, 자선 행사에서 전 황후와 묘한 기류.

다시 시작되는 황실 로맨스. 재혼의 가능성 있나.

황제는 전 황후를 잊지 못하고 있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 그리고 언론사 메인에 장식된 기사의 사진은 자선행사에 참여한 전 황후였던 김여주와 황제인 정재현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황실의 작은 행보 하나에도 모든 국민들이 주목했다. 지정석을 두고 전 황후인 김여주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눈 황제 정재현의 행동 하나로 온 대한민국이 크게 들썩였다. 특히나 3년 동안 비어있는 황후의 자리에 하나둘 여론이 말을 내는 시점이었다. 모든 여론을 통합해 살폈을 때 그 뜻이 하나라면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이기도 했으며, 종친회와 국회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만큼 비어있는 황후의 자리에 대해 온 대한민국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있었다는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한 번에 태풍이 휘몰아쳤다. 검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려도 끝없이 나오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을 눈에 담으며 여주는 피곤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는 얕은 한숨 뒤에 태블릿 화면 메인에 떠 있는 기사를 클릭 했다. 기사 속에는 정성스럽게도 자선 행사에서의 둘 사진 뿐만이 아닌 황태자비 시절의 김여주, 그리고 황태자 시절의 정재현이 담겨있다. 여주는 덤덤한 얼굴로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두 눈에 담는다. 점점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다가 어느 사진에서 멈춰 섰다. 열 일곱의 시절, 주기적으로 대외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했을 적에 같이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부가적인 설명이 적혀있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황제 또한 첫사랑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듯하다.


같은 공간. 저 멀리 떨어져 찍힌 공식적인 사진에도 남들은 멋대로 추측하고 포장해 로맨스를 줄줄이 나열한다. 결혼 발표를 했을 시절에 국민들에게 정략결혼인걸 숨기기 위해 서로의 첫사랑이라는 로맨스를 미끼로 던졌기에 그 여파가 지금 돌아온다. 꾸며낸 이야기는 그냥 여느 로맨스 소설 같은 이야기다. 어렸을 적부터 여러 봉사활동과 공식적, 그리고 비공식적인 행사에서 번번이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첫사랑이 되었다. 황태자는 결혼을 한다면 첫사랑인 김여주와 결혼을 하기를 원했고, 양가의 합의 끝에 혼인이 성사 되었다는 만들어낸 거짓 이야기. 그 진부하고 뻔한 사랑 이야기에 황실을 가져다 붙이니 꽤 그럴 듯 해 보였다.





여주는 과거의 사진 안의 재현을 멍하니 한참을 바라본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얼굴. 대외적인 행사에서 기계처럼 웃는 얼굴이 아닌 진짜 정재현의 웃는 얼굴. 의외로 여주가 멀리서 지켜본 정재현은 대충대충 봉사 하는 시늉만 하고 사진이나 찍으러 온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봉사를 진심으로 임했던 사람이었다. 정재현은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선을 긋고 대충 대외적인 친분만 쌓거나 차갑게 굴던 애가 그때만큼은 인간적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였더라. 정확히는 열 일곱의 2월 초. 여주가 멍하니 바라보는 사진 속 장소. 보육원 봉사활동에서 여주는 그날 황태자 정재현의 새로운 이면을 보게 된다.




"황태자 형아, 이거 봐라? 완전 잘 그렸지?"





아이가 에이포 용지 위에 색칠한 그림을 들고 정재현에게 뛰어오며 물었다. 여주는 다른 아이의 글씨쓰기를 도와주다가 몰래 정재현에게 시선을 둔다. 어릴 적부터 그를 짝사랑을 하고있는 여주의 시선이 몰래몰래 그를 눈에 담는다.



"그러네. 축구선수인가."


"맞아, 축구 선수. 나 어른 되면 축구선수 될 거거든."





아이가 재현에게 내민 그림에는 넓은 잔디밭 위로 공을 차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재현은 장난기 있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아이에게 묻는다.




"너 축구 잘해?"


"당연하지. 여기서 내가 제일 잘해."





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그런 아이가 귀엽다고 생각한 재현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농구 잘해."


"우와아. 그럼 형은 농구 선수가 될 거야?"




아이의 순수한 물음에 어쩐지 정재현은 말문이 막힌 듯 작게 입을 열었다가 닫으며 뻐끔거렸다. 결국 그의 대답은 한참 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 침묵이 답답했는지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에게 되묻는다.




"형은 꿈이 뭐야?"


"… 꿈?"




아이의 물음에 재현은 두 눈을 느리게 끔뻑 거리며 되물었다.




"응. 꿈. 형아는 어른 되면 뭐할 거야?"


"글쎄......"


"뭐야. 형은 그렇게나 컸는데도 꿈이 없어?"


"그러게. 그런 거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까지 누가 그런걸 물어봐 준 게 처음이라서. 그 말을 하며 아이를 바라보는 재현의 표정이 어쩐지 착잡해 보이기도 했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네가 처음이야. 내 꿈 물어봐 준 거."


"진짜?"


"그래. 물어봐 줘서 고마워."




끝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재현을 보며 여주는 그가 자신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답이 정해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과 닮은 사람. 여주는 그가 한 번쯤 짓는 저 진실한 웃음을 자주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재현이 거짓으로 웃는 웃음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냥 인터넷에 정재현이라는 이름만 쳐도 나오는 공식 기사 사진에도 찾아볼 수 있는 게 그 웃음이었다. 나 또한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썼다. 우리는 모든 국민들의 앞에서 완벽한 한편의 연극을 연기했다. 첫사랑. 그 나이만의 풋풋한 로맨스. 남주인공은 황태자 정재현. 여주인공은 황태자비 김여주. 그런 정재현이 진짜 웃음을 처음 내게 보여준 것은 그건 혼인 후, 궁중 연례행사 때문에 배워야 했던 첫 승마 수업 때였다.




"부잣집 재벌 자제인 귀족들은 승마 안 배우나?"


"꼭 배워야 할 필요는 없지."


"너 다른 건 기계처럼 다 잘 배우고 금방 하더니 의외네."




그 말을 들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정재현에게 보여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보는 네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처럼 너에게도 네가 보는 나는 너와 닮아 있을까.





"태자비가 탈 말이 준비될 때까지는 일단 기초는 제 말로 가르치죠."




정재현은 직원에게 자신의 말의 고삐를 넘겨 받으며 직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의 사이에서 일반인이 있는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예 전하."




정재현의 말에 직원은 인사 뒤에 멀리 떨어졌다. 나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하얀 말을 가만히 바라보며 남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내게 안타고 뭐하냐는 정재현의 시선에 결국 나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말 안장에 올라탔다. 딱딱한 말 안장에 앉자마자 겁에 질려서 뻣뻣한 자세로 굳어졌다. 어릴 때 말을 한번 타봤던 이후로 승마는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승마라는 안정감 없는 이 행위에 대해 반감이 가득했었던 거 같은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역시나 나이를 먹어도 그 반감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순간 고삐를 쥐고 있던 정재현이 슬쩍 내 안장을 붙잡은 손을 보더니 언질도 없이 갑자기 고삐를 잡고 말을 끌었다. 매너 없는 출발이었다. 그 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말이 유유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야."




높고 위험한 건 딱 질색이다. 순간 너무 놀라서 눈을 감은 채 안장 손잡이를 생명줄 붙잡듯 꽉 잡은 채 말의 목덜미 쪽에 몸을 최대한 붙여 몸을 낮췄다. 그런 내 행동에 어쩐지 말이 걸음을 멈춘다. 말이 멈추고 나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그제야 머리부터 천천히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나 지금 뭐한 거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떨리는 눈꺼풀이 느껴진다. 밀려오는 민망함과 머쓱함에 꾹 감고 있던 두 눈을 살포시 떴다. 그러나 내 눈앞에 정재현의 시선이 가까이 마주한다. 당황한 내가 멍하니 그와 두 눈을 맞추며 끔뻑거리고 있자, 그가 먼저 내 시선을 피하며 얕게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는다. 그리고 그는 내가 들릴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영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야. 너."




심장의 고동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맥박의 수가 빨라졌다.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다시 굽혔던 허리를 펴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괜히 밑을 보면 더 무서워질까 봐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데 밑에서 정재현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냉정하고 차갑기만 한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 황태자 정재현의 뒤에 가려져 있던 진짜 소년 정재현의 모습.




"너 얼굴 빨개졌어."





슬쩍 나를 보던 그가 다시 말의 고삐를 끌었다. 말의 걸음 소리만 가득한 공간 속에서 중간중간 피식거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부끄러움에 말 안장 손잡이를 잡은 손이 살짝 떨려왔다. 정재현은 아마도 내가 허술한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해 창피해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내가 부끄러웠던 건 예상치 못하게 가까이 마주했던 그의 얼굴과 나를 향해 처음으로 웃어준 그 작은 웃음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 숨길 수 없어진 내 마음이 너를 보고 너무 설레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네가 준 그 설렘 때문에.
















궁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내는 너무나도 외로운 곳이었다. 특히 정략결혼으로 황태자비 자리에 앉게 된 내게는 더더욱 냉정했다. 대외적으로는 황실과의 한 사람이자 장차 황후가 될 사람으로 어떠한 흠을 보이지 말아야 했으며, 내부에서는 어떠한 잡음도 내지 않기 위해 나를 단속하기 바빴다. 정말 별것도 아닌 황실의 발걸음에도 사람들은 일파만파 황가의 뜻 없는 행보에 그 뜻을 헤아리려 했고 추측했다. 예를 들면 공식 석상에서 찍힌 표정과 시선 같은 정말 사소한 문제부터 내가 우리 가족들을 만나는 일들까지 말이다.


정재현의 아버지, 즉 그 시절의 황제 폐하께서는 옥체가 많이 편치 못하셨기에 정치적으로 황권이 약화되어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황실의 권력을 한시라도 빨리 되찾기 위해 최대한 빨리 정재현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그것은 비단 황제 폐하의 바램만은 아니었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황태자 정재현에게 귀추를 주목했다. 어떠한 사람들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또 그 누구는 황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 누구는 흠을 찾고 끌어내리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또 누구는 황태자 자리에 있는 그의 자질을 의심하며 그의 행보를 눈으로 쫓았다.


특히 국회는 정재현이 황제가 되면 정치적으로 다시 황권이 강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나섰다. 그들은 정재현의 티끌 같은 흠이라도 찾아내려 애썼고, 계속 국회가 잡고 있는 이 정치적 정권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황제의 동생인 대군인 정재현의 작은 아버지를 황제감으로 앞세웠다. 분명 그들에게도 모종의 정치적인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종친회, 그리고 황제파 귀족들과 황제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거래의 산물이 정재현과 나의 비밀 정략결혼이었다.


뒤로는 온갖 정치적 계략이 가득했지만 대외적으로는 풋풋한 첫사랑으로 이루어진 황실 로맨스라는 배경을 가지고 연기해야만 했다. 정치판에서는 어떻게든 정재현을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으니 나는 내 가족을 만나는 것 조차 제지 당했다. 단순히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 조차 적에게는 정재현을 흠집을 낼 수 있는 거대한 먹이었다. 내 행보 하나하나에 정치적 언론 플레이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티끌조차 없는 자유는 숨도 쉴 수 없는 감옥과 같았다. 이 모든 것은 정재현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의 앞길에 조금이라도 말이 나올 수 있는 일은 황태자비인 내게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전통은 고전적이고 아름답기도 했지만 지금의 현대인들에게는 답답하고 보수적이기도 했다. 특히 황가의 전통은 더더욱. 궁에 들어와서 살아온 5년 동안 나는 그냥 줄 달린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만 같았다. 항상 입꼬리 근육이 떨릴 정도로 온종일 웃는 낯의 가면을 써야만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히 내 의지가 들어간 것이 별로 없었다. 정해진 옷을 입어야 했고, 끊임없이 생기는 주어진 스케줄에 참석해야 했으며, 무슨 일이 있던 현재 내 감정이 어떻든 간에 나는 항상 웃어야 했다. 심지어 음식 조차 내 멋대로 먹을 수 없었다. 나는 궁 안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갔다. 적이 많은 외부인인 내게 궁은 유독 냉정했다. 그런데도 나는 도마 위에 다져지는 고기처럼 멋대로 품평 당하고 눈에 불을 켜고 공격하기 바쁜 정치판의 한가운데인 궁에서 혼자 하루하루를 버텨가야만 했다.


그래서였다. 나는 내가 궁에 들어온 원인인 너를 더 눈으로 좇았고 열망 했으며, 행동 하나하나에 휘둘렸다. 다정함을 바랬고 기대 했으며 내 기대와는 다르게 궁 안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은 네 냉정함에 수없이 너를 원망했다. 그 풋내기 짝사랑으로 사랑을 선택한 내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하나하나 널 더 깊게 알아가고 사랑하게 될 수록 더 그랬다. 내 마음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그만큼 너에게 받는 상처의 크기와 비례했으니까.


날이 갈 수록 입맛이 없었다. 먹고 싶지도 않은걸 당연하게 보여주기식으로 억지로 욱여넣다 보니 항상 속이 좋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섭식장애가 생겼다. 처음에는 식사 후 상궁들 몰래 화장실에서 조용히 속을 게워내고는 했다. 하지만 그 횟수가 빈번해지며 궁인들의 눈을 속이기 어려워졌다. 그냥 소화가 잘 안된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들먹이며 의원에게 위염약 정도만 받았다.


어느 날이었다. 정재현과 궁 안에서 둘이 점심 식사하는 도중이었다. 눈앞에 잘 차려진 음식에 순간 나는 표정을 숨길 수 없어졌다. 저 속부터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제는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매스꺼웠다. 머리가 어질하고 정신이 아찔했다. 창백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행동에 정재현이 컵을 들어 물을 삼키다 말고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잠시 화장실 좀."




급하게 이 곳을 빠져나가려 걸음을 몇걸음 걸었는데,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가 흐릿하게 초점을 잡는다. 그러다 다시 또 새하얗게 변하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결국 위험하게 비틀거리다가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릿한 시야에는 주변에 있던 궁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내게 뛰어오는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정재현의 모습도.




"마마!!"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아보려 노력하지만 더는 한계였다. 볼품없이 주저앉아 놀란 얼굴로 급하게 내게 달려온 상궁의 품에 안긴 채 나는 기절했다.
















탕약이야. 이거 마셔야 약 먹을 수 있어. 상궁이 주는 탕약을 건네받아 내 입가에 내미는 그의 손을 밀어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입가를 막았다.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이제는 억지로 입 안에 욱여넣는 것 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약이라도 먹어."





최 상궁, 물이랑 약 좀 가져다주세요. 그의 말에 그의 손에는 약과 물컵이 쥐어졌다. 그것들은 다시 내 앞에 내밀어졌다. 탕약을 내밀었을 때와는 다르게 그에게 물컵을 받아서 들고 얌전히 약을 먹으니 그제야 그의 잔뜩 굳어진 낯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영양실조라던데."




그가 말을 떼기 무섭게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 피곤해."


"언제부터야."





의원과 궁인들 말에 따르면 최근에 시작된 건 아닌 거 같던데.




"말해. 너 언제부터 이랬던 건지.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몰랐는지 지금 다 설명해."


"쉬고 싶어."


"......"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퍼석해진 입술을 열어 화가 잔뜩 나 있는 정재현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속이 허했다. 공허하고 또 공허했다. 그런데도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꼭 머리도 몸도 모두 고장 난 것 같았다. 모든 게 다 삐걱거린다. 꼭 기름칠 되지 않은 로봇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정재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손에 꽉 쥐고 있던 빈 물컵을 그대로 빼앗아 상궁에게 건네며 말한다.





"태자비와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 다들 자리 좀 비켜주세요."


"예, 전하."





방 안에 있는 모든 궁인들이 다 물려졌다. 그제야 정적을 깨고 그가 내게 묻는다.





"많이 힘들어?"






긍정의 대답도 부정의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냥 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냥 지금 모든 게 다 피곤했다. 모든 기력을 다 소모한 것처럼. 대답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분명 힘들 거라고 했잖아."




어떻게든 버텨. 조금만 더 버텨. 오래 버티라는 소리 안 해.




"나도 내 옆 싫다는 사람 붙잡고 사는 취미 없으니까."






마주본 시선은 여느 때와 같이 냉정했다. 비참함이 밀려들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궁 안에서 정말 혼자임을 깨닫는다. 내가 네게 바란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그냥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어쩌면 내게 더 위로가 됐을 거다. 너로 인해 너와 나 사이에 또 선이 그어진다. 점점 간극이 벌어졌다.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던 것들이 부질없이 꺾인다. 이제 나는 너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지친다. 혼자 뒤쫓는 너의 뒷모습이 내 버거운 걸음에 점점 더 멀어져갔다. 한 번쯤 돌아봐 주는 그 시선에 매달리고 너의 관심을 바라고 안달 나 하는 내 모습이 이젠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다.




"그래."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꼭 빨리 황제가 돼."




그 말을 뱉으면서 마음을 체념한다. 하지만 그런 내 머리와는 다르게 마음은 한번 생긴 욕심을 안고 끝 없이 포기를 모른다. 이제는 너에게 다정함을 바라지 말아야지. 나 혼자 처량히 그렇게 스스로 되뇌면서도 한편으로는 네가 나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끝까지 네가 나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그때까지 열심히 버텨 볼게."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네가 황제가 되고 나서도 날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조금은 너도 내게 마음이 있었다고. 그렇게 네 옆에서 혼자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도 어떻게든 견뎌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이틀 뒤, 우리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척 황태자 부부의 식목일 기념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했다. 국립 수목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부터 우리를 보러 온 사람들과 기자들이 뒤섞여 우리를 둘러쌌다. 아직 몸이 많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밀면 미는 대로 몸이 휘청거렸다. 결국 수행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아지지 않는 인파에 쓸려 넘어질 뻔한 것을 정재현이 내 허리에 팔을 감싸 끌어안았다.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다 머리에 달고 있던 작은 장신구가 떨어졌다. 덕분에 고정되어있던 옆머리가 살짝 흘러내렸다.


외부인 출입 금지 싸인의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는 곳을 지나서 몇몇 출입을 허가 받은 기자들을 대동하고 수목원 관리 직원들과 함께 정재현과 나란히 벚꽃길을 걸었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봄바람이 아직 매서웠다. 고정되지 못해 흘러내린 옆 머리를 애써 귀 뒤에 꽂으며 걸음을 옮겼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잎들이 봄바람에 팔랑 거리며 날렸다. 갑자기 정재현이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게 몸을 기울였다. 그는 내 머리 위에 내려앉은 벚꽃 잎들을 조심스레 털어주며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잠시만."





그가 곧장 허리를 숙여 거센 봄바람 때문에 바닥에 내려앉은 벚꽃이 핀 가지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어쩐지 그의 손이 자꾸 흘러내리는 내 옆머리에 향했다. 다정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 그가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벚꽃 가지를 내 귀에 꽂는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잘 어울려."






엄청 예쁘다. 그 말을 뱉으며 웃는 그의 모습은 평소에 짓는 냉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조개가 그가 정말 진심으로 웃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때를 맞춰서 뒤에서 셔터 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또 다시 바람이 불었다. 만개한 벚꽃잎이 바람을 타고 공중 위를 아름답게 흩날렸다.






"고마워."






나 또한 웃었다. 똑같았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연기를 했다. 풋풋한 첫사랑에 빠진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역할을. 하지만 그 연극 뒤에서 혼자 설레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으니 이 얼마나 비참한 연극인가.


















"이번 일로 황제 폐하께서 따로 뵙길 원하신다고 요청해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또 다시 시작된 연극 롤인가.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여주는 메인 기사가 둥둥 떠 있는 태블릿의 홀드 버튼을 누른다. 벚꽃을 귀에 꽂고 정재현을 마주 보며 웃고 있는 황태자비 시절 여주의 모습이 까만 화면에 잡아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만나겠다고 전달해주세요."





이혼한 순간부터 그 소꿉장난 같은 풋내기 연극은 이제 끝났다. 막이 끝난 후, 혼자 상처 입고 초라해진 여주인공은 이제 더 이상 가짜로라도 행복한 척 웃을 자신이 없다.













만남은 언론과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야 했기에 정재현이 지정한 호텔 스위트 룸 안에서 약속이 잡혔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인기척에 정재현이 내게 시선을 돌린다.




".... 왔네."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노란 국화차 향기가 코끝에 스쳤다. 마치 그때 그날처럼. 정재현을 눈에 담은 내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빠른 맥박수와 함께 시큰거려왔다. 꼭 그 과거의 감정을 지금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혹시 쌤들 깡패야...?ㅋㅋㅋㅋㅋㅋㅋㅋ 조각글에 다음편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떡해ㅋㅋㅋㅋㅋㅋㅋ(농담임)

암튼 개떡같이 써도 찰떡같이 씹어서 소화하는 선생님들이 있어 처돌이가 이 삶을 살아간다ㅠㅠ

하여간 이 못말리는 아가씨들을 어쩌면 좋아. 으이구!! 못말려!! ((대충 안철수 도리도리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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