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 사이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복잡한 사이야.”


알아요. 내뱉지 못한 대답을 입안 가득 물고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대답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리는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웰스는 휠체어에 앉아서 손 끝에 놓인 버튼을 톡, 톡 치며 그 상황을 조금 즐기고 있었다. 그의 표정 변화가 볼수록 신기할 정도였으며 당황하는 모습이 꽤나 흥미 있었다.


“네가 있어야 내가 살아. 배리.”


그 말이 유난히 달콤하게 들려와서. 배리는 두 눈을 가볍게 감아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큰 의미라도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문장이 아닌가. 한 번만으로는 부족해서 녹음기로 녹음해서 틈나는 대로 재생시켜 듣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살아.”


두 눈을 뜨고 박사의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어느 휴양지에서나 볼 것 같은, 깊은데도 맑아서 바닥이 고스란히 비치는 바다를 들여다 보는 기분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도 평안해지는 기분, 그는 알고 있을까.


“이런 모순적인 관계 꽤 마음에 들지 않아?”

“네?”


뒤이어진 말에 배리는 두어 번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눈을 감지 않은 것처럼 보였겠지만, 웰스는 그의 깜박거림을 놓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냐고 물었네.”


들죠. 무심코 대답하자 웰스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었을 때, 그는 유난히 작게 느껴지는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 입을 적셨다. 그의 앞에 서 있으면 항상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볼 정도로 그를 존경했었고,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을 아마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박사님은 지금 제가 어떤 감정으로 박사님과 마주하고 있는지 모르죠.”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두지 못한 채로 푸른 눈동자는 붉은 후드가 어울리는 청년을 향해 있었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리며 한숨을 내쉬는 그의 감정을 왜 모를까, 저렇게 티가 나는데. 웰스는 누구보다도 빨리 그의 감정을 알아채고 있었다. 이 연구소 내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눈치 채고 있었겠지. 웰스는 방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배리만 모르는 그 상황과 분위기를 조금은 즐겼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모르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어떤 감정으로 마주하고 있는지 물어도 되나.”


직접적으로 물어오자 배리는 입을 살짝 벌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어깨를 으쓱, 갈 길을 잃은 눈동자, 정리 못한 말을 내뱉으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입술. 모든 상황이 또 다시 유쾌한 기분이 들어서 모든 감정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날 것 같았다. 이번엔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아서 고개를 숙여 애꿎은 애스프레소 잔을 들었다.


“전, 그러니까 저는……”


힘들게 운을 뗐지만, 끝마치지는 못했다. 배리는 아예 입을 닫고 시선을 떨궜다. 어떤 감정으로 마주하고 있는지, 내뱉으면 그와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하고 후회를 할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안고 후회를 할까. 어느 쪽도 정답은 없었다. 배리는 ‘결론이 예상되지 않는 일’은 딱 질색이었다. 이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도달하지 못했으면 다시 새로운 가설을 세워 반복하는 일과는 달랐다. 이 경우는 조금 더 달랐다. 웰스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감정을 전했을 때 자신에게 보여질 수만 가지 결론들 중에 무엇이 나올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박사님 저는.”


“나를 좋아한다고?”


“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웰스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비디오카메라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순수하게 느껴지는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올곧게 쳐다보고 있었고, 그 시선이 꽤, 마음에 들었기에. 간직할 수 있으면 사진이건, 영상이건 남겨두고 싶었다. 다시는 못 볼 순간 같아서.


“어떻게……알았어요?”


“자네가 나를 좋아하는 거 여기 모르는 사람이 있어? 웨스트에게 가서 물어보지 그래?”


할 말을 잃은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다 입 꼬리를 끌어 올리더니 소리 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웰스가 오히려 할 말을 잃은 채 그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의 반응보다도 더 예상을 하지 못한 건 뒤이어진 말이었다.


“그래서요? 박사님 대답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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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교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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