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모음 1.

  契. 여홍





 A. 검사 이제노X변호사 황인준


 제노가 맡는 사건마다 사사건건 훼방놓는 인준이 보고싶다. 어떻게 알았는지 검사 이제노에게 떨어진 사건마다 귀신같이 냄새맡고 찾아와 변호해서 검사체면 말아먹게 만들고, 법정 나설 때마다 얄궂은 얼굴로 놀려대서 제노는 황변호사라는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호흡이 가빠올 지경임. 제노는 인준이가 자길 왜 저렇게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지 몰라. 사실 인준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름. 처음엔 변호사 된 패기로 시작한게 어느샌가 제노를 골리는게 재밌어서 이렇게 된 것까지는 알겠는데, 자기가 남 괴롭히는데서 희열느끼는 변태는 아니라 스스로도 모르겠는 것임. 너무 놀려댔나싶어서 좀 적당히 해둘까, 하는데 하필이면 제노 앞으로 대형사건이 배당됨. 인준은 대형로펌의 승률 90% 이상의 변호사라 본의 아니게 제노가 맡은 사건에 끼어들게 됨. 제노는 또 속이 갑갑하고 호흡이 가빠오고... 이젠 아예 검찰청까지 와서 사람 속 뒤집어지게 만들 작정인지 자꾸 취조실이랑 사무실 근처에서 보여.

 - 저기요, 이검사님. 이번 N그룹 비자금 사건은 내가 할...
 - 황변호사님.
 - 네.
 - 저 싫어하세요?
 - 갑자기 뭔 소리에요?
 - 그럼 왜 이렇게 나를 못 살게 굴어. 있잖아요, 나는 남들 못 살게 구는 인간들 벌주고 싶어서 검사가 된 사람이야. 자꾸 날 이렇게 괴롭히면 내가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고, 주눅이 들고 그러네. 어?

 검찰청 내 서글서글하고 성격좋은 검사로 통했던 제노지만 마음 속 깊이 간직해온 빡침을 분출하는 순간만큼은 예민한 맹수였음. 다소 당황한 얼굴로 멈칫거리던 인준은 금세 특유의 얄궂은 얼굴로 그렇게 불만이시면 이검사님이 나 이겨보시던가~, 자신없으신 거 아니에요? 검사가 되가지고선. 사람이 그렇게 알량한 자존심으로 뭘 어쩌려구. 나 한번이라도 자빠뜨리면 인정. 살살 약올리는 말에 제노가 이마짚고 한숨 쉼. 검찰청에서 검사한테 위증하면 존나 가중처벌 대상이니까 그렇게 알아요. 인준은 얌전한 얼굴에 툭 튀어나온 욕설에 놀라고, 그 욕설이 또 의외로 잘 어울려서 두번 놀라버림.

 - 뭐예요? 이거 놔요! 어딜 데려가는거야?! 여기 검찰청이예요!
 -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별안간 인준을 끌고 내려간 제노가 텅비어있는 취조실로 인준을 밀어넣고 문을 잠궈버림.

 - 저기요, 이검사님. 우리 다시 생각해봅시다. 이거는.
 - 테이블이 좀 딱딱하긴 한데 누워볼만 할 거 예요. 나랑 취조하는 사람들은 저기에 머리 대는 걸 좋아하더라고.

 새하얀 조명이 들어오고 피할새도 없이 제노의 손에 붙들려 취조실 테이블 위에 눕게 된 인준이 검사님, 검사님. 흥분하지 말아봐요, 잠깐만, 하고 말리려는데 제노는 이미 인준 양 손 쥐고 너른 팔로 가슴 위에 기대듯이 섬.

 - 인정할거야?
 - 아, 좀! 이건 완전 억지...
 - 위증으로인한 가중처벌.

 인준이 일어서려 몸 버둥거리는데 제노의 힘에는 역부족이었음. 이리저리 몸을 꼬다가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졌다, 졌어, 인정할게. 인정합니다. 성질 더럽고 치졸한 이검사님. 하고 노려보며 말하자 제노가 고개 숙여서 인준하고 시선 맞춤.

 - 황변호사가 나한테 깔릴 때도 다 있네.

 가까이 다가와있는 통에 눈가 주변에 옅게 자리잡은 주름까지 보이는데 어쩐지 그게 또 오묘하게 어울려서 인준은 인상을 찌푸림. 그리고 괜한 생각에 사로잡혀. 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키스를 해야겠다고.




 B. 경호원 이제노X배우 황인준


 인준은 칸의 남자라는 수식어를 달고도 한없이 겸손한 탑배우로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님. 까탈스러운걸로는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고, 까칠하기로는 사포가 울고갈 지경이었음. 어찌나 까탈에 까칠에 -매니저 말에 의하면- 세상 갖은 지랄을 다하는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스타일리스트건 로드매니저건 경호원이건 보이는 족족 잘라버리기 일쑤라 소속사에서 고민이 많았음. FM이면서 참을성 강하고 웬만한 욕설에는 눈하나 깜짝않는 강철심장을 가진 경호원 없을까. 그리고 머지않아 그런 경호원이 눈 앞에 나타남. 나름 알아주는 경호업체의 경호팀장인 이제노. FM계의 바이블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것이 FM 이며 조용하고 말이없는 이제노는 한성깔하는 황인준의 맞춤형 경호원이었음. 첫출근부터 제노의 외모를 보고 인준이 약간 당황했으니 말 다했다.

 자기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인준이라 흔한 파파라치 사진 한장 건지기 어려워 항상 기자들의 전의를 불태우게 했는데, 우연히 시나리오를 받으러 가던 길에 제노와 함께 찍힌 사진이 지면에까지 실리면서 일약 스타가 됨. 물론 황인준말고 이제노가. 흔한 경호원의 얼굴, 이래서 황인준이 파파라치에 안 찍히는거다 저 얼굴 지만 보려고 어쩌고궁시렁 하는 글들이 도배가 되기 시작함. 인준은 한성깔하는 만큼 매우 인간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제노가 더욱 더 주목을 받는 꼴을 눈뜨고 보기 싫었음. 차분하고, 겸손하며, 기품있는 캐릭터로 엔터판에서 자리매김하고 있긴 했지만 인준의 내면에는 사실 그게 있었어. 관종끼. 헐리우드에 킴 카다시안과 쇼 비지니스의 천재인 비욘세가 있다면 국내에는 무조건 황인준이 있어야 했다. 물론 성격탄로날까 맞지도 않는 캐릭터를 부여한 사장때문에 무용지물이 됐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되지. 암. 그렇고 말고. 인준은 머리가 매우 좋음. 상황판단도 빠르게 했고, 눈썰미도 좋았음. 영화감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시나리오도 매우 잘 골랐지. 하지만 이번엔 행로를 다르게 가기로 결정함. 막 영화판에 입문한 신인감독의 작품에, 그것도 퀴어물로 복귀를 하기로 한 것임. 불도저처럼 밀고나가버린 덕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는 인준한테 쏠림. 근데 여기서 잠깐 오는 관심을 받기만 한다면 황인준이 아니지. 완전히 달라진 행보에 대해 묻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인준은 시기적절한 폭탄발언도 해버림.

 Q. 기존에 행해왔던 길과는 다르게 완전히 다른 장르의 작품을 선택해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연기변신을 꾀하기 위함인가요?


 A. 아니요. 독립영화 감독님들과 신인감독님들은 투자받기 힘들다보니 그런 걸 개선하고자 하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제가 퀴어물을 선택한 것은, (큼) 네, 제 애인때문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제 경호원이요... 사실 그 친구가, 아니, 제노가 제 애인이거든요. 제노가 <해피투게더> 라는 영화를 참 좋아해요. 저는 항상 그게 질투났거든요. 저의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해주지만, 저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남지 않았다는게. 그래서 <해피투게더> 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을 골랐어요. 제 애인에게 사랑할 수 있는 영화를 선물해주고 싶어서요.


 인준의 폭탄발언은 랜선을 타고 멀리멀리, 아시아권역까지 퍼짐. 사귀지도 않는데 자기도 모르게 인준의 애인이 되어있는 제노는 억울할만한데도 별다른 기색을 안했음. 인준은 제노가 화낼거라고 예상하면서도 한 말이었는데 가만히 있으니까 뭔가 좀 이상해. 그래서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운을 띄워서 물어봄.

 - 이제노씨, 혹시 비혼주의자?
 - 뭐가 될지 아직 정해놓은게 없어서.
 - 뉴스 봤어요?
 - 본 건 아닌데 새벽부터 전화걸어 닦달해주시는 분들 덕에 듣긴 했어요.
 - ... 왜 아무말 안해요?
 - 그야, 뭐...

 주행신호에 맞춰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은 제노가 거울을 들여다 봄. 궁금한 얼굴로 제 시선을 마주하는 인준을 보면서 얘기해.

 - 소문을 진짜로 만들면 되니까.

 FM 인간에게 허황된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엔 이미 너무 먼 강을 건너온 인준이었음.





 C. 사기꾼 이제노X카지노딜러 황인준


 카지노딜러 업계에서 유명한 인준. 제주도 그랜드 호텔의 카지노 오픈멤버로 들어가 카지노장 TF 짜고 딜러들 교육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급한 호출이 옴. 개장시간에 맞춰 들어온 손님이 계속 돈을 쓸어 모은다는거야. 카지노의 시스템 구조상 절대 그럴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종목이 도박이니만큼 진상이라는 말도 아까운 개새끼들을 많이 본 인준은 머릿 속으로 개새끼들 퇴치 매뉴얼을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카지노장에 들어가 경호원이 안내해준 자리로 가는데 사람이 촘촘히 들어있는 테이블과는 다르게 홀로 앉아있는 제노가 눈에 들어옴.

 - 저희 카지노장에서 제일 실력이 출중한 딜러분을 모셔왔습니다. 고객님 실력이 워낙에 좋으셔서요.
 - 내기할래요?

 카드칩을 가지고 손장난을 하던 제노가 고개를 들고 인준한테 물음. 얼핏보면 얼빠진 애처럼 보이는데 선명한 목소리며 눈빛을 보아하니 카지노장에서 꽤 뒹굴며 이곳 생리를 알만큼 아는 놈이라 생각되서 인준은 잠시 망설임.

 - 저희 카지노장 규칙상 카드칩을 재회수하거나, 배팅금액….
 - 그런거 말고. 뭘 좀 걸고 합시다.
 - 뭘 말씀하시는건가요.
 - 사람이요.

 손바닥 위에 카드칩을 잔뜩 올려놓은 제노가 인준 앞으로 던지듯 카드칩을 밀어넣음. 시선을 내리깔고 금액을 확인한 인준은 약간 놀람. 무슨 배짱으로 30억이나 배팅하지? 게다가 사람을 걸고 하자는건 무슨 뜻이고. 이새끼 타짜보고 대가리가 어떻게 잘못 돌아간 새끼 아냐?

 - 사람을 어떻게 걸고 하시겠다는건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야죠.
 - 그쪽이 이기면 이거 더 얹어줄게요. 그럼 뭐, 준 것까지 한 70억 되려나? 난 70억 걸고.
 - ... ... ...
 - 그쪽, 아니지, 황인준씨는 자기 자신을 걸고 하는 겁니다. 내가 이기면 당신은 나한테 오는거야. 간단하지?
 - 헤드헌팅인가요?
 - 딱히 헤드를 노리는 건 아니고. 헌팅하는게 맞기는 해요.

 종목은 딜러님이 고르시죠. 일생일대의 기회니까 자신있는걸로 하는게 좋을겁니다. 싱긋 웃는 얼굴로 인준을 보는 제노는 턱을 괴고 삐딱하게 앉음. 아이큐 170의 수재. 골드바흐의 추측에 가장 설득력있는 해답을 내놓은 천재.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카지노장에게 고배를 선물한 조커. 카지노장의 술수와 히든카드를 모두 파악한 천재 사기꾼 이제노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없었지. 물론 지금 원카드를 만지고 있는 딜러 황인준도.





트위터에 미리 말씀드리긴 했는데 혹시 못 보신 분들이 계실까봐. 글은 완성되는 순대로 올라옵니다. 후속편들은.. 이제 잊혀져서 기억에 남아 있으실 것 같지 않ㅋㅋㅋㅋㅋㅋㅋ지만ㅋㅋㅋㅋㅋ네.. 완성되면 올릴게요. 너무 오래 비워뒀으니 이번엔 젠런 이런거 보고싶다 썰 모음!



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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