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거야?"

알리체가 시가 상자를 살피며 물었다.

"이번에 물총새 상단에서 들여온거야. 뭐라고 설명을 길게 해주던데 잘 기억이 안 나네. 이게 한 개비에 금화 반개라구."

"요즘 어디든 그 얘기네. 나도 구경하러 가볼까."

"아침에 그 서펜트가 항구에 나타났다던데. 난 못 봤어 아쉬워."

화제가 껄끄러운 주제에서 벗어나자 다들 열성적으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엄청 멋지다던데. 은이랑 아쿠아마린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

"거기 상단주 거잖아. 상단주는 어쩌다가 그런 걸 소환하게 된 걸까?"

"뭐 알려진 게 없더라. 사실 몰락한 소환사 가문이라도 되는 거 아닐까?"

곧 카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노리는 여자애들이 많아. 엠이랑 로자가 벌써 작업 걸어봤는데 거절당했다고 하던데."

"잘생겼으니까? 그리고 여기 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타입이고.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어."

"딴 데라면 모를까 이 도시에는 이국적인 미남이면 흔하지 않나?"

"좀 다르지. 뭐가 다르냐 하면 잘 모르겠지만."

알리체는 카일의 모습을 떠올렸다. 살짝 그을린 피부나 복장은 이국적이다. 남자인데 드물게 귀를 뚫은 것이나 거칠고 굳은살이 박힌 손은 선원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그래. 군인 같았다. 느슨한 듯하면서 각이 잡힌 행동거지가 비스콘티 휘하의 고위 장교들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잘 교육받은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었는데. 정중하고 우아한 예절을 보이다가도 놀랄 만큼 잔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물정 모르는 그녀의 친구들은 전자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장교들과 자주 교류하며 불장난을 즐기곤 했는데. 비스콘티의 측근으로서 그녀는 후자의 모습도 꽤 많이 봐왔기 때문에 거리를 좀 두려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정체 모를 상단주는 왜 그런 찝찝한 놈들을 연상시키는 걸까. 알리체는 생각했다.

"상단주 얘기 하니까. 나 그 상단주한테 데이트 신청받았어."

알리체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진짜?"

어딜 가나 남의 연애 얘기가 재미있다. 특이한 만남이면 더 그렇다. 특히 페데리카가 관심을 보였다.

"등불 축제에 써달라고 티아라를 주면서 쓴 모습을 조여달라던데."

"클래식한 데이트 신청이네. 차림이나 생긴 걸 보면 파격적일 것 같았는데."

"데이트 신청은 맞아? 그건 이 근방에서만 쓰이는 관용어인데. 상단주는 외국인이잖아."

"그때는 물어보는 것도 애매하고. 데이트 아니면 그냥 같이 놀러가는 거지 하고 승낙만 해뒀는데. 나중에 만나서 물어보니까 맞다던데."

"그리고 또?"

페데리카의 과도한 눈길을 피하며 알리체가 말했다.

"그것 뿐이야. 아직 대화도 몇 번 안 해봤다고. 그냥 만나 보고 괜찮으면 사귀고 아니면 마는거지."

"네 남자 취향을 모르겠어. 다들 얼굴만큼은 정말 잘생기긴 했는데."

"모가지 안 뻣뻣한 놈들."

"그래서 파올로를 안 만나주는거냐?"

시가를 뺏긴 청년이 물었다.

"군복 입은 놈들은 내 취향 아니야."

"멋있지 않아?"

파올로는 비스콘티의 측근 중 하나인 유망한 청년 장교였다. 알리체에게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알리체가 절대로 사귀지 않을 부류 중 하나였다.

"고모부 부하들이잖아. 공사 구분이 안 된다고."

"이상한 데서 고지식하단 말이야."

"파올로 모가지가 뻣뻣하긴 해."

청년들이 낄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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