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과 태양이 서로 더 세다고 우겼다. 둘 다 양보할 생각이 없었기에 결국 말다툼이 되었다. 내기를 먼저 제안한 건 북풍이었다. “그럼 우리, 시합을 해보자.” 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북풍의 눈에 길을 가는 나그네 한 명이 보였다. “저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자.” 태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했다. 북풍은 세찬 바람을 잔뜩 몰아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나그네는 세찬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외투가 벗겨지지 않도록 했다.


   바람이 세찰수록 나그네는 단추가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여밀 뿐 활짝 열릴 기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태양이 나섰다. 처음엔 나그네를 향해 아주 약간의 햇볕만을 쪼이더니, 나그네가 손 부채질을 하며 꽁꽁 싸매었던 단추를 풀자, 태양은 본격적으로 햇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그네는 너무 더운 나머지 외투뿐만 아니라 옷을 모두 벗어놓고 시원한 냇가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 이솝 우화 중 ‘북풍과 태양’ -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빠르게 서두르기보다는 천천히,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매서운 바람 같이 쏘아붙이는 태도가 아니라 햇볕같이 따스한 경청의 태도이니, 당신도 북풍보다는 태양 같이 타인을 대하라는 교훈이 들어 있는 이야기일까?


   어느 봄날이었다. 길을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미친바람이었다. 처음에는 입고 있는 겉옷이 날아갈 새라 단추를 잠갔는데, 조금 지나자 이제는 겉옷이 아니라 내 몸이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길가에 있는 나무가 흔들린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그때였다. 거짓말처럼 바람이 멈췄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갑자기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기라도 한 듯 8월의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광파 오븐 속 소고기 안심이 이런 기분일까? 태양은 나를 익힐 작정이라도 한 듯 오늘따라 이상하게 뜨거웠다. 결국 나는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벗어놓고 강가에 들어가 더위를 식혀야 했다. 


   나그네의 입장에서 우화를 다시 써 보았다. 태양은 그날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내가 이겼다’ 자랑했겠지만, 나그네는 같은 날 저녁 어땠을까? 가족들은 혼이 빠져 귀가한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기진맥진한 남자는 겉옷을 걸어놓을 힘도 없이 주저앉아 ‘오늘 참 이상한 일이 있었어.’하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왠지 눈에 보이는 건 착각일까.


‘내 자식 같아서 그랬어.’ 

‘친해지려고 한 건데 왜 그러세요?’


   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가해자들은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자식 같았다’ ‘친해지려고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태도가 누군가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했다면, 그것을 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매서운 바람으로 나그네를 놀라게 했던 북풍은 말할 것도 없이, 따뜻한 공감과 경청의 태도로 곧 잘 비유되곤 하는 태양의 모습 역시 나그네 입장에선 폭력이 아니었을까? 어떤 폭력은 겉보기에 너무나 상냥하다. 


내가 베푸는 상냥함이 상대방에게도 상냥함일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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