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잡을 수 없다. 볼 수 없다. 느낄 수도 없다. 그저 해나 달. 시계, 인간 같은 매개를 통해 ‘아,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 구나.’하고 생각하며 시간이라는 존재를 자각할 뿐이다.

해를 잠시 가렸던 구름이 바람을 타고 떠나간다. 햇빛이 레드카펫처럼 세상 위에 깔리기 시작한다. 듣기 좋은 정도의 소음들. 그중 하나가 아무리 데시벨을 올려도 거슬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평화롭고, 나른한 날이라면 아마 당연한 게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날에는 남들이 어떤 행동을 하던, 어떤 말을 하던 자신의 나른함에 취해있으니까. 아, 하지만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나른함을 쫓아낸다면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신경질적이게 변할 것이다.



“피곤해 죽겠어.”

 

“그래? 왜 그렇지?”

 

“...”

 

“약 때문인가.”

 

“... 그러니까 좀 놔 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아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도와 침낭 속에서 억지로 하늘을 보고 있는 난호. 난호의 눈이 조금 어두워 진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도는 난호가 들어가 있는 침낭을 붙잡고 있다.

 

점심시간. 난호는 집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먹고 빠르게 옥상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워 있었다. 적당한 바람과 따듯한 햇빛. 이제 완전한 봄인 것 마냥 날씨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조금 후 발소리가 들리면서 그 평화는 깨졌다. 아직 잠에 들지 못한 난호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그 발소리.

듣기 싫은 문소리가 나고 난호의 코앞까지 온 발소리. 난호는 눈을 뜨지 않았다. 발소리의 주인이 말을 걸어와도 무시하고,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도 감수했다. 그렇게 난호는 필사적으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발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 때문에. 하지만 발소리의 주인은 누워있는 난호의 상체를 침낭째로 일으켜 벽에 기대게 했고 난호는 결국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뜨자 달려왔는지 폐가 있는 쪽을 붙잡으며 거친 숨을 내쉬는 이도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 좀 자자...”

 

“넌 나랑 이렇게 이야기 하는 시간이 싫어?”

 

“아니.”

 

“그럼 됐네!”

 

“그렇다고 좋지도 않아. 이렇게 잠이 필요한 시간에는 그냥 자고 싶어.”

 

“하루쯤은... 안 자도 상관없지 않아?”

 

“나 아픈 몸이야.”

 

“그럼 양호실 가서 자던가.”

 

“그건 싫어.”

 

“왜?”

 

“시끄럽잖아...”

 

“여기도 그런데?”

 

“조금... 다르지?”

 

“어떻게?”

 

“그게... 아, 너 지금 내 잠 쫓아내려고 계속 말 거는 거지.”

 

“응.”

 

“너 진짜...”

 

“?”

 

 

순간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 난호가 먼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이도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난호에게 점점 더 얼굴을 들이댄다. 난호는 몸을 웅크리며 잠들려고 하는 척 이도의 시선을 피한다. 이도는 아까보다 더 난호에게로 파고든다. 난호는 침낭에서 손을 하나 꺼내 이도의 얼굴을 살짝 밀어낸다. 웃는 이도. 손바닥에 닿는 감각이 왠지 기분 좋은 난호다.

이도의 휴대폰이 울린다. 난호에게 얼굴을 들이밀다 말고 이도는 휴대폰을 바라본다. 난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이도의 휴대폰 화면을 몰래 바라본다. 저장이 되지 않은 번호. 이도는 표정을 구기고 전화를 거절한다. 이도가 휴대폰에서 난호 쪽으로 고개를 다시 돌리자 난호는 눈을 감고, 침낭 채로 있는 힘을 다해 바닥에 엎어진다. 이제는 난호를 붙잡고 있을 생각이 없어진 걸까? 이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호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한 마음이다. 난호가 숨을 크게 내쉬고 있을 때,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배에서 느껴진다. 난호는 눈을 뜨고 자신의 배를 확인한다. 이도가 난호의 배에 머리를 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뭐해...?”

 

“아, 자. 자. 이제 잠 안 깨울 깨.”

 

“...”

 

“나도 한숨 자려고.”

 

“너 같으면 이러고 잘 수 있겠어?”

 

“응. 난 난호 네가 이렇게 내 배에 머리를 대고 있어도 잘 수 있어.”

 

“... 너 지금 되는대로 이야기 하는 거지.”

 

“응.”

 

“너 진짜...”

 

“왜?”

 

“요즘 나 괴롭히는 거에 취미 붙였어?”

 

“음, 아니.”

 

“그럼 왜 이래.”

 

“그냥 네가 좋아서.”

 

“어...?”

 

“너랑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학교 끝나면 우린 시간 거의 같이 못 보내잖아.”

 

“아... 하하... 그렇긴 하지!”

 

“아 깜짝이야. 갑자기 왜 목소리 톤을 그렇게 높여.”

 

“배에 힘 안 주고 말하면 네 머리 때문에 말 못해!”

 

“정말?”

 

“그, 그렇대도...!”

 

“그래.”

 

“근데...”

 

“?”

 

“아까 그 전화는 뭔데 얼굴을 그렇게 막... 욕하기 직전처럼 한 거야?”

 

“뭐야, 너 조금 응큼하다?”

 

“뭐, 뭐가!”

 

“일부러 나 안보고, 눈감고 그러더니 실은 다 보고 있었잖아.”

 

“그건 휴대폰 벨소...”

 

“진동이었거든?”

 

“어쨌든 그래서 본 거야!”

 

“그래? 못 믿겠는데?”

 

“진짜라니까?”

 

“그래, 그래. 알겠어. 귀엽기는.”

 

“뭐, 뭐가!”

 

“글쎄다? 거울이라도 봐봐.”

 

“...”

 

“아, 화났나?”

 

“안 났어...”

 

“...”

 

“...”

 

“진짜?”

 

“안 났다니까!”

 

“그래!”

 

“...”

 

“... 풉.”

 

“하...”

 

“아까, 그 전화 스팸이야. 아주 찰거머리처럼 끝도 없이 전화를 걸더라고 아무리 거절해도 계속.”

 

“...”

 

“그래서 그냥 매일 거절하고 있지. 욕이라도 할까 싶다가도 내 이미지가 있으니까.”

 

“차단이라도 하지...”

 

“그건 안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거든.”

 

“?”

 

“그러니까 더 짜증 나는 거지.”

 

“어떻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너한테 그래...?”

 

“그러게. 난 좀 무난하게 지내고 싶은데, 꼭 저렇게 굴더라고 다들.”

 

“다들?”

 

“그냥 뭐, 한 두 세 명 정도 저런 사람이 더 있었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떨쳐냈는데?”

 

“번호를 바꿨어.”

 

“와... 대단하다 그 사람들.”

 

“뭐가?”

 

“번호 바꾸기 전까지 계속 너한테 스팸 전화를 건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이!”

 

“지치지도 않나...”

 

“자기들 딴에는 나한테 되게 마음을 많이 쏟아줬다고 생각하나 봐.”

 

“마음?”

 

“...”

 

“겨우 마음만 주고 너한테 뭐 사라고 그러는 거야?”

 

“뭐...”

 

“아니면 뭐 가입하라고...?”

 

“음...”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왜 그런데...”

 

“그러게. 다 끝난 뒤에 붙잡을 거면 평소에나 잘하지...

 

“뭐?”

 

“그냥. 작게 욕 한 거야. 그 사람들.”

 

“욕?”

 

“그래.”

 

“욕 같은 건 크게 해야지.”

 

“그래?”

 

“응. 그래야 그 사람들이 듣지.”

 

“알았어. 다음부터는 크게 할게.”

 

“응.”

 


이도가 기지개를 켠다. 난호가 하품을 한다. 쏟아 내리는 햇빛이 나른함을 일으킨다. 따듯함. 점점 약해지는 바람. 운동장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 잠들기엔 충분한 환경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배려 없이 각자가 편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는다.

발소리가 들린다. 느리고 묵직한 그런 발소리. 두 사람은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챈다. 일부러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 난호와 이도는 눈을 뜬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다. 기분 나쁜 문소리가 들린다. 피곤한 눈의 난호가 미소를 짓고 있는 이도가 효진을 반긴다.





효진은 요즘 하교 때만 되면 자꾸 혼자 사라진다. 처음에는 무슨 약속이 있다며, 두 번째에는 가족 일이 있다면서, 세 번째에는 그냥 혼자 가고 싶다는 기분이라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며칠간 계속 일이 있다며 혼자서 집을 간다고 말한 효진. 그런 효진의 말이 며칠쯤 반복되니 난호는 당연하게도 효진이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겉보기에도 그 속도 이전과 변함없는 효진의 모습은 항상 난호가 효진에게 “요즘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을 못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난호는 요 며칠간 혼자서 하교를 했다. 오늘은 기필코 효진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같이 하교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난호. 하지만 지금 야자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 효진은 보이지 않는다. 난호는 교실은 물론 복도도 살펴보지만 효진의 머리카락 하나 조차 찾을 수 없다.

난호는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효진의 전화번호를 누르려고 하다 그만둔다. 약간의 배려일까? 그게 아니라며 효진에게 조금 서운해서? 난호는 복잡한 마음이다. 난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자신의 자리로 가 가방을 챙긴다. 발소리가 들린다. 난호는 오른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고개를 돌린다. 난호의 볼이 부드러운 뭔가에 찔린다.

 

 

“뭐해?”

 

“...”

 

“뭐하냐니까?”

 

“야, 야! 까, 깜짝이야...”

 

 

난호는 살짝 뒤로 물러난다. 난호의 행동 때문에 의자와 책상이 바닥에 끌려 듣기 싫은 소리가 귀를 찢는다. 익숙해질 법도 됐는데 익숙해지지 않는 이도의 행동과 그 시간대의 빛을 가득 머금은 미소. 난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제법 빠르게 뛰었다. 이도는 “뭘 이런 거로 놀라?”, “너 무슨 이상한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라는 장난 섞인 말을 두 개나 연속으로 쏜다. 순간 놀라 움직일 수 없었던 난호.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가방을 챙긴다. 이도는 별 반응이 없는 난호에게 흥미를 잃는다. 책상에 앉아 교실 천장을 바라본다. 가방을 다 챙긴 난호가 이도를 바라본다. 이도가 난호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내린다.

 


“갈까?”

 

“?”

 

“가자.”

 

“어딜...?”

 

“전에 말했잖아. 잊었어?”

 

“뭘?”

 

“아, 말한 거는 아니지 X톡으로 보낸 거니까.”

 

“뭔... 데?”

 

“데이트 하자고 했잖아. 데이트.”

 

“데이트...?”

 

“그래.”

 

“...”

 

“싫어?”

 

‘아니.’

 

“왜 말이 없데. 남자 둘이서는 좀 그런가?”

 

“아, 아니. 그냥 너 오늘 시간 되나 싶어서.”

 

“당연히 되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그, 그래.”

 

“사실... 데이트라고 해봤자 우리 집이나 가겠지만.”

 

“괜찮아.”

 

“근데 진짜, 진짜 사실은 데이트도 아니고 너희 아버지한테 우리 집에서 물건 가져다드리라고 데려가는 거야.”

 

“물건? 뭔데...?”

 

“비밀이지. 가면 알 거야.”


“이상한 거 아니지? 나 스트레스 받으면...”

 

“그래, 그래. 알지. 이상한 거 아니야. 그냥... 좀...”

 

“좀?”

 

“좋은 거. 기분 좋아지는 거.”





먼지투성이가 된 난호와 이도. 이렇게 먼지가 많이 날릴 줄 알고 가져다 놓은 무선 청소기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마스크를 내리고 재채기를 하는 난호. 이도는 계속 창고 안쪽에서 이것, 저것을 살피며 뭔가를 찾고 있다.

 

 

“평소에 청소도 안 하고 살아?”

 

“아니, 혼자 사는데 어떻게 창고까지 다 청소해...”

 

“그래도 이건 심하다...”

 

“그게...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이사 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할머니 집 창고에 있던 거 통째로 다 옮기고 확인 안 하고 다녔거든.”

 

“대단하다... 근데 그러면 없어졌을 수도 있잖아.”

 

“아니, 꼭 있을 거야.”

 

“?”

 

“이게 그 증거니까.”

 

 

이도는 난호에게 사진을 한 장 날린다. 사진을 잡은 난호.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한 명 있다.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난호.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느낌. 난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점점 더 사진에 얼굴을 들이민다. 난호의 이름을 부르는 이도. 하지만 사진 속 얼굴에 집중을 하는 난호의 귀에는 이도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결국 난호의 앞까지 걸어온 이도. 이도는 난호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는다. 올라가는 사진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는 난호. 마스크를 내린 이도가 차갑게 난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뭐해.”

 

“아, 어... 그게...”

 

“그렇게 뚫어다 볼 정도야?”

 

“아니, 그냥... 너무 익숙해서...”

 

“?”

 

“...”

 

“너 바보야?”

 

“어?”

 

“익숙하다니... 이 사진 너희 아버지랑 우리 부모님이랑 그 ‘고수’라는 분들이 같이 찍은 사진인데...”

 

“어? 그럼... 설마 그 긴 머리에 활짝 웃으면서 브이하고 있는 사람이...”

 

“응, 너희 아버지인 거 같던데?”

 

“아...”

 

“아저씨가 방금 네 행동 봤으면 우시지 않았을까...?”

 

“...”

 

“괜찮아. 뭐 그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이 자리에 없잖아.”

 

“위로가 안 돼...”

 

“위로되라고 한 말이 아니니까.”

 

“진짜...”

 

“아저씨 못 알아본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진짜... 나빠...”

 

“하여튼! 몇 일전에 연습 끝나고 오니까 그 사진이 뒹굴고 있더라고.”

 

“응...”

 

“주워서 보다가 생각이 났어. 예전에 할머니랑 같이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을 항상 잊지 말라고 앨범을 자주 보여주셨었던 게.”

 

“그렇구나...”

 

“그 앨범에 내 기억으로는 부모님이 무술 연마하실 때 사진이 엄청 많았거든? 아저씨 사진도 많은 거야. 그리고 아줌마 사진도 몇 장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너랑 나 어릴 적 사진도!”

 

“...”

 

“안 궁금해?”

 

“딱히...”

 

“감성 없는 놈.”

 

“욕 먹을 일은...”

 

“됐고 빨리 도와주기나 해. 아버지 얼굴도 못 알아본 아들아.”

 

“그, 그럴 수도 있지!”

 

 

다시 창고로 들어선 이도. 난호도 이도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고 할 때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창고 안쪽에 있는 이도에게까지는 닿지 않았는지 난호가 이도에게 초인종 소리를 전한다. 상자를 들고 있는 이도는 난호에게 대신 나가보라는 말을 하고는 들고 있는 것을 바닥에 내린다.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와 함께 퍼지는 먼지. 이도가 무거운 상자를 또 하나 들려고 할 때 난호는 재빨리 창고에서 나온다.

마스크를 내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난호. 초인종 소리가 다시 들린다. 난호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인터폰 앞으로 걸어간다. 인터폰 앞에 서서 화면을 보는 난호.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채 휴대폰을 보고 있다.

 

 

“... 누구세요?”

 

“문 열어.”

 

“...?”

 

“빨리.”

 

“누구신데요.”

 

“... 어?”

 

“?”

 

“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아온 거 같네요.”

 

“...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화면에서 사라진 사람. 난호는 화면을 바라보다 뒤를 돈다. 뭔가 찝찝하다. 난호가 먼지 구덩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또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다시 초인종 앞으로 걸어간 난호. 또 똑같은 사람이다.

 

 

“네.”

 

“저기, 혹시 여기 이도 집 아닌가요?”

 

“... 맞는데요?”

 

“장이도. 문 열어.”

 

“네?”

 

“너 그렇게 목소리 바꿔서 내 봤자야... 빨리 문 열어. 이야기 좀 하자.”

 

“저기...”

 

“문 좀 빨리 열어 달라고! 너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건데! 어?”

 

“저기요.”

 

“뭐.”

 

“전, 이도 친구예요. 이도가 바빠서 제가 대신 인터폰 앞에 있는 거고요.”

 

“아... 그, 죄송합니다.”

 

“저기요... 혹시 그 쪽이 번호 바꿔도 이도한테 전화하는 사람이에요?”

 

“네? 어... 아마도...”

 

“음... 그렇구나. 잠시만 거기 있어 보세요.”

 

“네? 네...”

 

 

마스크와 교복 와이셔츠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머리를 헝클이며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 난호. 내딛는 한발 한발에 무게감이 있다. 난호의 눈빛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현관문 앞에 선 난호. 심호흡을 시작한다. 현관문을 여는 난호. 문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남자도 그런 난호에게 인사를 한다. 집으로 들어가려는 남자. 순간 난호가 남자를 막아서고 현관문을 세게 닫는다. 꽤 세게 닫아서인지 아파트 복도가 울린다. 난호는 남자를 바라본다. 어느 때보다 감정이 짙게 배긴 것 같은 난호. 남자는 본능적인 위협을 감지했는지 난호를 쳐다보며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이 그 이도가 말하던 그 인간이에요?”

 

“이도가 내 이야기를 했어? 하... 쟤도 참...”

 

“됐고. 가세요. 안가면...”

 

“이건 네가 끼일 문제가 아니야. 빨리 이도나 불러줘.”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어? 아니, 네가 상관없는 문제라니까?”

 

“그건 제가 판단해요.”

 

“말이 안 통하네...”

 

“얼굴부터 드러내고 말해요.”

 

“그건 안돼...”

 

“떳떳하지도 못한 사람이...”

 

“그게 아니라... 이건 사정이 있어!”

 

“그건 당신 사정이고요.”

 

“하... 진짜 답답해.”

 

“누가 할 소릴.”



대치 중인 두 사람. 둘 다 서로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완연한 봄이 되어가는 날씨인데도 지금 여기 아파트 복도. 이도의 현관문 앞은 서슬 퍼런 칼날이 스쳐 가는 듯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갑기만 하다.

그 먼지 속을 뒤지다 결국 앨범을 찾아 창고에서 나온 이도. 마스크를 벗고 난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하지 않는 난호. 이도는 앨범을 창고 앞에 두고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도는 잠시 멍한 상태로 집안을 서성이다 “이도야, 초인종.”이라고 했던 난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인터폰 앞으로 걸어간 이도. 화면을 킨다.



?

이틀 뒤면 2021년이네요! 그러고 보면 올 해에 소설을 꽤 썼는데... 독자분들이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겠죠? 그랬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ㅠ

아무튼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ㅎ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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