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에이] too much love will kill you

존경과 선망 그리고 충성심이 함께 애쉬를 생각하는 알렉스의 시점에서 내려 쓴 글.

날조가 많습니다. (과거 얘기 등) 정말 많습니다.

애쉬에이의 요소가 많지 않습니다. 

 


 ("가자" 이후부터 함께 들으시면 좋습니다.)




“돌아와! 애쉬!”

제발!! 하며 처절하게 외치는 알렉스를 뒤로 하고 나는 달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말에 입술을 깨물며.

“너무 많은 사랑은 널 죽일 뿐이야..!”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너무 많은 사랑은 너를 죽일 거야.)

 

 

 

햇살이 비추면 눈이 멀 것 같이 반짝거리는 백금발의 머리칼도 그 어떤 것보다 푸르면서 위험하게 빛나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도 옆에서 매번 보고 있지만, 가끔 숨이 막혀왔다. 그 안에선 수많은 암투가 그려지고 있겠지. 내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그려지고 있을 거라는 것이 스스로가 결정하고 따르기로 한 보스이지만 절로 경탄이 나올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

“현재 파악 된 수는 어느 정도지?”

“대충 20명 정도야 보스.”

“예상했던 숫자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곤 그 아름다운 눈동자에 투지가 타 올랐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좌중들의 눈에 들어있는 것은 나와 마찬가지인 감정. 존경과 선망 그리고 온전한 믿음.

“가자.”

“Yes!”

앞을 향해 걸어가는 그 걸음에 망설임이란 없었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야 말로 완벽한 길이자 승리를 향한 가장 최고의 길. 그야말로 왕도(王道) 그 자체. 뒷모습을 따라 걸어가는 것인데도 가슴속에서 울컥하고 차오르는 이 감정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의 곁에서 조금 더 그가 걸어가는 길을 보고 싶다. 그 길을 나란히 걸을 순 없어도 뒤에서 뒷받침이 되고 싶다. 선혈과 시체가 낭자한 길을 나아가는 그의 등을 지키고 싶다.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늘어가는 그를 향한 무한한 충성심은 늘어만 갔다. 아마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겠지. 단순히 스트리트 갱의 보스로서의 존경이 아니라, 이 내 삶을 진정으로 이 사람을 위하여 살고 싶다는 맹세와도 같은 충절(忠節). 그가 걸어가는 길에 헤아릴 수 없는 시체가 싸인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내 목숨이 위태롭다 하더라도 함께 하리라. 수없이 마음속으로 정했던 맹세를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나는 그의 등 뒤를 따랐다.

 

***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날 만도 한데, 그 날만은 선명히 기억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친척들의 집을 연연하다가 결국 갈 곳이 없어져 차가운 맨해튼의 어두운 골목길에 내려앉게 된 그날. 내 인생은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된 것이 없다며 한탄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별 같잖지도 않은 놈들이 시비를 걸어와서 한쪽 팔이 부러질 정도로 멋모르고 싸우고, 싸우고 싸웠다.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골목길 안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흩뿌려져 있었고, 그 안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길 몇 분. 깊은 골목 안에서 뚜벅뚜벅하는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한편인가?’

거친 숨을 애써 죽이며 발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응시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소리. 쿵쿵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이 극도의 긴장으로 이보다 더 큰 소리가 날 수 없을 정도로 뛰던 그 때. 칠흑과도 어두운 곳에서 나타난 것은 그들의 동료도 아닌 경찰도 아닌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것만 같은 천사였다.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나를 향해 걸어오는 존재를 바라봤다.

“네가 한 건가?”

외모만큼이나 여린 미성이 붉게 물든 입을 통해 나왔다.

“..아? 어. 어어..”

멍하니 있다 화들짝 놀라 어버버 거리며 대답했다. 젠장, 창피하게.. 속으로 얼굴을 붉히며 뻘쭘하게 서 있길 몇 초. 눈앞의 천사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곤 나를 쳐다봤다.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에 오싹 소름이 돋은 것도 사실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시선에 나는 단번에 홀려버리고 말았다. 눈을 돌리는 것,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 나는 어둠속에 강림한 천사와 함께 있었다. 퀴퀴한 시궁창 냄새와 어둠만이 가득한 이곳은 단 하나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데 그만이 빛났다. 언제부터인가 숨 쉬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있었을까 사춘기가 아직 오지 않은 미성이 골목 안에 울렸다.

“이름은?”

이름?

“.. 알렉스.”

“알렉스.”

천사는 내 이름을 몇 번 곱씹었다. 흔하디흔한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왜 저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만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존재에게 이름까지 알려주고 뭐하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은 내 삶이 안타까워 신이 보내 주신 존재인가? 아니면 회개하라고 내게 온 걸까 하며 말도 안 돼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그가 이번엔 내 이름이 아닌 다른 것을 입에 담았다.

“나와 함께 가겠어. 알렉스?”

……. 뭐? 지금 뭐라고?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자 천사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나와 함께 가자. 알렉스.”

이거 뭐야. 진짜야? 진짜 천사가 내 삶을 구원해주려고 내려 온 거야? 그런 거야? 이게 사실인건가? 꿈 아니야? 어안이 벙벙해져서 대답도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가자.”

내밀어진 손에 내 가슴에서 무엇인가 울컥 하고 차올랐다. 그리고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손을 맞잡았다. 부드러울 거라고 생각했던 손은 생각보다 굉장히 단단하고 수많은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강인하고 무엇보다 이 추운 겨울, 어두운 맨해튼의 골목길과 다르게 천사의 손은 따스했다. 그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어두운 골목을 척척 걸어가는 그의 등을 따랐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삶에 다신 없을 존재인 애쉬 링크스와의 첫 만남은 무척이나 강렬하면서 동시에 무척 따뜻했다.

 

 

그 이후로 천사의 이름이 애쉬 링크스라는 것과 그가 이 다운타운을 통합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조차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무법지대나 다름이 없는 이곳을. 도대체 왜? 궁금증을 담고 물었을 때, 그는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으며 대답했다.

“지금의 상태면 도움이 안되니까.”

뭐가? 라고 물으려고 했으나, 그의 눈동자 안에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 때, 나는 그저 척추부터 시작해서 정수리를 관통하듯이 오르는 소름에 입을 꾹 닫았다. 그는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 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이 때였다. 마치 사람을 셀 수 없이 죽여 본 사람처럼 어둡게 눈을 빛내는 그 모습에 나는 압도되었다. 나보다 어리고 여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 오히려 나 따위는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맹수이자 야수였다. 절로 몸에 흐르는 긴장에 주먹을 말아 쥐니, 그는 피식 웃었다.

“뭐 그렇게 긴장해?”

라고 말하며.

이것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듯이 가벼운 말투로 얘기하는 모습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줄곧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네 목적이 뭐야 애쉬?”

내 밀에 그는 조개처럼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허름한 커튼이 매달려 있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엇을 생각하는 거지? 너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몰아붙일 수 있는 질문은 얼마든지 많았으나, 나는 조용히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10분정도 지났을까 여명이 들어오는 창문을 보던 애쉬의 입이 열렸다.

“자유.”

단 하나의 단어.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감정은 그 무엇보다 무거웠다. 내가 그 무게를 버틸 수 없어 가만히 있자, 애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단어를 내뱉기까지 네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수십 수백 번을 원하고 바라왔던 것을 입에 담기까지 너는 어떤 것을 생각했을까. 단순히 내가 헤아리기엔 너무나도 심연처럼 깊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뭐라 한들 네 귓가에 닿진 않겠지. 맨해튼에 깔리는 어둠을 보고 있는 애쉬를 향해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리라.

속박 당해 있는 날개를 활짝 피고 날아갈 그 날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겠어.

수십 수백 번을.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

 

***

 

얼마 되지도 않은 과거를 생각하다보니 문득 애쉬는 왜 날 그때 데려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어봤었다.

왜 나를 데려 온 거야? 라고. 그랬더니 그는 눈을 깜빡이며 오히려 내게 질문을 했다.

“왜 그게 궁금한데?”

설마하니 반대로 질문할 줄은 몰라서 어어.. 어 하다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총도 잘 못 쏘고, 그다지 싸움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왜였을까 싶어서”

눈을 깜빡이다 내 대답이 꽤나 재밌었는지 큭큭 거리며 그는 웃었다. 뭐가 그리 웃겨 보스. 내 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는 한참을 그러다 나를 바라봤다. 숨이 막힌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으나, 그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분노 때문이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투지가 담겨있으면서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그의 영혼을 투영하는 듯한 눈동자는 마주하고 있으면 절로 드는 경탄스러움 때문이었다. 시간이 가도 이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 그만큼 그는 이 다운타운에 있는 그 어떤 존재보다 고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가만히 있던 애쉬는 말을 꺼냈다.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았어.”

“.. 그때 날 처음 봤잖아? ”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다고? 자신의 감을 절대적으로 믿는 애쉬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을 (덤으로 그때는 싸움을 끝내고 난 뒤라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을 텐데)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눈만 끔뻑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애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관없어. 그 때 너라면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을 남기곤 애쉬는 문을 향해 걸어가, 가볍게 손잡이를 내려 문을 열었다.

“다행이지.”

“.. 뭐가?”

열려져 있는 문으로 나가는 애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말을 마치고 그는 문을 닫았다. 나는 방 안에서 혼자 덩그러니 서 있다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삐걱 다리를 움직여 낡아빠진 소파에 털썩 앉았다.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젠장. 저 말은 반칙이잖아!

 

***

 

“알렉스. 그를 부탁해.”

“내가 올 때까지 절대 그를 혼자 두지 마.”

“..Yes.”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건물을 향해 들어가는 애쉬를 가만히 바라보다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색일색인 머리칼과 눈동자.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는 안타까움과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애쉬! 돌아와야 해!”

그는 외쳤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애처롭고 처절하게. 마치 애쉬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처럼.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앞을 향해 걸어가던 애쉬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타오르는 불꽃의 화염 속으로 걸어가는 등을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바라봤다. 수십 수백 번을 봐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불안함이 생기는 거야. 옆에 있는 그가 한 말 때문인가?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걱정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천천히 두들겼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눈물을 펑펑 흘릴 듯한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너는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저 안에 그를 헤칠만한 무엇인가가 있는 거야? 저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애써 목구멍 안으로 삼키며 입을 열었다.

“가자.”

 

***

 

오쿠무라 에이진 애쉬와 다른 의미로 빛나는 존재였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인 것 마냥 걱정하는 상냥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외모와는 다르게 강했다. 육체적인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의미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애쉬의 곁에 있으면서 그를 위해주고, 걱정해주고, 곪아서 썩어 문드러지는 상처를 따스하게 감싸줬다. 그야말로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단순히 같이 있는 내가 이정도로 느꼈는데, 애쉬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더 특별할지.. 그와 함께 있는 날이 늘어갈수록 갱단의 동료들과 있을 때보다 날카로움이 많이 줄어들고, 유도리가 늘어나는 애쉬를 보며 나는 느꼈다. 그에게 있어서 에이지는 소중한 친구.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에이지의 곁에 있을 때면 그가 실제 나이와도 같은 행동과 모습 그리고 표정을 보여줬다. 그 모습은 내게 다른 의미로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소중한 것을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는 알고 있다. 실제로 크게 한번 화상을 입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다시 그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반복하고 있다. 네 등 뒤의 날개를 속박하고 있는 사슬과는 다른 것으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힘을 빼앗기고,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결국 그러다가 그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두려웠다. 지난번에도 당장 죽을 사람처럼 괴로워했는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할 것 같아서. 에이지가 조그마한 상처를 입거나 자신의 곁에서 떨어지는 것만으로 불안하고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만약 정말 만약에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애쉬는.. 나는 그 다음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단순히 에이지에게 해를 입힌 상대를 죽여 버리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스스로가 망가져버릴지도 몰라. 점점 생각이 최악으로 다다르자 나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며 애쉬가 있는 방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보스. 나야.”

“들어와”

안에서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타닥거리는 노트북의 자판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중요한 일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애쉬는 물었다.

“무슨 일이야?”

여기에 올 때까지 수천 번은 생각한 말을 입에 담으려고 했으나,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조개마냥 입이 딱 닫혀 그럴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봐왔던 모습 중에서 지금 애쉬의 모습은 편안 그 자체였으니까. 아마 에이지와 함께 있기 때문이겠지. 보스에게 유일하게 있는 평화가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이니까 말이야. 근데, 그런 평화를 내 생각만으로 부서도 되는 걸까? 단순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고 그의 지금 안락함을 방해해도 되는 걸까. 몇 년 동안 봐온 애쉬의 모습 중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듯이 곧 잘 웃는 그의 행복에 내가 파문을 일으켜도 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입을 열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으니, 애쉬가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데 뜸 들여?”

흠칫

나는 눈을 깜빡깜빡 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아니, 오늘은 특별히 할 게 없나 해서.”

그는 내 질문에 타자를 치던 손가락을 멈추고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이 나를 주시하는 그의 눈동자에 소동물 마냥 움츠러들 것 같았다. 허나 그랬다간 이상함을 깨닫고 추궁할지도 몰라. 애써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길 몇 분. 나에게는 수십 시간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컴퓨터 쪽으로 시선을 두며 말했다.

“특별히 없어.”

“……. 그래.”

시답지 않은 일을 방해해서 미안해 보스. 한 마디를 남기고 빨리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려 손잡이를 잡았다. 그 때. 뒤에서 그가 불렀다.

“알렉스.”

“어, 어?! 어. 보스.”

내 목소리가 떨렸을까. 보스라면 눈치 채고 무슨 일이야. 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하고 물어볼지도 몰라..! 긴장으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침이 꿀꺽 넘어갔다. 나는 최대한 떨림을 감춘 채 입을 열었다.

“아니, 보스. 그런 거 없어.”

나와 그 사이에는 타자치는 소리만이 울렸다. 극도의 긴장상태가 지속됨으로 인해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내가 말을 끝내고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얼마나 갔는지 가늠도 안 될 때, 애쉬가 말했다.

“그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해해서 미안 보스! 하며 나는 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주방으로 가선 물 한 컵을 마셨다. 아직도 긴장이 덜 풀려서 부들거리는 손으로 컵을 싱크대에 놓고 소파에 털썩 소리가 나게 앉았다. 결국 그를 찾아간 것은 그냥 의미 없는 행동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일 때문에 짜증난다는 듯이 얼굴을 팍팍 찡그리고 있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게 예전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에이지가 보스의 곁에 있는 한 특별한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고, 설령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를 지키면 되니까. 혼자 꽤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리곤 열려져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나는 눈을 감았다. 평화는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

 

“내가 데리러 가겠어.”

“보스!”

그건 절대 안 돼! 거기가 어디라고 스스로 찾아 간다는 거야? 말도 안 돼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호랑이굴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은 미친 짓이야 보스!”

주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뵈지 않는지 막무가내로 가겠다고 밀어붙였다. 나는 쿵쿵하고 움직이는 그보다 빠르게 문 쪽으로 달려가 양 팔을 펼치며 막았다.

“안 돼. 보스.”

형형히 빛나고 있는 눈동자 안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것은 분노. 분노. 시야를 까맣게 물들이는 분노뿐이었다. 나를 향한 분노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공포로 침을 꿀꺽 삼켰다.

“비켜.”

“……. 비킬 수 없어.”

철컥.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리볼버를 꺼내 나를 향해 겨눴다.

“비키지 않으면 쏘겠어.”

“보스!”

주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안절부절 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둘이 있게 해주지 않겠어?”

조용히 나온 내 말에 나와 보스의 눈치를 보던 녀석들은 천천히 내가 문에서 옆으로 비켜서자 알겠다는 듯이 문 밖으로 나갔다.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서야 나는 그를 바라봤다.

“애쉬.”

오랜만에 입 밖으로 불러보는 그의 이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그렇지 않아. 분노에 물들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고 있지.

“에이지를 생각하는 것은 알지만, 지금 아무 대책도 없이 혼자 쳐들어가는 것은 개죽음이 될 뿐이야.”

에이지를 되찾고 싶은 건 너 뿐만이 아니야.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네가 이런 상태면 어떡해?

“함께 작전을 세워서 그를 구하자. 그게 맞아 애쉬.”

내 말을 듣고 있던 애쉬는 총구를 내릴 줄 몰랐다. 제발. 애쉬.. 나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을 그를 가만히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애쉬의 입이 열렸다.

“…….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뭐?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허망하게 그를 바라봤다. 갈등은 무슨. 여전히 그를 점령하는 것은 분노뿐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다 오래전부터 말하려다 말하지 못했던. 그러나 결국 말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내뱉었다.

“네게 있어서 에이지가 소중한 것을 알아 애쉬. 하지만, 그게 동시에 네게 있어 독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넌 알았을 거야.”

그는 내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품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에이지가 소중하니까. 그와 함께 있으면 세상이 빛에 물든 것처럼 아름다웠으니까. 겠지.”

안 그래?

화를 참는 듯이 숨을 거칠게 내뱉는 그를 향해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애쉬, 결국 지금 일어난 것을 봐.”

내가 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이 크게 뜬 눈동자가 천천히 떨려오는 것을 보며 그의 가슴에 비수를 박아 넣었다.

“결국,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은 너와 그를 파멸의 길에 올려놓고 말았어.”

“……. 그만해.”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도 함께 떨렸다.

“큰 사랑은 너를 아프게 하고, 미치게 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에이지한테 까지 손을 뻗치게 하고 만 거야.”

“그만..”

“에이지는 너를 위해준 것뿐이었는데, 너의 큰 사랑이 결국 그 까지 망치게 되버린 거라고!”

“그만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덜덜 떨리는 애쉬의 몸으로 인해 나를 향하고 있는 총구도 거칠게 떨려왔다. 그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분노로 일그러진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내뱉은 말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와 나의 억장을 무너뜨렸으나, 그래도 그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상처 입는 진실을 그에게 알려주는 것.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현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니까. 지금 에이지에게 갔다간 애쉬는 정말 새빨간 피를 뒤집어쓴 시체가 되어 버릴 지도 모르니까.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줬다. 여긴 지나갈 수 없어 애쉬. 나의 눈에서도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 그를 마주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젠장.

“애쉬!”

넘어지지 않게 그를 받으려고 급히 다가가는데,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그는 복부에 정확히 무릎을 꽂아 넣었다.

“컥!”

눈앞이 번쩍하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와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 아까까지 울고 있던 사람이 한 것이라곤 생각 되지 않는 니킥이었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덜덜 떠는 나를 뒤로하고 애쉬는 방문을 열었다. 제기랄!

“돌아와 애쉬!”

눈물범벅으로 흐릿한 시야 속에서 그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목이 터져라 그를 불렀다.

“애쉬! 돌아와! 애쉬!”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괜찮아?! 하며 나를 부축하려는 동료들의 목소리만 있었을 뿐 애쉬의 목소리는 들여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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