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R 번외편 - 손을 잡아 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수술에 참여한 환자의 죽음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분명 경과도 나쁘지 않았는데 어째서? 70대 노인의 체력이 버티지 못한 것이라고, 가족들도 모두 납득하고 있다며 집도의는 씁씁한 표정으로 설명했지만 제대로 귓가에 닿지 않았다. 무너지는 천막같이 덮쳐오는 좌절감과 함께 이제까지 자신을 받쳐오던 자신감은 밀물 앞 모래성처럼 휩쓸려 가버렸다. 어차피 실패할 확률이 높았던 수술이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도 처절한 무능감 앞에서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타카하시,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
“…감사합니다.”


선배의 목소리가 마치 물 밖에 들리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런 상태의 자신이 여기 있어 봤자 분위기만 악화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또한 모두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그 누구도 료스케를 책망하지 않았다. 짤막한 인사를 남긴 그는 하얀 가운을 벗어 캐비닛에 넣고 전문의실을 나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너무 형편없어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



운전을 했다가는 애마를 망가뜨릴 것 같아서 택시를 탔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길들여진 발걸음이 알아서 스스로를 옮긴 것 같았다.


“어서 와. 오늘은 일찍 왔네! …료스케군?”
“…다녀왔어.”


초인종을 누르자 금방 문이 열리며 그녀가 자신을 맞이해 주었다. 엉망이 된 얼굴에 깜짝 놀란 그녀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양 뺨을 감싸 쥐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겨우 주변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보루인 것처럼. 안겨든 작은 몸은 깜짝 놀란 듯 뻣뻣해졌지만 곧 차분히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도 료스케는 그녀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환자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자신이었다. 노인은 집도의인 과장 선생님과 자신을 믿는다며 편안하게 눈을 감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게 한 인간의 삶의 마지막이 되어버렸을 줄이야. 생명의 무게가 가진 가벼움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무슨 일 있었어?”
“…….”


한참을 끌어안고 보듬어주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그에게 레이지의 말이 이어졌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야.”


이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마웠던가. 료스케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흘러나온 감정은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찔러들었지만 혼자가 아닌 덕분일까, 견뎌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그를 꼭 끌어 안아주었다. 나지막이 전해지는 심장소리가 그 어떤 약보다 훌륭한 안정제였다.


“…다들 겪는 일이고, 언젠가 한 번은 겪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힘들다.”
“…당연하지. 료스케군의 잘못이 아니야.”


맥없이 중얼거리는 그에게 레이지가 다정하게 말했다. 료스케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손은 이제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끈 손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까, 이제까지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불안에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


레이지가 주먹 쥔 그의 손을 펴더니 자신의 손을 겹쳐왔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며 천천히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 손은… 앞으로 더 많은 환자들을 구할 손이야.”
“……”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레이지가 겹친 손을 들어 그녀의 뺨으로 가져갔다. 차갑게 식었던 손끝이 차츰 제 온도를 찾아갔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이 손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레이지…”


누군가의 믿음은 이렇게나 든든한 것이었다. 마치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이 되는 것처럼, 료스케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좀 더 기대도 괜찮아. 힘든 일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야.”
“…응.”


말 해 놓고는 조금 쑥스러웠는지 레이지가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의 말 대로 힘든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환자의 죽음은 여전히 그를 짓눌렀고,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괴로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몇 번, 아니 수십번이고 반복될 터였다. 감각이 무디어진다고 해도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겠지. 가 진정 두려웠던 것은 그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될 미래였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이렇게 손을 잡아주기 위해 함께 있기로 한 거잖아. 나중에 내가 힘들 땐, 료스케군이 내 손을 잡아 줘.”
“…절대 놓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가 맞잡은 손을 고쳐 쥐며 말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 또한 이 손과 함께라면 그 어떤 일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새삼 이 사람과 만나게 된 것을,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을,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 것을 그는 마음 속 깊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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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전력 60분에서 썼던 글.  조아라에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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