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거주지를 옥탑으로 옮겼고 세간 살림으로 발 들일 틈 없던 가게는 완벽하게 비었다. 아주머니 말로는 주방 식기 대부분을 누군가 싼 값에 처분하듯 가져가기로 했다는데 나로선 모르는 존재들이라 문을 열어둔 채 나오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됐다. 조금이나마 자금이 생긴다는 게 나쁠 거 없어서 감사하단 인사도 덧붙이며 기름 때가 마르지 않던 가게 생활을 청산하게 된 거다.


도영이는 이사를 도왔고 주말 하루를 반납하기에 이른다. 사실 짐이라봐야 용달차 하나 분량도 안 돼서 이사라는 거창한 명칭으로 설명할 만큼 많은 시간이나 체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무튼 우린 이사를 했고 통상적으로 남들 하는 의식을 치르듯 짜장면도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가 방범창 새로 달아주셨더라. 봤어?”

“그분이 유일하게 우리 엄마 아빠한테 돈 안 뜯긴 사람이야. 신기하지.”

“다행인 거네.”

“응. 아니었으면 이 집도 없었어.”


장난스레 흑흑대며 우는 소릴 냈더니 도영이가 그 표정을 따라 짓는다. 탕수육을 집어 입에 넣어주고 습기에 끝이 눅눅해진 만두를 가깝게 밀어주며 내가 뭔가를 먹고 있음에도 더 먹으라고 챙기기 바쁘다.


“형은? 같이 안 살기로 했어?”

“응. 친구랑 산대.”

“연락하지?”

“하지. 그러고 다녀도 동생 걱정 엄청 해. 웃기지 않냐.”

“맞아. 형이 그러지. 너한테.”


오빠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장에도 갔다가 지훈이 오빠네서 지낸다고 했다가, 새벽부터 일어나 물류 창고에 일손을 보태러 나가기도 한다고 알려줬다. 예전엔 달에 한 번씩 경찰서 출입을 자유자재로 하는 까닭에 사람 질리게 만들더니 이젠 청소년 아닌 성인이란 패널티 덕에 죄를 지으면 법의 유리함을 피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는지 좀 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친구들 만나 술 먹으며 동네 어른들 보기 창피할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내겐 큰 감흥이 없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생활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두는 건 영 피곤한 일이니까.


그날 저녁에 오빠가 찾아온 이유는 잘 곳이 마땅치 않아선 아니었다. 어떤 형식으로 짐을 부려놓고 사는지 지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며 기어코 발을 들였는데 눈 뜨니 새벽에 일을 간 건지 이미 자취가 사라진 뒤였다. 하루 자고 가면 격일로 오거나 아예 며칠 안 보이는 게 오빠의 습성이어서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오빤 말 없이 사라지는 날이면 용돈을 두고가거나 냉장고에 식량을 채워넣곤 한다. 잘 먹지 않는 즉석 식품을 선반에 가득 쌓기도 하며 나름의 책임과 내가 요구하지 않은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이튿날 옥탑 보일러가 고장난 건 오빠가 없을 때의 일이었다. 오빠가 있었다면 알아서 수리 기사를 불러 수리했겠지만 어쨌든 오빠는 없고. 타이밍이 어긋났고. 굳이 오빠한테 연락해서 보일로 고장 소식을 전하고 싶진 않았다. 한낮은 두꺼운 외투를 벗어도 무방한 날씨였지만 밤은 아직 한기가 있어 보일러를 방치할 수도 없었다. 일요일은 빠른 수리가 불가능했고 임시 방편으로 침낭을 꺼내 그냥 자려던 참이었다. 어차피 하루만 버티면 되고 큰일은 아니라서.


“여기가 내 집인데 내가 어딜 가. 나도 집 지켜야지.”

“감기 걸려. 밤엔 너무 춥고.”

“하루 이렇게 잔다고 어디가 심각하게 아파지진 않아.”


도영이는 자기 집을 가자고 설득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듯 보였으나. 자기도 그럼 여기서 같이 자겠다며 사서 고생을 직접 벌어하기에 나는 별수없이 걔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엔 같이 라면을 끓여먹고 수리 기사를 불러 보일러 수리까지 일사천리로 마쳤다. 15년 가까이 된 노후 보일러라 아마 그랬을 거라며 주인 아주머니도 선뜻 새 보일러로 교체해주는 데까지 정말 막힘없이 착착이었다.


어디까지나 도영이와 저녁 먹고 집으로 귀가하기 전의 얘기고.


나를 데려다주고 일찍 돌아가겠다는 도영이가 오래 멈춰 있던 건 예상 못한 그의 인영을 한 눈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구옥의 옥탑 건물 아래에서 누구를 기다리는지 잠깐 고민하게 만드는 그를 봤을땐 이게 우연적 만남인지 그의 계획에 포함된 일인지 조금 추측해볼 수 있었다.


“형.”

“응. 도영아.”


우리집을 찾아와선 도영이 이름을 부르는 게 도영이를 찾아온 거 같기도 했고 다음으로 내게 미끄러지는 시선을 보면 꼭 나를 찾아온 거 같기도 했다. 이 상황이 이해 안 가긴 마찬가지였다. 도영이 목소리에는 나만 알아챌 수 있는 모종의 경계가 느껴졌다.


“형이 어쩐 일이세요?”

“옥탑에 사는 애 보러. 물어볼 것도 있고.”


불명확하게 말을 흐리거나 돌리지 않는 사람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옥탑에 사는 애. 그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옥탑에 사는 줄은 어떻게 알고. 도영이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나를 봤다. 하얀 얼굴이 오늘따라 더 하얗네. 이런 감상이나 하고 있는 걸 지금의 도영이가 안다면 넌 참…. 같은 말을 흐리며 헛웃음치겠지.


“집… 니가 알려줬어?”

“아니.”


그는 대화에 적당히 난입해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명답을 알려줬다. 


“백반집 갔었어. 어떤 아주머니가 교복 보고 알려주던데.”


아마 친구인지 아셨나봐. 부연한 말에 나는 그를 건너다본다. 뭐든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 쉬운 사람이었다. 세상은 그에게만 어렵지 않게 풀이되는 현상과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정말 친구인지 알고 알려줬을까. 내 입장은 아니라는 결론에 가까웠다. 


아주머니는 오빠의 만행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만큼 우리집과 가까웠다. 한 나라의 수영 유망주가 어떤 폭력 사건에 휘말렸는지 제일 먼저 안 사람도 아주머니였고 가뜩이나 좁은 동네에서 소문을 빠르게 퍼뜨린 것도 아주머니의 일조가 가장 컸다. 그녀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아야 하는 성향으로 어쩌면 그가 누구 동생인지에 대한 인식쯤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그가 도영이를 부르기에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도영아.”

“네.”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줄래. 둘이 얘기하고 싶어서.”

“…….”

“걱정 마. 귀한 친구한테 해코지 안 해.”


불순한 의도도 적의도 없는 그의 노련한 태도와 어색함 없이 술수를 부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말을 신뢰하게 만든다. 얘기하고 싶다는데. 해코지도 안 한다는데 굳이 여기에 끼어들어 지금 애기하라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시선은 도영이를 부를 때만 제외하고 나에게 향해 있다. 둘이 할 얘기가 뭐란 말이지. 또 시시한 장난질에 불과한 거라면 별로 안 듣고 싶지만 고작 그 짓을 여기까지 와서 행할 바보는 아닌 거 같고.


그의 너그러운 말투는 도영이의 말을 쉽게 떼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도영이 팔에 손을 올리며 냉기가 도는 분위기를 어떤 수로든 정리하고 싶었다.


“가. 카톡할게.”


불안함이 깃든 눈을 목도한다. 마지못해 웃던 도영이가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락해.”

“응. 조심히 가.”

“보일러 알지?”

“알아. 안 잊어먹고 꼭 틀게.”

“무슨 일 있으면,”


그러고 잠깐 말이 없었다. 정재현과 나 사이의 가운데, 텅 빈 허공을 보다가 다시 밝게 문장을 정정한다.


“전화해. 나 필요하면.”

“응.”


그가 서두르지 않고 잔잔하게 인사한다. 잘가 도영아. 내일 학교에서 보자. 부드러운 말투로 도영이를 경계하지 않는다. 원래 말투가 그랬었지. 그래서 방심하게 만들고 누군 열광하는 고백을 감흥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도영이는 예의 그 예쁜 미소 속에 불안을 숨기고 돌아섰다.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거워보이는 도영이를 겨우 보내놓고 옥탑으로 올라가자 그가 따라왔다.


집까지 찾아온 사람을 길거리에 그대로 세울 순 없고 집 안에 들이기도 그림이 이상했다. 손님 대접을 해야 하나. 도영이 아닌 타인이 이 집의 손님인 게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가. 아무래도 대접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지었다. 사실 줄 것도 없었다. 그는 벌써 옥탑 환경에 적응한 사람처럼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별볼 일 없는 전망을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나란히 옆에 자리하며 그가 보는 하늘을 똑같이 주시했다.


“담배라도 드릴까요.”

“아니.”

“말 없이 있는 거 불편해요.”

“유감이네. 난 괜찮은데.”


오래 침묵한 정재원 사건에 대한 책임 소지를 묻고자 찾아왔는지 모른다는 추측을 했지만, 예상 외로 그의 목적은 너무 실 없어서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크레인이 와서 컨테이너를 실어갔어.”


무슨 크레인이고 무슨 컨테이너. 기억을 더듬다가 담배를 몰래 보관해왔던 학교의 낡은 컨테이너 박스가 기억 귀퉁이에서 등떠밀려 나왔다. 그는 축축한 상태로 며칠을 습기에 찌든 담배갑을 내밀었다. 구겨 넣은 모양까지 딱 내 것이 맞다. 이걸 주러 여기까지 행차한 게 좀 이상하지만. 나라면 안 그랬을 거 같지만. 그의 심리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영이랑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나봐.”

“거의요.”

“도영이 좋아해?”

“오빤 안 좋아해요?”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의 규격을 정하지 않고 대강 대답한다. 좋아하냐는 물음의 의미는 두 가지. 친구로서나 이성으로서나. 전자에 반해 후자는 사적인 영역이고 그와 간략하고 얕은 사이에 가볍게 대답할 말은 아니었다. 나는 전자로 해석했으며 후자라도 대답해줘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태연하게 역질문을 건네자 그는 그 의도마저 헤아릴 줄 아는 얼굴로 묘하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다시 내 대답을 정정해보기 위해 자신의 질문이 가진 정확한 의미의 발설을 멈춘다.


“그치. 누가 싫어할 성격은 아니지. 도영이가.”


가뭄이 난듯 싸구려 페인트칠이 갈라진 옥상의 초록 바닥을 무념히 바라봤다. 결국 내가 먼저 오빠 얘기를 꺼냈다. 우리 오빠 보러 왔으면 지금은 아니라고. 같이 살진 않는데 오빠 오면 알려줄까요, 선선히 물어보자 그가 미소를 잠시 거두고 의아한 고갯짓을 한다.


“내가 너희 오빠를 왜 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따질 명분은 있고 따지러 올 명분도 있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왜.”


…그러니까. 그가 왜? 그러게. 당사자가 아닌데, 나도 가해한 본인이 아닌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측근들끼리 그럴 이유가 있나. 그런 쉬운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잘못한 건 없잖아.”

“…….”

“생각보다 우리 형이랑 내가 정이나 복수를 대신 나눌 정도로 깊진 않아서 그걸 신경쓰고 있진 않아. 형도 잘 살고 있는데 내가 뭐하러.”


이곳까지 걸음이 당도한 본래의 목적 자체가 정말 내가 숨긴 담배를 전달할 뿐이었다는 듯 그가 자릴 털고 일어선다. 그리고 축축하지 않은, 아직 뜯지 않은 새 담배를 내 옆에 놓아둔다. 숨겨놨던 그 담배는 습기가 너무 차서 다 못 쓰게 될 거니까. 그 위에 자신이 쓰던 달 모양의 지포 라이터까지 포개고선 간다는 말도 없이 걸음을 돌린다. 나는 빈자릴 망연히 보기만 하다가 그걸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늘 불쑥 나타나 잔상을 남기고 가는 사람. 불가해한 말로 대중없이 장난치지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익숙해진 것처럼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외로움을 이런 방법으로 충족하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그가 외로움을 느낄 성향의 인간이던가.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자신의 체적보다 더 크게 가지고 사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잘 모르겠다.


집에는 따뜻한 음식 냄새가 내려앉았다. 간이책상 위엔 오빠가 두고 간 돈과 한솥 가득 끓인 카레가 있었다. 교정되지 않은 삐뚠 글씨체가 날림으로 적혔다. 라면 말고 밥 먹어. 필요한 거 있으면 카톡에 보내. 아빠나 엄마 연락오면 말해주고. 나는 잘 지냄. 


요즘 시대에 카톡이 있는데 웬 아날로그 감성이야. 안 어울리게. 나는 카레가 든 냄비 뚜껑을 덮으며 도영이의 카톡도 마저 확인했다.



김도영


집이야?


응. 그 오빠 갔어.


왜 왔대?


담배 갖다주러. 내꺼.




오래 말이 없던 도영이는 그의 얘기를 묻지 않았다.



김도영.


그거 언제 끊어.


요즘 끊을까 생각중.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난 찬성.




설핏 웃음이 스치고 간 입가엔 다시 미소가 사라진다.


김도영


보일러 아끼지 말고 틀어.

어제 집 얼음장이더라.


고마워.


아프지 마.




아프지 말란 말을 하기엔 도영이는 아플새도 주지 않고 이사오자마자 웃풍 돌까봐 창틀 완충제를 구해다가 여기저기에 붙이고 다녔다. 늘 나를 걱정했고 걱정을 호들갑떨며 티내진 않았지만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는 사이다. 나는 내가 알아서 잘 할게. 답장을 썼다가 지웠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한 말이나 도영이는 가끔 이런 답장을 받으면 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섭섭해했다.


김도영


도영아.


응?


너도.

아프지마.




사람이 사람을 쉽게 재단하는 세상에서 우린 살아남자고. 그런 약속을 언제쯤 도영이와 했었다.
















학교 자습실의 갑작스러운 내부 공사 문제로 공부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다. 도영이와 같이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가는 게 유일한 방편이었다. 우린 공부를 했다가 시집을 넘겨봤다가 또 오랜 고서를 몇 권 가져와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잠깐 연락을 받고 나간 도영이는 한참이나 지나서 나를 밖으로 불렀다. 검은 봉지 안에는 단 냄새를 풍기는 작은 딸기들이 촘촘하게 있었다. 형이 왔다 갔다는 말을 꺼내며 그걸 내게 주는 손이 나보다 참 따뜻하다.


“너 주래. 우리 집엔 과일이 너무 많고.”

“오빠가 여기까지 온 거야?”

“근처에 과일 배달왔다가.”


이것도 비타민씨 보충의 명분인가. 수험생에게 특혜로 주어지는 관심의 일종. 나는 봉지를 열어 가장 깨끗한 딸기 하나를 입에 넣었다. 과즙이 터지고 잇몸 틈새로 단 기운이 퍼진다.


“달다. 너도 먹을래?”

“너 다 먹어. 딸기 좋아하잖아.”


도영이는 내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귀여워. 웃으니까 보기 좋다. 그런 말로 하여금 나는 내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웃는거에 야박한 편은 아니지만 웃는 것보다 웃지 않는 게 더 편하기도 했다.


“오빤 오늘도 일?”

“응. 주말까지 바쁘대.”

“딸기 다 먹겠다고 전해줘. 바쁜데 나까지 챙기는 게 좀 미안해지지만.”

“좋아서 하는건데 어때.”


오빠는 도영이가 대학에 합격하고 나면 소방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했다. 지금 일하는 양도 보통이 넘어서 아마 체력 면에선 딸리지 않을 거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때쯤엔 자신이 형을 뒷바라지하며 지금의 부채감과 고마움을 꼭 돌려준다고 했지만 내가 본 오빠는 도영이에게 그런 걸 받을 사람이 아니다. 확실히.


우린 오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대입 후의 삶을 마음대로 상상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정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도영이가 들려주는 얘기들이 아예 먼 얘기도 아니었고 나는 그냥 듣기만 하는 일이 전부였다. 미래의 우린 같은 학교를 다니며 같은 층이나 같은 건물, 혹은 기숙사 생활을 할 거고, 지금보단 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캠퍼스를 나란히 거닐 것이다. 아마도 손을 잡고 걱정 없이 웃으면서.


도영이는 조금 들뜬 얼굴로 미소짓고 있었다. 늘 그래왔듯 햇살처럼 밝고 눈이 부신 미소였다. 웃지 않으면 차가운 인상이지만 웃으면 봄날의 볕처럼 따스한 느낌이 든다. 도영이는 대개 웃는 편이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옆에 있으면 어느 계절에 머물러있든 봄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보다 한뼘 넘게 큰 도영이를 보며 부드러운 머리칼 안으로 손을 쓱 집어넣어 살살 헤집어놨다. 도영이는 눈을 깜박거리고선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나를 내려다본다.


방금 그 손길이 너무 좋은 얼굴로. 왜? 하고 물으면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냥. 너 예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은 갑자기 들어.”

“무슨 생각하다가?”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니가 말한대로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덧붙은 말에 도영이는 더 햇살같이 웃으며 손을 잡는다. 


사실은. 난 도영이가 들려준 미래 지향적인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대로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일정 부분에 있어, 어쩌면 더 많은 부분을 내가 도영이처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도영이가 나를 봄처럼 쳐다보는 시선에 매료돼서, 따뜻하게 맞잡은 손의 온기에 무감하던 감정마저 녹아들어 조금의 희망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사귈까.”


장난의 연속은 불시에 찾아왔다.


“심심해서 이래요?”

“응. 아니.”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이쯤이면 좋게 넘어가보려 해도 반복적인 흐름이 지겨워 짜증이 좀 나기도 했다. 여전히 이러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는데 애들 사이에 도는 각색들은 피곤했다. 비정상적인 사람을 정상처럼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사람들은 정상처럼 굴지만 다들 어딘가 하나씩 얼빠져 있는 게 기본이니까. 그래서 그를 이해하길 포기한 거다. 모두 나 같을 수 없으며 모두의 생각이 나와 일치할 일도 없다. 


그런데 그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뭇 진심같이 들리기도 해서 이젠 직접적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 없어요.”

“그만하란 말을 안 해서. 재밌잖아.”

“반응을 안 하면 보통 그만하란 뜻으로 알던데.”

“난 반응을 안 하면 반응을 안 한다고만 생각해.”

“왜 이러는데요.”

“궁금한 게 있어서.”


옥탑에 찾아왔을 때도 싱겁게 돌아서놓고 또 궁금한 게 있다니. 그럼 처음부터 사귀니 연애하니 따위의 건설이라곤 없는 말 말고 궁금한 걸 물어봤으면 됐을 일이지 않나. 


이런 말을 한 까닭을 알고자 왜냐고 질문했을 때 그가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핸드폰 앨범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보여줬다. 너무 익숙한 사진이라 오래 들여다보지 않아도 파악이 가능했다. 내가 찍은 노을 사진. 학교 회지에 실렸던 성명 미상의 그 노을. <고야>라는 익명으로 심심풀이처럼 도영이가 몰래 제출해봤다가 문상을 얻었던 역사가 있는 사진이었다.


“여기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그가 <고야>라는 미지의 이름으로 제출했던 시나 사진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같이 가주면 더 좋고.”


그래도 이 말이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사귀자는 의미 없는 장난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노을 사진에 지나지 않는 것에 흥미를 느꼈는지 단순히 장소가 궁금했는지 알 순 없는 거고. 나는 당장 귀찮음을 탈피하고자 그의 헛소리를 멎게 할 수단이라면 원하는대로 해주겠단 심정이었다.


샛길로 빠지며 나를 묵묵히 따라오고 있는 그를 단 한 번도 일별하지 않았다. 곧 도착한 곳은 사진의 풍경과 다르게 볼품없게 느껴진다. 원래는 공용 주차장 부지였던 곳에 건물을 세우려다 시공사랑 아귀가 맞지 않던 땅 주인이 하필 재개발 소식까지 전해듣게 됐고 구청에서 사건에 개입하면서 공사마저 도중에 포기한 땅이었다. 오랜 흉물로 자리잡은 건물이 가을에 헐린 뒤 누군가 그곳에 흙을 덮어놨는데 겨울에 진창이 됐다가 웃기게도 이른 봄에 싹을 틔운 거다.


주변 건물이 포크레인에 무참히 정체를 잃고나니 그 뒷배경으론 노을 지는 게 유난히 잘 보이는 너른 하늘이 펼쳐졌다. 이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이곳을 알아낸 건 도영이었다. 가을에 핀 코스모스를 보여주겠다고 나를 데려왔고 겨울엔 눈 쌓인 장관 속에서 눈사람도 만드는,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여러겹 쌓인 곳이었다.


“여기였네.”

“지금은 아직 해가 있어서 그 사진처럼 안 나와요.”

“그래도 좋다.”


그는 그곳을 한참 바라보다 노을 사진의 원본을 내게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역시. 나인 걸 어떤 방법으로든 알고 있었던 거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내 번호를 알아갔고 나는 그의 번호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저녁에 그의 번호로 노을 사진을 전송했고 답장이 뭐라고 왔던 거 같은데 도영이와 저녁을 먹느라 확인하지 못했다. 


다음 날 회화실에서 그가 자신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말없이 보여줬다. 나의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지정한 것을 보고선 나는 뭐 어쩌라는 건가, 싶어 반응하지 않았다. 네. 그러고 말 뿐이다.


후일에 그 공터 부지를 지날 때마다 나는 노을이 보이면 습관적으로 이유를 모른 채로 사진을 찍곤 했다.
















그는 궁금한 걸 해결하고도 잊을 만하면 아주 가끔. 담배를 피우다가도 사귈래, 같은 실속없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양치기 소년 저주에 걸린 느낌이었으므로 나는 이제 그 말엔 진심이나 감정이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냥 무시하고 말면 되는 일이다. 그 진심은 재단하는 게 쉬워 돌아서면 금방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는 일은 생겼다. 그가 어느날 그걸 도영이 앞에서 발설해버린 거다. 사귈래? 하고. 애들한테 믿거나 말거나 식의 소문만 들었지 문제의 발언을 직면하게 된 도영이는 황당 속에 그늘져있는 기껍지 않은 마음을 대충 미소로 무마했다.


“형. 장난 좋아하시나봐요.”

“장난같아?”


다른 질감의 미소가 충돌한다. 단정하던 도영이의 미소는 중심을 잃고 무너져 서서히 굳어지고 주어진 상황이 항상 쉽게 풀이되는 그는 아무 감정없이 담담하게 웃을 뿐이다.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난 건 아닌데 도서관에 가야할 일이 생각나 의자를 뒤로 물리며 일어났을 땐 그가 내 손을 심상하게 잡아왔다. 도영이는 불편한 장면 연출을 한참 응시했지만 정작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레 말을 건다. 왠지 공모자가 된 느낌이다. 


“알겠어. 장난 안 칠게.”

“그래서 나가는 거 아닌데요.”

“그래서 나가는 거 아닌 거 알아.”


단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번엔 그가 일어나 책을 챙기고 자리를 뜬다. 여전히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이지만 분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영이 눈은 그의 자리를 일별한다. 말을 신중하게 고심하다 복잡다단한 심경을 다 물리지 못하고 기막히다는 반응을 보인다.


“뭐야. 저 형.”

“저게 정상으로 보이니. 신경쓸 거 없어.”

“난 오히려 정상 같아서 짜증나는데.”

“일어나. 매점 가자.”


이제 도영이는 그를 우호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다. 회장의 직무로서 학급의 일원을 성실하게 챙기는 일까진 도의적으로 행하겠지만 그 이상은 아마. …아닌가. 나도 도영이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때때로 다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어색할 때가 있다. 


“계속 저랬어?”

“응. 입만 열면 저래.”

“이유가 뭐라는데?”

“심심하대.”

“자기 무료함을 왜 저렇게 풀어.”

“그런 사람들 있잖아. 그냥 무시해.”


무료함을 저렇게 푸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도영이는 투덜거렸고 내 생각에도 저런 발언으로 무료함을 푸는 사람을 그 외엔 본 적 없지만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도영이의 불만은 가까스로 잦아들었다. 이런 사람도 있는거고 저런 사람도 존재하는 거지. 사람이 매뉴얼만 따르고 살면 그건 기계지 인간인가. 각자 다른 본성을 취하고 살아가는데 그런가보다,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네 따위로 퉁치면 다 이해해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효용없는 얘기를 길게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런 대화를 하는 시간마저 부질없다. 도영이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지쳐갈 쯤엔 입을 다물거다. 그만하라는 말을 안 뱉고 있는 건 저런 말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하여간 반응을 하면 더 재미있어 하는 게 이상한 사람들의 특징이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야자실엔 옆 자리도 비어있었고 옆옆 자리도 비어 있었다. 옆 자리 주인은 과외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개인 사유서를 제출했고 옆옆 자리의 그는 집안 어르신의 기일을 이유로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영이와 나는 야자 중간에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한강둔치를 유유자적 걸으며 수시 모집 지원으로 바빠질 때를 대비해 미리 콧바람을 쐬었다. 


도영이는 엄마의 부탁으로 아쉽게 일찍 발길을 돌렸지만 나는 강 앞에서 30분 정도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을 아무 생각없이 관망하기만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엔 호프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오빠 친구들을 보았는데 그 앞을 지나가기가 영 껄끄러워 훨씬 돌아가는 길을 택하며 천천히 걸음했다. 그리고 노을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는 나를 붙잡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며 내가 찍은 사진의 구도를 파악하는 건지 좀전의 나처럼 생각없이 보고만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을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그 상태로 그에게 문자가 왔다. 계단을 오르며 확인한 문자는 그가 찍은 노을 사진이었다. 배경화면으로 지정한 내 사진처럼 비슷한 구도에서 찍은 그 노을 사진.



정재현


(사진)

여기 좋다

알려줘서 고마워




따로 답장은 하지 않았다. 홀드키를 누르며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씻고 나와 습관처럼 폰을 확인하자 도영이에게 잘 들어갔냐는 카톡과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단 눈물 이모티콘이 차례로 수신됐다. 아주머니의 몸은 낙관을 전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가 작은 부탁을 요청하면 바로 들어주려는 도영이의 노력을 알기에 미안할 거 없다는 답장만이 내가 도영이를 위로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에게선 그 사진 외에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는 노을 사진을 다시 보다가 책을 펼쳤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것은 밤이었다. 당연히 오빠와 관련된 일임을 직감했다. 다음으로 도영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평소와 다른 기운을 느꼈다.


-“나 도영인데……. 형이…. 나랑 같이 있어.”

“왜? 방금 경찰서에서,”

-“…….”

“도영아. 너도 거기 있는거야?”


아무래도 오빠 친구들과 오빠가 호프 집 앞에서 낄낄대며 담배를 피우던 장면을 그냥 보고 지나온 게 미덥지 않았다. 예감이 좋지 않다는 감각이 일상의 균열을 엄숙하고 파괴적으로 치고 지나간다. 도영이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으나 억지로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메세지를 주고받던 대상에게선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침묵이 오래 지속됐다. 카톡이 끊기기 전엔 늘 공부면 공부, 잠이면 잔다는 말을 버릇처럼 전해줬는데 이상할 정도로 답장에 긴 공백이 있었다. 그럼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인가. 


도영이는 말을 잇지 못했고 침묵이 더 길어졌다.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인지를.


“내가 갈게.”

-“와도 내가 없을지 몰라. 우리 형이…. 놀라진 말고. 너 여기 올 수는 있겠어?”

“응. 지금 나가.”


근심에 찬 목소리와 차원이 다른 절망같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없어서 전화를 끊자마자 뛰어 나갔다. 땀이 흐르는 부위에 바람이 닿자 소름이 돋는다. 분열을 거듭하다 발전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된 동네를 빠르게 스치며 유일하게 멀쩡한 건물 행세를 하고 있는 경찰서 문을 밀쳤다. 도영이는 없었고 오빠와 오빠 친구들이 잿빛의 시커먼 숯덩이와 비슷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화재의 흔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얼굴엔 검은 얼룩이 난잡하게 묻어있었다. 참담해진 심정으로 마침 뉴스 속보로 뜬 낯설지 않은 동네를 망연히 바라봤다. 시민 제보 동영상 속의 화염이 치솟는 곳은 과일가게였다. 알바생의 빠른 대처로 불은 진압되었지만 과일 가게 주인은 중경상을 입게 되는 등 인명피해에 대한 파악이 간헐적으로 섞여 들어온다. 과일 가게 김모씨의 아들. 친구들. 주취자. 싸움과 방화. 그런 단어들이 엉켰다.


“도영이는.”


오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경찰이 다가와 내게 물 한잔을 건네줬다. 혹시 아까 전화한 애는, 까지 말하자 오빠의 오랜 일탈로 자연히 안면을 트게 된 경찰이 한숨을 쉰다. 피해자는 병원에 있고 가족이 같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일단 보냈다고. 시야가 아득해졌다. 피해자라니. 도영이의 행방을 물었더니 피해자의 가족이라고 말한 현상에 대해 나는 다른 걸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들을 나무라는 경찰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발설된다. 얘들 부모한테는 말씀 안 드렸냐고, 아무리 성인이라도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는 동네의 터줏대감 같았던 경위가 혀를 내둘렀다. 그 옆에선 이번 곗돈 사건에 대해 감흥없이 나열하는 젊은 경찰의 목소리가 닿는다. 사기죄 고발 건이요. 그 곗돈 도망. 간명한 설명 뒤로는 모두 안다는 듯이 탄식만 뱉을 뿐이었다.


아직도 뭐가 잘못된지 모르고 술 취한 낯짝으로 고개만 꾸벅꾸벅 거리는 오빠 친구들과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누워있는 신원 불명의 남자에게서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의 안온함이 풍긴다. 나는 이성적인 사고의 균형을 잡고 있기가 힘들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빤 계속 말이 없었다. 눈을 내리깐 채 낭패감느끼며 머리를 감싸기만 했다. 궁색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는 단념의 눈을 보자 불안이 점점 높아진다. 이렇게 나와버리면 피해의 범위를 정말 가늠할 수가 없으니까. 차라리 아무 얘기도 안 들었으면 싶다가. 차라리 영영 모른 채 도망가버릴까 싶다가. 


그런 순간의 충동으로 도영이를 혼자 두는 일이 비겁하다는 결론에 이르자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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