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의 인사법 

작가 빈


발랑 까진 년. 할머니가 엄마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라는 존재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날이면 친할머니 무릎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곤 할머니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었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에게 주저하는 기색 없이 그녀를 향한 욕들을 줄줄이 읊어댔다. 그 욕들은 어린 아이가 듣기에 절대 바람직하지 않았으나 할머니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온갖 ‘년’으로 끝나는 말들을 뇌까렸다. 정작 그걸 들어야 할 장본인은 이 집에서 나간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엄마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했다. 결국 엄마는 ‘발랑 까진 년’ 이라는 것이었고,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할머니 당신께 떠넘기고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어떤 반발심이 내 안에 솟구치곤 했다. 나를 낳아준 엄마라는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매도되는 것을 자식인 나라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대드는 순간, 아빠라는 사람으로부터 바로 어떤 응징이 날아올지 잘 알았기에 입을 우물거리다 다무는 게 다였다. 그에 대한 수치심은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역시나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항상 날 질문하게 만들었다. 시무룩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일곱 살의 나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되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간 줄 알고 할머니가 중얼거린 것이다.

“원치 않은 아이였다고 바득바득 우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 썅년.”

어렸던 나는 그 말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엄마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아 입을 비죽이며 방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 뒤로 엄마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이나마 채워지게 된 건, 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 엄마의 방이었다는 곳에서 모든 물건을 끄집어냈다. 쓰레기장에 쌓인 엄마의 소지품들 중에서 어린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먼지로 뒤덮인 결혼 앨범이었다. 그동안 엄마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던 나는 이때가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몸을 옹송그린 채 살금살금 그쪽으로 다가가 결혼 앨범을 빼왔다.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바로 앨범을 펼쳤다. 그 순간, 툭 하고 어떤 작은 수첩이 떨어졌다. 붉은색 가죽 표지로 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엄마의 것일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일단 그 수첩을 내 주머니에 소중하게 꽂아놓고, 많은 사진들 중에서 엄마를 찾는 일에 주력했다. 어린 내 눈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천사처럼 보였다. 방문 너머로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린 나는 쉽사리 그 앨범을 닫지 못했다. 그 뒤로 마음이 울적해지는 날이면, 엄마의 결혼 앨범을 펼쳐 보는 건 나의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결혼 앨범을 다시보자, 어릴 때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지나치게 큰 부케 꽃다발로 자신의 배를 계속 가리고 있었다. 엄마가 부케를 던질 때 찍은 사진에서만 그녀의 배를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보자 나는 어떤 확신에 사로잡혔다. 눈치 채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나자 그렇게 자주 보았던 결혼사진들이 다르게 보였다. 엄마와 신부 측 친구들은 그렇게 활짝 웃고 있지 않는다던지, 엄마 가족들도 웃는 게 마냥 어색해 보였다. 나는 아빠와 엄마가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분명 최고로 행복해야 할 날일 텐데, 엄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녀의 눈은 경직되어 있었고 입매는 굳어서 위로 올라가지를 않았다. 그 표정에서 나는 엄마로부터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태어나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였다.

나는 친할머니에게 엄마의 연락처를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아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겁쟁이가 아니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걸 아버지에게 들키고 난 다음이 문제였지만. 그날 나는 말 그대로 개같이 맞았다. 자식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그의 말에 자식 취급을 해주긴 했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때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을 보자, ‘꼭지가 돌아갔다.’ 라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 눈을 보자 아까의 기세등등한 태도는 사라지고,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를 보며 그가 웃는 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나는 어떤 기시감에 사로잡혀 입술을 깨물었다. 어릴 때부터 뺨을 맞는 등의 폭력은 익숙했으나 그 날은 정말 기념비적으로 많이 맞았다. 그 다음날, 몸살로 열이 내리지 않아 나는 학교에 빠졌다. 가죽 벨트로 등을 너무 맞아서 엎드려 누운 채로, 나는 엄마를 꼭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중학생 때 다짐한 그 결심이 이뤄진 건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내가 만난 엄마의 모습은 할머니가 묘사한 것과 정반대였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숏 컷에 안경을 쓴 그녀의 모습은 지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수트가 끝내주게 잘 어울렸다. 그녀가 담배연기를 내 쉴 때마다 진한 붉은 색 입술이 빛났다. 담배 연기 사이로 날 쳐다보는 당당한 그녀의 눈빛은, 가슴 시리도록 차가웠다. 엄마를 만나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 이어온 노력 덕이었다. 결혼 앨범 안에 끼워져 있었던 붉은색 표지 수첩이 크 도움이 되었다. 그 수첩 안에는 엄마의 지인들의 전화번호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전화 번호 옆에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해주는 메모들도 있었다. 나는 일일이 수첩에 나와 있는 번호들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초조해하고 짜증내기보다는 매주 꼬박꼬박 그 사람이 입을 열 때까지 방문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뒤에 엄마에 대한 소식을 조금씩 말해 주었다. 주말 내내 그녀의 행방을 찾아 돌아다니고 일요일 밤엔 모은 정보를 노트에 꼬박꼬박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참한 딸이었다는 것이었다던가, 엄마는 잘 나가는 패션 잡지 기자였다는 것, 그런 엄마가 사내 동료인 아빠랑 연애를 하다가 덜컥 임신하게 되었다는 등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 엄마를 찾게 된 가장 결정적인 정보는 엄마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은 잡지 회사에 입사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야만이 엄마를 만나는 것이 가능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 친구의 연락처는 어떻게든 구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만나는 것이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쉽지 않았다. 그 분은 나를 경계했다. 그녀의 심정은 이해가 갔으나 나는 나대로 절박했다. 그 친구는 내가 엄마의 정보를 아빠에게 넘길 것을 가장 불안해했다. 며칠에 걸쳐서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거듭 문자를 보내고, 엄마를 만나기 위해 모은 정보 노트를 사진 찍어서 보내자 그녀는 나와 약속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나를 만나서 얼굴을 보자마자 한 가지를 확실히 해두었다. 내가 너를 만나준 건, 네 엄마가 허락해서야. 그 말에 가슴이 뛰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네 엄마는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해 하며 지내고 있어. 그걸 네가 방해하면 안 돼.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쏜살같이 결혼식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엄마는 일을 그만 둬야 했다. 할머니는 집안일에 서투른 엄마를 많이 구박했다고 한다. 아빠도 결혼 한 뒤에는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가 바뀌어 엄마에게 손찌검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결국 엄마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날엔,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그저 바닥만 봤다. 내 표정을 보고선 그녀가 약간 높은 톤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실적을 쌓아 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그녀가 자리에 일어서면서 엄마의 명함을 내게 건넸다. 그 종이에서 몇 번이나 봤지만, 결국 낯설게 느껴지는 세 음절이 가지런하게 적혀 있었다. 서현주.

너한테 이렇게 전해달라더라. 이 이야기 듣고도 네가 만나고 싶다면 연락 주라고.


그녀가 떠나도 나는 카페에서 한참동안 자리에 붙박인 채 엄마의 명함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내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서 따뜻한 환대는 기대하지 말라는. 나는 그동안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내가 거쳤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렸다. 정보를 모으면서, 그런 건 어차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명함을 들고 핸드폰의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래, 할 말이 있다고.”

흡연실 자리 쪽에 앉자마자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잘 지냈니? 라는 상투적인 인사 하나 없는 첫 마디였다. 적어도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궁금해 하실 줄 알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와 주셨네요. 안 오실 줄 알았어요.”

“할 말이 있다니까, 들으러는 와야지.”

그녀는 간결한 대답을 끝낸 뒤 그 말을 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오면서 그렇게나 할 말이 많았는데 혀가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다. 긴장한 나는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별 영양가 없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은 명백히 지루하다는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더 긴장하여 탁자 밑의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언제라도 엄마가 내 말을 자르고 일어설 것 같았다.

“딱히 할 말 없으면, 여기서 일어나자. 나한테 뭔가 요구하러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 지루하게 늘어지자 예상대로 그녀가 핸드백을 집으며 말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아녜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핸드백을 쥐었던 손을 놓았다.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던 말을 떠올렸다.

“…살아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그 말을 듣자 냉정함을 유지했던 그녀의 눈에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단단한 얼음벽에 균열이 간 것을 본 기분이었다. 조금의 자신감을 되찾아, 아까와 달리 혀가 매끄럽게 말을 쏟아냈다.

“살아있는 상대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과 상대가 죽어서 만나지 못하는 것 중에 뭐가 더 괴로울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답을 알고 싶지도 않다는 눈빛으로 무심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용기를 쥐어짜가며 말을 이었다.

“저는 상대가 죽는 게 더 괴로울 것 같아요.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해도 상대가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잖아요. 아니, 일단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나게 위로가 되는데… 죽으면,”

잠시 말을 멈춰야 했다. 목이 막혔다. 그녀의 손목에 저절로 시선이 갔기 때문이었다.

“진짜 끝이니까…… 만나는 게 불가능 하니까… 만나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어릴 때부터 엄마는 상상 속에서 나와 함께였다. 슬픈 일이 있었으면 나는 훌쩍거리며 자기 전에 엄마에게 털어 놓는 상상을 했다.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상상을 하며 자연스럽게 꿈속으로 빠질 수 있었다. 그 슬픔은 오롯이 내 것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내 슬픔을 안다, 라는 위안이 내 마음에 따뜻하게 차올랐다.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며 엄마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나갔다. 엄마도 잠이 오지 않으면 양을 셀까. 엄마의 목소리는 어떨까. 엄마는 요리하는 걸 좋아할까. 엄마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할까. 내가 빗소리 듣는 걸 좋아하니 엄마도 좋아하지 않을까. 등등.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내 삶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하기를 멈춘 나에게 엄마에 대한 질문들은 의미 있는 것이었다. 변함없이 지옥 같고, 지루한 일상에서 그녀에 대한 의문들은 샘처럼 끊임없이 퐁퐁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것만이 나를 조금 견디게 해주었다. 그런 질문들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가 죽었다면 그런 모든 나의 의문들과 상상들은 모래처럼 허물어질 것이었다. 그 허무를, 어떻게 견뎠을까.

말을 마치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녀가 아무 반응이 없자 내 얼굴은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 속으로 곱씹은 그 말이 감동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뱉는 순간 상투적인 말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속을 알 수 없었다. 피식- 하며 공기 빠지는 소리가 무거운 공기를 뚫고 날라 왔다. 귀싸대기라도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낭패라는 생각이 들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리구나.”

대답할 말을 못 찾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죽는 게 나은 삶도 있어.”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녀와 계속 눈을 마주치는 게 힘들어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그녀가 집중하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

“……”

“알겠니?”

겨우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시선을 똑바로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똑똑히 알아두라는 듯이. 내가 고개를 약간 숙이자, 그녀는 핸드백을 챙기기 시작했다.

“할 말 다 끝났으면 이제 가 볼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이렇게 끝내려고 나는 몇 년간을 그렇게 주말을 버리면서 지내왔나? 나는 뭘 바라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엄마를 찾은 걸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즉흥적으로 뱉었다.

“당신은 알 것 같았어요.”

그녀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뭐를.”

“원하지 않는 삶에…던져진 기분이요.”

“……”

그 말 한마디에 그녀의 눈빛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스쳐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연민이었는지 혐오였는지 나로서는 구분할 수 없었다.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짧게 커트 친 당신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개인 통장 있지?”

“……네?”

“고등학생인데 있겠지. 계좌번호 알려줘.”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보같이 입을 반쯤 벌린 채 되물었다.

“왜요?”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매달 용돈 입금해줄게.”

“네?

“한 달에 20만원이면 되겠지? 적니?”

상상도 못한 제안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나는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20만원이라니. 과분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모성애라도 발휘하는 것일까 아님 책임감? 내 눈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알아챘는지 그녀가 딱 잘라서 말했다.

“착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 안 해. 넌 그 놈 자식이지.”

예상한 말이라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심장에 미세한 유리조각들이 잘게 박혀오는 통증을 아릿하게 느꼈다. 쓴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도 네 말대로 그 기분을 아니까 도와주는 거야.”

“동지애 같은 건가요.”

내 질문에 그녀가 픽 웃었다.

“딱 그거네, 동지애.”

나는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동지애라면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어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뭔데? 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주에 한 번은 만나줘요.”

“……”

“내가 용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긴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네가 어떻게 쓰던지 나는 상관 안 해.”

“로또로 20만원을 다 날려도요?”

“그래.”

“……”

그렇게 되면 이 돈만 받으면 이제 모자 관계는 영영 청산이라는 건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그대로 나가버릴 줄 알았는데 서 있는 채로 나를 꽤 오래 쳐다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이 끝나고 그녀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주에 한 번이면 돼?”

그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빨리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나는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태도로 빠르게 말했다.

“평일엔 바빠서 안 되고 일요일 저녁 7시마다 이 카페에서. 이 동네는 흡연실 있는 카페가 여기 외엔 없어.”

“좋아요.”

나는 기쁨으로 입가가 올라가려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고개는 절로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가 메모지를 달라는 듯 손짓했고 나는 빠르게 계좌번호를 휘갈겨 써서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그럼 다음 주에 보자. 입금은 내일 되어 있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구 쪽으로 나섰다. 이 상황이 너무 현실감 없어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미쳤다. 허겁지겁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자 급한 마음에 한걸음에 다가가 팔목을 잡았다.

“저기요!”

그러자 그녀가 잡힌 팔을 휘둘러 내 손을 강하게 내쳤다. 놀라서 손을 떼었다. 내가 진정 놀란 것은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보는 것만으로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강한 눈빛의 이면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빠에게 이유 없이 죽도록 맞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은 눈빛이었다. 나는 황급히 사과했다.

“죄…죄송해요.”

“……”

“감사하다는 말을 못 드려서……”

그녀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표정을 지은 뒤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그녀를 쫓아가고 함부로 손목을 잡은 것을 죽도록 후회했다. 이 일 이후로 그녀는 내 연락도 끊고, 겨우 성사시켰던 나와의 만남도 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만났는데. 그래도 이주에 한 번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내 통장에 20만원이 입금되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 그녀에게 ‘우리 내일 만나는 거 맞죠?’ 라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진이 다 빠졌을 때쯤 문자 아이콘이 떴다. ‘그래’ 라고 글자가 띄워진 핸드폰 화면이 빛났다. 그렇게 우리의 기묘한 만남은 시작되었다.



※ 샘플 이후의 이야기는 페미니즘 중단편 소설집 <사바트> 단행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 문학이 불편한 예비 페미작가들의 프로젝트

오라 드리밍 프로젝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