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백을 걸쳐맨 정국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잡생각을 떨치려 평소보다 일찍 기숙사에 돌아온 탓에 날리는 먼지가 햇빛에 잘 비춰 보였다. 때문에 맞은편 침대에 곧게 앉아있는 남준의 모습이 퍽 드라마틱했다.


"정국아."

"형, 있었네요."


정국이 외투를 벗어 의자에 대충 걸쳐두고는, 제 침대에 반쯤 기대 누웠다. 이내 주머니에서 꺼낸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물었다. 


"요즘 힘들지?"


남준이 살갑게 물어왔다.


"항상 똑같은데요, 뭐. 거지같죠."


휴대폰을 만지는 정국의 손가락은 꽤 신경질적이었다.


"훈련?"


남준의 물음에 정국이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네, 뭐."

"성적은 점점 좋아진다고 들었는데."


남준이 와인이라도 마시듯 우아하게 콜라캔을 기울였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 얼굴에 근사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각이 선 턱이 잘 보였다. 꿀꺽꿀꺽, 목울대가 울리는 것도.


"정국아."

"네."

"추잡하지 않아?"

"뭐가요."


정국이 휴대폰에 집중한듯 연신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지민이,"

"..."

"보면서 그렇게 하는 거."


정국이 폰을 보던 눈을 들어 남준을 올려다봤다. 시선의 각도 때문에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남준도 정국을 똑바로 쳐다봤다.


"솔직히 보기 좋진 않던데. 건강하지 못 해."

"제 건강은 제가 알아서 해요."


정국이 다시 휴대폰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저한테 이러는 것보다, 박지민 멈추게 하는 게 빠를 건데요."

"안 해본 건 아니고."

"그래요? 당사자한테 물어봐요? 형이 박지민한테 한마디라도 한 적 있는지."

"지민이는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

"무슨 이유요. 섹스 중독이 아주 이해 가능한 사유인가 보죠?"

"내 입으로 말하긴 힘들다. 그럴 수록 너만 우수워지는 거 알잖아."

"형, 솔직히 말해봐요. 저 보고 꼴린 적 있어요?"

"..."

"표정 풀어요. 요새 후배 자위하는 걸 하도 훔쳐보시길래 박지민이랑 세트로 게이인 줄 알았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남준이 고개를 연신 꺾으며 목과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예민할 필요 있어?"

"밤마다 속 시끄러워서 못 자겠어요? 그래서 나한테 히스테리 부리는 거 아니냐고요. 이정도면 형이 방 빼는 게 제일 빨라요. 형 공부도 많이 해야하지 않나, 스포츠 의학과도 의관데."

"내가 알아서 해."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정국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남준의 침대를 가리켰다.


"솔직히, 그 이불 속으로 무슨 짓을 하는지 누가 알아? 난 궁금하지도 않거든요. 형이 사정할 때 얼굴 같은 거."


남준의 오른쪽 눈썹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정국이 외투를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의있는 새끼가 되긴 애저녁에 포기했지만, 생각보다 더 거지같은 기분을 어쩌지는 못했다. 정국이 남준을 믿고 따르던 시절도 있다는 것은, 이제 말해 봤자 입 아픈 과거였다.

문제가 있는 건 박지민인데 다들 왜 저한테 뭐라는지, 정국은 모를 일이었다.


"내가 욕정했으면 좋겠어?"


정국이 방문은 연 순간 남준이 말했다. 정국이 뒤돌아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남준의 표정도 제법 사나웠다.


"지민이한테, 욕정했으면 좋겠냐고. 너처럼."

"누가 그래요, 내가 박지민한테 욕정한다고."

"욕정아니면 뭐라고 설명한 건데."

"내가 형한테 설명해야할 의무가 있어요?"

"네가 바라는게 뭔지 모르겠다."


남준이 긴 한숨을 쉬었다. 정국은 마치, 자신이 골칫덩어리 애새끼가 된 기분이었다. 정국이 문을 발로 쾅 찼다. 방문이 벽에 부딪혔다가 반동을 받아 다시 위치로 돌아갔다. 문 아랫부분이 부서져있었다. 

썩은 표정을 한 정국이 기숙사 복도를 쿵쿵 소리나게 걸었다.


'네가 바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그러는 당신들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 

정국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솔직히 모르겠다. 아는 것이 없다. 박지민에 대해서도, 그 인간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상하게도 지민과 정국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그건 김남준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쌓아올린 것인듯 했다. 어쩌면 학교 전체가 지민과 정국 사이에 끼어서 뭔가를 필사적으로 가리고, 정국을 밀어내는 느낌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제 자신이었다. 왜 이 관계를 어쩌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지. 올림픽 성적만으로도 정국은 이 학교를 미련 없이 떠날 구실이 충분했다. 정국에게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차고 넘쳤다. 얼마든지 국내 최고의 코치진과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국은 학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에서 누릴 수 있는 약간의 자유가, 아직 다음 올림픽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시간이. 이 관계에 낀 안개를 다 걷어내고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거기 서 있는 건 어쩌면 유리처럼 투명한 박지민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박지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박지민'이 어떤 박지민인지도 모르면서 정국은 생각했다. 또렷하지는 않아도 확신했다. 박지민은 앞으로 더 많아 자신을 흔들 것이다.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저 아주 잠시만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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